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SRT는 수서역부터 동탄역, 지제역까지 경부고속도로 아래를 포함하여 지하구간만을 따라 거침없이 주파하여 천안아산에서 KTX와의 공유 구간으로 합류한다. SRT는 고속철 전용 구간 덕분에 서울부터 부산을 2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에 주파할 수 있으며, KTX에 비해 10% 정도의 요금 경쟁력도 갖추게 되었다. 그런데 SRT는 개통 초기부터 몇 가지 우려도 낳고 있는데, 이는 특히 소유와 운영 구조에서 비롯된다. 코레일의 자회사로 주식회사 SR을 따로 설립하여 경쟁 체제를 구축하게 한 것인데, 이것이 과거 정부가 틈만 나면 모색해 온 분할과 민영화의 변형된 형태 또는 전 단계가 아닌가하는 의심과 비판이 있는가 하면, 실제 효과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2013년 12월에 한 달 가까이 철도노조가 벌였던 파업도 민영화 시도 중단이 가장 큰 요구였거니와, 자회사라는 형태로 그 시비를 피한다고는 했지만 어쨌든 추가적인 분할이나 민영화가 더 쉬워진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경쟁 체제라고는 해도 KTX와 SRT가 운행 구간의 80%를 공유하면서 승객의 타는 곳과 내리는 곳에 따라 자연 독점이 여전히 유지되는 것이라 한다면, 그 자체로 어떤 긍정적 효과를 내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승객의 입장에서는 SRT 앱을 따로 설치해야 하는 번거로움, 두 회사 배차 편성을 함께 보는 혼란 같은 문제가 더 현실적이다. 게다가 그 경쟁 체제를 위해 별도의 인력과 조직을 마련하고 사옥을 지어야 하는 것이라면 과연 이러한 중복 투자가 필요했던가 하고 되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지난 주에 직접 탑승해 본 SRT는 신 차량이 주는 쾌적함과 편리함이 있고 세세한 서비스에 신경 쓴 흔적이 느껴지지만, 이 노선과 서비스를 코레일이 운영하면 왜 안 되는가 하는 의문이 오히려 더욱 강하게 솟구쳤다.
더욱 큰 문제는 코레일과 자회사 사이의 제로섬 경쟁에서 오는 출혈과 그로 인한 공공성 후퇴의 우려다. 이제까지 코레일은 고속철 운영에서 수입을 올려 지선 일반철도의 적자를 보충해왔다. 수서발 SRT는 고속구간에 국한되는 면허에 고속철 전용구간을 무기로 더욱 확실한 수익을 올리게 된 반면, 코레일은 수익성 악화라는 현실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주식회사 형태인 SRT는 더욱 높은 수익과 주주 배당을 위해 경제성이 낮은 노선의 확충이나 배차 확대에 소극적일 것이고, 정부는 경쟁 체제의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당분간 SRT에 이익 몰아주기를 계속하게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국민의당 윤영일 의원이 코레일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KTX 요금을 SRT 수준으로 맞추기 위해 주중과 주말에 10% 인하할 경우 코레일은 한 해에 1704억 원의 영업 적자를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숱하게 '방만 경영'과 적자 누적을 지적받아 온 코레일이 선택하는 것은 '비경제적' 노선에 투입했던 예산을 줄이는 길이다.
때마침, 국회를 통과한 2017년 정부 예산에서 공익서비스 보상(PSO) 예산이 전년(3509억 원) 대비 547억 원 삭감되고, 그 중 벽지 노선 손실 보상이 전 년(2111억 원) 대비 650억 원 삭감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이에 따라 코레일은 벽지 노선의 운행 횟수를 절반 가량 축소하고 16개 역의 무인화를 통해 인력 감축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경전선, 동해남부선, 영동선 등 7개 노선의 112개 열차 가운데 56개나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정부는 곧바로 보도자료를 내고, 코레일이 열차 운행 조정을 철도사업계획 변경인가 신청서를 제출하면 승차율 등 이용 수요, 타 교통수단 확보 여부 등을 충분히 검토하여 대처할 계획이라고 밝힌 만큼, 코레일의 벽지노선 축소 방침을 정부가 그대로 용인할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코레일에서 SRT를 따로 떼어준 것에서 발생하는 구조적인 이유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코레일은 유사한 궁리를 계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수년간 순차적으로 진행된 간이역 폐쇄, 무궁화호 등 일반열차 편성 감소에 이어 지방의 지선들이 점차 죽어가는 상황이 악화될 것 같아 걱정이다.
그런데 SRT 외에도 향후 몇 년간 한국 철도에는 큰 변화들이 예고되어 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원주에서 강릉을 잇는 경강선이 급진척되어 2017년 말 개통을 앞두고 있다. 춘천과 속초를 잇는 동서고속화철도 계획까지 논의되면서 중복 투자 논란을 낳고 있지만, 중부권 동서간 철도 노선 개설은 획기적인 일임에 분명하다. 청량리역에서 밤차를 타고 돌고 돌아 정동진 일출을 보러 가는 대신, 서울에서 수원까지 전철 타고 갈 시간에 동해안에 닿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 포항에서 삼척을 잇는 동해중부선도 2020년경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여전히 남해안의 경전선이 여객 수송 기능이 취약하고 호남권과 영남권을 바로 잇는 동서 노선이 전무한 것이 아쉽지만, 이렇게 되면 남한 전체로 볼 때 '미음'자 형의 철도 노선도가 대략 형성되는 것이다. 궤도 운송수단에게 특히 중요한 네트워크 효과를 크게 증진할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하지만 네트워크 효과는 망의 물리적 구축뿐 아니라 망을 통해 사람들이 더욱 활발히 다닐 수 있도록 보장되고 배려되어야 제대로 발휘될 수 있다. 철도를 국가 대동맥이라고 표현하곤 하는데, 수도권을 심장으로 본다면 기존의 서울역과 용산역, 광명역 그리고 수서역을 좌심방과 우심방 비슷하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생명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대동맥과 대정맥뿐 아니라 그 사이의 조직들을 가로지르며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고 폐기물을 거두어가는 실핏줄이 반드시 필요하다. 고속철이 대동맥과 대정맥이라면 일반철도가 다니는 지선이 실핏줄에 해당할 것이다. 수익성을 이유로 큰 핏줄에만 영양을 투입하고 실핏줄을 마르도록 한다면 생명체 전체가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대동맥과 대정맥이 전국으로 뻗어가는 이 때야 말로 국가 예산을 투입해서라도 지선의 확충과 연결, 서비스 제고를 시도해야 할 시점인데 정부의 정책은 거꾸로 가고 있다.
결론은 분명하다. SRT에서 경쟁 체제의 이점을 견강부회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SRT에서 비롯하는 문제점들이 한국 철도 전체의 위상과 방향을 점검하는 논의를 본격화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코레일의 공공성 후퇴와 서비스 축소에 대한 비판과 함께 KTX와 SRT의 재통합 필요성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서 에너지 위기와 기후 위기 시대에 '녹색교통'으로서의 철도를 명실상부하게 활용할 더 많은 계획과 투자가 중요한 정치 의제가 되어야 한다. 노동조합도 시민사회도 더 큰 이야기를 과감히 펼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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