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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은행 싸움'…좀 더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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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은행 싸움'…좀 더 해야 한다 [이봉현의 경제스케치] 금융소비자 입장의 관전평
'토종은행'을 둘러싼 논쟁은 여기서 그만두기엔 아쉽다. 금융감독 당국은 지난주 은행들에게 토종은행과 관련한 말싸움이 도를 넘었다며 자제를 당부했다. 하나금융그룹이 '토종은행론 비판'이란 자료를 내 우리은행에 카운터펀치를 날리는 등 갈등이 확산될 조짐이 보이자 진화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싸울 일이 있으면 심판을 세워서라도 제대로 승부를 내야지 무조건 참으라고 할 일이 아니다.

***생산적인 싸움이 되려던 참인데…**

'싸움구경'을 더 하자는 이유는 논쟁이 막 생산적인 방향으로 옮겨가려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외국인 보유지분이 많은 은행과 거래하면 수수료가 외국으로 빠져나간다"는 식의 다소 엉성한 논리로 시작됐지만, 어떻게 하는 게 토종은행의 모습인가로 초점이 옮겨가면서 금융소비자에게 나쁠 것이 없는 양상이 됐다.

지난주 우리은행은 고객들이 인터넷뱅킹으로 다른 은행에 이체하는 수수료를 면제하거나 대폭 인하했다. 또 설을 맞아 중소기업 특별자금을 다음달 10일까지 5000억 원 한도 안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아울러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은 담보가 없더라도 지원하는 하이테크론도 1조 원 범위에서 대출하기 시작했다.

우리은행은 "토종은행은 내국인이 소유하고 경영하는 것은 물론 국민경제적 책임을 다하는 은행"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수수료 인하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양극화 해소를 위한 서민금융 지원 △미래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금융서비스 등을 다른 은행과 차별화 된 토종은행의 역할로 강조했다.

황영기 우리은행장은 지난주 기자간담회에서 "은행은 정부에서 면허를 내줘서 하는 사업인 만큼 제조업이나 유통업과 달리 공공성이 있다"며 "토종은행론은 어려울 때 떠나지 않은 고객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의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토종은행론의 양면**

물론 이런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는 아직 어렵다. 거액 예금주인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를 고객으로 끌어들이거나 LG카드 인수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는 잔꾀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여전하다. 결국 이렇게 내세운 차별성이 얼마나 오래가는가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구성에서 외국인 지분이 가장 적은 우리은행이 토종은행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들고 나오자 다른 은행들은 내심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간부는 "영업전략 차원이겠지만 수수료를 내리고 중소기업 대출 관행을 바꿔보겠다는 것은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들은 '토종은행=국민경제를 생각하는 은행'이란 식으로 이미지가 굳어지면 올해 치열하게 펼쳐질 자산확대 경쟁이나 인수합병 싸움에서 우리은행이 유리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은행이 토종은행론을 꺼내 든 것은 금융소비자들이 은행들에 대해 느끼는 문제의식을 파고든 측면이 있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들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수익성을 높여 주주가치를 늘리는 것으로 변했다. 즉 주가를 높이고 주주에게 좀더 많은 배당을 하자는 것이었다. 외국계 자본이 제일은행, 한미은행, 외환은행을 인수했고 나머지 은행들도 지분의 60~80%를 외국인이 차지한 만큼 주주의 이익은 자연스레 외국계 자본의 이익으로 치환됐다. 외국인 주주의 요구와 기준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여겨지며 경영의 '황금률'이 됐다.

이런 상업적인 경영은 관치금융의 자의성을 배격하고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긍정적인 효과도 거뒀다. 반면 "더 이상 금융기관이라 부르지 말아 달라"는 요구에서 보듯 돈 버는 데 보탬이 되지 않는 공익성이나 사회적 책임은 뒷전이 됐다. 중소기업, 중견기업이 가진 기회와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평가해 끌어안기보다는 너도나도 손쉬운 부동산 담보대출에 열을 올렸다.

**국제적 리딩뱅크가 나온다 한들…**

이런 쏠림 현상은 경제의 양극화를 심화하고 자산시장의 거품을 만들어 경제에 짐을 지웠다. 은행장들은 당일까지 창구에서는 부동산 담보대출 세일을 하면서도 "일부 특정 지역의 아파트 값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준으로 폭등했다"(지난해 7월 한은금융협의회)며 마치 남의 나라 얘기를 하는 듯한 무책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은행들은 20%의 고객이 80%의 수익을 창출해준다며 나머지 80%의 고객을 불편하게 만드는 '디마케팅'을 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뒤 수십조 원의 공적자금을 부어 은행 시스템을 살려준 국민에게 돌아온 것은 고작 높아진 수수료와 길게 줄을 설 수밖에 없이 졸아든 창구서비스뿐이었다.

이러니 철저하게 내수산업인 은행들이 올해 10조 원 이상의 당기순이익을 내고, 곧 자산 300조 원짜리 국제적 리딩뱅크가 나올 것이라고 한들 대다수 금융소비자들이 크게 감동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은행원들은 무슨 일을 하는데 그렇게 연봉을 많이 받느냐"는 힐난을 듣지 않으면 다행이다.

최근 외국자본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다지만 외국인 지분율이 얼마냐를 놓고 토종과 외국계냐를 따지는 것은 개방시대에 맞지도 않고 의미도 없다. 이는 하나금융그룹이 보고서에서 밝힌 대로 "감성적 애국주의에 호소하고 퇴행적 국적론에 기대 반사이익을 취하려는 주장"이라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다.

***'편한 장사'의 카르텔을 깬다면**

하지만 국민경제를 남들보다 더 많이 생각하기 때문에 토종은행이라고 한다면 다른 얘기가 될 수 있다. 소비자들로서도 이런 은행으로 거래처를 옮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런 점에서 토종은행 논쟁은 옆길로 빠지지만 않으면 은행산업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은행들이 과거의 관치에 대한 반작용으로 주주 중심의 경영을 강조해 왔다면, 이제는 근시안적인 자사 중심주의를 벗어날 때가 됐다. 기업으로서 존립하는 기반인 수익성과 리스크 관리를 망각하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면허를 내주고 안정적인 이윤의 기반을 허락한 국가와 국민도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정형권 박사는 "국내 은행권은 더 이상의 합병이 일어나면 과점의 폐해가 나타날 만큼 숫자가 줄었다"고 밝혔다. 토종은행이 은행권이 빠지기 쉬운 '편한 장사의 카르텔'을 흔들어 놓을 수 있는 '미꾸라지' 노릇을 한다면 나름대로 의미는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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