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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정치인 아니라 국민 권력을 확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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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정치인 아니라 국민 권력을 확대하라! [법치의 표리(表裏)]<20>대의제 위기 해결은 직접민주주의로
미디어법 통과를 놓고 또 난장판 국회가 연출되었다. 초등학교 학급회의보다도 더 수준낮은 한 편의 삼류 코미디였다. 미디어법이라는 법안의 본회의 통과를 놓고,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 사이에서는 어떠한 이성적 대화와 토론도 없었다.

전쟁에서 무슨 고지사수전이라도 벌이듯 여당의원들은 국회의장석을 에워쌌고 야당의원들은 이를 뚫으려 발버둥 쳤을 뿐, 정작 법안내용에 대한 차분한 논의는 단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법안에 대한 수정 동의안조차 아무런 제안설명 없이 표결에 부쳐졌다.

▲ 합의기능이 상실된 대한민국 국회ⓒ프레시안
또 '아수라장'된 국회

국회부의장의 말과는 달리 의원석 모니터에 제안설명을 대체할 어떤 설명자료도 뜨지 않았다. 표결과정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국회부의장이 투표종료를 선언해놓고도 정족수에 미달하자 바로 재투표 실시를 선언했고 이에 야당의원들의 고함소리가 일제히 터져 나오면서 회의장이 아수라장이 됐다.

표결 중에도 의원석이 아니라 국회의장석 주변에 있던 의원들 때문에 여기저기서 대리투표가 이루어지는 듯한 현장이 동영상에 잡혔다. 누가 이 광경을 보고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대변하는 품격높은 민의의 전당이라 할 수 있겠는가. 누가 이 장면을 대하고도 우리나라에서 대의정치가 온전히 작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합의기능'과 '대의기능'이 모두 고장났다

대의제원리는 근대 이후 세계 각국의 헌법이 채택한 중요한 헌법원리이자 정치원리이다. 민주국가에서 원래는 주권자인 국민이 모두 모여서 국가의사를 직접 결정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이 어려우므로, 주권자인 국민이 선출한 국민의 대표가 국민을 대신해서 국가의사를 합의를 통해 결정해나가게 하는 원리가 바로 대의제원리다.

이 때 국민의 대표란 선거를 통해 뽑힌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말한다. 이 대의제에는 대의제의 성패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두 가지 기능이 있다.

첫째가 국민대표가 국가의사를 국민을 대신해 결정한다는 '대의기능'이다. 이 대의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대표를 뽑는 메커니즘인 '선거'가 민주적으로 잘 치뤄져야 한다. 둘째가 합의를 통해 국가의사를 결정하는 '합의기능'이다. 이 합의기능이 온전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합의의 과정이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철저히 공개되어야 하며, 공개된 현장에서 국민 대표들간의 이성적 대화와 토론이 있어야 하고 이 대화를 통한 설득의 과정을 거쳐 표결을 통해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국가의사가 결정되어야 한다.

우리의 현 국회에서는 바로 이 합의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공개된 현장이 아니라, 국민들의 눈길이 미칠 수 없는 밀실에서 정당 수뇌부들간의 접촉을 통해 법안 통과 여부가 결정되며, 밀실 조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본회의장에서는 더 이상의 법안에 대한 논의가 존재하지 않고 의장석 점거나 본회의장 봉쇄와 같은 낯 뜨거운 육탄전이 벌어지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국민대표들에 의해 신진 정치세력의 정치제도권 진출을 막는 규제 일변도의 공직선거법이 제정되어 그나마 선거를 통해 국민대표들을 대폭 물갈이 할 수도 없게 되어있다는 점이다. '합의기능'과 함께 민주적 선거를 전제로 하는 '대의기능'마저 삐걱거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의회정치에서 대의제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직접 민주제의 보완을 통한 현대형 대의제

그런데 이러한 대의제의 위기상황이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에서 근대 이후의 고전적 대의제가 정당정치의 왜곡된 발달 등으로 인해 위기를 이미 경험했거나 지금 경험하고 있다. 20세기를 '대의제의 쇠퇴기'라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의기관의 부패와 무능력을 낳은 이러한 대의제 위기상황의 발생원인으로는 왜곡된 정당정치의 발달과 이로 인한 공개적 토론의 경시, 여러 이익단체 및 압력단체들의 등장과 이들 단체들의 국민대표에 대한 열띤 로비, 주권자인 국민의 직접 참정욕구의 증대 등이 거론된다.

그런데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선진외국들이 이러한 대의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하나같이 간접민주제를 핵심으로 하는 대의제에 직접민주제적 요소를 과감히 도입하는 '현대형 대의제'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주권자인 국민이 가끔씩은 직접 정치과정에 개입해 대의제의 오작동을 바로잡는 역할을 하는 '직접민주제의 보완'을 채택한 것이다.

고전적 대의제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제적 요소에는 국민표결, 국민발안, 국민소환이 있다. '국민표결'이란 국가의사를 직접 주권자인 국민이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하는 것을, '국민발안'이란 일정 수 이상의 국민이 직접 법률개정안이나 헌법개정안을 낼 수 있게 하는 것을, '국민소환'이란 임기가 보장된 공무원을 일정수 이상의 국민이 임기 전에 소환해 파면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현행 헌법은 이 중 '국민표결'만을 받아들이면서 헌법개정안이나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대한 국민투표를 인정하고 있는 정도이다.

1954년에 국민발안 도입된 적 있어

현재와 같은 한국정치의 대의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미 선진 외국들이 보여준 바와 같이 직접민주제적 요소를 강화하는 '현대형 대의제'로 나아가야 하고, 이를 위해 적어도 국민발안제는 시급히 그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국민발안은 이미 1954년의 헌법개정에서 우리 헌법에 잠시나마 도입된 적도 있다. 50만명 이상의 민의원선거권자가 헌법개정안을 제출할 수 있게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헌법 제46조 제2항은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미 우리의 많은 선량들이 국가이익이나 국민들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이익이나 당리당략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국민들은 목도하고 있다.

국민을 위해 꼭 필요한 법률안이지만, 국회의원들이나 정당들의 개인적,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히는 사안이면 국회에서 법률로 통과되기 어렵다. 신진 정치세력의 제도 정치권 진출을 쉽게 하는 선거법, 국민의 혈세에서 나가는 국고보조금의 감액 법률, 국회의원들이 임기 중에는 변호사업 등의 각종 영리활동을 못하게 하는 법률 등은 국회 통과는 커녕 애초에 발의조차 되지 않는다.

이런 국리민복을 위한 법률들을 국회의원들이 발의하지 않는다면 주권자인 국민들이 직접 발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 법안들에 대한 국회 심의과정에서 국민 여론이 제대로 반영되고 국민들이 그 과정에서 어떤 국회의원이 법안 통과에 어떻게 반대하고 찬성했는지를 면밀히 지켜보고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소환'과 관련해서는 이미 우리도 지방자치단계에서 '주민소환'을 법제화하고 있다. '주민소환' 도입 이후 발생하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에 대한 면밀한 검토 이후에 발전적인 방향에서 국민소환제도를 만들고 다듬어 나가면서 장기적으로 그 도입 여부를 전향적 견지에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개헌, 필요하다면 이렇게 하자

그런데, 이러한 국민발안제나 국민소환제의 도입을 위해서는 헌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대의제라는 중요한 헌법원리에 대한 수정이기 때문에 법률에 그 근거규정을 두는 정도로는 부족한 것이다. 개헌에는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헌법은 그 국가의 최고법이자 법질서의 근간이며, 일면 국가 그 자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회를 중심으로 고개를 들고 있는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논의 보다는 직접민주제 강화를 위한 개헌논의가 훨씬 더 국민을 위해 절실하고 대의제 위기 극복을 위해 꼭 필요한 개헌논의라 믿는다. 대의정치 파행의 원인이 헌법상의 대통령제 규정에 있다면서 무고한 헌법에 온통 그 책임을 전가하는 정치권의 주장은 참으로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차제에 국민들이 원해서 개헌을 한다면 바로 직접민주제적 요소를 강화하면서 '현대형 대의제'로 나아가는 개헌이 이루어져야 한다. 무능한 정치인들을 대신해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나설 수 있는 공간을 넓혀주는 개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원래 개헌은 헌법개정권력자인 국민이, 국민에 의해, 국민을 위해 단행하는 것이어야 한다. 정치인들을 위한 정치인들의 개헌 시도는 신성한 국민의 헌법을 모독하는 것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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