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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협상 이외의 평화 대안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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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북미협상 이외의 평화 대안 시급 전문가 심층 진단<4ㆍ끝>
2월 20일 한미 정상회담이 끝나면서 지난 번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axis of evil) 발언 이후의 긴장된 국면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있다. 한미 정상이 대화와 협상에 의한 북한 문제 해결에 합의했고, 부시 대통령이 직접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밝힘으로써 자칫 한반도가 '제2의 아프간'이 되지 않느냐는 우려가 거의 가셨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번 정상회담은 특히 대북정책과 관련해서 엄청난 부담이 주어진 시점에 열려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 터였다. 이에 비추어 볼 때 일단 이번 정상회담은 작년 3월의 워싱턴 정상회담 이후 오히려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모두 극도로 경색된 데 비하면 주목할 만한 성과요, 상황의 반전을 낳았다고 평가된다.

***문제는 지금부터**

그런데, 상황은 이제까지의 성과에 만족하고 있을 만큼 한가롭지 못하다. 부시 대통령은 대북 대화를 얘기하면서도 동시에 북한 정권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여전히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의 이같은 대북 인식은 뿌리깊은 것으로 북한의 가시적 변화가 나오기 전까지는 변화하기 힘들며, 이 점에서 언제나 돌출적 비난 발언이 나올 수 있다. 현재의 구조적 상황으로 보아 앞으로도 대부분 '말의 공격'(verbal attack)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험구(險句)가 교환되는 가운데 진실한 대화와 결실 있는 문제 해결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북한은 2월 22일 부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비난과 함께 대화를 거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고 지도자'와 체제를 비난하는 상대방과 얘기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이는 그들 특유의 자존심에 기초한 당연한 반응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이와 더불어 역시 상황을 좁게 해석함으로써 문제 해결의 또다른 호기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또 북한의 평양방송은 최고위급 대화를 비롯한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적극 강조함으로써 남북대화의 재개 가능성도 시사하고 있다. 북한의 반응도 반응이거니와, 우리의 입장에서도 남북대화와 북미대화에 관한 전략적 틀을 긴급히 모색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결국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북미대화 문제와 아울러 남북대화의 재개 가능성은 곧 남북한과 미국이 또다른 '전략 게임'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미국의 부시 정부는 과거 클린턴 정부와 달리 북한에 대해 군사적 수단을 포기할 것을 절대적인 협상 목표로 내세우고 있으며, 이 점에서 군중시 체제의 유지가 체제 생존의 관건이라고 보는 북한과의 입장 충돌이 불가피하다.

한국은 나름대로 유연한 접근을 유지하고 있지만, 안보ㆍ군사 문제에 관한 북한의 입장이 계속 유지될 경우에 포용정책의 성과에 대한 논란이 계속될 것이며, 이는 그만큼 대북정책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북미관계, 냉각기 거친 뒤 대화 재개 가능**

앞에서 언급한 대로 부시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북한은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지난 번 '악의 축' 발언에 대해서도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근래 미국 대통령이 직접 정책연설을 통해 우리나라에 이처럼 노골적 침략위협을 가한 적은 없다"면서 "사실상 우리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정세를 전쟁접경에로 몰아가고 있는 미국의 움직임에 대해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고 "타격의 선택권은 미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고 강변했다.

북한이 강경한 반응을 보이고 군사적 조치를 언급하는 등 나름대로 대응태세를 갖추려는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북한이 실제로 대결하려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스스로 먼저 군사 조치를 선택하기에는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현재의 군사력 구도를 고려할 때 초강대국인 미국을 대상으로 한 군사 도발은 그 자체가 '자멸'의 시작이고, 미국의 공격 개시나 뚜렷한 공격 징후가 없는 상황에서 선제공격을 하기 힘들며, 군사력 배치를 고려해도 미군에 대항한 공격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한계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미국 역시 부시 대통령 본인이나 여러 당국자들이 여러 차례 확인한 바와 같이 당장의 대북 군사조치를 구상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미국이 테러 사태 이후의 강경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 군사적 수단을 활용한 대북 압박을 감행하기가 곤란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핵이나 미사일, 화생무기 모두 아프간 공격 때와 달리 대북 공격에 대한 명분이 부족하고, 한반도의 민감한 군사정세 속에서 무리없이 대규모 군사력 결집이나 기습공격을 하기 힘들며, 대북 포용정책을 펴고 있는 한국 정부와의 협력 문제와 함께 중국 등 주변국의 반발 가능성 등이 감안돼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과 북한 모두 조기에 상황을 최악으로 끌고 가지는 않으면서 당분간 '말다툼'을 통해 기세를 제압하는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초강경의 기조가 다소 완화되고 보다 온건한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미루어 향후 일정한 냉각기를 거찬 뒤 북미간 회담 재개는 가능할 전망이다.

현재 "북한에 공이 넘어 갔다"고 되어 있는 상황에서 한․미가 지속적으로 북미 및 남북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할 경우 북한으로서도 마지못해 회담에 응하는 형식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그러나, 향후의 북미회담이 클린턴 당시와 같은 고위급 회담으로 바로 가기는 힘들 것이며, 뉴욕 실무접촉이나 더욱 포괄적인 실무회담 등을 통해 의제에서 가닥을 잡은 뒤에야 고위급 회담으로의 격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안보 현안의 조기 해결 가능성은 희박**

그러나, 실제로 북미협상이 열린다고 해도 그 타결 전망은 밝지 못하다. 미국은 계속해서 대량살상무기 및 테러와 관련한 압박을 강화할 것이며, 대량살상무기의 개발 중단과 함께 중동의 테러지원국에 대한 미사일 판매 중단 등을 계속해서 북한에게 요구할 것이다.

아마도 향후 협상이 재개될 경우 미국은 북한의 반응을 보아가면서 북한의 테러조직과의 연계성을 차단하고 미사일 문제의 조기 해결을 촉구할 것이며, 이어서 특별 핵사찰, 화생무기 폐기, 재래식 군사력 후방 배치 등 대북 요구 내지 압박의 수위를 단계적으로 올릴 전망이다.

북한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곤란할 것이 분명하다. 북한으로서 현재의 대미 갈등 구도 속에서 미사일 개발ㆍ수출 체제를 포기할 경우 곧 안보 부담이 가중되는 것으로 인식할 것이다. 또 그들은 미사일 프로그램 해체가 화생무기, 재래식 군사력 등으로 확산될 경우 그들의 군중시 체제 전반의 와해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우려하면서 이를 극력 거부할 것이다. 이 점에서 현재 그들이 취하고 있는 선군정치나 선군혁명 영도, 군사강국 등 구호들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따라서, 당분간 북미회담이 열리고 부문별로 진전이 있더라도 전면적인 관계개선은 곤란할 것이다. 북미 협상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으며, 설령 테러 문제에서 진전이 있더라도 양국의 인식과 입장에 근본적인 차이가 존재하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미국의 대테러전쟁과 MD 등 다른 의제와도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부시 정부는 작년의 대북정책 재검토 과정에서 일부 의제에서의 진전 대신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진전이 있어야 대북 경제제재 해제나 외교관계 격상 등 관계개선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수립한 바 있어 문제 해결이 더 쉽지 않다.

이처럼 대북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미국이 쓸 수 있는 강압적 수단은 전면적 군사 압박과는 다른 형태가 되지 않을까 한다. 지난 1994년 북한의 핵위기 당시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통한 국제 제재를 추진한 바 있는데, 그 당시는 외교적 압박과 경제적 제재, 군사적 조치 등 순차적인 압박 수단이 거론된 바 있다. 이번에는 사실상 유엔 안보리 결의 등을 얻기는 힘든 상황에서 미국이나 동맹국을 동원한 외교 및 경제 제재, 그리고 제한적인 군사 조치 등이 있을 수 있다.

***북미협상 이외의 평화 대안 시급**

한반도 평화의 유지는 무엇보다 남북한이 함께 풀어나가야 할 절대절명의 과업이다. 평화가 깨지고 안정이 심각하게 흔들릴 경우 당장 경제 등 사회 전반의 메카니즘이 훼손되기 시작하고 국가신인도가 하락할 것은 명약관화하다.

한국이 그동안 사실상의 '평화 상태'에서 이룩한 경제발전의 성과가 결정적으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이 발발할 경우의 엄청난 인적ㆍ물적 손실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이며, 지난 1994년에 미국 정부는 개전시 초기에 수십만명의 군인과 1백만명이 넘는 민간인 손실이 있을 것으로 추산한 적도 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 위협을 해소하고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도로서 북미관계 개선은 50여년 전의 6.25전쟁을 종식하고 한반도에서의 적대관계를 청산한다는 차원에서 매우 큰 의미가 있다. 또 이는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수반될 북한의 대외 태도 변화를 통해 북한 체제가 장차 평화지향적으로 재편될 계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과업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북미관계 개선은 양국의 상대방에 대한 정책뿐 아니라 특히 북한으로서 국내적 변화를 동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한반도 평화와 안보에 대한 기존의 접근법이 바뀌어야 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결국 향후 문제를 푸는 열쇠는 북한의 '인식의 전환'에 있다고 본다. 사실 최근의 사태와 그동안의 북미 갈등은 북한이 한반도 평화 문제를 미국과만 해결해야 한다는 고집 때문에 비롯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만약 남북간에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이 이루어졌으면 여러 안보 현안에 대해 미국이 북한을 몰아부치기 곤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으로서는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방안이 대량살상무기 문제 등과 달리 북한 체제를 유지시키면서 나름대로 서서히 새 환경에 적응하는 방법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주지되듯이 교류협력이 제 궤도에 오르려면 평화ㆍ안보 문제의 진전은 필수적이다. 아직도 남북 화해를 가져올 획기적 계기의 하나로서 경의선 연결공사와 이를 완결짓기 위한 국방장관회담 개최, 그리고 더 나아가 남북 군사회담의 개최는 절실히 필요한 과제이다.

***안보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틀 마련돼야**

부시 대통령이 정상회담 이후 회견에서 한국 정부의 포용정책에 대한 지지를 밝혔지만, 앞으로도 북한을 포용하고 협상을 통해 타협해 나가면서 평화ㆍ안보의 진전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미회담의 타결과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이정표'(road-map)의 마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정표' 방식은 적대 쌍방이 상호 관심사를 충족시키면서 관계를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는 유용한 방법으로 이미 입증된 것이다. 현안 해결의 수단과 목표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협상 재개는 자칫 무의미하며 예고된 결렬 앞에 무모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현재 1990년대말에 마련된 '페리 프로세스'가 거의 실종된 상황에 있는데, 이를 보완하고 현실화하려는 새로운 정책적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같은 입장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될 경우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보다 현실적인 프로그램이 진행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남북한간에는 군사회담을 열어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진전시키면서 장차 남북한이 직접 한반도에서의 군사관리를 담당하는 체제로의 변화를 모색해 나가면 된다. 또한 북미간에는 한반도에서의 적대 관계가 점차 약화되고 그에 따라 주한미군이나 북미평화협정에 대한 요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량살상무기 등 안보 현안에 대한 현실적이면서 상호 유용한 방책을 마련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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