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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쌀 지원이 가져올 나비효과…정세현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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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쌀 지원이 가져올 나비효과…정세현 "서둘러야" [정세현의 정세토크] 아베가 북일 정상회담에 적극적인 까닭은?
지난 4일 북한이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한 이후도 한미 정부는 대북 인도적 지원 카드를 꺼내들었다. 북한의 군사적 행위에 대한 규탄이 아닌 인도적 지원이 적절한 대응인지에 대해 보수층의 비판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부는 8일 대북 식량 지원을 포함한 인도적 지원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공식화했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남북 간 식량을 비롯한 인도적 지원이 이뤄지면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고, 이를 통해서 북미 간 협상도 다시 힘을 받을 수 있다"며 인도적 지원이 북미 간 협상에서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 전 장관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도 북한의 식량난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점을 언급하며 "지금 국제사회가 움직이고 있는 이 틈을 파고 들어가서 우리가 쌀을 지원하면 아마 남한에 대해 꼬여있던 북한의 심기가 풀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우리가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미국이 여전히 대북 인도적 지원을 꺼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7일 있었던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전화 통화 이후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시의적절하며 긍정적인 조치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지만, 정작 백악관이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이 부분이 빠진 채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만 강조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미국에서 '식량 지원은 안 된다'는 공식적인 이야기가 없었다면 정부가 밀고 나가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식량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그래 뭐 그렇게 하든지"라는 정도의 대답만 했으면, 그 정도면 된다"며 "미국 대통령이 이정도의 관심을 보였다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 4월 11일(현지 시각) 한미 정상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이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안된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던 것처럼 이번에 인도적 지원 문제에 대해서도 단호한 반대를 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그런 입장은 아니지 않나"라며 "그렇다면 우리가 당연히 치고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주문했다.

대북 쌀 지원이 북한에 군량미로 전용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에 대해 정 전 장관은 "북한 내에서 식량이 모자라서 피해보는 사람들은 힘 없고 뒷 배경 없는 서민들이다.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이나 군은 북한에서 생산한 농작물을 먹는다"라며 "북한 외부에서 들어가는 식량 지원은 힘 없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말 그대로 '인도적' 지원인 것"이라고 일갈했다.

한편으로는 남북 간 다소 경색된 국면에서 북한이 남한의 지원을 받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됐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우리가 주겠다고 통보하면 북한은 받을 수밖에 없다. 지금 북한의 식량 문제 때문에 국제기구가 움직이고 있는데, 이 와중에 북한이 남한으로부터의 지원은 받지 않겠다고 하면 국제사회가 북한을 어떻게 보겠나"라며 "북한이 (국제기구의) 실태 조사에 대단히 협조적으로 응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실질적인 필요 때문에라도 남한의 제의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인터뷰는 8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북한이 지난 4일 발사체를 발사한 이후 한미 양국 정상은 전화통화를 통해 대응책을 논의하는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요. 북한의 이번 발사가 북미 간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정세현 : 이번 북한의 발사는 미국뿐만 아니라 남한에 대한 메시지도 있었다고 봅니다. 우선 방사포의 경우 대남용이라고 보이는데요. 지난 4월 22일 시작된 한미 양국의 공군 합동 훈련에 대한 반발로 해석됩니다.

이미 북한은 4월 25일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훈련에 대해 비난한 적이 있습니다. "4.27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 공동선언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며 북과 남이 군사적 긴장완화와 적대관계 해소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확약한 군사분야 합의에 대한 노골적인 위반행위"라고 주장했었죠.

그러면서 훈련에 맞대응할 수 있다는 '예고'를 하기도 했습니다. 조평통 대변인은 "남조선 당국이 미국과 함께 우리를 반대하는 군사적 도발 책동을 노골화하는 이상 그에 상응한 우리 군대의 대응도 불가피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군사적 반발은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이 진행되는 시기보다는 보통 훈련이 끝날 때쯤에 일어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훈련에 대해 반발은 해야겠는데, 훈련이 한창인 중에 군사적인 행동을 하면 한미의 군사력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번에도 역시 훈련이 끝나는 시점을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발사한 또 다른 발사체인 '전술유도무기'의 경우 그 거리에 상관없이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로 읽힙니다. 미국이 계속 북한을 견제‧압박할뿐만 아니라 군사적 위협까지 가한다면 자기들도 대응하겠다는 것이죠. 특히 북한은 F-35기의 도입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에 나름의 대응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런데 북한의 이번 발사는 단순한 대응 차원에서 일어난 것만은 아닙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계기 때 가진 시정연설에서 올해 연말까지는 기다려보겠다면서 미국의 '정치적 계산법'을 바꾸라고 했었죠. 그런데도 미국이 아무런 응답이 없자, 북한은 미국에 "어떻게, 생각 좀 정리했어?"라는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이번과 같은 군사 행동을 취한 것 같습니다.

이처럼 북한이 군사적인 행동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기존에 많이 해오던 방식입니다. 그리고 이 방식은 대체적으로 나름의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의 전술유도무기가 남한으로, 일본으로 발사된 것도 아니었고 북한의 영해에서 이뤄졌으며, 미국을 향한 것도 아니었고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도 아니었다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협상을 통해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를 이뤄낼 기회가 있다고 믿으며, 이번 일이 북미 간 협상에 방해가 되지 않길 바란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발사가 있었던 당일 본인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김 위원장이 약속을 깨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며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건 본인이 북미 간 지금까지 가져왔던 협상을 깨지 않기 위해 움직일 것이라는 메시지가 숨어있다고 봐야 합니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이 4일 전술유도무기 발사를 참관하고 있다. ⓒ로동신문

프레시안 : 그렇다면 한미 정상 간 통화에서 언급됐다고 전해지고 있는 대북 인도적 지원이 현 국면에서 돌파구가 될 수 있을까요? 북한이 원하는 것이 인도적 지원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요.

정세현 : 그렇죠. 북한이 최종적으로 원하는 건 인도적 지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렇게 남북 간에 식량을 비롯한 인도적 지원이 이뤄지면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고, 이를 통해서 북미 간 협상도 다시 힘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측면이 중요합니다.

또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식량계획(WFP) 등이 북한 현지에 들어가서 식량 실태를 조사한 결과 올해 수요량보다 159만 톤이 부족하다고 했는데요. 사실 이 수치는 기존보다 악화되긴 했지만 매우 이례적인 수준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유엔의 이번 통계는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왜 일까요? 여기에는 정치적인 복선이 깔려 있다고 봅니다. 즉 북한에 인도적인 지원을 해줘야 할 명분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식량을 지원하면 군량미로 전용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는데, 북한 내에서 식량이 모자라서 피해보는 사람들은 힘 없고 뒷배경 없는 서민들입니다.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들이나 군은 북한에서 생산한 농작물을 먹습니다. 그러니까 북한 외부에서 들어가는 식량 지원은 힘없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말 그대로 '인도적' 지원인 것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우리가 지원하면 북한이 이를 순순히 받을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있지 않을까요? 최근 남북관계가 소강상태인데, 북한이 쌀 지원은 받을까요?

정세현 : 우리가 주겠다고 통보하면 북한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북한의 식량 문제 때문에 국제기구가 움직이고 있는데, 이 와중에 북한이 남한으로부터의 지원은 받지 않겠다고 하면 국제사회가 북한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또 북한이 이번 실태 조사에 대단히 협조적으로 응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필요 때문에라도 남한의 제의를 받아들일 겁니다.

프레시안 : 일부에서는 한미 정상 간 북한에 대한 식량 지원에 공감대가 있는 것이 확실하냐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청와대의 발표에는 식량 지원 이야기가 있지만, 백악관이 발표한 보도자료에는 FFVD((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만 강조하고 있다는 건데요.

정세현 : 미국에서 "식량 지원은 안 된다"는 공식적인 이야기가 없었다면 정부가 밀고 나가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식량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이 "그래 뭐 그렇게 하든지"라는 정도의 대답만 했으면, 그 정도면 됩니다. 미국 대통령이 이 정도의 관심을 보였다는 것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겁니다.

지난 4월 11일(현지 시각) 한미 정상회담 때 트럼프 대통령이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안된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던 것처럼 이번에 인도적 지원 문제에 대해서도 단호한 반대를 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 그런 입장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당연히 치고 나가야 하는 겁니다.

지금 국제사회가 움직이고 있는 이 틈을 파고 들어가서 우리가 쌀을 지원하면 아마 북한이 남한에 꼬였던 심사가 풀리는 계기가 될 겁니다. 남한의 쌀이 북미 간에 협상의 접점을 만드는 윤활유 역할을 해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을 설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예전보다 지원이 더 수월한 것이 개성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있어서 협의하기도 편리합니다. 예전에는 쌀 지원 문제로 중국 베이징까지 가서 회담한 적도 있습니다. 통일부 장관이 나서서 국제기구도 지원하려고 하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되겠냐면서 전례에 비춰 수십만 톤 정도의 규모로 지원하겠다고 치고나가야 합니다.

김대중 정부 당시 북한에 쌀을 차관으로 줄 때 농림축산식품부는 수십만 톤 단위보다 더 많이 지원하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쌀을 그냥 비축해봐야 어차피 사료나 비료로 쓰이는데 그게 가성비가 별로 좋지 않거든요. 또 정부 비축미를 일정하게 빼줘야 추곡 수매가가 올라가기 때문에 농민들 입장에서도 좋은 겁니다.

쌀 지원을 통해 북한의 취약계층을 돕고 우리 농민들의 지갑도 두둑히 하고, 남북관계도 풀고, 나아가 북미 간 협상도 다시 이어붙일 수 있는데 뭘 망설이고 있는 겁니까? 쌀 지원 하나가 교착상태에 빠진 현재 협상 국면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쌀 지원에 즉각 나서야 합니다.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우리가 50만 톤을 보내주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실제 북한의 하역 능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한 달에 10만 톤 이상을 보낼 수도 없습니다. 또 실제 쌀을 보내려면 정부 비축미를 남북협력기금을 이용해 구입하고 이를 실어 나를 배를 섭외해야 하는데, 정부미가 벼 상태로 보관돼 있기 때문에 이걸 먹을 수 있는 쌀로 만들려면 도정공장에서 작업도 거쳐야 합니다.

게다가 이제 장마철이 두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비가 내리는 와중에 쌀을 배에 실어 보내기는 여건이 좋지 않습니다. 정부가 신속하게 결정해서 북한과 협의를 서둘러야 합니다.

▲ 문재인 대통령이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가졌다. 청와대는 북한에 대한 남한의 식량 지원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북미, 접점 찾으려면

프레시안 : 북한과 미국이 서로에게 계속 계산법을 바꾸라고 촉구하고만 있는데, 대북 쌀 지원을 통해 접점을 찾는 것이 가능할까요?

정세현 : 미국은 북한에 핵과 대량살상무기(WMD), 핵 물질, 핵 시설 파괴 등을 전부 실행하면 미국이 무엇을 해줄지는 그 때 가서 이야기하겠다는 입장이죠. 북한은 그렇게는 할 수 없다면서 버티고 있는 상황이고요.

그래서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스몰딜'의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스몰딜이라는 것은 양측이 하나씩 비핵화 조치와 상응 조치를 매칭하면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남북 장관급회담이나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러한 여지가 있다는 점을 북한에 알려주고, 이를 통해 북한을 설득하면서 미국도 설득해야 합니다. 그렇게 접점이 생기도록 빨리 움직이는 게 필요합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요구가 제재 해제에서 체제 보장으로 바뀐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정세현 : 시간을 조금 되돌려보면,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북한은 종전선언을 계속 주장해왔습니다. 종전선언은 체제 안전 보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죠. 그런데 미국 내에서 종전선언은 평화협정이 마무리되는 단계가 돼야 가능하다는 입장이 나왔고, 북한은 이런 상황에서는 종전선언을 계속 밀고 갈 수 없다고 판단, 경제 제재 해제로 전략 목표를 바꾼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북한은 2차 북미 정상회담 전까지 제재 해제에 대해 나름 기대를 걸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2차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북한에 전부 내놓으라는 이른바 '빅 딜'을 제안했습니다. 그래야 경제 지원이든 체제 보장이든 할 수 있다면서 말이죠. 그러자 북한은 이건 리비아식 해법이라며, 제재 해제보다 시급한 것이 '체제 보장'이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김 위원장이 체제 보장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은 이번에 발사체 발사 이후에 북한 매체에 보도된 내용 속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5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발사체를 참관하며 "강력한 힘에 의해서만 진정한 평화와 안전이 보장되고 담보된다는 철리를 명심하고 그 어떤 세력들의 위협과 침략으로부터도 나라의 정치적 자주권과 경제적 자립을 고수"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프레시안 : 북한이 제재 완화에서 체제 안전 보장이라는, 좀 더 높은 수준의 요구를 하고 있는데도 북미 협상을 끌어갈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요?

정세현 : 미국은 스티브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지난 1월 31일에 스탠퍼드 대학에서 했던 강연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합니다. 당시 비건 특별대표는 북미 간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종전선언 등을 이야기했습니다.

또 미국은 영변의 핵 시설이 북한 핵 능력의 80%라고 분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를 폐기하면 그에 따른 미국의 상응 조치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북한의 요구에 미국은 영변 핵 시설이 북한 핵 능력의 50%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량살상무기도 내놓아야 한다고 다른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북한은 자신들의 요구 수준을 높여야겠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고찰이 필요합니다.

프레시안 : 이런 가운데 비건 특별대표가 한국에 오는데요. 어떤 내용을 협의할까요?

정세현 : 아마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에 대해 견제를 하기 위해 오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 곳에서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은 한국이 독자적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거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며 한국을 말리려고 오는 것 같습니다.

▲ 지난 2월 27일(현지 시각)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 위치한 메트로폴 호텔에서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로이터=연합뉴스

김정은과 '만날 수밖에 없다'는 아베

프레시안 : 북미 간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김정은 위원장과 조건 없이 만나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북한의 발사체 이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에서도 북일 정상회담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고 하는데요.

정세현 : 일본 입장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에 다녀온 것이 자극이 된 것 같습니다. 실제 러시아는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문제에 관여하려는 의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비록 미국이 바로 'NO'하긴 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북러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6자회담을 언급하면서 나름의 발언권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여기에 끼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 입장에서는 일본만 소외되는 현 상황을 막아야 할 현실적 필요가 생긴 것이죠.

게다가 러시아가 저렇게 움직이면 아베뿐만 아니라 트럼프도 불안해집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남북미 3자 구도로 북핵 문제를 풀어 내는 것이 성과를 내기 훨씬 좋거든요. 러시아가 끼어들면 문제가 복잡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본과 미국 모두 북일 정상회담에 대한 수요가 있습니다. 일본은 소외되지 않고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 미국은 러시아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서 북일 정상회담이 필요한 것이죠. 따라서 일본이 북한과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하면 미국은 도와줄 겁니다. 회담의 모멘텀을 깨지 않기 위해서 미국이 '일본' 카드를 쓰는 셈이죠. 만약 북일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이 과정에서 일본에 지분이 생기면 협상판에 또 다른 변화가 생기는 겁니다.

프레시안 : 그런가하면 미국은 이란 핵 문제에도 직면해있습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정부 시절 만들어진 이란 핵 협정을 탈퇴한 이후 이란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있는데요. 이란은 이에 대항해서 자신들도 핵 협정 일부 이행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란 핵 위기가 고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이란 핵 문제가 북핵 문제 해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정세현 : 사실 이란 핵 문제 때문에도 트럼프 정부가 좀 조급한 상황이긴 합니다. 이란과 북한의 공조가 강화되면 미국은 이걸 끊어야 하기 때문에 다급해질 수밖에 없죠. 그러면 미국은 북한과 빨리 만나서 이란과 협력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이란 문제는 이스라엘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에 트럼프 정부가 급할 수밖에 없죠. 미국과 이란 문제가 복잡해지면 북한 문제는 상대적으로 해결 여지가 넓어진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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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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