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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면 걸리는' 업무방해죄, 국보법만큼 폐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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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면 걸리는' 업무방해죄, 국보법만큼 폐해 크다 [법치의 표리(表裏)]단체행동권 무력화하는 업무방해죄
2003년 국제노동기구(ILO)와 2009년 11월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는 각각 한국 정부가 '업무방해죄' 적용으로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약화시키고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노사관계가 형성되는 것을 막고 있다는 점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단체행동권 행사를 처벌하는 형법

파업 등 단체행동권은 헌법적 기본권이다. 쟁의행위는 그 본성상 필연적으로 사용자의 업무를 방해할 수밖에 없으므로, 이를 헌법적으로 보장하지 않으면 유명무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위 법률인 형법은 단체행동권의 행사를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형법 제314조 제1항)로 포섭하여 처벌한다. 2007년 국가인권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6년에 선고된 제1심 노동형사사건 중 쟁의행위 사건에 적용된 죄의 개수는 7,624개인데, 그 중 업무방해죄가 적용된 것이 2,304개로 30.2%를 차지하는 바, 이는 적용 죄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이렇듯 업무방해죄는 노동쟁의를 처벌하는 핵심적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법체계상으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합법 쟁의로 인정되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 그러나 동법상 합법쟁의의 요건은 경제협력개발기구 소속 국가 중 가장 까다롭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수많은 금지와 처벌 조항으로 꽉 차있다.

예컨대, 정부의 노동정책에 반대하는 파업은 '순수'하지 못한 '불법 정치파업'으로 낙인찍히고 처벌된다. 구조조정, 정리해고, 공기업 민영화 등은 근로자의 지위와 근로조건에 대한 중대한 변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지만, 이를 반대하는 노동쟁의는 그 자체로 불법이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 소속 많은 나라에서 노동자의 경영참여와 공동경영은 법적으로 보장되며, 이러한 '산업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제도는 기업의 발전에도 도움을 준다는 점이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경영권은 배타적으로 사용자에게 속하며, 이와 관련된 쟁의행위는 불법쟁의라고 규정한다.

한편, 폭력이나 파괴행위를 한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정시출퇴근, 시간외근로 거부, 집단적 휴가 사용, 집단적 조퇴, 규정 운행속도 준수 등 '준법투쟁'도 업무방해죄로 처벌된다. 이러한 행위는 근로계약이나 단체협약 위반의 문제일 뿐이지만, 형벌권이 동원되는 것이다. '준법투쟁'이 '범죄'가 되니, 노동운동 입장에서는 합법의 틀 안에서 쟁의를 벌일 이유가 없어진다.

'집단'이 노무제공 거부하면 업무방해라는 대법원

한편 노사간의 근로계약은 강제근로계약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폭력이나 파괴행위 없이 집단적으로 노무제공을 거부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업무방해죄로 처벌된다. 대법원은 노무제공거부를 근로자 개인이 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지만 집단으로 하면 '위력'을 행사한 범죄가 된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에 따르자면, 아파트 분양을 받은 사람들이 계약체결상의 의사표시 하자를 이유로 집단으로 중도금 납부를 거부하고 건설업체 앞에서 합법적 시위를 전개하더라도 업무방해죄로 처벌되어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이 나온다.

요컨대, 걸면 걸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쟁의에 참가하는 노동자는―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의한 처벌은 별도로 하고서도―항상 형법상 업무방해죄에 의한 처벌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노동현장에서 노동조합이 쟁의를 시작하면 사용자는 대화와 교섭에 나서기 보다는 바로 노조 간부를 업무방해죄로 고소·고발한다.

이와 별도로 손해배상 소송을 걸면서 간부들의 월급과 재산에 가압류를 건다. 정부는 이들을 체포·구속·수배하여 쟁의행위의 해결에 전면 개입하고, 사용자는 이후의 교섭과정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노조측은 사용자에 대하여 고소 취하나 탄원서 제출을 요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화가 제대로 될 리가 있나!

이런 상황에서 노사간의 대화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사측에서는 진지하고 지속적인 대화를 통하여 이견을 좁히려 하기 보다는, 쟁의행위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고소·고발하는 것을 선호한다. 한국 사회에서 쟁의행위가 과격·폭력화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합법적인 쟁의행위의 범위가 극도로 좁혀져 있는데다가, 정부가 노와 사 간의 공정한 중재자로 역할하지 않고 노동운동을 '불온시'하며 노골적으로 사용자의 편을 들기 때문이다. 정부의 적극적인 업무방해죄 적용에 비하여,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수사와 공소는 매우 소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헌법상 단체행동권은 하위법인 형법의 업무방해죄에 의하여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물론 이러한 업무방해죄의 집행은 '법치'의 이름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세계의 입법례를 보더라도 쟁의행위 자체를 범죄로 처벌하는 나라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프랑스와 일본의 형법에 유사한 조항이 있으나 사문화된 지 오래이다).

쟁의과정에서 폭력이나 파괴행위를 행한 사람이 형법으로 규율될 뿐, 쟁의행위 자체를 범죄로 처벌하는 나라는 없다. 국제인권법의 관점에서 볼 때 자유권 영역에서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핵심과제가 국가보안법 개폐라면, 사회권 영역에선 업무방해죄의 개폐이다. 향후 업무방해죄의 문제점에 대하여 노동현장, 노동법학계, 형사법학계, 법조계, 국회 등에서 보다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 판례의 변경 또는 법률의 개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정부와 경영계는 종종 '노사평화'나 '노사화합'을 말한다. 그러나 업무방해죄의 오·남용을 유지하는 한 그러한 '평화'나 '화합'이 오기는 힘들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와 경영계는 노사관계의 '선진화'를 말한다. 그러나 국제노동기구와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의 권고를 무시하며 '선진화'는 이루지지 않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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