야권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에 대한 입장이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일부 중진 의원들이 '조건부 사드 배치론'을 들고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추미애 당 대표가 사드 반대 당론을 공약으로 내세웠었지만, 당 대회 이후 허송세월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드 반대를 당론으로 정했던 국민의당도 중진 의원들이 잇따라 엇박자를 내고 있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이러한 기류가 강해지고 있지만, 야권 일각에서 나오는 대안론은 실망과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김진표의 3단계 사드 배치론이 하수(下手)인 까닭은?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일 사드 배치 논란과 관련해 3단계 사드 배치론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평시에는 1단계로 사드 기지만 배치해 놓고, 2단계로 키리졸브 등 한미 연합훈련을 할 때 C17 글로브마스터 수송기를 통해 사드 포대를 전개하는 훈련을 하고, 3단계로 적의 공격 징후가 농후해질 때 사드 포대를 실제 전개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이를 두고 "(사드가)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설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장고 끝에 하수(下手)'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사드는 훈련 때나 유사시에 배치와 철수를 신속하게 할 수 있는 성격의 무기가 아니다. 1개 사드 포대는 48기의 요격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는 6개의 발사 차량과 발사 통제 장치, 그리고 AN/TPY-2 레이더로 이뤄진다. 또한 작전병과 기술요원을 합치면 150명 안팎의 인원이 필요하다.
이러한 장비와 병력을 미국 본토에서 신속하게 해외 작전 지역에 배치하기 위해서는 배치 지역의 적합도가 대단히 중요하다. 광활한 사막 지대나 활주로를 확보한 해안 지역에서는 가능할 수 있다. 2013년 4월에 사드가 배치된 괌이 이에 해당된다.
하지만 한국에는 사드 포대를 신속하게 전개할 수 있는 기지 확보가 마땅치 않다. 오산공군기지나 군산공군기지를 고려할 수 있지만, 공군 작전에 치명적인 위험을 가할 수 있다는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 2003년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침공 당시 입증된 것처럼 '아군 전투기 잡는 요격미사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력한 부지로 거론되는 성주 성산포대나 롯데 골프장은 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사드 포대가 신속하게 들락날락할 수 있는 지리적 조건 자체가 안 된다. C17 글로브마스터의 이착륙을 위해서는 길이 1km와 폭 30m 이상의 평평한 활주로를 확보하고 있어야 하는데, 산악 지형에 이러한 도로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사드를 "전략 자산(strategic asset)"이라고 부르면서 영구 배치를 희망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적의 공격 징후가 농후해질 때 사드 포대를 실제 전개"하자는 것도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유사시 사드 포대의 배치와 작전 태세를 완비하는 데에는 '수일'이 걸리지만, 적의 미사일 공격은 '분' 단위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조건부 사드 배치론'은?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의 조건부 사드 배치론도 실망을 자아낸다. 그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드를) 핵 개발을 거듭하고 있는 북한 제재에 중국을 끌어들이기 위한 도구로 써야 한다"며, "중국이 대북 제재를 거부한다면 자위적 조치로서 사드 배치에 명분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중국이 대북 제재에 협조한다면 사드 배치를 철회하는 수순"을 밟으면 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주장은 사드와 북핵 문제에 대한 안 의원의 이해 부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우선 중국의 대북 제재 '거부'와 '협조' 사이의 스펙트럼은 너무나도 넓다. 대북 제재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북한 주민들의 민생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대북 제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방식에 국한되어야 하며, 제재의 목적은 대화와 협상 재개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중국이 대북 제재를 '거부'한다고 보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전면적으로 '협조'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바로 제재와 북핵의 악순환이다. 20년을 넘긴 북핵 역사는 대북 제재가 강화될수록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도 강화되는 결과를 초래해왔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안 의원의 주장처럼 중국이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응해 보다 강도 높은 대북 제재에 '협조'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북한은 제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니 제재의 역효과를 부각시키고 중국에 대한 자주성을 과시하기 위해 핵과 미사일 실험에 더 박차를 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중국의 대북 제재 협조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 주장은 더 힘을 얻게 된다. 중국의 제재가 약해서 북한의 추가적인 핵과 미사일 실험에 나섰다는 비난도 빗발칠 것이다. 이는 곧 안철수 의원의 주장이 사드 배치에 면죄부를 주는 빌미로 악용되고 말 것이라는 점을 예고해준다. 참고로 새누리당의 이정현 대표는 사드 배치에 대한 국민의당 내부 기류가 변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 "존경스럽고 환영할 일"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 이정현 "국민의당 사드 당론 재검토, 존경·환영")
놓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
김진표 의원과 안철수 의원의 주장의 공통 분모가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사드가 필요한데 중국의 반대가 걱정'이라는 게다. 아마도 야권의 여러 의원들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놓치고 있는 게 있다. 사드를 비롯한 미사일 방어체제(MD)는 북한의 핵미사일을 잡는 데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남북한이 붙어 있고, 수도권이 휴전선에서 너무나도 가깝기 때문이다. 사드만 보더라도 그렇다. 북한의 미사일이 사드의 최저 요격고도인 40km 밑으로 날아오면 못 잡는다. 최고 요격고도인 150km를 넘겨버려도 못 잡는다.
이에 반해 사드 배치가 초래할 불이익은 감당하기 어렵다.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주석까지 나서 사드 배치는 자신들의 핵심 이익과 관련된 문제라고 했다. 양보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뜻이다.
더구나 사드 배치는 '북핵과 MD의 적대적 동반 성장'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현실화시킬 위험이 크다. 이 자체로도 문제지만, 이러한 시나리오는 한미동맹의 중국의 핵심 이익에 대한 침해 수준을 높여 한중, 미중 관계에 치명적인 결과를 잉태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대안은 무엇일까? 나는 야권이 계승하겠다고 공히 다짐한 '햇볕정책'에서 지혜를 찾길 바란다. 달라진 현실에 따라 수정/보완이 필요하지만, 그 정신과 전략은 여전히, 아니 더욱 절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햇볕정책의 세 축은 한미동맹의 강력한 대북 억제력, 남북관계 개선,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었다.
하지만 사드를 비롯한 MD는 억제를 넘어서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반면 남북관계 개선과 대화와 협상이 실종된 지 오래되었다. 그렇다면 대안 정당을, 수권 정당을 자임하는 야권이 선택해야 할 대안은 자명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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