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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과장 죽음의 진실, 판도라의 상자 열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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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임 과장 죽음의 진실, 판도라의 상자 열리나 ['국가 공작원' 치욕사] 유족 "자살 아냐" 고백...새 국면 맞은 국정원 민간인 사찰 사건 의혹

2015년 7월 18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야산에서 한 남자의 사체가 발견됐다. 국가정보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통해 민간인을 사찰한다는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던 때였고, 사체의 신원은 바로 그 해킹 프로그램 구매를 맡았던 국정원 임모 과장으로 밝혀졌다. 사체가 발견된 마티즈 승용차 안에는 번개탄과 유서도 함께 있었다. 타살 의혹이 제기됐지만 경찰은 당시 '단순 자살'이라고 발표하며 사건을 급히 마무리지었다.

얼마 전, 임 과장의 유족이 입을 열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2년 만에야 드러날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인가? 이와 함께 임 과장이 연루된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의혹 사건도 다시금 논란이 되고 있다. 임 과장은 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을까. 그의 죽음에는 어떤 비밀이 묻혀있을까.

▲국정원 임 과장의 사체가 발견된 마티즈 차량. ⓒ연합뉴스

5163부대 "카카오톡 해킹 진행 사항 알려달라"

이 사건은 '해킹팀'이라는 이탈리아 IT 기업이 해킹을 당하면서부터 시작됐다. 2015년 7월 5일, 누군가 '해킹팀'의 내부 정보를 해킹해 통째로 인터넷에 올렸다. 트위터 계정까지 탈취해 '해킹당한 팀'이라고 이름을 바꿔놓았다.

해킹팀은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아랍에미리트 등 반인권 정부와 거래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기업이었다. 그리고, 이 해킹팀 고객 가운데 한국 국정원이 있었다.

의뢰자 성명은 '국가정보원'이 아니었다. '육군 5163부대'였다. 5163부대와 7452부대는 국정원의 대외 위장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5163 부대 명칭은 5.16 쿠데타 당시 박정희 소장이 새벽 3시에 한강철교를 넘었다는 데서 숫자만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정원이 사들인 해킹 프로그램 RCS(리모트컨트롤시스템)는 한마디로 '원격 제어 시스템'이다. 감시 대상이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통해 보고 듣고 교류하는 모든 내용을 그대로 감시자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국정원은 이 프로그램을 구매하면서, 해킹팀에 휴대전화 메신저 '카카오톡' 검열 기능을 요구했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국정원이 국내 사찰을 시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댓글 조작에 간첩 조작 사건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국정원이 이번엔 사찰 의혹까지 연루되자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국정원은 입장을 밝혔다. 대북정보전을 위해 활용했을 뿐 국내에 활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대북사이버 심리전 일환'이었다던 댓글 사건 때의 해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음은 사건 발생 아흐레 만인 2015년 7월 14일, 이병호 당시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원회를 통해 밝힌 내용이다.

"국정원은 2012년 1월과 7월 이태리 해킹사로부터 각각 10인용씩 총 20명분의 RCS를 구입했다. 구입 목적은 기술분석과 전략수립을 위한 연구개발용이었다."

"오직 북한 공작 대상자에게 실험하는 것이다. 국정원은 법을 철저히 준수하며, 법을 어겨가며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활용한 바 없고 활용할 이유도 없다."

ⓒ프레시안(손문상)


기자 사칭에, 안랩 피하고 바이버 해킹 요청한 이유는?

이같은 해명에도 의혹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해킹 프로그램이 '국내 사찰용'임을 뒷받침하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해킹팀 직원들끼리 주고받은 내부 메일에는 국정원이 "자국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카카오톡 (해킹 기술에 대한) 진행 상황에 대해 물었다"는 말이 등장한다. 국정원이 갤럭시 등 스마트폰이 새로 출시될 때마다 해킹을 의뢰하는가 하면, 안랩의 'V3 모바일 2.0'과 같은 국내용 백신을 회피하기 위한 방법을 물었다는 흔적도 발견됐다. 미국 스마트폰 메신저인 바이버를 해킹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버는 당시 야당 정치인들이나 '반정부 인사'로 알려진 이들 사이에서 사찰을 피할 목적으로 카카오톡 대신 썼던 메신저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공격을 요청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지방선거를 석 달 앞둔 2014년 3월께 오간 해킹팀의 '출장 보고서'에는 "그들(국정원)의 주된 관심사는 원격의 안드로이드, 아이폰에 대한 공격"이며 "특히 6월에 안드로이드 공격을 이용하길 원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서울대 공대 동창회 명부'라는 제목의 워드 파일, <미디어오늘> 기자를 사칭한 천안함 보도 관련 문의 워드 파일에 악성코드를 심어달라고 요청한 점도 알려졌다. 이를 통해 천안함 관련 연구진, 서울대 출신 고위관계자 등이 감시 대상자였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해킹 대상 가운데 변호사가 포함됐을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위키리크스가 트위터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해킹팀 직원이 다른 직원에게 2013년 9월 국정원(SKA)과 모아카(MOACA·몽골 정보기관)의 요구 사항을 담은 메일을 보내며 "고객의 목표 대상은 변호사이지 기술자가 아니다"라고 전했다는 것이다.

다급해진 국정원은 해명을 남발했다. 그러나 나오는 답변마다 궁색했고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국정원은 줄곧 "남파 간첩이 카카오톡을 쓰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해 문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굳이 불법 요소가 있는 해킹을 할 이유가 없다. 법원에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면 합법적으로 카카오톡 서버를 통째로 열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통신비밀보호법' 제7조 제1항 제2호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상당한 위험이 예상되는 경우 적대국가, 반국가활동 혐의가 있는 외국기관 및 외국인, 북한이나 외국에 소재하는 산하단체 구성원의 통신에 대해 법원의 영장 없이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 감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영장 없이도 간편하게 카카오톡을 열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해킹을 시도한 이유를 추론해보면, 국정원의 타깃이 '영장을 받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당시 박주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국정원이 해킹프로그램을 국내에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농후해 보인다"며 "사실이라면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한 채 불법적으로 도·감청을 한 것이며, 해킹 타깃을 찾는 데 전화번호나 이메일을 사용했다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소지도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이 공개한 임 과장의 유서. ⓒ연합뉴스


경찰은 '단순 자살' 발표, 그러나 '감사합니다'로 끝난 유서

2년 전, 야산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임 과장은 바로 이 문제의 해킹 프로그램을 국내로 들여온 실무자였다.

당시 경찰은 임 과장의 유서, 행적, 번개탄 등 구입 경로, 휴대전화 통화 내역을 분석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사'로 전형적인 자살 사건'이라고 결론 내렸다.

임 과장의 죽음으로 여론의 관심은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의혹'에서 '국정원 직원 자살 의혹'으로 옮아갔다.

그러나 당시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임 씨의 죽음이 자살이 아닐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임 과장이 발견된 차량은 1999년식 마티즈로, 국정원 4급 직원이 출고된 지 16년 된 소형차를 구매한 지 한 달 만에 자살했다는 점, △실종 신고부터 사체 발견, 동료들의 추모사, 경찰의 자살 결론까지 불과 이틀 만에 속전속결로 끝났다는 점, △장례식 다음 날 마티즈 차량이 바로 폐차된 점 등이 석연치 않다고 주장했다. 또 유서 내용이 '감사합니다'로 마무리되는 등 유서가 부자연스럽다는 점도 의문으로 남았다.

임 과장이 남긴 유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원장님, 차장님, 국장님께
동료와 국민들께 큰 논란이 되게 되어 죄송합니다.
지나친 업무에 대한 욕심이 오늘의 사태를 일으킨 듯 합니다.
정말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습니다.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혹시나 대테러, 대북 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킬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하였습니다.
저의 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였습니다.
그러나 이를 포함해서 모든 저의 행위는 우려하실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저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잘 조치해주시기 바랍니다.
국정원 직원이 본연의 업무에 수행함에 있어 한치의 주저함이나 회피함이 없도록 조직을 잘 이끌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해당 유서에 대해 "사건 당일도 임 과장이 감찰받으러 가는 날인데 계속 잠 못 자고 감찰을 받다가 어떠한 이유로 집에 온 뒤 다시 가는 길이었다"며 "임 과장이 남긴 유서가 실은 자술서가 아닌지 강력하게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의 '자살 결론' 앞에서 이러한 의혹들은 힘을 잃었다.

▲지난 2015년 7월 31일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국정원 해킹 관련 '임과장 변사 사건 7대 의혹'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년 만에 유족 고백 "이런 자살은 없다. 얼굴을 보면 안다"

이후 2년의 세월이 흘렀다. 18일은 고인의 2주기다. 2주기를 앞두고 임 과장 죽음의 비밀과 관련한 새로운 국면이 열렸다. 임 과장의 아버지가 타살 의혹을 직접 제기한 것이다.

임 과장의 아버지 임희문 씨는 지난 13일 <노컷뉴스> 인터뷰를 통해 "이런 자살은 없다. 얼굴을 보면 안다"며 타살을 주장했다. 그는 "아들의 얼굴에 상처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놀랐다"며 "몸이 저렇게 당할 정도면 뼈까지 상했을까 걱정돼 오죽하면 감정(부검)을 해달라고 했다"며 당시 상황을 밝혔다.

2년 가까이 침묵한 데 대해선 "경찰이 협박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경찰이 당시 '언론 등 외부 접촉으로 상황이 바뀌면 장례 일정이 길어질 수 있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것이다. 또 임 과장의 딸이 육군사관학교에 있어 피해가 걱정됐다고도 말했다. 경찰 측은 얼굴 상처가 번개탄 등에 의한 화상 자국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과연 그럴까?

이어, 임 과장이 숨지기 전 국정원으로부터 강한 압박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도 나왔다. JTBC는 17일 임 과장의 당시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등을 공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2015년 7월 6일 저녁 임 과장은 해킹 툴 구매 대행회사였던 나나테크 허손구 이사와 통화했다. 이날은 국정원이 '해킹팀'으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을 구매한 사실이 처음 알려진 날이다. 이후 그는 국정원 동료 직원 이모 씨에게 "허 이사가 급하게 전화해 달래. 시스템을 오 해달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JTBC는 "'시스템 오'는 포맷이나 덮어쓰기 등으로 추정된다"며 "은폐 시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또 임 과장이 문제의 해킹 파일을 삭제하기 직전인 2015년 7월 17일 0시 7분에 국정원 직원에게 잇따라 전화를 걸었고, 같은 날 저녁엔 '과장님 감사관실에서 찾는 전화 계속 옵니다'는 문자 등을 받았다. 오후 9시 37분엔 직속상관인 기술개발처 김모 처장으로부터 '조금만 더 버티면 우리가 이깁니다'라는 문자를 받았다.

국정원은 최근 적폐청산TF를 설치하고, 풀어야 할 13개 과제 가운데 민간인 사찰 사건을 포함했다. 임 과장 타살 의혹이 2년 만에 재점화되면서, 임 과장 죽음을 둘러싼 의혹과 함께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의혹 또한 해소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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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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