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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산업은행 민영화...시장에 미안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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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명박의 산업은행 민영화...시장에 미안한 일" [밥&돈·19] 恨 맺힌 시장주의, 위험하다
'그들'이 '한 맺힌 시장주의'를 안고 귀환하려고 한다.

미아리 고개나 원한의 공동묘지라면 한이 맺혀도 상관없다. 그러나 '한(恨) 맺힌 시장주의'는 정말 곤란하다. 시장이란 원래 원한과 같은 인간적 감정의 틈입을 일체 용납하지 않는 개념이다. 시장에서는 수요자와 공급자(혹은 수요자-수요자, 공급자-공급자)가 어떤 감정이나 친분으로 인해 '일정한 거리(arm's length)'를 유지하지 못하면, 소복 원귀의 출현에 준하는 무서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바로 '가격체계의 왜곡'이다. 이런 사태를 점잖은 학술적 용어로 바꾼 것이 이른바 '연고 자본주의(crony capitalism)'이다.

그러나 '한 맺힌 시장주의'는 기필코 돌아오겠다고 한다. 한을 품은 자들은 지난 10년 동안 불쌍한 "시장이"가 "쇠사슬에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넘어가는 '환상'을 보고 또 보며 이를 갈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시장 수난곡'은 환상일 뿐이다. 지난 10년은 한국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급속하고 광범위하게 노동과 자본 이동의 유연성이 치솟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들'의 시장주의는 왜 환상인가. 그들의 발언을 직접 들어보면 된다.

한미친선단체 회장님의 '묻지마 시장주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반대 운동이 한창이었던 지난해 7월, '애국 우익'들은 한미 FTA 지지 대회를 열었다. '애국 우익' 인터넷 언론에 따르면, 그 집회에서는 의미심장한 발언이 나왔다. 한미친선단체 회장님이라는 분의 이야기다.

"내가 FTA에 찬성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 김정일과 친북세력들이 이를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가 한미 FTA에 찬성하는 이유는 '자유무역에 따른 국부증대'도 아니고, '대미수출에서 중국이나 일본보다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가 보기에 '친북좌익'인 세력들이 한미 FTA를 반대하기 때문이다. 한미 FTA를 추진하는 주체가, 그들이 '반미좌파'라고 일컫는 노무현 정권이라는 사실을 그는 자신의 세계관 속에서 어떻게 소화했을까. 반미투쟁을 선동해서 한미관계를 더 소원하게 만들기 위해서?

정치적 적들이 반대하기 때문에 한미 FTA에 찬성한다는 그의 세계관엔 '묻지마 시장주의'라는 명칭을 붙일 수 있겠다. 이 '묻지마 시장주의'는 사회적 증오에 기반을 둔 것이며, 그래서인지 몹시 소박하다.

그러나 회장님은 단지 솔직했을 뿐이다. '묻지마 시장주의' 정서는 회장님보다 훨씬 세련된 논리를 펴는 분들께도 통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문화일보> 이신우 논설위원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신우 논설위원의 '공상적 시장주의'

이신우 논설위원은 지난 10월 31일자 <문화일보> 칼럼에서 금산분리 철폐를 비판한 국책연구기관들의 보고서들을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몰아붙였다. 또 이들 보고서가 금산분리가 철저히 관철되고 있는 미국을 사례로 인용한 것에 빗대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국책연구기관들은) 가까운 예로 미국에는 기업이 은행을 소유하는 예가 없다고 말한다. 맞다. 하지만 미국에도 우리의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처럼 정부가 소유하는 은행들이 있는가."

왜 하필 미국의 수출입은행(The Export-Import Bank of the United States)을 예로 드셨는지 모르겠지만, 이신우 논설위원은 완벽하게 틀렸다. 미국 수출입은행은 연차보고서에서 자사를 '수출 신용을 제공하는 공공기관(official export-credit agency)'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입은행은 민간 금융기관이 떠안을 수 없거나 꺼리는, 고(高)리스크의 수출 금융을 제공하는 기관으로 어느 나라나 이와 비슷한 제도를 가지고 있다.

이신우 논설위원은 "개발경제 시대에는 국책은행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시대적 사명은 끝난 지 오래"라고 주장하지만, 이자는 물론 원금까지 떼일 위험이 큰 수출이나 중소기업, 대북 개발 등에 사용되는 자금을 누가 빌려줄 것인가? 혹시 이신우 논설위원께서 직접?

시장은 감당할 수 없지만 사회적으로는 너무나 필요한 이 같은 대출을 감당하는 것이 정책금융이고, 정책금융을 수행하는 기관이 바로 국책은행이다. 미국만 해도 수출입은행 뿐 아니라 연방정부 산하의 중소기업청(SBA)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과 보증 등 사실상의 은행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심지어 주정부가 중소기업에 직접 대출금을 주거나 민간 금융기관에 대한 보증을 통해 간접적으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지역재투자법(CRA)을 통해 민간 은행이 금융 소외층에게도 대출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으며, 이는 심지어 연준(FRB)의 감독에서 은행평가의 가장 중요한 항목 중 하나로 채택되어 있기까지 하다.

다른 서구 선진국들의 사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프랑스에도 정부가 54.5%의 지분을 보유한 중소기업개발은행(BDPME)과 같은 국책은행이 존재한다. 독일 연방정부와 주정부가 100% 소유하고 있는 부흥은행(KFW)은 2007년 상반기 현재 대출 규모가 455억 유로에 달한다. 이런 사례는 끝이 없다. 선진국에서도 "국책은행의 시대적 사명"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또한 이신우 논설위원이 사실상 옹호하고 있는 금산분리 철폐는 시장주의라기보다 반(反)시장주의에 가깝다. 다시 말하지만, 시장은 경제주체들 간의 '일정한 거리(arm's length)'를 요구하는 시스템이다. 은행은 대출을 희망하는 기업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해서, 어느 정도 규모의 돈을 어떤 가격(이자)으로 빌려주면 미래의 시장 상황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 은행은 감시자, 기업은 피감시자로 '일정한 거리'가 유지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벌의 은행 소유처럼 은행과 기업이 한 덩어리로 묶이는 상황은, 적어도 시장주의의 시각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 금산분리가 철폐되면 은행이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포기하고 연고에 따라 대출하고 그 가격(이자)도 낮게 설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금융시장에서의 가격 메커니즘이 왜곡되는 상황이다. 이런 의미에서 금산분리 철폐는 반시장주의적인 주장이다.

더욱이 금산분리에 대한 이신우 위원의 논리를 그대로 공기업 민영화에 적용하면, 공기업은 민영화할 필요가 없다. 공기업 민영화의 근거로 자주 제기되는 논리는, 공기업을 감시하는 정부가 공기업 노사와 담합해서 자신들(즉, 정부와 공기업 노사)의 이익만 추구하기 때문에 민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정부가 감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민영화를 통해 감시자 노릇을 제대로 할 주인을 찾아줘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금산분리 철폐의 논리대로 감시자(은행)와 피감시자(기업)가 동일한 이해관계로 묶여도 상관없다고 주장한다면, 정부(감시자)와 공기업(피감시자)은 왜 굳이 떼어 놓아야만 하는가.

지금까지 봤듯이 시장주의자인 이신우 논설위원은 반시장적인 주장을 거침없이 펼치고 있다. 또한 그는 시장이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가가 제공하는 금융 서비스, 즉 정책금융에 대해 "시대적 사명이 끝난 지 오래"라고 매우 용감하게 말하신다. 이런 시장주의가 관철되면 사회만 배겨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도 병이 든다. 이 논설위원은 미래창조당의 문국현 대선 후보를 "공상 사회주의"(2007년 9월 17일자 "문국현의 '공상 사회주의")라고 명명한 바 있다. 그러나 필자는 오히려 이 논설위원에게 "공상 시장주의"라는 별칭을 돌려 드리고 싶다.

이명박의 포퓰리즘적 시장주의

이신우 논설위원이 자신의 칼럼에서 언급한 금산분리 완화를 이번 대선에서 공약으로 내건 주인공은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다.

최근 이명박 후보는 또 하나의 시장주의 의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국책은행을 민영화하고 그 매각대금으로 조성될 20조~30조 원을 중소기업 지원 자금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같은 당의 김형오 일류국가비전위원장은 "(공기업 가운데) 시장이 할 수 있는 것은 시장에 맡기고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기반 시설은 정부가 운영하도록 하는 게 기본 방침"이라며 "국민 세금을 축내는 공기업은 마땅히 정리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매력적인 주장이다. 요즘 한국에서 가장 미움을 받는 집단은 아마 공기업과 은행일 것이다. 그리고 공기업에 은행을 더하면 '국책은행'이 된다. 그러므로 국책은행 민영화는 분명히 정치적으로 남는 장사다. 더욱이 공기업 민영화라는 대단히 시장주의적인 의제에 중소기업 지원이라는 포퓰리즘적인 꼬리까지 붙었다.

그러나 이 계획, 정말 실천 가능한가? 필자는 확신할 수 없다. 이명박 캠프가 내놓은 산업은행 민영화 공약은 지난 9월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국책은행 재정립 방안'을 사실상 그대로 옮겼다. 차이가 있다면, 민영화 시기를 집권 직후로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경부 방안엔 중소기업 금융 전담기관인 기업은행의 민영화 방안도 포함돼 있다. 2008년 이후 중소기업은행법을 폐지해서 사실상 기업은행을 민간 상업은행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대출은 대단히 리스크가 크지만 대출 1건당 거래규모는 매우 작다. 민간은행, 즉 시장으로서는 위험한데다 수익을 내기도 힘들기 때문에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든 부문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지금까지 국가는 '원리금 상환을 보증하는 중소기업금융채권'과 '손실금 보전'(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은행의 올 상반기 수익은 2665억 원에 이른다)이라는 장치를 통해 기업은행의 중소기업 금융을 지원해온 것이다. 이 덕분에 기업은행은 '공장기계의 주담보 취득'이나 '시설자금 15년까지 지원' 등의 파격적인 서비스를 중소기업에 제공할 수 있었다. 이런 채널이 없다면, 정책 자금이 아무리 많아도 이를 중소기업에 지원하기는 어렵다. 자칫, 문자 그대로 의미의 선심성 '퍼주기' 금융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재경부의 국책은행 재정립 방안을 이명박 캠프가 모를 리 없다. (몰랐다면 더 큰 문제다) 적어도 중소기업 지원 방안을 언급했다면, 국책은행 재정립 방안의 다른 한 축인 기업은행 민영화에 대한 입장까지 밝혀야 했다. 국책은행 매각대금인 20조~30조 원에 대해, 어떤 중소기업이든 신청만 하면 대출해주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대출 여부를 심사하고, 대출 이후엔 관리하고, 만기 이후엔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하는 경제주체가 필요하고, 그중에서 가장 비중 있는 기관이 기업은행이다.

이 같은 기업은행에 대한 명확한 방침 없이 국책은행 민영화와 그 매각대금을 통한 중소기업 지원 방안을 약속하는 이명박 후보의 행위엔 포퓰리즘의 냄새가 너무도 짙다.

'한 맺힌 시장주의'의 실천은 재앙

사실 시장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앞서 인용한 김형오 위원장의 생각과 거의 동일하다. "시장이 할 수 있는 것은 시장에 맡기고 국민 생활에 필수적인 기반시설은 정부가 운영하도록 하"면 된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의 국정 기조가 '좌파'적이었다는, 황당한 이데올로기는 이후 10년을 '시장주의 아닌 시장주의'로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염려스럽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기조의 반대로 가는 것이 시장주의라거나, 재벌에 은행까지 가져다 바치는 것이 시장주의라거나, 공기업을 무조건 민영화하는 것이 시장주의라고 생각하면 정말 곤란하다.

예컨대, "국민세금을 축내는 공기업"으로 매각 대상 물망에 오른 산업은행의 올 상반기 수익은 무려 8341억 원에 이른다. 더욱이 수익을 내지 못하거나 그 수익 규모가 크지 않다고 해서 "국민세금을 축내는 공기업"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민간 은행들이라면 돈을 빌려주지 않을 만큼 리스크가 큰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에 대출보증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용보증기금 같은 기관이 만약 수천 억 원대의 이익을 낸다면 그것이야말로 지탄받아 마땅할 것이다.

시장은 '절대 진리'가 아니라, 국민경제의 필요에 따라 적절한 곳에서 적절한 형태로 작동시키면 되는 제도이다. 예컨대, 법률 관련 노동시장의 경우 사법시험이나 로스쿨 같은 '규제 장치'로 노동력 공급을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상황에서는 노동력 공급이 수요에 비해 크게 부족해 그 가격도 서민들에겐 지나칠 정도로 높게 결정되고 있다. 시장주의자들은 강력한 이익단체에 구애되지 말고, 이런 부문에서 시장이 제대로 작동돼야 한다고 외쳐야 한다. 시장이 사회적 수요에 걸맞은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할 수 없거나 공급하기 힘든 영역에까지 시장을 갖다 대며 윽박지르는 것은, 당신들이 사랑하는 시장에 너무나 미안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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