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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한미 군사훈련 중단하면 북한도 곤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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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한미 군사훈련 중단하면 북한도 곤란해진다" [정세현의 정세토크] "베를린 구상까지는 괜찮았는데…"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 복원의 첫 단추로 이산가족 상봉과 군사 당국 회담을 꺼내 들었다. '인도적 문제 해결'과 '군사적 긴장 해소'라는, 남북 간 가장 시급한 문제부터 풀어가겠다는 의도다.

북한은 남한의 제안에 아직 침묵하고 있다. 이에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남한의 제안을 두고 상당히 고민하고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은 군사 당국 회담은 받고 싶을 것이다. 남한의 대북 확성기 방송과 대북 전단 살포 등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 이것만 날름 받아먹고 10.4 선언 10주년 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나 몰라라 할 수가 없다. 그러면 10.4 선언을 존중하지 않는 셈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이 '조건환경론'을 내세워 두 사안 모두를 거절하거나, 두 사안 모두를 아우르는 장관급 회담을 역제안하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은 1970년대에도 회담이나 이산가족 문제에 응하기 싫을 때 '조건 환경론'을 들고 나왔다"며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할 수 있다. 그런데 상봉을 하려면 그에 적절한 환경이 돼야 한다'면서 오는 8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을 걸고 넘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이 장관급 회담을 역제안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이 경제 협력 문제나, 이산가족 문제, 군사회담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회담으로 급을 높이자고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이 장관급 회담을 제안할 경우 정부가 이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 구상에서 이야기했던 이산가족 상봉, 평창 올림픽 북한 참가, 군사분계선 적대 행위 금지, 정상회담 중에 정상회담을 제외한 세 가지 사안을 장관급 회담에서 논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19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가 출범 이후 북한과 첫 대화 의제로 군사 당국 회담과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했습니다. 적절했다고 보십니까?

정세현 : 베를린 구상에서 정상회담으로 가기 위한 일종의 입구로 이산가족과 군사회담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인도주의 차원에서 명분이 큰 이산가족을 걸고 들어가고 북한에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확성기 방송 등을 걸어서 북한을 회담장으로 끌어내는 것이죠.

전체적인 방향이랄까 틀은 잘 잡은 것 같습니다. 방법론적으로는 비정치적인 분야부터 시작하는 일종의 기능주의적 접근인데, 그렇게 이산가족 상봉과 군사 당국 회담 등을 시작하면서 이후에는 정상회담까지 가는 것으로 방향을 잡아놓고 그 과정에서 남북관계 활성화되면 장관급회담도 할 수 있다는 복안으로 보입니다.

프레시안 : 어쨌든 문재인 정부의 제안에 대해 북한은 아직 답이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주 금요일에(21일) 군사 당국 회담을 하자고 제안했는데요.

정세현 : 답을 빨리 주지 않는 것은 나쁜 신호는 아니라고 봅니다. 북한이 걷어찰 제안이었다면 진작에 거부했겠죠. 지금 나름 숙고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군사 당국 회담은 받고 싶을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베를린 구상에서 군사분계선 적대행위를 중지하자고 했는데, 여기에는 남한의 대북 확성기 방송과 대북 전단 살포 등도 포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북한이 이것만 날름 받아먹고 이산가족 상봉은 나 몰라라 할 수가 없습니다. 명분이 서질 않는 거죠.

물론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해 지난해 4월 한국으로 들어온 북한 식당 종업원 12명과 김련희 씨를 돌려보내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하자고 역제안하면 10.4선언 10주년 및 추석 계기 이산가족 상봉을 걷어차는 것이나 다름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10.4 선언을 존중하지 않는 셈이 됩니다.

그렇다고 남한이 제안한 이산가족 상봉을 받아버리면 그동안 자기들이 계속 주장해왔던 식당 종업원과 김련희 씨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됩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바에는 그냥 갈등 이슈로 남겨두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조건 환경론'을 들고 나오면서 남한의 제안을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할 수 있다. 그런데 상봉을 하려면 그에 적절한 환경이 돼야 한다"면서 군사회담에서 오는 8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을 걸고 넘어지는 겁니다.

실제 북한은 1970년대부터 남북 간 회담을 거부하거나 응하고 싶지 않을 때 조건이나 환경 이야기를 많이 해왔습니다. 당시 남한은 북한에 이산가족의 고향 방문을 추진하자고 했는데, 북한은 "주한미군이 있고 보안법이 살아있는데 어떻게 가냐"라면서 주한미군 철수와 보안법 폐지를 주장했죠. 결국 상봉은 무산됐습니다.

▲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17일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 후속 조치의 배경과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통일부

이미 북한은 조건 환경론을 들고 나올 조짐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장웅 북한 IOC 위원이 평창 동계올림픽의 단일팀 구성 이야기가 나오자 "체육 위에 정치 있다"고 말하기도 했죠. 이는 북한 입장에서 "남북이 화해‧협력하려는 모양새를 취하려면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은 중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 정도의 이야기를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조건에서만 평창 올림픽 단일팀 구성을 비롯해서 다른 회담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실제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을 받아버리면 북한도 곤란해집니다. 자기들도 핵과 미사일 활동을 중지해야 하거든요. 뱉은 말이 있기 때문에 군사 훈련 중지만 받아 먹을 수는 없습니다. 이게 북한 입장에서는 상당히 고민스러운 대목일 겁니다.

물론 북한이 핵 동결을 하면 좋긴 하죠. 그런데 이걸 시작으로 비핵화와 평화협정이라는 출구로 나오자고 하면, 북한은 자기들이 판을 주도하기에 불리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래서 받기가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북한은 '조건 환경'의 핵심 요소인 군사 훈련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신들의 핵 활동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북한은 남한과 대화를 어느 범위까지 해야 할 것인지 판단이 필요합니다.

예전 사례를 살펴보면 지난 2004년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우리가 서해상에서의 남북 함정 간 충돌 방지를 위한 무선 교신을 먼저 요구했습니다. 그랬더니 북한에서 군사분계선 인근의 확성기 방송 중단을 연계하자고 했죠. 그렇게 협상이 이뤄진 적이 있는데요.

북한은 이때의 협상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확성기 방송과 무선 교신 등을 주고 받는 선에서 군사 회담을 마무리하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죠. 하지만 본인들이 스스로 정치‧군사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남한이 그 이야기를 하자고 판까지 깔아 놨는데, 군사 훈련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게다가 북한 입장에서 '훈련 중단'이라는 일종의 성과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과 협의하는 것이 우선 필요합니다. 자기들이 미국과 일정하게 협상을 하고 거기서 가능성을 봐야 하는 것이죠.

프레시안 : 그런데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북한이 남한 제안에 응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미국이 우리의 회담 제의에 대해 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남한과 대화에 나선다고 해도 이게 북미대화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고, 그래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정세현 : 그럴 수도 있습니다. 미국이 남한의 대화 제의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면 군사 훈련 중단과 북한의 핵 미사일 동결을 맞바꿀 수도 있는데, 미국이 저렇게 나오면 먼저 이 안을 제안할 리가 없다는 것을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미국이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남북 군사 회담으로 들어가서 미북 간 군사적 상황을 전환시킬 수 있는 출구로 나갈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확성기 방송이나 전단 때문에 회담에 나가는 것이 '소탐대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죠.

또 북한 입장에서 핵 동결이든 비핵화든 핵 카드를 통해 받아내야 할 반대 급부가 미북 수교나 평화협정 체결인데, 이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 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런 부분도 영향을 미칠 겁니다.

프레시안 : 북한이 고민을 하다가 답을 주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기다려야 할까요?

정세현 : 일단 문재인 대통령이 7월 27일부터 상호 적대 행위를 중지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지키려고 할 겁니다. 날짜가 좀 지나가서 군사 당국 회담을 미뤄둔다고 해도, 기본적으로는 이런 방향으로 남북관계를 안정시키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입니다.

프레시안 : 북한이 거절하지 않는다면 남한의 안을 수용하거나 역제안 둘 중 하나인데요.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둬야 할까요?

정세현 : 회담 격을 높여서 정치 문제부터 풀어 나가자고 역제안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장관급 회담을 하자는 식이겠죠. 경제 협력 문제나, 이산가족 문제, 군사회담 문제 등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회담으로 급을 높이자는 것입니다.

장관급 회담으로 급을 높여서 종합적으로 '판'을 짠 뒤에 이산가족 상봉과 군사 당국 회담 같은 세부적인 사안에 들어가자는 것이죠. "체육 위에 정치 있다"고 말한 걸로 보면 이럴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세부 사안에서 좀 더 고차원적인 문제로 올라가는 방식이 아닌, 중간 단계 정도의 장관급 회담을 통해 세부 사안도 논의하고 정상회담으로도 갈 수 있는 것이죠.

만약 북한이 장관급 회담을 역제안한다면 정부는 수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문 대통령이 베를린 구상에서 이야기했던 이산가족 상봉, 평창 올림픽 북한 참가, 군사분계선 적대 행위 금지, 정상회담 중에 정상회담을 제외한 세 가지 사안을 장관급 회담에서 논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박근혜 정부 당시 장관급 회담이 거론됐을 때 소위 수석대표의 '격' 문제를 가지고 시끄러웠습니다. 그래서 2015년 12월 남북은 장관급이 아닌 차관급 당국 회담을 개최하기도 했는데요.

정세현 : 당시 북한 체제의 특성을 모르는 박근혜 정부가 그렇게 규정해버린 겁니다. 우리는 회담 대표가 어느 정도의 결정권이 있지만 북한은 어차피 뒤에 있는 사람들이 다 결정합니다. 내각책임참사든 조평통(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북한의 대남 기구) 서기국장이든 간에 대표자로 나오는 사람보다는 뒤에서 어떻게 회담을 이끄는지가 중요하죠.

또 과거 1990년 남북 총리급회담 북측 대표단의 일원이었던 안병수(또는 안경호) 당시 조평통 서기국장은 한국 언론에서 장관급으로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안된다구요? 왜 달라졌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습니다.

협상에 나온 사람은 북한의 입장을 전달하는 통로이지, 누가 와도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격'을 따지기보다 회담 내용을 잘 살펴야 합니다.

▲ 가장 최근에 열린 남북 당국회담인 2015년 12월 차관급 회담 ⓒ사진기자협회제공

남북 대화에 떨떠름한 미국?

프레시안 : 지난 6월 30일(현지 시각) 한미 정상회담 이후 발표된 공동성명에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 통일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 대한민국의 주도적 역할을 지지하였다"라고 명시돼있습니다.

그런데 남한이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접촉과 군사 당국 회담을 제안한 것을 두고 미국이 "한국 정부에 물어보라"는 식으로 사실상 환영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내놓았습니다.

정세현 : 미국 반응을 두고 어떤 의도인지 당장은 추론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이미 발표한 것을 미국 측이 뒤집은 것이라고까지 해석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북한과 대화를 추진하겠다는 남한 정부의 입장을 미국이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좀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보통 이번처럼 한국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죠.

오히려 국내에서 남한 정부가 북한과 대화든 뭐든 하려면 미국에 충분히 사전에 설명해서 승인을 받아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감히 우리가 어떻게 마음대로 상황을 주도하냐는 건데, 실제로는 우리가 먼저 이렇게 치고 나가는 것이 일을 만들어내는 데 더 좋을 수 있습니다.

미국이 좀 떨떠름하게 생각하더라도 우리가 먼저 정책을 밀고 나가면서 기정사실화하고 거기에서 성과가 생기면 그걸 가지고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일을 성사시키는데 더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와 외교부, 국가안보실 등이 사전에 미국을 잘 설득했는지도 의문입니다. 미국으로부터 주도권까지 받아 오면서 이런 중대한 제안을 한 마당에 미국이 삐딱하게 보지 않도록 사전에 보다 철저하게 미국과 교감을 이뤘어야 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문 대통령의 메시지 관리도 베를린 구상까지는 괜찮았는데 G20 회의 계기에 만난 한미일 정상회담에서는 제재와 압박 이야기를 강조했는데요. 이건 북한에게 남한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물론 미국이나 국내 보수 여론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도, 국내 보수 세력도, 북한도 만족할 수 있는 제안은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어느 쪽이든 설득을 해나가겠다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참모들과 사전에 충분한 타당성 검토 회의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산가족 상봉만 해도 북한이 식당 종업원을 걸고 넘어갈 것이라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김련희 씨도 마찬가지고요. 따라서 정부는 이걸 어떤 식으로 풀어갈 것이냐는 대책이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을 준비하고 있는지 모르겠고요.

대통령이 단일팀을 언급한 것도 좀 성급해 보였습니다. 북한이 거절한 게 문제가 아니라 남한 내 여론과 국가대표 선수들 입장을 고려해야 했습니다. 실제 1984년 올림픽 참가를 위한 남북 단일팀 구성을 위해 북한과 협의를 할 때 당시 정치권은 적극적이었지만 선수들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습니다. 이러한 전례를 참모들이 살펴서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이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외교‧안보의 사령탑이 없기 때문에 이런 메시지가 나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 몸값 높아졌다

프레시안 : 한편 로버트 게이츠 전 CIA 국장‧전 국방부 장관은 <월스트리트 저널>(WSJ)과 인터뷰에서 북한의 비핵화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을 제한하는 '북핵 동결론'으로 가야한다는 주장이었는데요.

정세현 : 그런 로드맵이 이제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돼버린 겁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가 나오게 된 원인은 지난 9년 동안 사실상 무방비 상태로 북한에 시간을 벌어줬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방치했으니까요. 인정하기 싫지만,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만들고 떠난 셈입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한미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할 수는 없지만, 현실적으로는 목표를 조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세현 : 그런데 트럼프 정부 들어와서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폐기' 이야기가 또 나왔습니다. 오바마 정부때만 해도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정도까지만 언급됐었는데요. 아무튼 정부는 게이츠 전 장관처럼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북한이 핵실험 5번하고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상황에서 비핵화에 호응할 리가 없다는 점입니다. 과거같으면 북미 수교나 평화협정 정도로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북한 몸값이 너무 높아졌습니다.

프레시안 :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수교할 가능성은 있을까요?

정세현 : 주한미군 문제가 붙어있어서 쉽지는 않을 겁니다. 김일성-김정일 정권에서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요구하지 않는 조건으로 평화협정과 수교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고도화된 이후에는 조건이 달라졌습니다. 예전 방식으로만은 북핵을 해결하기 어렵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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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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