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4일자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관계자는 "서해의 공해상에서 '항해의 자유'가 완벽히 보장되는 것이 우리의 안보 이익에 가장 부합된다"며, "북한 급변 사태가 벌어지면 서해에 가장 많이 드나들 배는 미국의 군함"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는 "유사시 일본 이지스함의 서해 배치를 문제 삼지 않기로 한 것은 한반도 급변 사태 때 중국의 서해 통제 시도를 무력화시키고 한·미 군함의 서해 활동 기회를 최대한 확보하려는 전략적 판단이 담겨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 일각에서 서해에 일본 이지스함이 진출하는 것에 대해 사실상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데에는 위험천만하고 비현실적인 '흡수통일' 야망이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북한 급변사태 발생→한미 연합군 투입→흡수통일 달성'이라는 MB의 종북(終北) 로드맵을 두고 미국에서는 '일본 역할론'을 강조한 바 있고, MB 정부는 한일 군사협력 추진 및 일본 이지스함 서해 진출 용인으로 화답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MB 정부 관계자가 "군사비밀보호협정과 군수지원협정 등 한일 군사협정을 현 정부 임기 내에 마무리할 방침"이라며 "야당의 반대 때문에 숨 고르기를 하고 있을 뿐, 조만간 협정에 서명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당초 MB 정부는 지난달 김관진 국방부 장관을 일본에 보내 군사비밀호협정과 군수지원협정 서명을 마무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야권과 국민들의 반발에 부딪쳐 보류키로 한 바 있다.
그런데 논리적으로 한일 군사협정 체결과 일본 이지스함의 서해 배치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조선일보>를 통해 "일본은 우리보다 두 배 많은 이지스함을 보유하고 있다"며 "이들이 서해에서 얻는 대북 정보는 우리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민주평통 아시아 자문위원 초청 다과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
MB와 미일동맹의 동상이몽
주목할 것은 MB 정부와 미일동맹 간의 동상이몽이다. MB 정부 역시 '중국 견제론'을 품고 있지만, 한미 전략동맹과 한일 군사협력을 추진해온 데에는 흡수통일에 대한 강한 집착이 똬리를 틀고 있다. 이에 반해 미국과 일본은 MB의 흡수통일론을 활용해 사실상의 한-미-일 삼각동맹 구축을 통해 중국 견제 및 봉쇄에 나서고자 한다.
한-미-일 삼각동맹은 미일 전략가들의 오랜 숙원이었다. 그러나 역사와 독도 문제 등으로 이는 순탄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일동맹은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이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라고 말했던 이명박 정부의 등장을 더 없이 좋은 기회로 여겼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 문서를 보면, 미일 수뇌부는 MB 정부의 등장을 한일 군사협력 강화를 통한 한-미-일 군사 네트워크 구축의 기회로 간주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MB의 임기 첫해인 2008년부터 한국에게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 참여 및 한-미-일 안보 대화 창설을 적극 요구했고, MB 정부는 이를 수용했다. 급기야는 한국이 오키나와(沖繩)나 괌으로 향하는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데 기여하는 방안까지 밀실에서 논의해왔다.
미일동맹이 원하는 것은 MD를 고리로 한 한-미-일 삼각동맹이다. 셋이 같이 하면 비용도 적게 들고 정치적으로 부담도 덜하며 작전상의 장점도 많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전형적인 미일동맹의 이기적 논리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본격적으로 MD에 가담할 경우 수십조원대의 예산 낭비와 북-중-러와의 관계 악화, 그리고 동북아 유사시 한국이 타격 대상이 되는 현실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논란 중인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전략적 위험성도 바로 여기에 있다는 점은 이미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전략적 위험 떠넘기는 이제 그만!
만약 북한에서 내전과 같은 중대한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한미 연합군 투입을 고려한다는 '개념계획 5029'는 MB 정부 들어 사실상 작전계획이 되었다. 그런데 이럴 경우 가장 큰 변수는 중국의 군사적 개입 여부가 된다. MB 정부가 일본과 군사협정 체결을 추진하고 일본 이지스함의 서해 배치가 "우리 안보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는 생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추출된다. 일본이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주면 미군 함정의 서해 유출입이 훨씬 자유로워져 북한 급변 사태에 대한 군사적 대응이 수월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대단히 위험천만한 생각이다. 우선 북한 내에서 큰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서 외부에서 무력을 투입하는 것은 국제법적으로 허용되기 어려운 발상이다. 또한 미국과 일본이 실제로 북한 급변 사태가 발생했다고 해서, 한국의 무력 흡수통일을 지원하기 위해 군사력을 투입할 지도 미지수이다. 군사력 투입은 북한과는 물론이고 중국과도 전쟁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혹독한 대가를 치른 미국은 대규모의 지상군 투입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한 지 이미 오래다. 지난 3월에 실시된 한미합동군사훈련(키 리졸브)에서 북한 급변사태 발생시 10만 명의 한국군을 투입하는 안정화 훈련을 사상 최초로 실시한 것도 결국 '피흘릴 일은 한국군이 맡아라'라는 미국의 속내를 잘 보여준다.
결국 MB 정부의 허망한 흡수통일론은 미국과 일본에게 이용만 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일동맹은 이미 양안 문제와 센카쿠(尖閣) 열도(다오위다오) 분쟁을 미일동맹의 적용 대상에 포함시켰다. 미일 양국이 북한 위협을 구실로 제해권을 서해에까지 뻗치려는 데에는 바로 이러한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MB 정부가 허망한 흡수통일에 집착하면서 대한민국이 치르고 있는 대가는 너무나도 혹독하다. 남북관계는 회복이 가능할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파탄 상태에 있다. 20세기 일본 군국주의와 냉전의 가장 큰 피해자인 한국이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동북아의 신냉전을 부채질하는 듯한 언행을 보이고 있는 것도 크나큰 문제이다.
이제 MB 정부는 더 이상 미래 세대에게 전략적 위험을 떠넘기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 마련된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를 무시해 서해를 갈등의 바다로 변질시킨 것도 모자라, 일본 이지스함의 배치까지 용인해 서해를 남북한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각축을 벌이는 상황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 한일 군사협정 체결 움직임도 즉각 중단하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도 전략적 관점에서 득실관계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이것이 MB 정부가 차기 정부와 미래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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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엮어 만든 책 <핵의 세계사>가 발간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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