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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을 공안통치의 진지로 만들겠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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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법원을 공안통치의 진지로 만들겠다는 건가?" [법치의 표리(表裏)] 사법 60년의 과오를 혁파할 '마지막 기회' 앞에서…
원인이야 어찌되었건 사법개혁론이 공론화되고 있다. 한나라당이 대법관 증원, 대통령직속 양형위원회 도입, 법관인사위원회에 법무부장관 등 외부인사의 관여확대 등 자체 사법개혁안을 발표하고 입법안을 제출하는 등 행동에 나섰다. 이에 질세라 대법원도 상고심사제 도입과 법관연임심사 강화를 포함하는 자체개혁안을 발표했다.

1987년 이후의 민주화과정에서도 국민의 기대감을 충족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던 사법개혁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시민사회가 그토록 줄기차게 추진해온 사법개혁이 MB정부의 막무가내식 파상공세 때문에 가시화되는 양상을 바라보자니 새삼 역사의 섭리를 되새기게 된다.

사법개혁의 본질적 목적은 무엇인가

▲ 한나라당과 대법원이 앞다퉈 사법개혁안을 발표했다ⓒ프레시안
그러나 사법개혁이란 것도 결국은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 민주적 법치주의를 진전시키고자 하는 것이므로 그 의도가 불순할 때 의도하지 않은 '개악'의 늪에 빠질 수도 있음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세상의 변화에 둔감하기만 한 대법원의 답답한 행보를 볼 때 선뜻 정치권의 불순한 의도만을 꼬투리 잡기도 마땅치 않은 것이 필자만의 심정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 참에 사법개혁이란 왜 필요하며,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추진되어야하는지 다시 한번 곱씹어 보자.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국가의사의 최종적 귀속처는 주권자인 국민이다. 그러나 국민이 직접 모든 국가권력을 직접 행사하는 것은 비효율적일뿐더러 반드시 공동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만도 아니다. 따라서 대표를 내세워 구체적인 국가의사를 각각의 소임에 맞게 실현하도록 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다. 국민의 대표기관은 국가의 기능에 따라 입법, 행정, 사법으로 나뉘어 각자의 소임을 수행한다. 이 가운데 입법이 형성한 법률을 구체적 사건이나 사실관계에 적용하여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는 기능이 사법작용이다.

결론적으로 사법권은 주권자인 국민이 그 대표자들에게 위임한 권력이며, 이 권력은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의 권위하에 행사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정신하에 사법적 결정의 적용을 받아 이익이나 권리가 제한되는 것에 승복해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 또한 국민이다. 그러므로 사법권의 집행과 승인이야말로 자기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개인적 불이익을 감수하는 자기지배(self-government)의 원리로서의 민주주의의 표본이 된다.

너무나 교과서적인 민주주의와 권력분립의 내용을 되뇌이는 이유는 바로 이 평범한 원리가 현실 속에서 너무 무시되기 때문이다. 사법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작용이어야 한다는 평범한 명제, 사법의 민주화가 모든 사법제도를 좋은 방향으로 개선하고자하는 사법개혁의 궁극적 목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사법개혁론의 진의를 논할 때 분명히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법연구회에 대한 이념공세와 병행되는 사법개혁론

그러나 장구한 권위주의 독재시절을 거치면서 이 나라의 사법은 부분적인 진전에도 불구하고 독재의 유산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헌법과 법률, 스스로의 직업적 양심이외에는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로워야 할 법관들은 인사제도의 굴레와 달콤한 사후보장의 유혹에 굴복하여 사법민주화에 역행하는 사법의 관료화를 용납하고 국민에 대한 사법서비스의 축소를 묵인하였던 것이다.

심지어는 정치권력의 사주에 따라 스스로의 존재의의를 부정하는 사법살인마저도 감행한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법행정의 이름으로 재판의 독립을 훼손하는 것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국민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지는 길을 걸어옴으로써 이 나라의 사법권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모욕을 감내할 스스로의 권위를 세우지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들은 작금의 사법개혁론이 근래 법원 내 우리법연구회에 대한 이념공세와 병행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특히 주목해야 한다. 우리법연구회가 그 어떤 불순한 활동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법원 내에서 사법의 민주화를 위한 논의를 지속적으로 전개해온 드문 연구회라는 점이다.

어떻게 사법의 민주화를 지향해야 할 사법개혁이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사법의 민주화를 갈구해 온 법관들의 자발적인 활동에 재갈을 물리는 것과 동시에 이루어지는가? 그것은 현재의 사법개혁론이 올바른 방향을 상실하고 국민을 기만하여 사법의 민주화에 역행하기 위한 속임수라는 것을 보여주는 정황증거가 된다.

정치검사가 과잉대표되는 것이 대법원 개혁인가?

개별적인 사법개혁안을 통해 그 허상과 실상을 들여다 보자. 예를 들어, 대법관의 증원은 원래 중립적인 대안이다. 세계에 유례가 없이 폭주하는 대법원의 업무는 상고심이 더 이상 이 나라의 법질서의 통일성을 보장하는 최고법원의 위상을 유지할 수 없을 지경으로 몰아넣었다.

따라서 업무경감책외에 업무담당자인 대법관의 증원은 유용한 대안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증원안은 당장 현재의 사법권력의 위상에 즉각적인 변화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정치과잉의 대안일 뿐이고 사법의 민주화에 역행하는 것이다. 만일 한나라당이 무단히 사법부를 겁주려는 정치적 저의가 없다면 이 개편안의 시행 시기는 최소한 차기대선과 총선이후로 연기되어야 한다.

또한 사법부 구성의 다양성을 명분으로 정치검사들이 대법원을 비롯한 법원의 인사에 과잉대표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어서는 안 된다. 소추를 소임으로 사법관을 형성해온 검사들, 더구나 정치굴종이라는 불행한 현대사의 불신을 여전히 받고 있는 조직의 경력자들에게 인권보장의 최후보루인 대법원에 반인권적 공안통치의 진지를 구축하겠다는 발상은 너무나 속 보이는 짓이다.

판사들의 인사위원회에 법무부장관의 개입을 제도화하고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형식화하는 의결기구로 만들겠다는 것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형식화하는 법률과 동시에 추진되지 아니한다면 그 저의를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 한편 사법권의 핵심에 해당하는 양형판단과 관련하여 그 기준을 마련하는 양형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하겠다는 발상은 권력분립의 정신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다.

대법원 편들기도 어려워

그러나 한나라당의 무책임한 정치선동에 그럴듯한 배경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 대법원의 미지근한 사법개혁안이다. 왜 대법관의 증원은 결사 반대하고 케케묵은 고법상고심사제를 들고 나온 것인가? 대법원 하위에 또 하나의 심급을 설치하는 것과 같은 제도개선안이 대법원의 권위를 지켜줄 것이라고 보는가? 이 두 가지 대책이 병행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편으로 인사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없이 윤리강령의 강화나 판결문 공개와 같은 잔챙이 안으로 사법민주화를 위한 획기적 대안이 되리라고 보는가?

국민들은 안다. 한나라당의 사법개혁안이 정치적 꼼수라는 것을. 그렇다고 국민들이 법원 편에 쉽게 서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법원의 과거와 현재를 몸으로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제기되는 사법개혁안마저도 지난 20년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온 과제들에 불과하다. 그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정치권의 대응에 서둘러 미봉책을 들이대는 것만으로 국민의 지지를 기대하는가?

어떻게 바꿀 것인가

상황이 이러하다면 결론은 너무나 뻔하다. 사법권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하고 국민의 편에 서서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것으로 그 권위의 기반을 삼아야 한다. 정치권의 꼼수에 연연하지 말고 국민의 동떨어진 마음을 다잡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그것은 사법개혁의 목적인 사법의 민주화를 위한 핵심적 개혁과제를 스스로 추진하는 것이다. 그 관건은 과감한 인사제도의 개혁과 중앙집권화한 법원조직의 분권화이다.

고등부장-대법관으로 병목화한 서열중심의 인사제도를 혁파하여 보직승진의 개념을 폐지하고 보직정년제를 도입하는 한편 대법관을 법관승진시스템에서 배제하여야 한다. 대법원장에 집권된 사법행정권을 과감하게 각급법원장에게 이관하고, 1심법원을 강화하는 한편, 고등법원의 합의부를 실질화해야 한다. 전관예우시비 등 사법권 독립에 장애를 초래하는 대법관을 비롯한 법관들의 퇴직활동을 제한하기 위한 획기적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사법개혁의 중심은 국민이다. 국민의 신뢰를 얻는 자가 사법개혁의 진정성을 확인받을 수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앞날은 대법원의 철저한 자기개혁에 의해서 보장될 것이다. 혹시나 하는 안이함에 어쩌다가 초래된 이 야만의 시절에 그 누구보다 냉철한 법적 이성의 지혜에 귀기울일 책무가 대법원을 기다리고 있다. 어쩌면 지금이 사법 60년의 모든 과오를 일거에 혁파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지금까지처럼 미적거리다가는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고 말지 모른다. 유감스럽게도 그 최대의 피해자는 이 땅의 주인인 국민이라는 사실이 서글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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