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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유산, 압축성장의 산물...교육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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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일제의 유산, 압축성장의 산물...교육전쟁" [기획] EBS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미리보기’①
2005년 새 학기 들어 벌써 10명의 어린 영혼들이 세상을 등졌다. 그들은 죽음으로 이미 ‘지옥’인 지금의 세상이 싫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어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도리어 동급생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자리에마저 모인 학생들보다 더 많은 교사들을 보내 ‘통제’하려 드는 구태를 보였다.

이제 난마와 같은 우리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두가 지혜를 모을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냉철한 이성으로 우리 교육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되짚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에 <프레시안>은 EBS(교육방송)가 광복60주년 창사5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특별기획 5부작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기획 양전욱, 연출 김영상) 프로그램을 독자들에게 미리 보여드리는 기획을 마련했다.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는 국내 최초로 한국교육사를 점거해 보면서 오늘날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의 뿌리를 찾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는 물론 시청자들에게 소중한 화두를 던져줄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주

***“아빠, 무슨 대학 나왔어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 86년 겨울 어느 소녀의 유서
“여보, 사랑해요. 잘 살아요. 미안해요.” - 2003년 여름 어느 기러기 아빠의 유서
“내 몫까지 행복하길 바래” - 2005년 4월 과학고 학생의 유서

한국의 아이들을 보면 가엽기 짝이 없다. 사나운 사냥개에 쫓기는 조그만 산짐승 같다. 우등생의 지친 어깨에서도, 반항하는 아이의 눈빛에서도…. 이 땅의 아이들에게선 언제나 ‘도와 달라’는 슬픈 울음소리가 느껴진다.

잊을 때쯤이면 어김없이 반복되는 아이들의 죽음. 그 수많은 죽음 위에 존재하는 것이 우리의 입시제도다. 이제 혼자 남은 외로운 ‘기러기 아빠들’까지도 그 죽음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입시가 온 가족을 이별과 죽음의 그림자로 몰아가고 있다.

지난 5월 7일 저녁.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새로운 내신제도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시위는 최근 죽어간 자살 학생들에 대한 추모대회를 겸하고 있었다. 참가인원은 예상보다 적었지만 고등학생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들고 스스로 계획하고, 모인 최초의 시위였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문자 메세지를 주고, 받으며 시위사실과 날짜를 알렸다. 놀랍게도 이 문제는 전국의 고등학생들 사이에 공론을 형성했다. 최근 두 달 동안 언론에 알려진 죽음만 10건. 도대체 무엇이 이 많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가.

***한 소녀의 절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20년 전인 지난 86년 겨울, 한 여중생의 죽음은 우리 모두를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1~2등을 놓친 일이 없었던 우등생의 갑작스러운 죽임이었다. 소녀는 유서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글귀를 남겼다. 16세 소녀는 그렇게 결코 잊을 수 없는 따가운 항변을 우리사회에 남기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깜짝 놀랐죠. 어쩌다가 그렇게 됐을까. 집도 상당히 유복하고, 키도 크고 예쁘고, 또 운동도 잘했어요. 그런 학생이 왜 죽음을 선택했을까. 그렇지만 그것이 내 문제라고 느끼거나 그것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못했어요.” 소녀의 같은 반 급우였던 박선화(36세)씨는 지금에 와서 당시를 회상해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소녀의 죽음 이후에도 우리사회는 별로 변한 것이 없다. 여전히 10대 학생들의 자살은 줄을 잇고, 자살의 이유 중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이 학업성적과 관련한 가정의 불화가 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등 떠밀린 아이들은 하나 둘씩 낯선 해외로 떠나고 있다. 지난해 해외로 떠난 조기유학생들은 1만2천3백여명. 지난 2003년에 비해 33.9%나 증가했다. 조기유학은 결과적으로 ‘기러기 아빠’라는 새로운 가정문제를 낳고 있다.

“괜찮을 때는 괜찮아요. 그런데 갑자기 외롭다고 느껴질 때도 있더라구요. 혼자 밥해 먹고, 설거지 하고…. 물론 자주 통화를 했죠. 하지만 ‘아, 이렇게 길게는 쉽지 않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아들과 아내를 1년 반 동안 캐나다 토론토로 보냈던 희광이 아빠는 결국 아들의 조기유학을 포기했다. 하지만 희광이네는 요즘 다시 고민에 빠졌다. 희광이가 그곳에서 공부보다 친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깨달았기 때문이다. 왜 국내에서는 행복한 교육이 불가능해 진 것일까. 그 이면에는 교육을 체제수호와 기득권 유지의 도구로 활용했던 어두운 과거가 있다.

***1920년대에도 ‘입시지옥’이었던 한반도**

봉건신분제가 무너지던 19세기 초. 일제의 침략 속에서도 신분을 넘으려는 조선 민중들의 배움 열기는 싹트고 있었다. 여기에 1919년 전국 방방곳곳에서 일어났던 ‘3.1 독립운동’은 민중들의 교육열을 급격히 팽창시키는 계기가 됐다. 곧이어 숭의전문, 숭의여학교 등 민족 교육학교들이 설립됐다. 하지만 이들 학교들은 일본의 교육정책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대한제국 말기만 해도 우리의 신학교 학제는 한 학교 안에서 유치원, 초·중·고등 교육과정이 모두 소화되는 종합학교 형식이었다. 이를 일제는 4~6년제 보통학교, 2~3년제 고등보통학교 등으로 구분시키며 이른바 ‘학력’이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일제는 상급교육을 받은 이들을 하위직 관리로 채용하는 등 교육제도를 통해 친일교육을 강화해 나가는 수법을 썼다.

이런 와중에도 민중들의 교육 열기는 식지 않아 민립대학을 설립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결국 일본총독부는 조선 민중들의 고등교육기관 설립을 봉쇄할 목적으로 1924년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했다. 겉으론 조선 민중들에게 문호를 개방한 것처럼 보였으나 내실은 ‘극소수 개방’일 뿐이었다. 실제로 당시 신문에는 이러한 차별을 꼬집는 만평이 실리기도 했다.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허용하는 그 좁은 ‘입시난’을 지나기 위해 당시 학생들은 머리를 싸매야 했다. 1920년대 이미 항간에는 ‘입시지옥’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 이 무렵, 사교육기관인 ‘학관’(지금의 사설학원)도 생겨났다. 입학 때가 되면 신문에 각급학교의 입학시험 문제가 게재되는 것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학생>이라는 잡지에는 ‘정신적 자살’이란 제목의 글이 실리기도 했고, 심지어 입시를 위한 공부방법과 출제경향까지 제시하는 진학잡지가 출판되기도 했다.

당시 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김동환 옹은 “이런 이상열기 때문에 입시위주, 상급학교 진학위주의 교육을 지양하자는 결의도 있었고, 또 오늘날의 내신처럼 평상시의 성적을 중시하자거나 교장들의 소견서 등을 입시에 반영하자는 의견도 나왔다”고 증언하고 있다.

일제 식민지 아래에서 시작된 교육열은 이 땅 민중들에게는 이중의 고통이기도 했다. 일제는 자국에서 무상교육을 시행했던 것과는 달리 조선에서는 학교를 짓는 부담조차 조선 민중들에게 돌렸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조선 민중들은 더욱 교육받기를 원했고, 학교를 다니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하려 했다.

***경제발전의 부작용 ‘교육열풍’**

1945년 8월. 드디어 압제의 사슬이 끊어졌다. 하지만 독립의 기쁨도 잠시, 곧 이어진 민족분단으로 남쪽에는 미군이 주둔했다. 미군은 군정수립 직후부터 의무교육 실시를 선언했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대부분의 예산은 치안비와 선전비에 쓰여졌고, 그나마 교육비에 쓰여지는 예산도 서울대학교로 이름이 바뀐 옛 경성제국대학에 대한 집중투자로 이어졌다. 해방은 됐지만 민중들은 조악한 한글교재로 우리말과 우리글을 배우는 것이 고작이었다.

미군정 3년만인 1948년 이승만 정권이 들어섰지만 2년 뒤 발발한 한국전쟁은 그나마 민중들이 누려오던 교육의 기회조차 박탈했다. 그러나 피난지에서도 임시학교의 문은 열렸고, 민중들은 그 속에서 교육이 생존과 직결돼 있다는 점을 점차 깨우쳐 나갔다. 일제시대 교육은 특정집단의 가능성과 희망일 뿐이었지만 이때부터 교육은 모든 민중의 희망이 됐다. 더불어 교육경쟁도 치열해졌다.

해방직후 설립된 초기 대학들은 자체적으로 학생들을 선발했다. 하지만 지원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정원조차 채우지 못하게 되자 대학들은 자율성을 악용해 갖은 입시부정을 저질렀다. 이에 정부는 입시부정과 비리를 막겠다는 명목으로 국가가 관리하는 시험제도를 도입했다. 오늘날 정부와 대학 사이의 자율성을 둘러싼 갈등의 시초였다.

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사회는 대졸실업자들이 넘쳐나 ‘대학망국론’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급인력을 수용할만한 그릇이 없었다. 그러던 것이 박정희 정권 시절인 62년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시행되고, 이후 본격적으로 대졸자들이 산업계로 흡수되면서 상급학교 진학률을 폭발적으로 높이는 계기를 맞이했다. 더 나은 보수, 더 빠른 승진을 위해 소위 ‘일류학교’로 학생들이 몰렸고 그와 동시에 일류 중학교, 일류고등학교 식으로 모든 학교들의 서열화가 시작됐다.

때문에 당시 가장 심각한 입시열풍은 13세 초등학생들에게서 나타났다. 실제로 63년 겨울, 전기 중학교 입시를 앞두고 일어난 ‘무즙파동’(엿을 만드는데 사용되는 재료의 정답은 디아스타제였으나 일부 학생들이 무즙을 써 낙방하자 학부모들이 직접 무즙으로 엿을 만들어 서울시교육감에게 제시한 사건)은 이같은 세태를 대변해 주는 대표적인 촌극이었다. 정부는 중학교 입시파동이 반복되자 68년 중학교 평준화를, 72년엔 고교 평준화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뺑뺑이’로 불리는 평준화 정책은 모든 모순을 대학입시로 집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69년부터 81년까지 실시된 대입 예비고사제도는 객관식 출제를 정착시키면서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풍토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몰고 갔다. 특히 79년부터 전문대 입학자들에게도 예비고사 합격이 요구되면서 총 응시자의 90%가 합격해 커트라인이 유명무실해 지는 결과를 초래하자 결국 이 제도는 81년 폐지되고 새로 학력고사제도가 도입됐다. 이러는 사이 정부는 대학에 학생 선발 자율권을 넘겨주기도 했지만 입학을 둘러싼 부정비리가 성행하자 다시 이를 되가져오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학력고사도 대안은 아니었다. 13년 동안 계속된 이 제도는 해마다 시험과목을 늘이는 부작용을 나타내며 학생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 점차 고득점자들이 많아지면서 상위권 경쟁이 치열해 지는 양상도 나타났다. 결국 94년 지금의 수능시험제도가 도입됐지만 이 또한 매년 난이도 조절 실패와 변별력 상실이 거듭되면서 숱한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다양성·창의성으로 입시지옥 벗어난 일본**

일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입시지옥을 겪어왔다. 60~70년대 산업화와 경제성장 이후 너도나도 대학으로 몰려들었고, 대형 입시학원가가 형성되고 재수생이라는 새로운 계층이 사회문제로 등장하기도 했다. 신사를 찾아 합격을 기원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모습은 우리의 입시철 풍경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일본은 이제 예전의 입시지옥에서 벗어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떻게 벗어난 것일까. 현재 일본은 명문하교를 향한 조기교육열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입시경쟁은 국내처럼 치열하지 않다. 일류대학을 빼고는 가고자하면 누구나 갈 수 있는 것이 대학이 됐다.

이런 입시해소는 다양성 속에서 가능했다. 가업을 이어받는 전통과 일찌감치 경쟁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편안하게 살려는 프리터족(free arbeiter) 등 다양한 삶의 형태가 입시경쟁을 자연스럽게 완화시키는 역할을 한 것이다. 새로운 경쟁체제, 대량 생산체제가 아닌 창의성을 가진 사람이 경쟁력을 갖는 사회적 흐름이 입시위주의 교육을 재검토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현재의 학교와 학생생활기록부 체제는 지식기반사회에 맞는 우수한 학생이나 우수학교의 개념을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의 우수학교는 창의적인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지 좋은 대학에 얼마나 많은 학생을 입학시켰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과감한 교육투자와 교육과정개혁으로 기존학력과 창의력을 배우고 동시에 학생들의 다양한 특기와 리더십, 그리고 봉사성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IMF 당시 경제주권을 잃어버렸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연고주의, 패거리주의라는 비판이 있었다. 한번 정해지면 평생 동안 따라다니는 종신신분제 같은 학벌주의는 온 국민을 엄청난 고통 속에 몰아넣는데 일조해 왔다. 이제 한번이라도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사회, 그 열린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EBS 광복60주년 창사5주년 특별기획 5부작 한국교육사 다큐멘터리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제1부 ‘아빠, 무슨 대학 나왔어요?’는 12일 저녁 10시 EBS 채널을 통해 50분 동안 방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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