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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송창식, 그리고 자연과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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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송창식, 그리고 자연과 님 [다산 칼럼]<3>
"언제부터 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을까 / 언제부터 내가 이 빗속에 서 있었을까" 언제나 길동무 되자던 소녀가 꿈을 찾아 떠나자,님을 그리며 송창식이 노래한 <비와 나>의 가사이다. <비의 나그네>에서는 님이 오시고 가시는 발자국 소리를 밤비 내리는 소리와 일치시켜 나간다. 그렇기에 "내려라 밤비야/내 님 오시게 내려라/주룩 주룩 끝없이 내려라."라고 기원한다. "창밖에는 비 오고요 바람 불고요"같은 노래도 있다. 비를 님과 일치시키며 터져나오는 우수를 줄기차게 노래해 온 그는 단연코 비의 음유가객이다.

비가 오면 나는 습관적으로 비 노래를 들으며 솟아오르는 열정적 우수에 빠져든다. 그런 상태에서는 책도 잘 읽히고 차도 더 맛있다. 글쓰기도 마른 날보다 빗물처럼 광포함과 잔잔함을 오가며 잘 풀려나간다.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라디오에서도 비만 오면 비 노래가 세상을 적셔나간다.

감성의 물꼬를 트던 비 오는 날의 감흥이

그런데 요즘 100년만의 호우, 물 폭탄이라는 말까지 나오자 비 노래를 즐기는 것조차 죄책감을 느낀 탓일까? 한 디제이는 폭우사태 속에 비 노래를 트는 걸 이해해 달라는 말도 덧붙인다. 비가 오건 안 오건 송창식의 비 노래는 숨 막히는 현실 속에서도 내 감성의 물꼬를 트게 해줬고,소녀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의 노래는 여전히 내 인생길의 동무이다.

송창식만 비를 노래한 것은 아니다. <비처럼 음악처럼>은 김현식의 대표곡이자 그의 삶을 그린 영화제목이기도 하다.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로 시작되는 이 노래도 떠난 님을 떠올리며 내리는 비와 흐르는 눈물로 아픈 이별을 추억하게 한다. 채은옥의 <빗물>에서도 비는 잊지 못할 님을 떠올리게 만드는 촉매제이다. 하여 비가 내리면 "어디에선가 나를 부르며 (떠나간 님이) 다가와 줄 것만 같다"고 노래했으리라. 천재 뮤지션 신중현의 <봄비>에서도 비는 마음을 울리며 달래주는, 외로운 인간 존재의 님과 같은 존재이다. 여러 가수가 이 노래를 불렀지만 특히 소울 흥취에 젖어들게 하는 박인수판이 더욱 마음을 뒤흔든다.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언제까지 나리려나/마음 마저 울려주네" 라며 그윽하게 울부짖는다.

어디 봄비만 그런가? 어떤 계절이건 지구 어느 구석에서건 비는 외로운 마음을 흔들고 적시며 달래준다. 질곡의 역사에 시달려 온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이탈리아의 작은 섬에 유배 당해,우체부와 나누는 시적 소통을 그린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 우체부에게 메타포를 설명하다가 문득 묻는다. "하늘이 흘리는 눈물은 무얼 말할까?" 메타포란 말 자체를 처음 접한 우체부는 답한다. "그건 비죠." 그렇다. 그건 메타포란 비유법이기도 하지만 실은 자연의 법칙 자체이기도 하다. 비는 하늘의 눈물이자 곧 우리의 눈물을 끌어내는 마중물이 되어, 우리가 자연의 순환 속으로 돌아가는 자연 생명의 일부임을 알려준다

자연을 훼손한 댓가가 쓰나미로 다가와

이번 폭우에도 그런 메시지가 담겨있다. 이번 폭우사태가 인재인지 아닌지 공방을 벌이고 있지만,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자연을 몸살 나게 하는 개발이 돈벌이에 중독되어 물꼬를 막고, 물길을 돌리고 있다는 것을. 물의 숨통인 바다를 괴롭히며 자연지배적 환상을 경제적 부와 일치시키려는 인간의 오만을. 그러다가 정도를 넘어서면 그동안 침묵하며 견디던 자연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며 우리에게 무서운 경고를 한다는 것을.

재난영화가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환경재앙을 재난의 핵심으로 삼아 인류가 당하는 시련을 드라마의 정점으로 삼는다. 경제개발로 북극 빙하가 녹아 물세상이 되자 마실 물과 흙을 찾아나서는 처참한 생존기가 담긴 <워터 월드>.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해류 흐름이 바뀌면서 빙하기가 다시 올 징조를 감지한 기후학자의 경고를 무시하는 정치인들과,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이상기후 재앙을 다룬 <투모로우>. 호우로 침수된 도시의 비극과 액션을 결합 시킨 <하드 레인>. 그리고 쓰나미를 당하는 사람들의 시련을 소재로 만들어서,본격적인 한국 재난영화로 주목을 받은 <해운대> 등은 허구만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예언하는 것만 같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선 에코를 머리에 단 채 경제적 수익을 목표로 하는 개발책이 난무하고 있다. 이번 폭우로 피해를 당하자,자연을 함부로 훼손한 댓가임을 반성하는 이야기도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자연존중의 삶과 정책이 개인과 집단에서 전폭적으로 실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처럼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기는 것을 천하에 모르는 자가 없지만, 진실로 실행하는 자는 없다.(弱之勝强, 柔之勝剛, 天下莫不知, 莫能行)"는 오래 된 노자의 탄식은 물을 우습게 보는 인간의 폐부를 찌른다. "나를 물로 보냐?"는 표현처럼 물을 가볍게 여기는 인간 문명은 물에 대한 인식부터 바꾸어야 한다. 하늘이 내리는 물인, 비야말로 농경시대가 아니어도 우리를 먹이고 울려주고 위로하는 생명의 기원이자 님이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소자연인 인간이 대자연인 우주 속에 사는 존재임을, 자연의 자녀인 가객들이 비 노래 메타포로 줄기차게 들려주고 있는 것이리라.

* 다산연구소가 발행하는 다산 포럼() 2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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