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에 대하여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 피고인을 징역 1년에 처한다."
지난 10월1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서관 423호 법정에서 판결 결과를 지켜보던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이강호 판사가 기륭전자 최동열 회장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법정 구속했기 때문입니다.
"진짜야, 최동열 구속되는 거야?"
"그래. 진짜야."
"눈물이 나려고 하네."
유흥희 분회장, 김소연 전 분회장, 윤종희 조합원과 지난 10년 동안 기륭전자를 동행 취재해왔던 연정 작가는 기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결심 공판에서 검사가 이례적으로 구형을 서면으로 하겠다고 해서 큰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체불임금 액수도 10명에 대해 2억8966만 원으로 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벌금 정도 나오겠지 생각한 모양인지 최동열 회장은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함께 재판에 나왔던 동생 최성열 전국씨름연합회장도 판사의 선고를 듣자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습니다.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인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싸움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법정 구속
판결문을 살펴보았습니다.
"사측(기륭전자 사측)과 간접고용 근로자들 사이의 오랜 분쟁 끝에, 국회의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직접고용이라는 대타협을 이루어냄으로써 노사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한 모범적인 사례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이 사건 합의로 기륭전자는 한때 이미지 쇄신과 주가상승 효과까지 보았다."
2010년 여름이었습니다.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이 교섭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2년 전인 2008년 기륭전자가 오더를 주는 제3의 회사안, 기륭전자가 51% 이상을 투자하는 자회사 안 등이 제안됐다가 노사 당사자들이 거부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김소연 분회장에게 정규직 복직이라는 명분과 위로금 합의라는 실리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는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정규직 복직이라고 답했습니다. 교섭이 결렬되고 장렬하게 전사하더라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라는 의미를 훼손시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
기륭전자 회사는 정 모 부사장을 대표로 교섭에 나왔습니다. 회사의 경영상태가 어려워졌고, 최동열 회장이 배임 혐의로 고소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해 여름부터 3개월간의 집중적인 교섭을 통해 10월말 의견접근에 이르렀습니다. 기륭전자 사측은 11월1일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을 모아놓고 조인식을 하자고 했고, 그 전까지 절대 언론에 알리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당시 '코츠디앤디'라는 회사가 교섭을 중재했습니다. 기륭전자에게 공장 부지를 사들였는데 노조원들의 농성으로 공사를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노사가 잠정합의에 이르던 날, '코츠디앤디' 대표와 직원이 "지금 기륭전자 주식을 사면 주가가 많이 오를 텐데 왜 노조에서는 주식을 안 사느냐"고 물었습니다. 노조는 부당한 내부거래를 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11월1일 국회에서 열린 조인식에는 언론사 기자들도 빼곡했고, 합의 소식은 주요 신문 1면을 장식했습니다. 기륭전자 주식은 일주일 동안 고공행진을 했습니다. 기륭전자에서 잠정합의 전후 주식을 대량으로 샀다가 최고점에서 되팔아 시세차익을 남겼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2010년 10월의 기억
다시 판결문을 봅니다.
"피고인은 일정한 유예기간 뒤에는 기륭전자가 이 사건 근로자들을 직접 고용한다는 내용의 이 사건 합의에도 불구하고, 그 합의 이행을 거부하며 이 사건 범행에까지 이르게 되었는바, 기륭전자와 이 사건 근로자들의 분쟁과정 및 이 사건 합의의 경위와 내용, 관련 민사소송의 결과, 피해근로자의 수, 체불임금의 규모 등에 비추어 볼 때, 그 죄책이 절대 가볍지 않다."
"그런데도 피고인은 여전히 이 사건 근로자들을 기륭전자의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거나 지급책임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며 피해회복을 위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동종범행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 이러한 정상에 비추어 볼 때, 피고인에 대하여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
최동열 회장은 대놓고 "당신들은 우리 직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급기야 그해 12월30일 아무런 사전 통보도 없이 본사를 도망치듯 이사했습니다. 기륭전자 조합원들은 회사를 상대로 미지급 임금 지급 소송을 벌여 2015년 10월15일 대법원으로부터 확정판결을 받았지만 최동열은 단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2014년 11월30일 몰래 폐업신고를 했습니다.
금속노조 법률원 김태욱 변호사는 "최동열은 기륭전자 인수과정에서 각종 업무상 배임 행위를 하여 알짜배기 회사 기륭전자에 엄청난 손실을 끼쳤는데, 노동조합의 각고의 노력 끝에 이루어진 2010년 11월 1일자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고 기륭 조합원들의 정규직 지위를 부정하고 임금을 악의적으로 체불하였으며, 더 나아가 야반도주까지 하였고, 법정에서 허위 진술과 변명으로 일관했다”며 “대표이사 등 기업임원진과 그 특수관계인들의 업무상 배임 등으로 인한 기업 약탈행위와 사회적 합의 위반에 대하여 법원이 철퇴를 내린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야반도주에 몰래 폐업까지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법원이 다룬 노동사건 4만8117건 가운데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것은 일반 형사사건 실형 선고율(18%)의 1/4 수준인 5.2%에 불과했습니다. 최저임금으로 재판에 회부한 357건 중 7명만 실형을 받았고, 2심에서는 모두 풀려났습니다. 지난 10년간 검찰에 접수된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 50만8639건 중 검찰이 기소한 것은 22만8879건(37.6%)이었으며, 구속 기소는 163명(0.03%)에 불과했습니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지난 8월까지 기업주들의 임금체불은 노동자 22만 명에 금액이 8910억 원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법원은 체불임금의 10% 정도의 벌금형을 내리는 게 고작입니다. 그러니 체불임금을 갚는 것보다 벌금을 내는 게 낫고, 임금체불 범죄가 줄어들지 않습니다.
불법파견 범죄(근로자파견법 위반)로 수차례 고소, 고발을 당했던 현대·기아차 정몽구 회장이 지금까지 검찰 조사조차 받지 않았습니다. 새 정부 들어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고등법원 판결을 근거로 정몽구 회장을 불법파견으로 고소한 사건도 고용노동부 책상에 잠들어 있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세상입니다. 다행히 최근 소신 있는 법관들이 의미 있는 판결을 내리고 있습니다. 노조파괴 범죄에 대해 유성기업, 갑을오토텍 사용자가 검찰 구형보다 높은 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갇혔습니다.
사업장 | 피고인 | 죄명 | 구형 | 선고일 | 법원 | 선고 | 비고 |
갑을오토텍 | 박효상 | 노조파괴(노조법) | 징역8월 | 2016.7.15 | 천안지원 양석용 | 징역10월 | 법정구속 |
유성기업 | 유시영 | 노조파괴(노조법) | 징역1년 | 2017.2.17 | 천안지원 양석용 | 징역1년6월 2심1년2월 | 법정구속 |
발레오전장 | 강기봉 | 노조파괴(노조법) | 징역1년 | 2017.6.16 | 경주지원 권기만 | 징역8월 | 불구속 |
기륭전자 | 최동열 | 임금체불(근기법) | 서면 | 2017.10.11 | 중앙지법 이강호 | 징역1년 | 법정구속 |
2008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은 중국 방문길에 중소기업인 수행원으로 기륭전자 최동열 회장을 동반했습니다. 최동열은 감옥에 갇혔고, 국민들은 이명박이 언제 쇠고랑을 찰지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당시 참여연대는 "기륭전자 경영진에 대해 업무상 배임 혐의와 함께 최동열 회장이 처음부터 기륭전자 자산을 빼돌릴 목적으로 경영권을 인수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BBK, 다스를 비롯해 의혹이 '한 다스'가 넘습니다.
두 사람 모두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을 하찮게 여기는 자들입니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세 차례의 고공농성, 생사를 오고 간 94일 단식, 한겨울 오체투지 행진 등 극한의 투쟁으로 마침내 악질 사장을 구속시켰습니다.
이제 최동열과 같은 악덕 사용자들이 큰소리치는 세상이 바뀌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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