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학회(대표 한동우)의 '의열지사 넋두리한마당'의 연재를 시작한다. 이 연재는 김구, 조봉암 등 선열들이 오늘의 시대 상황을 직시하며 나라의 진정한 자주독립과 민족의 존엄한 삶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겨레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독백 형식의 글이다. 모든 글은 선열들이 남긴 기록들, 행적들, 역사적 사실들 등을 토대로 하여 필자의 의견을 가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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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경제와 국민경제
지금 사람들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우리나라가 영원무궁토록 발전할 것으로 믿지만 내 세대는 그렇지 못했다. 1934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61세로 죽기까지, 나의 국적은 내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태어날 때는 일본인이었고, 11살에 해방을 맞으면서 조선인이 되었고, 14살에는 분단된 대한민국 사람이 되었다. 지금은 대한민국 사람이지만 내가 언제 또 다른 나라의 사람이 될지 모른다고 늘 생각하며 살아야 했다. 국적은 바뀌어도 민족은 영원하다는 가르침을 익힌 탓에 자신의 정체성을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데서 찾은 게 아니라 한민족의 일원이라는 데서 찾았다. 그래서 나는 죽는 날까지 국민경제는 일시적이고 가변적인 존재라고 생각했고 삶의 기반을 민족경제에 두어야 한다고 믿었다. 민족경제와 국민경제의 차이는 1973년 고려대 조용범 교수가 맨 처음 제기했다.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아무도 명확히 구별하지 못한 때였다. 지금은 두 개념의 차이에 대해 확실히 설명해줄 수 있다. 국민경제는 대한민국 국적의 경제이고, 민족경제는 남북통일을 염두에 둔 경제이다. 통일을 염두에 둔다고 해서 통일 이후의 경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이다. 분단 상태에서 우리가 통일을 이룰 때까지의 도정에 야기될 외국의 간섭과 방해를 스스로 물리칠 역량을 미리 지니지 않으면 자립적이고도 자주적인 통일된 경제를 갖추지 못한다는 뜻에서의 민족경제다. 민족경제는 양적인 수치보다 질적인 자주성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성장률이라든지 1인당 GDP나 무역수지 따위는 낮은 수치라도 좋다. 자본과 기술을 자력으로 축적했는가 아니면 외부의 힘에 의존한 것인가, 외국과의 갈등이나 충돌로 경제 봉쇄를 당할 때를 대비한 자립적인 재생산구조가 완결되어 있는가 등이 사활적 중요성을 지닌다. 그런데 이 두 조건은 문자 그대로만 해석하면 곤란하다. 완결된 자립적 재생산구조란 애초 불가능하기도 하려니와 불필요하기도 하다. 1997년 IMF 사태 당시 우리나라 원유 재고량은 1.5개월 정도의 소비량밖에 안 남아 있었다. 중동에서 원유를 배에다 싣고 오려면 1.5개월이 소요된다. 지금 당장 원유를 배에 실어 와야 1.5개월 뒤에는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형편이었다. 이미 한국의 채무불이행 사태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뒤인지라 어느 나라도 우리에게 현금 아닌 신용으로 원유를 줄 리 없었다. 당장 현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불리한 조건도 수용해서 무리한 손실도 감내해야 했다. IMF와의 이면합의로 금융기관을 헐값으로 팔아넘겼을 뿐 아니라 한국에 대해 그동안 허용해온 원유의 최고 재고량을 6개월의 여유분에서 3개월 여유분으로 감축한다는 요구도 수용했다. 자립적이거나 자주적인 경제는 이젠 꿈도 못 꾸도록 미리 싹을 자른 조치로 해석되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정반대의 해석이 가능해졌다. 지난날엔 원유 재고량이 6개월 소비치를 넘기면 IMF가 우리를 위협적이라고 느꼈으나, 지금은 3개월 소비치만 넘겨도 위협을 느낄 정도로 우리의 자주 역량이 증대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했기 때문이다.열린 민족경제로 거듭나기
지난날 나도 너무 소극적으로 수세적인 민족경제를 주장했다. 공업화를 우리 기술과 우리 자본으로 진척시켜야 한다고 생각해 외국의 기술과 자본에 의지한 공업화를 부정적으로만 본 것이다. 내 기술도 내 자본도 없이 상품을 생산해 판매하려면 남들보다 생산원가가 더 높을 수밖에 없다. 결국 장시간의 저임금 노동 외에는 추가로 들어가는 생산원가를 메울 길이 없다. 외채상환을 조기에 끝내기는커녕 누적되는 외채만 눈덩이처럼 커져만 간다. 더 나은 기술, 더 많은 외자로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전환해 교역조건을 개선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거기서도 인건비를 절약해서 돈을 남기는 것 외에는 외채를 상환할 방법이 없었다. 노동자들의 저항을 막으려면 정부와 사업자가 솔선해서 근로자와 한 몸으로 고난의 행군을 같이해야 했으나 한국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결국 공업화 28년째 해에 부·마항쟁과 광주항쟁이 있었다. 1997년에는 IMF 사태를 맞아 알짜배기 중소기업이 헐값에 팔려나갔고 금융기관도 농협은행, 수협은행, 우리은행을 제외하고는 죄다 외국에 팔려나갔다. 그 결과 이제는 우리 힘으로 신기술을 개발해서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교역조건을 개선한다 해도 그 과실은 원천자금을 제공한 외국 소유 금융기관에 귀속된다. 우리는 겉만 화려한 '속 빈 강정' 같은 경제만 안게 됐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많아졌다.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교훈
한때는 스필버그의 영화 한 편이 수십만 대의 현대자동차보다 더 큰 부가가치를 낳는다는 이유로 제조업에 치중해온 경제를 촌스럽고 시대착오적이라고 경시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동참하자며 FTA 체결과 금융개방을 서둘렀다. 그 후 불과 3년도 채 안 지나서 속수무책으로 IMF 사태를 당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에 한쪽 귀퉁이라도 차지해야 안 되겠냐고 맹목적으로 뛰어든 바람에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것으로 남겼어야 할 제1금융권마저 외국자본의 손에 넘겼다. 그들의 요구대로 작은 정부, 공기업 민영화, 노동시장 유연화(비정규직 일상화), 금융개방을 다그쳤다. 중국도 한때는 건국이념까지 뒤로 젖힌 채 경제개발에만 몰두하다가 한국의 IMF 사태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가다듬고 그간의 경제개발과정을 재점검했다. 과거의 제국주의적 경제침략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지 않았다면 그들도 어쩌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엔 우리처럼 IMF 사태를 당했을 것이고, 그동안 축적된 중국의 알짜배기 제조업들이 외국자본의 손에 넘어갔을 터였다. 지금 같은 4차 기술혁명이나 AI 분야에서의 중국의 패권적 지위는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그랬으면 미국에서도 지금 같은 정치적 내분이 없었을 것이고 양적완화 없이도 달러 패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중국에 대해 헛물만 켰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미국이 돌연 안면을 바꾸어 중국의 소수민족에 대한 인권탄압 및 위안화 환율조작을 이유로 중국 봉쇄 프로그램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차이나 포비아를 과거의 미국 우방국들에 유포하며 반중국 캠페인에 동참할 것을 바라지만, 우방국이란 나라들이 과연 얼마나 참여할지 미지수이다. 그들도 미·중 두 갈래 길을 앞에 두고 나름으로는 자국의 경제적 향방을 깊이 숙고할 것이다. 민족경제가 지금은 이념에 대해 중립적인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자꾸 이념대립의 가치동맹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 그들을 멈칫거리게 한다. 그동안 동맹국들을 향해 미국이 명분으로 내건 가치는 수시로 바뀌었다. 현실사회주의의 실패 직후에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시장경제를 내걸었다. 그러나 이는 2008년의 금융위기 때 미국 스스로에 의해 망가져 버렸다. 부실한 금융을 치유하자고 미국 납세자의 돈을 부실화된 은행에 '묻지 마' 방식으로 퍼주기를 했다. 돈을 주면서도 자금신청서의 제출이나 심사도 없이 구두로 제공하고 사후에도 관리 감독이나 감사도 면제한 채, 자금상환의 의무도 없이 돈을 퍼주었다. 이것이 무슨 시장경제 논리인가? 공짜가 없다는 게 시장경제 논리가 아닌가? 그동안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시장경제 논리에 짓눌려온 민족경제가 이번에는 승리를 거두었다. 민족경제를 상대로 싸우기 위해 이번에 내건 미국의 새로운 가치는 '자유란 이름의 폭력'(Liberty as violence)과 '인권이란 이름의 사유재산제도'(Human rights as property) 라는 서방의 전통적 가치이다. 서양에서는 로마시대부터 전제군주의 폭정에 저항하는 폭력을 자유라고 불렀으며, 그 당시엔 사유재산이 없으면 자유로운 시민도 노예로 전락했던만큼 자유인과 노예의 차이가 사유재산의 유무에 있다는 가치관을 기저에 깔고 있다. 따라서 서양의 자유와 인권이라는 개념은 다민족국가인 중국의 정체성과 공산당의 존재 자체를 근원적으로 부정하는 파괴적 가치이다. 둘 사이에는 타협이나 절충 자체가 불가능하다. 어느 한쪽이 망하거나 굴복하지 않으면 양쪽이 다 망할 때까지 계속된다. 동맹국이라도 제정신 가진 정치지도자이면 중·미 두 핵 강대국의 싸움이 지구촌의 운명을 어디로 끌고 갈지는 볼 줄 알 것이다. 미국에 편들지 않는 나라를 미국이 배척하면 그 나라는 어쩔 수 없이 싫어도 중국 편이 되는데 이는 미국의 이익에도 반한다. 중국도 마찬가지이다. 자기편이 아니라고 배척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중국 어디를 향해서든 '우리는 당신 편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밝히지만 않으면 어느 쪽이든 우리를 배척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과거 한국을 비롯한 신흥공업국의 경제가 1980년대 후반부터 무역흑자 기조를 정착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을 희생물로 삼은 1985년의 플라자 합의와 그로 인한 3저 호황이라는 유리한 국제경제 환경 때문이었는데, 이번에도 중국의 희생을 노린 중·미 간의 무역 전쟁이 동맹국들의 AI 산업 및 4차 기술혁명에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으로 은근히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 생기는 보호무역의 반대 급부는 미국이 먼저 챙겨가야 할 정도로 미국이 더 다급한 형편에 있기에 동맹국들에 차례 지어질 몫은 기대에 훨씬 못 미칠 것이다. 이번에 미국이 내건 가치동맹은 경제적 실리보다는 서방의 전통적 가치관, 어쩌면 십자군 전쟁처럼 희생만 요구되고 얻는 바가 적은 가치수호가 될 것이다. 그보다는 통상 분쟁에서 시작된 국가 간 감정대립이 환율전쟁으로 격화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한 역사적 교훈을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또 다른 과거의 교훈은 한때 미국보다 앞서서 선두를 달리던 일본경제가 언젠가부터 갑자기 미국에 뒤지더니, 이제는 한국에까지 추격당할만큼 위축된 사연을 타산지석 삼아 우리의 미래가 오늘의 일본같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세운 공산권 방어 전략은 독일과 일본, 두 패전국의 경제를 부흥시켜 자본주의경제의 번영을 상징하는 본보기로 만들면 공산권의 팽창을 동서 양쪽에서 독일과 일본이 앞장서서 막아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의도와는 달리 이 전략은 엄청난 규모의 외화를 독일과 일본, 두 나라의 손에 집중적으로 안겨다 준 꼴이 되어 오히려 미국의 금융패권을 위협할 지경이 되었다. 그 때문에 1980년대 중반부터는 미국이 전략을 바꾸어 한편으로는 독일과 일본 두 나라의 금융지배력을 거세하기 위해 불환지폐가 된 미국 달러를 압도적으로 대량 살포하여 독일과 일본 두 나라의 금융채권을 압도해 버림과 동시에, 또 다른 한편으로 독일과 일본에 집중됐던 무역 및 금융 측면에서의 각종 지원과 혜택을 신흥공업국에까지 넓혀 제조업에서의 독·일 두 나라의 우수한 기술이 신흥공업국으로 이전·배치되어 신흥공업국에서 시작되는 또 한 차례의 자본주의경제 전체의 고도성장을 연출하였다. 이는 후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번영을 과시하는 것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경제의 실패라는 연쇄반응까지 유도하였다. 그 결과 독일과 일본이 시작한 미국의 금융패권에 대한 위협이 오히려 그 위협의 극복과정에서 미국의 지구적 금융패권의 확립까지 가져온 것이다. 1985년의 플라자 합의는 '1달러=225엔'인 엔화의 가치를 '1달러=150엔'으로 억지로 끌어올린 것이었는데, 이를 시발로 엔화의 시장가치도 '1달러=121엔'으로 급등했다. 이때만 해도 한 나라의 통화가치가 올라가는 것은 그 나라의 국위가 올라가는 것으로 여긴 분위기라서 미국이 달러 가치를 낮추고 엔화 가치를 상승시키는 것에 대해 아무도 의구심을 품지 않았다. 환율은 시장이 스스로 결정하도록 일임하자는 것이 미국의 지론이었는데 플라자 합의로 엔화의 가치가 너무 상승했다는 이유로 1년 5개월 만에 다시 시장 개입을 통해 인위적으로 '1달러=160엔'으로 재조정하는 1987년의 루블 합의도 미국이 주축이었다. 플라자 합의로 종래 일본기업이 100달러어치의 상품을 수출하여 225엔씩 받다가 하루아침에 121엔밖에 못 받게 되었다. 달러로는 일본 상품의 수출가격이 예전과 마찬가지이지만 엔화로는 46%나 폭락한 셈이었다. 일본이 상품을 수출하면 할수록 손실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구조였지만, 그래도 일본이 무역흑자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엔고를 일시적 현상으로만 해석한 일본 기업들이 조만간 환율이 회복되면 손실이 역전되리라 믿고 은행 대출로 적자경영을 버티어 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루블 합의 2년 뒤인 1989년 BIS 합의가 국제금융시장에 진출한 모든 나라의 은행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자기자본비율 8% 이상'이라는 기준을 강제하였다. 이때의 일본 은행들은 그동안 수출기업에 무담보로 신용 지원을 해준 탓에 자기자본비율이 1.0~2.0%밖에 안 되었다. 이를 단기간에 8%로 끌어올리도록 강제하면 일본으로서는 '은행대출금의 조기 회수 → 기업의 도산과 폐업 → 부동산과 주식의 폭락'의 연쇄반응이 불가피했다. 그러나 사실 일본에서는 자기자본비율 8%를 지킬 필요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은행이 솔선해서 지키도록 강제한 정치적 압력이 있었다. 자기자본비율은 국제금융시장에서 일종의 멤버십(회원 자격)을 갖기 위한 조건이다. 회원 자격이란 시장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 채무국 은행이나 시장에 들어가기 위한 자격이지 일본처럼 돈을 빌려주는 위치에 있는 은행은 현금의 보유가 바로 회원 자격이다. 물론 돈을 빌리는 채무국 은행은 이 기준을 지켜야 돈을 빌릴 자격이 생긴다. 그러나 돈을 빌려주는 채권은행은 채무은행이 판매하는 금융자산(국채나 회사채)을 현금으로 구매하면 된다. 현금을 손에 쥐고 있는데도 낮은 자기자본비율 때문에 신인도가 낮다고 그들이 가진 현금까지 받기를 주저할까? 위조지폐일 것 같으면 위조화폐 여부를 감정하면 된다. 일본은 BIS기준 같은 것은 지킬 필요가 없었는데, 왜 등신처럼 안 해도 될 출혈과 무리를 해서까지 잃어버린 20년을 자초했을까? 당시의 일본 사회가 그만큼 국제금융시장의 사정에 어두웠다는 얘기이고, 그 덕에 한국의 경상수지는 호전되었다. BIS 은행은 1930년 대공황 시에 중앙은행 사이의 금본위제에 입각한 결제에 차질이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은행의 중앙은행 역할을 하는 은행이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주요 8개국 정부의 합의로 각국 중앙은행이 출자하고 몇몇 개인도 같이 출자해 설립한 주식회사이다. 이 회사의 주식은 주식시장에도 상장되어 공개적으로 주식을 정식으로 사고팔 수 있었다. 그러나 '(주) BIS'의 최고 의결기구는 주주총회가 아닌 BIS의 사원총회인데 회원국의 중앙은행 총재들만 매년 1회 참석하여 주요 안건을 심의·의결하기로 되어 있다. BIS의 개인주주는 의결권이 없다. 그러나 BIS의 사원총회에서 의결된 안건을 집행하고 운영하는 이사회의 이사가 되어 BIS의 배당금도 중앙은행 총재들과 똑같이 수취할 수 있다. 지금은 회원국이 60개국으로 늘었는데 회원국이 새로 생기면 회원국의 국내 유력인사 약간 명에게 출자금을 내면 이사로 선임될 기회가 제공된다. 일본은 1930년부터 BIS의 창립발기인이었으므로, 일본 정계의 유력인사 가운데는 일찌감치 BIS의 이사로 진출하여 BIS에서의 발언권도 강했으나 그들은 가문의 사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일본경제를 희생시키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일본 정계와 경제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이용해 BIS의 기준을 따르지 않을 때 생길 각종 불이익(국제시장에서 채권자 역할을 정지당할 가능성)으로 일본 은행들을 위협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일본경제가 독일경제와는 달리 쉽사리 망가진 원인이다. 독일과 일본은 다 같은 패전국 처지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혜택과 지원으로 경제부흥을 이룬 사육된 경제였기에 사육사의 필요에 따라서는 언제든 요리당할 운명에 있었지만, 독일은 자주성이 강한 보수 세력이 경제를 지켰고 일본은 외세에 빌붙은 매국노가 경제를 팔아먹었다.민족경제는 민주화된 경제라야 한다
일본은 채무국도 아닌 채권국, 그것도 최대의 채권국이었지만 일본 엘리트 몇 사람의 배신으로 경제가 거덜났다. 한국에는 그런 엘리트가 없을까? 한국도 김영삼 정부 때 BIS의 회원국이 되었고, 한국에서도 당시의 유력인사 약간 명이 BIS의 이사로 진출했다. "사람은 민족이나 조국이 없어도 돈만 있으면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그러나 조국이 있고 민족이 있어도 돈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게 이 세상이다." 이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가르친 교훈이다. 사람은 누구나 공짜로 천금을 얻을 기회가 올 때 조국도 필요하면 배신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시장경제의 합리성이다. 이와 같은 막가파식 시장경제 속에서 민족경제를 지킬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시장경제를 민주화하는 것이다. 소수의 엘리트가 함부로 경제를 팔아먹지 못하게 막을 수 있으려면, 소수의 몇몇이 시장경제를 마음대로 좌우하지 못하도록 구성원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민주적 시장경제를 만들어야 한다. 섣부른 분배나 복지 같은 개념은 윤리와 도덕과 체면과 염치를 무시하는 양아치들에게 시장경제의 주도권을 계속 맡겨두자고 대중들을 회유하고 속이기 위해 벌리는 입에 발린 선심에 불과하다. 시장경제를 어떻게 하는 것이 민주화인가? 시장의 주도권은 돈에 있고 모든 권리는 돈에서 나온다. 돈은 무생물이다. 무생물에 권리를 부여하면 마치 무생물이 제삼자로서 공정하게 권리를 행사하는 줄 착각한다. 그러나 돈은 아무런 지각력도, 의지도 없고 판단력도 없기에 책임을 묻기 어렵다. 책임도 묻기 어려운 무능력한 무생물에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 옳은가? 권리만 부여하고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은 옳은가? 법인도 마찬가지이다. 법인은 법적으로만 존재하는 가상의 허구적 인간이다. 법인과 화폐는 자연인 누군가에 의해 소유되어 지배되고 있다. 그들은 법인과 화폐를 이용하여 권리만 배후에서 행사하고 책임지지 않는다. 모든 권리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이들 배후에서 권리만 행사하고 책임은 안 지는 자들의 권리를 분석하여 각각의 권리에 적합한 책임을 다시 부여하고 책임을 다시 부여하기 어려운 권리 부분에 대해서는 사회가 그 권리를 회수하여 구성원 일반에게 되돌려야 한다. 이것이 민주화의 첫걸음이다. 먼저 통화발행권을 보자. 통화발행은 공짜로 구매력을 창출하는 막강한 권리에 해당하는데도 그 권리에 대해서는 아무 책임도 묻지 않는다. 통화발행은 중앙은행의 고유권한이지만 그 의사결정은 금융통화관리위원회가 내린다. 그 의결내용을 집행하는 주체가 중앙은행이다. 발행된 통화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묻기 어려우면 그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한 사람에게 사회적 책임을 묻거나 사전에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또 통화발행의 집행도 문제이다. 경제학 교과서는 통화발행의 집행을 새로 발행된 화폐를 헬리콥터로 공중에서 살포한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아무도 안 속을 거짓말로 자기들의 범죄를 모른 체한다. 다음으로 분석할 것은 이자율의 결정이다. 경제학 교과서는 이자율을 정책당국이 인위적으로 결정한다고도 설명하는가 하면, 화폐시장에서의 수요공급의 균형에 의해 결정된다고도 설명한다. 원래 화폐공급량(통화량)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정책당국이므로 결국은 두 설명은 같은 것이다. 인위적인 이자율의 결정에 누군가 함부로 전횡하지 않도록 막는 정치가 사회적으로 합의되어야 한다. 가령 금융통화관리위원회에는 농민이나 노동자의 대표가 배제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법인, 일례로 주식회사를 분석해보자. 주식회사는 다수의 소액주주로부터 자금을 신탁받아 수탁자가 그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로 되어 그 돈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고 관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위탁자로부터 사전에 동의받은 사항이므로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판단 능력도 없어 법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법인인 무생물 ㈜A의 자금으로 ㈜B의 주식을 다량으로 보유하여 ㈜B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면, 실제로 그런 권리를 행사하는 자는 ㈜A가 아니라 ㈜A의 임원이지만 ㈜A의 임원은 ㈜B의 경영에 대해서 갖는 책임은 ㈜A의 지분밖에 없고 권리는 ㈜A와 ㈜B의 자본금 전부에 대한 처분권에 해당한다. ㈜B의 주주들은 이 불합리를 사전에 동의한 적도 없다. 나의 잠정적인 해법은 법인에 대해서는 배당금만 수취할 수 있는 우선주에 대해서만 보유를 허용하되 주주총회의 의사결정에까지 참여할 권리가 수반되는 보통주에 대해서는 보유를 아예 막거나 의결권의 행사를 원칙적으로 금하는 것이다. 법인이 법인을 소유하는, ㈜A가 ㈜B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시장경제의 "자유경쟁 원칙"에 위배되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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