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유명한 술 '수정방'의 경영권이 조니워커를 생산하는 영국의 주류업체인 디아지오에 넘어갔다고 한다. 자국의 문화에 대한 자존심이 강하기로 이름난 중국이 수정방을 외국에 매각했다는 것은 뜻밖의 일이다. '술 문화'에 대해서도 중국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중국의 큰 주류 제조장에 가보면 어김없이 모택동을 비롯한 중국 지도자들의 휘호가 걸려있다. 더욱 좋은 술을 만들라는 격려의 글이거나 해당 술과 관련된 역대 시인들의 시를 모필(毛筆)로 써서 남긴 것이다. 이렇게 중국은 술 산업을 국가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또한 중국에서는 술의 나쁜 점 보다는 좋은 점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 대통령이 양조업체에 가서 휘호를 남겼다는 말을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이것이 중국술과 우리 술의 질적 차이를 낳게 한 원인의 하나이다.
중국 술 경영권을 영국에 넘기다니?
지난 해 말에는 중국을 대표하는 술 모태주(茅台酒)의 생산지인 귀주성 모태진 당국이 술맛을 지키기 위해서 주민 1만 6000명을 다른 곳에 이주시키기로 했다고 한다. 술 공장 주변의 인구가 너무 많아 물 부족과 토양 오염 등으로 모태주의 생산과 품질 유지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중국이 수정방을 영국 회사에 팔아버렸으니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다. 매각의 이유는 경영난 때문이라 하지만 경제대국 중국이 이 정도의 경영난을 해결할 수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이유가 더욱 궁금해진다.
수정방의 모기업은 사천성 성도(成都)의 수정가(水井街)에 있는 전흥집단(全興集團)인데 이 그룹은 전흥대곡(全興大曲)이라는 우수한 술을 생산해 왔다. 전흥대곡은 중국평주회(中國評酒會)에서 1963년, 1984년, 1989년 세 차례나 중국명주로 선정된 농향형(濃香型) 백주이다. 나도 이 술을 좋아해서 중국여행 때 눈에 띠면 한 병씩 사오곤 했다. 이 회사가 1998년 8월, 양조장 개량공사를 하다가 우연히 지하 1m에서 거의 완벽하게 남아있는 옛 명청(明淸) 시대의 주조시설을 발견했다. 전흥그룹은 이것을 '진시황 병마용에 비견할 수 있는 고고학적 발굴' '무자사서(無字史書)' 즉 글자 없는 역사책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생산하던 전흥대곡의 생산을 중단하고 2000년부터 수정방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신흥 귀족', 값만 비싸더니!
여기에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첫째는 주교(酒窖)인데, 교(窖)는 중국술을 저장하는 토기(土器)로 위스키를 저장하는 오크통에 해당된다. 이 교는 오래된 것일수록, 연속적으로 사용되는 것일수록 좋다. 백주는 교 속에 기생하는 수천 종의 미생물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순화되고 중국술 특유의 향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교 속에 술이 없으면 미생물이 죽어버리기 때문에 연속사용이 중요한 것이다. 수정방은 600여 년부터 연속적으로 사용되어온 교에서 생산된 것임을 강조한다. 이것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교가 새로 발굴된 여러 교의 근처에 있는 것으로 입증된다. 그렇다면 명청 시대로부터 연속 사용된 교의 생산물은 수정방이 아니라 전흥대곡의 몫으로 돌려야 마땅하다. 그런데 오랜 전통을 가진 전흥대곡을 폐기하고 수정방이란 이름으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둘째는, 고가전략(高價戰略)이다. 수정방은 지나치게 화려한 포장을 하고 높은 가격으로 출시되었다. 500ml 한 병에 우리 돈으로 15만 원쯤 되니 대단히 비싼 값이다. 그러나 비싼 그만큼 품질이 좋은 것은 아니다. 값비싼 물건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수정방을 선호하지만 중국에서는 사정이 다른 모양이다. 출시된 지 10년 남짓한 '신흥 귀족'인데다가 맛도 전흥대곡 보다 크게 나을 것이 없고 값도 터무니없이 비싼 수정방이 중국인들에게 외면당한 것이다. 지난해 시장 점유율이 5%에도 미치지 못한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결국 역사가 10년 밖에 안 되고 높은 가격으로 중국인들에게 외면당하는 수정방을 외국 회사에 넘겨도 중국의 자존심에 손상이 가지 않겠다고 판단한 것이 아닐까. 만일 모태주나 노주노교특곡(瀘州老窖特曲) 같은 술이라면 절대 외국에 팔지 않았을 것이다. 디아지오가 경영하는 수정방의 앞날을 지켜볼 일이다.
* 다산연구소()가 발행하는 <다산포럼> 7월 5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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