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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어찌할꼬! 더 많이들 죽어나가게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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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어찌할꼬! 더 많이들 죽어나가게 생겼네...” 김재명의 '뉴욕통신' <5> 이라크에 밀린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의 평화주의자들은 소수파다. 대중은 그들을 ‘반역자’라고 외면한다. 중동 현지 취재길에 만났던 한 이스라엘 지식인은 “샤론에게 정책이란 게 있는가 하고 물어보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질문”이라 말했다. 탱크와 미사일로 밀어붙이는 것은 정책이 될 수 없다는 시각에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존권을 인정하고 67년 6일 전쟁으로 점령한 팔레스타인 땅에서 물러나 공존(共存)을 모색하는 것만이 중동 땅에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란 신념을 지닌 소수의 평화주의자들은 그러나 1.28 이스라엘 총선에서 다시 한번 좌절의 한숨을 토해내야 했다.

***보수 우경화로 가는 이스라엘 사회**

"아이고, 이 일을 어찌할꼬! 더 많이들 죽어나가게 생겼네...”

필자가 뉴욕에서 사귄 팔레스타인 친구가 헤브론에 있는 가족들에게 안부 전화를 하면서 나눈 대화다. 부시 미 대통령의 국정연설에 세계인의 눈길이 쏠려 있던 날(1월 28일) 지구촌 한구석 팔레스타인에서는 이런 한숨들이 터져 나왔다. 이스라엘 총선 결과, 강경 극우 정치인의 화신(化身)이라 할 아리엘 샤론 총리의 정치적 입지는 훨씬 더 강화됐다. 샤론은 “리쿠드당의 역사적 승리”란 거창한 의미를 달았다. 그런 재신임을 바탕으로 샤론은 자신의 전매상표인 밀어붙이기 강공책을 거리낌 없이 실천할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 선거는 비례대표제다. 유효득표율 1.5% 이상의 득표를 한 정당이 득표율에 따라 전체 120석 의석을 나눠 갖는다. 이스라엘은 군소정당들이 난립한 다당제다. 이번 선거에 모두 27개 정당이 뛰어들었다. 1,5%의 고지를 넘지 못한 14개 정당에 던져진 8만5천표는 사표(死票)처리됐고, 13개 정당이 의석을 나눠가졌다. 샤론이 이끄는 극우 이스라엘 정당 리쿠드당은 이번 선거에서 약 3백만명의 투표자 가운데 87만표를 얻어 37석을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샤론은 샤스 당(11석)을 비롯한 극우정당, 종교(유대교)정당 들과 연합해 우파 정권을 끌어갈 것이다.

우파의 약진과는 대조적으로 팔레스타인 쪽과의 평화협상을 주장해왔던 이스라엘 비둘기파들은 참패했다. 제1야당인 노동당은 약 43만표를 얻는 데 그쳐 의석 숫자도 19석으로 쪼그라들었다. 이스라엘 현지 언론들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뒤 노동당이 겪은 최악의 참패“라는 표현을 썼다.

온건좌파인 노동당의 참패도 참패려니와, 노동당보다 더 좌파인 메레츠 당은 초상집이다. 유효득표 약 15만에 그쳐, 의석이 10석에서 6석으로 줄어들었다. 이번 선거결과는 이스라엘 사회가 보수 우경화 쪽으로 있음을 보여준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2차 인티파다’(intifada, 우리 말로는 ‘봉기’, 1차 인티파다는 1987-1993년)라 일컫는 중동 유혈충돌이 만 2년을 넘기면서 많은 이스라엘 유권자들은 중동평화협상이란 장기적인 전망보다는 바로 코 앞의 ‘안보’(security)가 더 중요한 가치라 여긴다.

샤론의 압승 소식은 팔레스타인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에겐 한 마디로 비보(悲報)다. 2001년 말 이래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라말라의 집무실에 갇혀 지내는 처지나 다름없는 아라파트가 더욱 구석으로 몰릴 게 뻔하다(2002년 초여름 라말라 현지에서 아라파트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의 얼굴은 햇볕을 못 본 탓에 창백했다). 샤론의 압승이 확정된 다음날(1월 29일) 아라파트는 “샤론 수상을 오늘밤에라도 만나 2년 여에 걸친 분쟁을 끝내는 평화협상을 재개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샤론은 코웃음치며 거절했다. (샤론의 강공책과 이에 맞선 팔레스타인 쪽의 저항으로) 중동 유혈사태가 더욱 심해지면 심해졌지, 가라앉는 쪽으로는 나아가지는 않을 것이란 우울한 전망이다.

***가자(Gaza) 강공 진입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지금 두려워하는 것은 샤론 수상이 같은 ‘태생적 강경파’인 국방장관 샤울 모파즈와 공모해 가자(Gaza) 지구를 재점령하려들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가자에 본거지를 둔 하마스나 이슬람 지하드 세력을 뿌리뽑는다는 명분 아래 이스라엘 군이 본격 진입할 가능성은 전부터 얘기돼 왔었다. 선거일 바로 앞서 있었던 이스라엘군의 소규모 가자 진공작전이 비판세력의 지적대로 득표율을 높이기 위한 ‘선거관리용’이었다면, 샤론이 전부터 별러오던 가자 진입을 행동에 옮길 가능성이 커졌다. 그럴 경우 대규모 유혈충돌이 불을 보듯 뻔하다.

가자 지구와는 달리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는 그동안 사실상 이스라엘군 지배 아래 놓여왔다. 1993년 오슬로 평화회담 이래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라 인정돼온 예루살렘, 라말라는 물론이고 북부도시 제닌, 남부도시 헤브론 가릴 것 없이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서안지구를 제집 안방 드나들듯 이스라엘 탱크들이 진입해온 형편이다. 그러나 가자는 다르다. 지중해를 따라 길게 직사각형으로 뻗은 360㎢의 좁은 회랑에 120만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몰려 살고 있고 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과 도시 게릴라전을 펴야 하는 만큼 군사작전을 펴기가 간단치 않다.

이를테면 하마스의 본거지로 알려진 가자 시내의 자발리야 난민수용소 지역(상주인구 10만)에 이스라엘 군이 진입할 경우 도시 게릴라전을 펴야 하는 만큼 이스라엘 병사들의 희생도 각오해야 한다. 1993년 소말리아 모가디슈 시가전에서 미군 특수부대원들이 혼줄이 났던 일이 그곳에서 생기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그래도 뚝심의 샤론이 미국으로부터 거저 받은 전폭기, 무장헬기, 탱크로 밀어부친다면, 승패는 뻔하다.

가자는 사실상 거대한 감옥이나 다름 없다. 이스라엘은 가자 전역을 삥 둘러 철조망을 두르고 곳곳에 콘크리트 장벽을 세웠다.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이스라엘 쪽으로 넘어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120만 가자 지역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좁은 가자에 갇혀 바깥세상을 보지 못한다. 현지 취재에서 만난 가자 사람들은 한결 같이 “우리에겐 출구(exit)가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이스라엘이 가하고 있는 집단적 징벌의 희생자들”이라 여긴다.

이스라엘의 경제봉쇄로 실업률이 50%를 넘는 가자 지구 사람들은 “우린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생각들을 품고 있다. 여러 여론조사를 보면, 서안지구 팔레스타인 사람들보다 가자 사람들이 더 이스라엘에 강경한 입장이다. 아라파트에 대한 지지율이 서안지구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고, 하마스 등 강경세력이 득세하는 곳이 가자지구다. 하마스의 ‘자살폭탄 공격’ 지지율도 서안지구보다 높다. 하마스 지도자 세이크 아흐메드 야신이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주장했듯,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가하고 있는 ‘국가테러’에 맞서는 수단으로서 폭탄테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가자를 지배하는 분위기다.

(필자도 원론적으로는 폭탄테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일제 식민지 시절 우리의 이봉창 의사나 윤봉길 의사도 일제의 시각에서 보면 테러리스트였다. 일제가 말했던 이른바 불령선인<不逞鮮人>이란 결국 테러리스트에 다름 아니다. 하마스 지도자 야신은 필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에 한국 사람들은 일본 식민세력들에 맞서 싸운 투쟁가들을 뭐라 불렀는가. 테러리스트라고 불렀는가?”)

***미국의 평화만 소중한가**

중동 유혈사태의 한 책임을 부시 미 대통령이 져야 한다는 것은 여러 미 지식인들이 비판적으로 지적해온 부분이다. 대통령 취임 이래 지난 2년 동안 샤론의 후견인 역할을 맡아왔다. 샤론을 워싱턴으로 거듭 초대했으면서도 중동협상의 또다른 한 축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라파트를 만나주지도 않은 부시다.

전임자 클린턴과는 사뭇 다른 일방주의다. 아프간전쟁을 치르면서 아랍권의 협조를 얻기 위해 부시 행정부가 꺼내들었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카드는 전쟁 승리와 더불어 언제 그랬더냐는듯 쑥 들어갔다. 콜린 파월 국무가 가끔씩 그 카드를 꺼내 흔들지만, 진지한 모습은 아니다. 이라크전쟁을 앞두고 아랍권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외교적 제스처란 비판을 받는다.

걸프전(91년) 승리 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새로운 세계질서”를 선언했다. 그 정치적 수사(修辭)의 뼈대는 소련 해체 뒤 유일 초강대국 미국이 책임 있게 이끄는 세계평화와 질서였다. 12년 뒤 아들 부시 대통령은 1.28 국정연설에서 미국의 안전과 평화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부시가 추진하고 있는 이라크 전쟁은 “힘에 바탕한 팍스 아메리카” 전략의 군사적 구도일 뿐이다.

초강대국 지도자 부시의 매서운 눈길이 이라크에 쏠려 있듯, 국제사회의 눈길도 덩달아 과연 이라크전쟁이 일어날까에 쏠려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뒷전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걱정하는 시나리오는 이런 분위기 속에 샤론이 강공책으로 가자 지역을 강점하는 시나리오다.

이스라엘 국민들로부터 재신임을 확인한 샤론이 2000년 9월말 인티파다 이래 펼쳐온 고사(枯死)작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본격적인 군사작전으로 가자를 무단(武斷)통치하려 든다면 대규모 유혈충동은 불가피하다. 이는 곧 이미 2000명에 가까운 팔레스타인 희생자 숫자를 더욱 키우는 것을 뜻한다.

지구촌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미국의 평화뿐 아니다. 한반도 평화, 중동평화를 포함한 지구촌의 평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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