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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반도체, 삼성만 문제? 애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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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반도체, 삼성만 문제? 애플은? [황유미, 그리고 6년 ④] 첨단 산업의 그늘, '직업성 암'
"(삼성전자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반도체 회사에서 폼 나고 고급스럽게 일할 줄 알았어요. 최첨단 산업, 글로벌 기업, 클린 산업인 줄 알았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는 (1970-1980년대) '공순이'와 다를 바 없었더라고요." (故 황민웅 씨의 아내 정애정)

'삼성 백혈병' 사건으로 알려진 산재 문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전 세계 전자 산업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이 병들어가는 문제는, '첨단 산업'이라는 화려한 이름 뒤에 묻히곤 했다. '첨단 산업의 그늘'은 시간이 흘러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을 거쳐 한국, 대만, 중국 등 아시아로 넘어왔다.


그러나 한국의 법은 기술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고, 선진국에 대책이 들어섰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이 죽은 뒤였다. '삼성 백혈병' 사건이 현재 진행형인 이유다. <편집자>

[황유미, 그리고 6년]
① "죽어가는 딸에게 삼성은 백지 사표를 요구했다"

② '글로벌' 삼성, 6년의 피눈물 닦아줄까
③ 이건희와 맞선 택시기사 실화, 상영될 수 있을까
<추모제> 삼성 본관 앞 12개 영정…"얼마나 더 죽어야 하나"

반도체 산업의 위험성이 처음 알려진 곳은 미국과 유럽이었다. 대표적인 곳이 '청정 산업' 단지로 알려졌던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였다. 1970년대 실리콘밸리에 반도체 단지가 들어서고 이후 노동자들이 병에 걸렸다고 호소하기 전까지, 반도체 기업이 쓰는 화학 물질은 '기업 비밀'로 여겨졌다.

반도체 노동자가 암에 걸렸다는 제보는 이따금 있었지만 이내 묻혔다. 1985년에는 캘리포니아 산 호세(실리콘밸리)에 있는 반도체 기업 IBM의 연구 시설에서 일하는 화학자가 같이 일하던 연구원 12명 가운데 9명이 암에 걸렸다고 IBM 본사에 제보했다. 뇌종양 3명, 림프계암 2명, 위장관계암 2명, 골격계암 2명이었다.

▲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 테드 스미스 외 지음, 공유정옥 외 옮김 ⓒ메이데이
이즈음 반도체 제조에 벤젠, 클로로포름, 디클로로메탄 등 발암 물질이 사용되며, 반도체 노동자 중 상당 비율을 차지하는 여성 노동자들의 자연유산율이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알려졌다. 생산직 노동자도 고통을 호소했다. 스코틀랜드 그리녹에 있던 미국계 기업인 '내셔널반도체'에서 일했던 한 영국 노동자는 1994년 이렇게 회고했다.

"(반도체 공장은) 완전히 도살장입니다. 1970년대 중반에는 정말이지 노골적인 살인이었어요. 어린 소녀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알아챌 수 없었고, 그럴 만한 기회조차 없었지요. 납품 기한을 앞두고 있을 때는 화학 경보를 일부러 꺼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면 소녀들은 온 사방에서 구토를 하곤 했지요. (…) 우리도 화학 증기를 맞곤 했습니다. 일시적으로 목과 얼굴에 마비가 오지요. (…) 그 작업장에서 22년을 일했지만, 단 한 번도 화학적 노출에 대한 검사를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그것들 때문에 쓰러질 때까지 말입니다."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 테드 스미스 외 지음, 공유정옥 외 옮김, 메이데이 펴냄, 266쪽)

시간이 지날수록 공장은 현대화됐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암에 걸리기 전까지 자신이 어떤 물질을 다루는지 전혀 모른 채 일했다고 진술했다. '첨단 산업'으로 알려졌던 반도체 산업의 그늘이었다.

1970년대 실리콘밸리 첫 세대는 지금…

실리콘밸리에서 일했던 두 늙은 노동자가 세계적인 반도체 제조업체였던 IBM을 상대로 소송을 건 때는 그로부터 한참 뒤인 2003년이었다.

IBM에서 27년간 일한 제임스 무어(사망 당시 63세)와 14년간 일한 앨리다 에르난데즈(유방암 진단 당시 73세)는 1995년과 1993년에 각각 비호지킨 림프종과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IBM 공장에서 반도체를 만들었으며, 회사가 위험한 화학 물질을 다룬다는 사실을 알려줬다면 회사를 그만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퇴사자들이 자신의 병을 직업병이라고 확신한 때는 2000년대 이후였던 것으로 보인다. 보스턴 대학의 예방의학자 클랩 박사가 1961-2001년까지 IBM 노동자 3만2000여 명의 사망 원인을 분석한 결과, 암에 걸린 반도체 노동자의 수가 일반인보다 남성은 6.9%, 여성은 14.6% 많았다고 발표했다. IBM 산 호세 공장에서 일하다 암에 걸렸다고 시민단체에 제보한 노동자는 50여 명이었으며, 선천성 장애아를 낳았다는 노동자도 50여 명이었다.

그러나 배심원단은 2004년 소송에서 IBM의 손을 들어줬고, 실리콘밸리의 '첫 세대'였던 제임스 무어는 숨을 거뒀다. 같은 해 IBM은 수익성이 줄어든 PC 사업 전체를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아시아에서 되풀이된 비극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선진국에서 잘나갔던 반도체 등 전자 산업은 조금씩 한국, 대만 등 아시아 국가로 전파돼 갔다. 유럽은 자국 공장 내 안전 기준을 상향했고 신식 라인을 들였으며, 구식 기술과 구식 장비들을 신규 산업화 국가로 수출했다. 초국적 기업들이 위험을 하나둘 외부로 전가하면서 선진국 내 '직업병' 논란은 조금씩 사그라졌다.

비극은 되풀이됐다. 미국에서 제임스 무어가 희귀병 판정을 받은 지 10년 뒤인 2005년, 삼성전자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1년 8개월간 일했던 황유미 씨가 21세에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황 씨는 구식 라인인 기흥공장 3라인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화학 약품에 손으로 담갔다 빼는 작업, 일명 '퐁당퐁당' 작업을 했다. 황 씨는 2007년 3월 숨을 거뒀다.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아시아 국가도 사정은 비슷했다. 1990-1991년 태국 테파룩에서 하드디스크를 만들던 노동자 4명이 숨졌고, 200여 명이 납 중독 진단을 받았다. 1993년 람푼 지역에서도 노동자들이 동시에 비슷한 증세를 보이며 연이어 사망했다. 그러나 기업들은 재산권 보호를 이유로 태국 정부가 인정한 조사를 거부했다. (☞ 관련 기사 : "청정산업? IT 산재는 '보이지 않는 살인자'", "IBM부터 폭스콘·삼성까지…'죽음의 행진'을 멈춰라")

텔레비전, 비디오 등 가전제품을 생산하는 초국적 기업 RCA는 대만에 공장을 세워 위험을 전가했다. 1990년대 RCA의 타오위안 공장에서 전직 노동자 216명이 암으로 숨졌고 1059명이 암에 걸렸다. RCA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은 생리 불순, 조기 폐경, 유산, 난소암 등에 시달렸다.

애플의 아이폰·아이패드를 하청 생산하는 대만 기업인 폭스콘의 중국 공장에서는 2009-2010년 사이에 젊은 노동자 18명이 연쇄 자살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폭스콘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며 유독한 화학 물질에 노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은 "IT산업이 먼저 성행했던 미국이나 영국에서 1980년대에 환경 오염과 에너지 고갈, 직업병 피해 노동자들이 발생한 이후, 아시아로 넘어온 설비들이 같은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미국 애플사(社)의 제품을 하청 생산하는 폭스콘의 중국 공장. ⓒ로이터=뉴시스

빠르게 변하는 전자 산업, 뒤떨어진 직업병 인정 기준

2011년 법원에서 산재를 인정받은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도 '삼성 백혈병' 문제가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화학 약품을 쓰는 전자 산업, 첨단 산업 전체의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노동부 노동통계사무국이 2001년 조사한 자료를 보면, 유해 물질 사용으로 발생하는 노동 손실이 제조업 전체에서는 2.4%인데 반해 전자 산업은 6.2%, 반도체 산업은 8.5%에 이른다. 전자 산업과 반도체 산업에서 발암 물질, 발암 의심 물질, 생식계·신경계·면역계 독성 물질들이 상대적으로 광범위하게 쓰이는 탓이다.

전자 산업에 종사했다가 병에 걸린 노동자들은 많았지만, 이들의 질병이 직업병으로 공식 인정된 사례는 많지 않다. 그 원인에 대해 이종란 노무사는 '삼성 백혈병 사건을 통해 본 산재보험법 개정의 필요성'이라는 글을 통해 "첨단 전자 자본들의 속도 경쟁은 수많은 첨단 전자 제품들을 불과 몇 달 만에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첨단 산업에 쓰이는 화학 물질과 공정이 바뀌는 속도가 직업병 인정 기준이 바뀌는 속도보다 더 빠르다는 것이다.

암 등 직업병은 수년에서 십여 년의 잠복기를 거쳐 발병한다. 이 노무사는 "노동자들이 직업성 암에 걸려 산재를 인정받으려고 하면, 과거의 작업 환경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며 "반도체 산업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유해 물질과 방사선 등이 사용되지만, 현재의 노출 양상으로 과거를 추정하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근로복지공단은 이미 바뀌어버린 '현재'의 작업 환경을 측정해 '과거'에도 발암 물질이 없었을 것으로 추정해서 황유미 씨의 산재를 불승인했다. 삼성전자는 '협력사의 영업 기밀'이라는 이유로 취급 물질을 공개하지 않았다.

"산재 인정 기준 완화하고, 입증 책임 전환해야"

'삼성 백혈병' 사건을 계기로 산재 입증 책임을 노동자에서 근로복지공단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됐다. 노동자는 업무 수행 과정에서 유해 물질을 취급하거나 이에 노출된 경력이 있음을 증명하고, 근로복지공단은 해당 질병과 업무 사이에 인과 관계가 없음을 증명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2011년 11월 민주당 이미경 의원을 비롯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 46명은 이러한 내용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을 냈지만, 이 법안은 환노위 법안심사소위에서 검토조차 되지 않았다. (☞ 관련 기사 : "산재 입증, 노동자가 아니라 근로복지공단이 책임져야", 폐암 진단, 길고 긴 소송, 얻어낸 건 장례비)

ⓒ프레시안(최형락)

대신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4일 '산재보험법·근로기준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직업성 암의 인정 기준이 되는 발암 물질을 9개에서 23개로 늘렸다. 직업성 암의 인정 기준이 바뀐 것은 한국에 1963년 산재보험법이 도입된 뒤 50년 만에 처음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2월 27일 논평을 내고 "2011년 노동부가 발암 물질 목록을 59종에서 184종으로 확대했음에도 개정안에는 23종만 반영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산재 인정 기준을 더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열거된 발암 물질을 사용했을 경우 산재를 신속하게 인정할 수는 있어도, 기준에 없다는 이유로 직업성 암이 아니라고 판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첨단 산업에 쓰이는 수많은 화학 물질 가운데 위험성이 증명된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한 탓이다. 1997년 환경보호기금이 100만 파운드 이상 생산되는 규제 대상 화학 물질 100가지를 조사한 결과, 발암 물질 검사 자체를 받지 않은 물질은 63%, 신경 독성에 대한 자료가 없는 물질이 67%, 면역 독성에 대한 자료가 없는 물질이 86%에 달했다.

재해 조사 기준도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황상기 씨는 "역학조사를 할 때 피해자와, 피해자가 인정하는 전문가의 참여를 보장하고, 기업이 영업 기밀을 근거로 자료 제출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씨는 "역학조사 날짜도 미리 통보할 것이 아니라, 조사가 불시에 이뤄지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안석 '건강한 노동 세상' 사무국장은 "지출 기관인 근로복지공단과 독립된 직업병 심사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에서는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이 통합돼 있어 산재 신청을 할 필요가 없거나, 그 절차가 간단한 경우가 많다. 박두용 한성대 기계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유럽은 암에 걸리면 치료비를 국가가 지원해주고 치료받는 동안 소득 손실에 대해 상병수당(통상 평균 임금의 80%)까지 주기 때문에 산재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심하지 않다"며 "우리는 산재 보상 여부가 0 아니면 100이라는 점이 문제"라고 말했다.

"안전 관리 기준과 기업 책임 강화하도록 산안법 보완해야"

노동자에 대한 보상과는 별개로, 사업주가 작업장 안전 기준을 강화하도록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도 꾸준히 제기됐다. 임준 가천의과학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사업주 처벌을 산재 청구 수와 연동하다 보니, 사업주는 산재를 예방하기보다는 은폐하려고 한다"며 "산재 보상과 재해 조사를 별도로 운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그는 "사업주가 쓰지 말아야 할 물질들을 열거해서는 빠르게 변하는 산업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며 "신공정, 신물질에 대해서는 안전성이 입증되기 전까지 그 물질을 위험하다고 간주하는 '사전 예방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산안법 개정안에는 원청을 포함한 기업의 책임 강화 방안도 포함돼 있다. 영국은 2008년부터 '기업살인법(Corporate Killing Law)'을 시행해 원청을 포함한 법 위반 기업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법을 위반한 기업은 연간 매출액 중 2.5~10% 범위에서 벌금을 내야 하며, 법을 심각하게 위반하면 벌금의 상한선이 없다. 한국에서도 산업안전보건법은 기업이 안전 조치를 위반하면 기업주에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으나,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경우는 미미한 실정이다.

박두용 교수는 한국의 안전 관리 기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상향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럽에서는 ① 회사가 화학 물질 등 위험 요소 목록을 작성하고, 영업 기밀 여부와는 무관하게 이를 노동자에게 알려야 하며 그 결과를 반드시 문서로 남겨야 한다. ② 사고가 났다면 해당 기업은 평소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안전 관리를 했다는 증거를 제출하고 ③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조치를 다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④ 또한 사고 처리 결과를 노동자와 지역 주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박 교수는 "이 모든 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유럽에서는 큰 처벌을 받는다"며 "다만 위험성이 알려지지 않은 경우에만 해당 기업은 형사 처벌을 면책받는다"고 설명했다.

* 참고 문헌

<삼성 백혈병 사건을 통해 본 산재보험법 개정의 필요성>, 이종란
<세계 전자산업의 노동권과 환경정의>, 테드 스미스 외 지음, 공유정옥 외 옮김, 메이데이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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