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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두리반에 전기가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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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두리반에 전기가 끊겼다 [기고] 두리반을 벼랑으로 내모는 야만적인 단전
한겨울 추위 속에 시작된 두리반 농성이 7개월째를 맞으면서 한여름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작할 때는 추위에 떨고 이제는 더위에 맞서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겨울보다는 차라리 여름이 낫다 할 이도 있겠지만, 그건 폭염을 피해 피서를 가거나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놓고 지내는 사람들의 한가한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생존권을 걸고 농성을 하다 보면 겉으로는 아무런 충돌이 없어도 끊임없이 긴장해야 하고 사소한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우기 마련이다. 그런 상태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개월씩 이어지다 보면 사람의 진이 빠지고 피가 말라가는 것이다. 거기에 밀폐된 공간에서 한여름 더위와도 맞서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면 이중삼중의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두리반에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지금껏 별 문제 없이 써 오던 전기가 끊어진 것이다. 재개발 시행사인 남전디앤씨가 두리반 측이 전기를 훔쳐 쓰고 있다며 한전에 고발을 했고, 한전은 잠시 고민하는 척하더니 오늘(7월 21일) 결국 전기를 끊어버렸다. 지난 7개월 동안 아무 일이 없다가 왜 이제 와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사연은 이렇다. 작년 12월 24일에 강제로 두리반의 집기를 들어내고 출입구를 철판으로 막을 때 남전디앤씨 측에서 두리반으로 들어가는 전기선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두리반은 강제철거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곧바로 철문을 뜯고 들어가 농성을 시작했고,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 그쪽의 전기를 끌어와서 사용했다.

전기 공급을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은 오로지 한전에게만 있다. 그러나 남전디앤씨 측은 한전에 신고도 하지 않고 전신주에 올라가 전기선을 끊었다. 명백히 불법을 저지른 것이다. 그래 놓고 며칠이 지난 12월 28일에야 한전에 전기 공급 해지 신청을 했다. 그러자 한전은 신고만 받고 현장에 나와 보지도 않은 채 사건을 종료했다. 이 대목에서 한전 역시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 한전 관계자가 일간지에 쓴 '임대기간 종료 단전요청 시 전기사용 당사자 확인 후 처리'라는 제목의 글에는 "전기는 생활에 가장 필수적인 기초 에너지로서 사람이 살거나 영업행위를 하는 한 계속 공급되어야 하는 특성이 있다"며 다음과 같이 절차를 설명하고 있다.

"경매나 임대기간 종료 등의 이유로 임차인이 사용 중인 건물의 단전을 요청하는 경우, 한전은 단전요청을 전기사용계약의 해지신청으로 받아들여 단전 요청자가 전기사용 당사자인지의 여부를 파악한 후 약관에 따라 처리하고 있다. 그러나 임차인이 한전에 전기요금 보증조치를 하고 전기를 사용하는 경우라면 단전을 하기 전에 임차인의 동의가 필요하며, 또한 이전(舊) 소유자의 동의를 얻어 사용자 명의로 전기 사용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도 단전이 성립될 수 없다."(2004년 12월 21일, 강원일보)

위 글에 따르면 한전은 당연히 현장에 나와서 임차인이 거주하고 있는지를 살폈어야 하며, 임차인의 동의를 구한 다음 단전을 했어야 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면 당연히 남전디앤씨 측이 불법으로 끊어 놓은 전기선을 원상복구해 놓는 게 먼저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남전디앤씨 측이 공문을 보내 두리반이 도전(盜電)을 하고 있으며, 이를 막지 않을 경우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엄포에 눌려 두리반의 전기를 끊어버린 한전의 태도는 비겁하다. 아마도 남전디앤씨 뒤에 있는 GS건설의 힘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씁쓸하고 화가 나지만 대한민국을 움직여 가는 힘의 역학관계를 명백히 보여주는 사례인 셈이다.

2005년 7월에 여중생이 화재로 인해 숨진 일이 있었다. 전기료를 못 내 전기가 끊기는 바람에 촛불을 켜놓고 생활하다 참변을 당한 사건이다. 그 사건을 계기로 '에너지 기본권'이라는 개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현대인에게 있어 전기는 물과 공기나 마찬가지로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기본요소다. 그래서 아무리 죄를 지은 사람이 들어가 사는 교도소에도 전기는 넣어주며, 포로수용소에도 전기는 들어온다. 두리반이 교도소나 포로수용소보다 못한 곳이란 말인가!

두리반에 전기가 끊어졌으니 이제 냉장고에 있는 음식은 한여름 더위에 악취를 풍기며 썩어갈 것이고,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돌릴 수 없어 비지땀을 흘리며 열대야를 견뎌야 한다. 전구 대신 촛불로 어둠을 밝혀야 하고, 앰프를 사용하지 못해 자립음악가들의 공연도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기를 끊어서 두리반의 투쟁을 멈추게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오산이다. 왜냐하면 생존권을 걸고 하는 싸움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하는 싸움인 만큼 전기 때문에 물러설 정도로 한가로울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두리반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자전거를 돌려 전기를 얻는 친환경발전기를 구하러 다니고, 건전지를 이용해서 밝히는 전기촛불을 시민들에게 후원받기 위한 계획을 실천하고 있다. 다음에 개설한 '작은용산 두리반' 카페에 들어가면, 전기촛불을 구입해서 두리반으로 보내주면 두리반 건물을 전기촛불로 뒤덮겠다며 도움을 요청하는 글이 떠 있다.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투기자본 앞에 힘없이 무릎 꿇고 물러설 수는 없기에 그렇게 투쟁은 이어지고 또 이어질 것이다.

전기를 끊는 것만으로 안 된다면 다음에는 수도를 끊을 것인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작자들이다. 자본에게는 피와 눈물이 없다는 사실을 그렇게나 증명해 보이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시라. 다만 그렇게 되면 생수통을 들고 두리반으로 몰려드는 이웃들의 발길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생생하게 목격하게 될 것이다. 자본의 폭력과 야만이 결코 인간들의 의지와 연대의 마음을 이기지 못할 거라는 단순한 진리 앞에 결국 당신들이 먼저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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