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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교육은 쿠바가 선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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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의료-교육은 쿠바가 선진국” 김재명의 쿠바 리포트 <10>
미국의 사설 병원들이 내미는 청구서는 살인적이다. 사립학교들도 등록금이 비싸기로 악명이 높다. 의료보험에 들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많은 저소득층 사람들이나 자유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의료보험 없이 살아간다. 그 비율은 전체 국민의 16%에 이른다. 미국인 6명 가운데 1명은 의료보험과는 거리가 멀다. 여기에 숱한 불법 체류자들을 합치면 무보험자 비율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미국과는 대조적으로, 1천1백만 쿠바 사람들은 의료혜택만큼은 확실히 받는다. 아프다 싶으면 병원엘 입원하고, 진료나 수술이 거저다. 그래서일까, 쿠바 사람들의 평균수명(남자 74.77세, 여자 79. 44세)과 유아사망률(1천명 당 6.45명)은 선진국 수준이다.

***“학교-병원은 부자들 전유물 아니다”**

교육과 의료분야 하나만 떼놓고 본다면, 쿠바는 결코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이 아니다. 유럽의 선진 복지국가들이 부럽지 않다. 이는 1959년 카스트로 혁명의 성공사례로 선전되는 부분이다. 카스트로는 혁명 바로 뒤 "학교와 병원은 부자들만 가는 것이 아니다. 쿠바인민 모두를 무지와 질병으로부터 해방시키겠다"며 교육-의료부문에 혁명을 일으켰다. 그것을 쿠바인들은 ‘교육-의료 복지혁명’이라 일컫는다. 아바나 대학에서 만났던 탈리아 풍 리베론 교수(마르크스철학 전공)는 의료-교육부문에서 카스트로 혁명의 성과를 이렇게 요약해 주었다.

“국민총생산(GDP) 잣대로 보면, 쿠바는 가난한 나라다. 그러나 의료와 교육의 질과 보급률에 관한 한 쿠바는 선진국이다. 인민 대중의 입장에선 크게 만족할 만한 혁명 성과다”

쿠바 병원은 3단계로 나뉜다. 1차 진료는 우리로 치면 보건소 같은 곳이고, 그곳에서 정밀진단이 필요하다고 의사가 판단한다면 2차 진료소(일반병원), 그리고 보다 정밀한 수술이 요구되는 경우는 3차 진료소(대형 종합병원)로 옮겨간다. 쿠바 어딜 가든 골목길이나 거리 한 귀퉁이엔 1차 진료기관인 보건소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곳을 찾는 쿠바 사람은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그곳을 거쳐 일반병원이나 대형 종합병원으로 가더라도 입원비나 수술비 부담이 없다. 병원 수속비를 마련 못해 병원 문턱에서 죽었다는 얘기는 카스트로 혁명 이전에나 들리던 전설이 돼버렸다.

***“관광도 즐기고 병도 싸게 고치고”**

카스트로 정권은 옛소련이 쿠바에게 건네는 원조액과 예산의 상당 부분을 의학 연구에 투입했다. 그 결과 쿠바는 남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지에서 번지는 전염병인 뇌막염 예방 백신을 비롯한 각종 의약품과 생명공학 기술 특허를 갖게 됐다. 쿠바는 그렇게 해서 개발해낸 의약품들을 해외로 수출해 벌어들인다. 2002년만 해도 2억5천만 달러 어치를 수출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쿠바 약은 믿을 수 없다”며 악선전을 해댔지만, 유럽 시장에서 쿠바 의약품은 좋은 평가를 받는다. 특히 쿠바산 B형 간염백신은 미국산보다도 우수하다고 알려진다. 인도와 중국, 러시아는 쿠바 기술자들과 손을 잡고 백신공장들을 자국 안에 세웠다. 카스트로 정권은 서구 의약품시장을 파고들기 위해 캐나다, 독일, 스페인 회사들과 합작을 추진해왔다.

쿠바의 의료산업은 외화벌이 기관이기도 하다. 석유자원이 풍부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은 반미라는 잣대로 보면 쿠바 카스트로 정권과 입장을 같이한다. 현재 베네수엘라에는 쿠바 의사 1만 명이 머물고 있다. 차베스 정권은 쿠바에게 석유를 대주고, 카스트로는 그 반대급부로 의사를 대주고 있는 모습이다. 쿠바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 가운데는 관광이 주목적이 아니라, 병원에 입원할 요량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쿠바에서는 ‘의료 관광객(medical tourist)'이라 일컫는다.

해마다 5천명쯤으로 추산되는 외국인 의료관광객들이 쿠바에 한두 달 가량 머물면서 관광도 즐기고 싼값에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고 가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중남미 사람들이지만, 유럽에서도 많이 온다. 아바나 시내 특급호텔인 ‘아바나 해방호텔’ 로비에서 만났던 50대 후반의 독일인 관광객 귄터는 파킨슨씨 병에 걸려 고생하는 아내를 치료하기 위해 쿠바로 왔다. 그는 “믿을 만한 의료진과 시설을 갖추었으면서도 비싸지 않아 좋다”고 말했다.

***미 경제봉쇄의 어두운 그림자**

쿠바 의료복지에 문제점과 어려움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40년을 넘긴 미국의 경제봉쇄정책(미국쪽 용어는 embargo, 쿠바쪽 용어는 bolckade)이다. 미국의 경제봉쇄 탓에 일부 주요 약품(또는 원료)들이 제대로 들여오지 못한다고 쿠바 사람들은 불평을 한다. 한국의 외교안보연구원 같은 기능을 하는 쿠바 국제관계고등연구소(ISRI) 카를로스 알수가라이 교수(국제정치학)의 지적.

“쿠바에서의 약값은 매우 싸다. 문제는 미국의 봉쇄정책 탓에 때로는 주요 약품과 원료가 품귀현상을 빚고, 따라서 그 약이 꼭 필요한 환자들이 고통을 겪고 결과적으로 사망률을 높인다”

1990년대 초 공산권이 무너지고 쿠바에 대한 경제원조가 끊기고 옛소련과 동구권으로의 수출 길조차 막히자, 쿠바의 의료복지정책도 여유가 없어졌다. 병원에서는 소독약이 모자랄 형편이 됐다. 쿠바 사람들은 1990부터 1993년 사이의 어려웠던 시절을 ‘특별한 기간(special period)'이라 부른다. 의사들의 월급도 상대적으로 전보다 줄어들었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나아졌지만, 쿠바의 의사들은 전문직업인으로서 만족감을 느낄 만큼 월급을 많이 받지는 못한다.

사회주의 경제체제 아래서 개인병원 개업이란 없다. 쿠바 의사들은 모두 국가로부터 월급을 받는다. 그렇지만 노동강도가 청소부나 경찰보다 높지 않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월급이 적다. 한달에 20-25달러가 고작이다(청소부는 30달러 이상). 그런 까닭에 일부 의사들은 의사 가운을 벗고 외국인들을 태우는 택시 운전사, 호텔 종업원, 또는 자신의 집을 개조해 외국관광객을 맞는 개인호텔(까사 파르티큘라, 이른바 민박집) 관리인으로 변신하는 일이 벌어지는 상황이다(이 연재 6회에서 다뤘던 ‘쿠바인의 생존술’ 참조).

쿠바의 의료체계가 대중화에 성공해 돈 없는 사람들에게 천국이라 하지만, 모든 부문에서 의료기술이 첨단 선진화됐다는 것과는 다른 얘기다. 필자가 한때 묵었던 개인호텔(까사 파르티큘라, 이른바 민박집) 관리인의 아들은 35세의 잘 생긴 사내였다. 이름은 까르밀로. 5년 전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하반신을 못 쓰고, 휠체어로 움직였다. 까르밀로는 이즈음 “쿠바보다 더 나은 의료설비를 갖춘 선진국으로 간다면, 마비된 척추신경이 살아나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그가 보여주는 비디오 테이프는 놀랍게도 광주 조선대학 부속병원에서 척추가 마비된 환자가 차츰 회복되는 내용을 녹화한 것이었다. 까르밀로는 “갈 수만 있다면 한국에 가서, 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싶다”며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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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김재명)

1. 쿠바의 문맹율은 0%에 가깝다.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쿠바 여학생들.
2. 쿠바의 초등학교 교실. 체 게바라의 사진이 눈길을 끈다.
3. 1차 진료기관인 보건소의 여의사는 “쿠바의 병원에선 입원비는 물론 수술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랑한다.
4. 아바나 거리의 청소부. 노동강도로 임금이 결정되는 쿠바에선 청소부 월급이 의사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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