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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 쓰나미' 속 현대차 비정규직 싸움은 '진행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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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 쓰나미' 속 현대차 비정규직 싸움은 '진행형'

[현장] 인권·법률단체, 진상조사 착수

#1. 현대자동차 울산3공장 차체조립 공정에서 10년간 일해 온 김석현(가명·36)는 지난달 말 '45일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지난해 말 1공장 점거 파업에 참여하고 이후에도 부분 파업을 지속적으로 일으켜 무단결근이 많았다는 이유다. 김 씨는 "이번 달은 지난달 월급으로 그럭저럭 버텼지만 이제는 복직 때까지 생계걱정을 해야 한다"며 "항상 날 격려하던 아내는 최근 계약직 일자리를 얻어 맞벌이에 나섰다"고 했다. 부모에게 정상 출근하는 것처럼 안부 전화를 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단다.

#2.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정기석(가명·31) 씨는 지난해 1차 파업에 참가했다가 감봉 3개월을 받았다. 올해 2차 파업에도 참여한 정 씨는 "노조에서 탈퇴하면 징계를 무마해주겠다"는 사측의 회유를 거절했다 해고됐다. 그는 "야간작업을 끝내고 돌아오는데, 관리자가 오전 7시에 불러서 그동안 수고했다며 해고 봉투를 건넸다"며 "나는 일반 조합원으로 집행부 지침에 따랐을 뿐인데, 감봉 3개월 다음에 정직 등 다른 징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해고한 건 너무하다"고 억울해했다.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최근 두 차례의 파업을 일으킨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사측의 유례없는 '징계 쓰나미'에 시달리고 있다. 공장별로 파업을 주도한 비정규직 노조 간부 수십 명이 해고되고 수백 명이 크고 작은 징계를 받는 과정에서 원청회사인 현대자동차가 개입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현대차 사내하청 업체들은 지난달 노사 대화가 중단되자 점거파업에 따른 징계를 단행했다. 당시 1공장 CTS공정 점거 파업에 참가했던 조합원부터 부분 파업을 전개했던 이들까지 빠짐없이 포함됐다. 울산공장에서만 해고당한 이만 46명이고 감봉과 정직 등을 포함하면 500여 명을 넘는다. 일주일 정직 등의 가벼운 징계를 받은 이도 있지만 한 달 이상 정직 등 중징계를 당한 이들은 당장 생계가 걱정이다.

아산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한 때 1400명을 넘기던 울산지회에 비해 아산지회 조합원은 300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징계를 받은 이만 200여 명에 가깝다. 아산에 이어 울산공장에서도 2차 징계가 시작되면서 진상조사가 시작된 31일 울산지회 비상대책위원회 간부 한 명이 '정직'에 '해고'를 추가로 얹었다.

이날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량 징계를 조사하기 위해 법률·노동·인권단체 활동가들이 나섰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과 인권단체연석회의 소속 변호사와 노무사들이 현대차 울산·아산공장을 찾아 진상조사에 착수한 것.
▲ 충남 아산 온양온천역 앞에 설치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아산지회 천막. ⓒ프레시안(김윤나영)

"하청업체, 다른 조합원들 탈퇴서 들고 오면 복직시키겠다고 해"

표면적으로는 정규직화 전환 논의를 포함해 징계·손해배상 문제를 논의하던 노사 협의가 무위로 끝나면서 미뤄왔던 징계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징계의 목적이 노조 와해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 조합원들의 공통된 판단이다. 이날 울산과 아산 공장 인근에서 진행된 면담에서 조합원들은 하청업체 측이 파업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각서에 서명하면 징계 수위를 낮춰주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울산2공장에서 10년간 사내하청으로 일하다 해고 통보를 받은 한 조합원은 "하청업체 소장이 불러 다른 조합원들에게 노조 탈퇴서를 받아 오면 복직시켜주겠다는 말을 들었다"며 "다른 사업부에서는 중징계를 당한 사업부 대표를 구하러 조합원들이 다 같이 각서에 서명해 징계 수위를 낮춰준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다른 조합원도 "원청인 현대차와 사내하청 사장들이 회식을 하는데 사측이 징계를 많이 한 사장들에겐 잘해주고 아닌 사장은 소외됐더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돈다"며 "원청의 눈치를 보면서 징계를 남발하는 통해 같은 파업에도 업체마다 들쑥날쑥한 징계를 내리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촌극'은 아산공장에서도 반복됐다. 3개월 감봉 처분을 받은 한 조합원은 "똑같은 날 똑같이 집회했는데 어떤 업체는 정직 3개월을 때리고, 우리는 참여자 전원을 해고했다"며 "해고자는 본보기라고 생각한다. 적당한 숫자가 찰 때까지 해고자를 만들었다가, 나머지는 경징계를 주고 회유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합원과 비조합원 사이의 차별도 노골적으로 나타났다. 아산지회 조합원 중 한 명은 "몸이 아파서 월차를 썼는데, 공교롭게도 그 날이 파업하는 날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무단결근'으로 징계를 받은 그는 "반장이 월차를 승인해줬는데 뒤늦게 윗선에서 안 된다고 했단다. 웃긴 건 비조합원들이 그날 월차를 승인 받았다는 것"이라며 허탈해했다. 울산지회 한 조합원도 "조합원들끼리 회식을 하면 하청업체에서 다음날 소속 비조합원만 모아 따로 회식을 한다"며 "조합원들에겐 회식 사실조차도 알리지 않는다"고 조소했다.

7년간 사내하청으로 일해 온 울산지회 대의원은 사측의 노조 탈퇴 회유와 조합원 차별의 의도가 "집단 소송 인원수를 줄여보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말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이 집단으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는데 노조를 탈퇴하면 변호인단의 변호 대상에서 제외된다. 사실상 혼자서 변호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노조 탈퇴는 곧 소송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지회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도 "가족까지 동원한 사측의 회유에 넘어가 노조를 빠져나가는 이들도 있지만 남아있는 상당수 조합원들은 소송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며 "사측이 노조 탈퇴하면 처우가 개선될 것처럼 말하는 걸 믿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 아산공장에서 정직당한 사내하청 노동자가 받은 사측의 편지(왼쪽)와 파업에 가담하지 말 것을 경고하는 사측 문자 메시지를 보고 있는 울산공장 조합원(오른쪽). ⓒ프레시안(김윤나영, 김봉규)

"이미 우리의 싸움은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대규모 징계로 비정규직 지회의 투쟁 동력이 대폭 떨어진 건 사실이다. 울산공장 하청업체들이 징계를 시작하자 현대차 측은 다음날부터 정직·해고된 조합원의 공장 출입을 가로막고 나섰다. 비대위 관계자는 "징계위원회가 열리기 전부터 징계자 명단이 나돌았고 징계가 시작되자마자 공장 출입구 면회실에 징계자 사진이 걸렸다"며 "사측 관리자들도 사진이 들어있는 앨범을 들고 일일이 출입을 통제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징계 기간이 끝나 공장 안에 들어간 노동자들도 위축된 분위기에 싸여있긴 마찬가지다. 파업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각서에 서명한 노동자가 상당수에다 사측의 감시가 삼엄해 점심시간을 이용한 선전전도 이뤄지기 쉽지 않다. 한 해고 노동자는 "정문에서부터 차량에 유인물을 싣지 않았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공장 라인에 작은 벽보라도 붙여놓으면 곧 관리자들이 철거한다"고 어려움을 전했다. 쉬는 시간에 동료들끼리 모이는 것도 여의치 않는 탓에 정확한 징계 인원 추산조차 어려운 상태다.

지난 7일에는 공장 출입증이 갱신됐는데도 정직당한 노동자들에게는 배포하지 않아 조합원들이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한 조합원은 "하청업체 측에서 원청 지시에 따라 미리 만들어놓은 새 출입증을 선별적으로 나눠준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아산공장에서는 파란색이던 출입증이 정규직은 빨간색, 비정규직은 오렌지색으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울산 지회 집행부 선거를 위해 구성된 선관위원 중 징계당한 노동자들은 출입이 봉쇄당해 정상적인 선거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 측은 지회가 투쟁을 중단하고 선거 체제로 전환해도 해고자 출신 선관위원의 공장 내 출입은 불허한다는 입장이다. 공장 내 위치한 지회 사무실도 지난달 사무처장을 사측 관리자들이 강제로 퇴거시킨 이후 방치되고 있는 상태다. 지회는 이에 반발해 지난 15일 사측을 부당노동행위로 고발했다.

ⓒ프레시안(김봉규)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하청업체들의 노조 탄압 배후에 사측이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이날 면담에서 몇몇 조합원들은 "하청업체가 '복직하고 싶으면 (원청) 반장을 찾아가 무릎꿇고 싹싹 빌라고 하더라"라며 사실상 하청업체들이 원청의 눈치를 보면서 징계에 나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는 사측 관리자로부터 직접 노조 탈퇴 압력을 받았다고 했다.

해고·정직에 따라 빈 라인을 채우는 대체인력도 문제다. 아산공장의 경우 대체인력 대부분이 실업계 고등학교 실습생과 외국인 노동자로 채워지면서 숙련도가 부족해 차량 불량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사측은 대체인력 고용 비용을 손해배상 형태로 조합원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남아 있는 조합원들은 불법 파견 투쟁의 정당성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45일 정직 처분을 받은 울산공장 조합원(34)은 "2차 징계를 받는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다"며 "이미 우리들의 싸움이 널리 알려져 있어서 정당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지쳐서 떨어져 나가길 바라는 사측의 노림수에 말려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아산공장의 한 해고 조합원도 "대체인력 비용까지 손해배상 대상이 되나"라며 "말도 안되는 이유들로 해고되고 두들겨 맞았는데 그만둘 수 없다. 끝까지 가겠다"고 했다.

진상조사단 관계자는 "면담한 대다수 조합원들이 불법파견 판결을 들면서 원청을 상대로 한 파업에 하청업체가 나서 징계를 하는 게 이상하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조사단은 이날 면담 결과 다음달 중순 발표할 예정이다. 진상조사단은 현대차 공장과 하청업체 측에도 방문 조사를 신청했지만 조사 권한이 없고 형평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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