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전 대표는 지난 3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이미 당권 도전을 선언한 정동영·천정배 의원에 비해 안 전 대표의 강점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하자 이렇게 답했다.
"보통 극좌나 극우에 대해 말씀들을 많이 하지만 반면에 '극중'이 있다. 좌우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실제로 국민에게 도움되는 일들에 치열하게 매진하는 것, 중도를 극도의 신념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바로 '극중주의'다. 그리고 이미 세계적으로도 극중주의로 정권을 잡은 곳이 프랑스이고, 전 세계적으로 파급될 거라고 확신한다. 대한민국에는 그 중심에 국민의당이 있다. 그 노선에 대해 보다 더 분명하게 국민에게 알리는 기회가 이번 전당대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극단, 끝을 뜻하는 '극(極)'과 중용, 중도, 온건함을 뜻하는 '중(中)'을 합쳐놓은 '극중'이라는 개념은 많은 이들에게 생소하게 들렸다.
안 전 대표가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언급한 것을 보면, '극중'은 이른바 '극단적 중도(extreme center)'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극단적 중도'라는 낯선 개념은 미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P)가 지난 봄의 프랑스 대선을 분석하며 끌어온 개념이다.
잡지는 '극단적 중도'라는 개념은 프랑스 역사가인 피에르 세르나 파리1대학 교수의 2005년 연구에서 고안된 것이라고 소개하며,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왕정 복고가 이뤄졌을 때 왕으로 세워진 루이18세가 이끈 왕정의 행태를 묘사하는 데 이 개념이 쓰였다고 설명했다.
세르나는, 복고된 부르봉 왕정이 프랑스 혁명의 이상을 유지하려는 좌파 세력과 혁명에 반대하는 반동 우파 세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고 묘사하면서, 상반되는 두 노선 사이의 타협과 중용(moderation)에 극단적으로 집착했다고 설명했다. 루이 18세 왕정은 이같은 자신들의 노선이 "일반 이익(general interest)"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는 테크노크라시(기술관료제)의 한 원형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잡지는 "마크롱의 가장 큰 도전은 대선 승리가 아니라, '극단적 중도'를 실제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이 작업은 끝나지 않을 것이고, 19세기에 이미 그랬듯이 극좌로 극우로 급격하게 요동칠 것"이라고 비꼬듯 서술했다.
세르나 교수는 지난 2015년 방한 당시 <한겨레>와 한 좌담에서, 자신의 '극단적 중도' 개념은 지배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좌우 논쟁을 하용하지 않는 '행정적 지배'를 비판한 것이라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 (☞관련 기사 : )
한편 마크롱과는 다소 무관한 지점에서 '극단적 중도'라는 말이 사용된 예도 있다. 파키스탄 출신의 문학가이자 좌파 사상가 타리크 알리는 2015년 펴낸 <극단적 중도파>(한국 번역 출간은 올해 1월. 오월의봄 펴냄)에서 이른바 '제3의 길'로 명명된 신자유주의적 사회체제를 극좌와 극우 사이의 중앙적 위치에 놓고 이를 사수하려는 태도를 '극단적 중도'라고 개념화하며 비판했다.
<극단적 중도파> 한국판 번역자인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위원은 "영국의 양대 기성 정당 내 주류가 다 이런 극단적 중도파다.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도 극단적 중도파이고, 샌더스에 대한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 역시 극단적 중도파의 승리다. 그리고 유럽연합은 지구 행성에서 극단적 중도파의 가장 왕성한 서식처"라고 지적했다. (☞관련 칼럼 : 영국, '극단적 중도파'의 쿠데타가 시작됐다)
장 기획위원은 4일 <프레시안>과 한 통화와 페이스북 글 등을 통해 "비판하기 위해 만든 개념을 마치 긍정적인 것처럼 가져다 쓴 것은 코미디"라며 "'극중' 노선은 마크롱의 승리와 함께 전 세계를 석권하는 게 아니라 마크롱의 조기 몰락과 함께 사망할 운명"이라고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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