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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EP 자료조작 논란, 그 거짓과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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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KIEP 자료조작 논란, 그 거짓과 진실 [한미FTA 뜯어보기 31] 공개검증, 안하나 못하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한미 FTA에 관해 작성한 일련의 보고서에서 이 협정의 기대효과와 관련된 수치들을 조작하고 은폐하기도 했다는 의혹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KIEP는 이런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관련 보고서들에 대해 공개검증을 받으라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의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차일피일 그 시기를 미루고 있어, 실제로 언제 공개검증이 이루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의혹이 불거지게 된 1차적인 원인은 KIEP 자신이 성실하지 못한 태도로 연거푸 말을 바꿈으로써 불신을 자초한 데 있다. KIEP는 "계량모형을 이용한 분석결과를 해석하는 경우에 늘 그렇지만, 계량모형 자체의 한계나 문제점, 통계상의 오류와 미비점을 고려할 때 수치의 절대적 크기에 의미를 지나치게 부여하는 것은 한미 FTA에 대한 적절한 대응방안을 수립하는 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KIEP의 이런 주장은 병 주고 약 주는 식의 무책임한 임기응변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한미 FTA 추진과 관련해 대국민 홍보자료로 적극 이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KIEP가 그런 계량분석의 결과라며 내놓은 숫자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KIEP 이전에 정부가 국민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한미 FTA 협상을 강행하면서 KIEP로 하여금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가 긍정적임을 보여줄 수 있는 자료들'을 급조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한미 FTA 협상을 개시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미국이 내건 4대 요구를 우리 정부가 국민들 몰래 들어준 것과 관련된 '4대 통상현안 논란' △정부가 충분한 준비도 없이 한미 FTA 추진에 나선 것과 관련된 '졸속 추진 논란', 그리고 △이번의 '자료조작 논란'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절대 그런 일 없다"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자세는 책임성 있는 설명으로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다.

대미 무역흑자 감소액 전망치가 73억 달러에서 47억 달러로 줄어든 이유는?

KIEP가 한미 FTA와 관련된 자료를 조작·은폐했다는 의혹은 지난 11일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게 'KIEP의 자료가 조작 및 은폐됐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자료'를 제시하시면 불거지기 시작했다.

권 의원은 시사월간지 <말>의 보도를 인용해 KIEP가 한미 FTA 분석 모형에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생산성 1% 증대'라는 새로운 가정을 추가하는 과정에서 대미 무역흑자 감소액 전망치가 51억 달러에서 73억 달러로 늘어나자 이를 은폐했다가 슬쩍 47억 달러로 바꿨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미국과 FTA 협상을 개시한다고 발표한 시점(2월 2일)을 전후해 KIEP가 발표한 한미 FTA 관련 연구보고서는 총 3개다. 하나는 지난 1월 18일 발표한 '한미 FTA의 필요성과 경제적 효과(1.18 보고서)'이고, 나머지 2개는 3월 3일 발표한 '한미 FTA의 의의와 기대효과(3.3 보고서)'와 이를 수정·보완해 3월 23일 발표한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 분석(3.23 보고서)'이다. 권영길 의원이 의혹을 제기한 보고서는 바로 3.3 보고서와 3.23 보고서다.

한편 이들 보고서와 관련이 있는 보고서가 2개 더 있다. 그 중 하나는 3월 2일께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미 FTA의 의의와 기대효과(3.2 보고서)'이며, 이는 3.3 보고서의 원본이다. 다른 하나는 권영길 의원이 김현종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에게 요청해 받은 4월 6일자 보고서 '한미 FTA 추진현황 및 향후계획(4.6 보고서)'이며, 이 보고서의 데이터들은 3.2 보고서에 나온 데이터들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밖에 자료 조작 및 은폐 의혹이 불거지자 KIEP가 다급히 작성한 해명성 자료인 4월 11일자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 해설(4.11 보고서)'과 4월 14일자 '한미 FTA 효과 분석자료의 은폐·조작 주장에 대한 해명(4.14 보고서)'이 있다.
▲ ⓒ프레시안

은폐 의혹: '3.3 보고서에 대미 무역수지 관련 데이터는 왜 누락?'

사건은 시사월간지 <말>이 3.3 자료에서 대미 무역수지 데이터가 빠진 데 대해 의문을 품으면서 시작됐다. 자유무역협정(FTA)을 분석하면서 무역수지 데이터를 빠뜨린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말>의 지적이었다.

이 잡지의 인터넷판이 지난 11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문제의 보고서들을 작성한 이홍식 KIEP 자유무역협정(FTA)팀 팀장은 4일 대미 무역흑자 감소액 전망치를 72억 달러에서 47억 달러로 바꾼 적이 없을 뿐 아니라 3.3 보고서에도 47억 달러라는 수치가 나와 있다고 우겼다.

하지만 <말>이 3.3 보고서의 원본인 3.2 보고서를 내보이자 이홍식 팀장은 그때서야 무역수지 관련 자료가 빠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당시 계산상 오류가 있었다. 환율 등 일부 수치가 잘못돼서 다시 계산해야 했다. 그래서 공개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KIEP는 4.14 보고서에서 "3월 3일 세미나 발표 시에 무역수지 부분을 포함하지 않은 이유는 쌀을 개방 대상에서 제외한 새로운 시나리오 아래서 무역수지를 추정하는 작업이 세미나 당일까지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3월 3일 세미나 발표 자료의 핵심 내용은 생산성 증대 효과를 반영한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 분석이었다"라고 공식 해명했다.

그러나 이런 해명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아직 완결되지도 않은 연구의 결과를 단지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유포됐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이 3.3 보고서에서 제시된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 7.75%와 후생효과 증가율 전망치 6.99% 등이 모두 허위 데이터였음이 나중에 드러났다.

조작 의혹: 3.2 보고서와 3.3보고서의 대미 무역수지 데이터, 왜 다른가?

<말>이 제기한 이런 은폐 의혹은 자료조작 의혹으로 번져나갔다. 권영길 의원은 지난 11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말>의 보도를 인용해 3.2 보고서와 3.3 보고서들의 데이터를 비교하며 GDP 증가율 7.75%, 후생증대 효과 6.99% 등이 모두 같은데 유독 대미 무역흑자 감소액 전망치만 73억 달러에서 47억 달러로 하향 수정된 것은 '조작'이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다음날인 12일 이경태 KIEP 원장이 PBS 라디오 방송과 KBS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대미 무역흑자 감소액 전망치가 73억 달러에서 47억 달러로 바뀐 사실을 인정하고, 이는 쌀 개방 여부와 관련한 가정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KIEP는 4.11 보고서와 4.14 보고서를 잇달아 내 이런 해명을 거듭 홍보했다.

이에 대해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지난 17일 발표한 '한미 FTA 수치 조작 의혹, 정부는 공개검증에 응하라'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KIEP는 지난해 12월부터 발표해 온,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와 관련된 모든 연구물에서 이미 작년 쌀 협상 결과와 쌀이 민감품목임을 고려해 쌀을 개방대상 품목에서 제외해 왔다"며 "정부가 발표한 한미 FTA 관련 경제분석은 단 한 번도 쌀 개방을 포함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말>도 19일 발간한 5월호에서 "문제의 보고서를 만든 당사자인 이홍식 KIEP FTA팀장이 <말>과의 인터뷰에서 내놓은 해명은 전혀 달랐다"며 "이홍식 팀장은 '쌀 개방'의 '쌀'자도 꺼낸 사실이 없다"고 보도했다.

이어 <말>은 "우리가 입수한 문제의 보고서 '원본(3.2 보고서)'에 따르면 이미 '쌀 개방을 제외한 농업 80% 개방'을 가정해서 대미 무역수지 변화폭 등을 계산한 것으로 적시되어 있다"며 "'쌀을 개방했을 때' 72억 달러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이 수치 자체가 쌀 개방 제외를 가정해서 계산된 것이라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데이터 조작, 아직은 의혹일 뿐

이번 논란과 관련해 '의혹'으로 그친 것은 무엇이고, '진실'로 밝혀진 것은 무엇인가?

아직까지 의혹인 채로 남아 있는 것은 KIEP가 대미 무역수지 흑자 감소액 전망치를 73억 달러에서 47억 달러로 고의로 조작했다는 것이다. <말>, 권영길 의원,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 등은 3.2 보고서와 3.3 보고서에서 이 두 수치 이외의 다른 수치들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며, 이는 KIEP의 분석모형인 '연산가능 일반균형(CGE) 모형'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듯 대미 무역수지 데이터를 제외한 모든 수치들이 다 그대로인 것만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프레시안>의 확인 결과 3.2 자료가 3.3 자료로 수정되는 과정에서 대미 무역흑자 감소액 전망치는 73억 달러에서 47억 달러로 줄어들어 '(한미 FTA의 긍정적 효과를 홍보하고 싶어하는) 정부를 기쁘게 한' 대신 고용증가 효과는 4.04%에서 3.30%로 낮아져 '정부를 난처하게' 했다.

사실 KIEP의 모든 보고서들에서 가정의 변화에 따라 고용 관련 데이터도 변화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즉 고용증가율 전망치가 '0.63%->4.04%(생산성 증가+쌀 시장 개방)->3.30%(생산성 증가+쌀 시장 개방 제외)'로 수정된 것이다.

따라서 KIEP가 아직 공개검증을 실시하지 않은 현재 시점에서 KIEP가 연구보고서 자료를 은폐, 조작했다는 혐의가 100% 다 진실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 ⓒ프레시안

"별 차이 없어서…또 수정하면 혼선 생길까봐…"라니

그러나 제기된 의혹에 대해 KIEP가 해명하는 과정에서 '고의로 허위 자료를 삽입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졌다.

KIEP는 4.14 보고서에서 'GDP 증가율 7.75%, 후생 변동폭 6.69%(쌀 시장 개방을 했을 경우)'와 '대미 무역흑자 감소분 47억 원(쌀 시장 개방하지 않았을 경우)'을 하나의 표 안에 나란히 열거하고는, 정확히 어떤 가정 아래서 이런 데이터가 산출됐는지에 대한 정보를 누락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KIEP가 내놓은 이런 해명의 핵심은 KIEP의 자료에서 조작된 것은 대미 무역흑자 수치가 아니라 GDP 증가율과 후생 변동폭 수치였다는 것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KIEP는 이번 자료 조작·은폐 의혹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에 대해 KIEP는 "3월 23일자 자료에서도 3월 3일 발표 자료와 같은 GDP 증가율 7.75%와 후생 변동폭 6.69%를 사용했는데, 이는 두 모형의 GDP 증가 효과를 연간 개념으로 환산했을 때 그 차이가 0.05~0.08%로 생산성 증가 효과 측면에서 크지 않고, 3월 3일자 자료에서 이미 발표된 GDP, 후생변동의 수치를 다시 수정할 경우 혼선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하여 해설자료에서는 이를 굳이 수정하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즉 GDP 증가율이 7.75%이든 7.21%이든 그런 효과가 나타나는 기간인 10년으로 나눠서 연간 수치를 계산하면 별로 차이가 없기에 거짓자료를 썼다는 이야기다. 이는 학문적 엄밀성을 추구해야 하는 학자로서는 결코 할 수 없는 발언이다. 게다가 '혼선을 막기 위해서였다'는 변명에서는 일반 국민을 무시하는 전문가 집단의 거만함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한 보고서 안에 상이한 가정 병존…한미 FTA '졸속'의 증거

한편 1.18 보고서와 3.2 보고서에서 드러난 것처럼 하나의 보고서 안에서 거시경제 효과를 분석하는 과정에서는 '쌀 시장을 개방한다'고 가정하고 농업 부문의 효과를 분석하는 과정에서는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는다'고 가정했다는 것은 한미 FTA를 강행하는 정부와 KIEP가 얼마나 조급하게 관련 보고서들을 작성했는지를 보여준다.

이에 대해 KIEP는 4.14 보고서에서 "한미 FTA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KIEP의 주된 역할은 GDP나 후생 등과 같은 경제 전체의 거시효과를 분석하고 서비스 부문에 대한 영향을 분석하는 것이었고, 개별 산업부문의 특성을 고려한 경제적 효과 분석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 각기 다른 기관에서 담당했다"며 "그러나 서로 다른 기관에서 수행된 연구의 결과를 KIEP가 취합해 발표하다 보니 거시적인 효과와 개별 산업의 효과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지적됐다"고 밝혔다.

물론 하나의 국책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다양한 연구기관들이 힘을 합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 한미 FTA처럼 국가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기관들 사이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문제는 여러 연구기관들이 일관된 연구방법과 연구가정 하에서 도출해낸 각자의 연구결과를 취합해 하나의 완결된 연구성과를 내야 한다는 공동연구의 기본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이들의 연구 결과가 우리 경제당국의 대외 경제정책 수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이런 기본원칙이 지켜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사실 한미 FTA 협상에 있어 가장 민감한 분야라고 할 수 있는 '쌀'이 하나의 보고서 안에서 각각 다른 가정 하에 분석돼 있다는 사실이 KIEP 연구원들에게도 께름칙하지 않았을 리 없다. 다만 정부가 하루라도 빨리 보고서를 내라고 재촉하는 상황에서 이런 가정들을 통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고, 바로 그 결과로 3.2 보고서와 3.3 보고서가 은폐 및 조작됐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성실한' KIEP 연구자들의 명예회복 위해서도 '공개검증' 필요

이쯤 되면 40명의 박사급 연구원과 80여 명의 연구원들로 구성된 국내 최고 수준의 국책 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어쩌다 이런 불명예스러운 일에 휘말리게 됐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여러 명의 KIEP 박사들과 함께 연구작업을 수행한 적이 있다는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 비서관은 <프레시안>에 "그들은 대부분 성실한 연구자들"이라고 강조하며 "문제는 외압"이라고 말했다. 정 전 비서관은 모든 논란을 불식하고 '성실한' 연구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방법은 간단하다고 주장했다. 보고서가 나온 경위에 대해 공개검증을 받으면 된다는 것이다.

KIEP는 '연구하느라 바쁜데' 그런 검증까지 해야 하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국책연구기관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학문을 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연구결과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임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경태 KIEP 원장은 27일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약속한 대로 공개검증을 할 것"이라며 "아직 그 날짜와 방법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최낙균 KIEP 부원장도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똑같이 말했었다. 10명의 박사와 7명의 연구원으로 이뤄졌다는 KIEP의 '한미 FTA 연구단'이 신속하고 자발적인 공개검증을 실시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정녕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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