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초록' 이야기에 앞서 지율 스님의 근황부터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공간 초록'의 미래와 깊은 관련이 있어서입니다. '공간 초록' 열림날 바로 전날에 마무리 작업 중인 공간에 가보았더니 지율 스님과 목수 한 분, 스님의 속가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1시간 가량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내일 공간을 열고 자리가 조금 잡히면 동영상 카메라를 들고 천성산으로 가겠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천성산의 참상을 스님이 직접 찍겠다는 것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저는 걱정에 파묻혔습니다. 이제 지율 스님은 평지의 길은 제법 잘 걷습니다. 오름길이 길거나 가파를 때는 아직 부축이 필요합니다. 그래도 마지막 단식을 그친 후 반 년 동안 정말 천천히 그러나 쉴새없이 스님은 기력과 움직임을 회복해 왔습니다. 이제 스스로 몸을 재어보고 다시 천성산에서 움직일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두려운 일입니다.
참상을 카메라로 촬영해 두는 것으로 끝날까. 제 짐작에 스님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고 않고 또다시 항의의 길로 나설 것만 같습니다. 항의의 방식은 그때그때 스님 마음이 명하는 대로 정해질 것입니다. 스님은, 아니 우리는, 대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이고 있지 않습니다. 부당하고 부실한 판결이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힘과 수단이 없어 물러나왔을 뿐입니다. 스님의 항의는 법의 경계를 넘어서는 수준이 될 것입니다. 저는 그 항의를 지켜볼 자신도 없고 따라갈 자신도 없습니다. 스님은 천성산을 한몸인 양 사랑하지만, 저는 아주 조금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천성산 대책위 전 사무국장 손정현 님께 따로 걱정을 꺼내놓아 보았습니다. 손정현 님은 "지금까지 환경 현장에 제대로 된 기록이 없지 않았나. 스님은 기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고 하십니다. 기록, 말 그대로 기록 그 최소한의 순수한 행위뿐이라면 저는 걱정을 덜 수 있습니다.
다행히 스님이 작년 가을에 낸 책 『초록의 공명』을 보면, '기록'이란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파괴되는 천성산에 대한 기록 행위의 의미를 아름답게 일깨우는 글이 있습니다.
한 십 년쯤 전에 뉴스에서 들었던 기억입니다.
도로공사로 이장하는 묘에서 400년 전 요절한 남편에게 부인이 쓴 한글 편지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 편지 중 "남들도 우리처럼 사랑했을까요"라는 한 마디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 뉴스를 들으면서 우리말이 그렇게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에 새삼스레 우리 말과 글에 사랑이 갔습니다.
죽음과 생명은 당황스러울 만큼 신비적입니다.
며칠 동안 홈페이지에 들어와 보지 못했더니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하셔서 안부 글을 올립니다. 두통과 멀미, 부종으로 고생하기도 하지만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자기 머리카락으로 짚신을 삼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면서 젊은 부인이 쓴 이별의 시가 400년의 시공을 넘어 우리에게 오듯이, 지금 천성산이 겪고 있는 아픔도 말과 꿈으로 다시 우리의 마음에 공명되기를 바라면서 지금 저는 영상물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남들도 우리처럼 사랑했을까요…
까닭 없이 자꾸 되뇌는 말입니다.
이 글에서 '남들도 우리처럼 사랑했을까요'라는 한 마디를 들으면서 스님이 '우리말이 그렇게 아름답구나' 하고 생각하는 대목을 저는 제일 좋아합니다만, 이제 곧 천성산의 참상을 촬영하러 가신다는 말을 듣고 보니, 문자 몇 개가 400년 세월을 넘어서도 감동을 잃지 않는 일과 2004년 당시 스님 자신의 영상물 정리작업의 의미와 연결시키고 있는 대목에 새삼 눈길이 갑니다.
백낙청 선생님의 걸작 평론 하나가 떠오릅니다. 그 제목이 '시적 인간과 역사적 인간'이었습니다. '시적', '역사적'이란 말이야말로 지율 스님의 시간 감각과 인식법을 설명할 최적의 단어 같습니다. 평론의 의미심장한 제목 그대로의 인간이 제가 아는 지율 스님입니다. 원효 스님의 세계에 깊이 빠진 황홀경으로 출가 발심하였던 것으로 아는데, 오래 전부터 시공을 넘어 옛 성현들과의 대화에 자유자재하였던 지율 스님이니 천성산을 파괴하는 현실 세력에 대한 용렬한 적개심과 참상을 고발하겠다는 어떤 공격적인 마음으로 동영상 카메라를 들겠다는 것이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걱정, 걱정입니다. 예전에 양산시 개곡마을 고속철도 터널공사 현장에서 백일 넘게 공사를 막고 나설 때, 스님은 '포크레인이 악마로 보였다'고 했습니다. 스님도 순간순간 지극히 솔직한 한 인간일 뿐인지라 '기록 행위'가 언제 '항의의 행동'으로 돌변할지 알 수 없습니다. 천성산으로 가겠다는 스님의 행동심리랄까 그 이치는 물론 아주 간단합니다. 한 어머니가 병원에서 시한부인생 선고를 받았다. 기적이란 없다. 지인들은 두세 번 병문안을 가고 저마다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 소식을 기다릴 뿐이지만, 딸은 마지막 순간까지 어미를 수발하며 병실을 지킬 뿐이다….
이제 '공간 초록'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스님은 '도시 한가운데 말 그대로 공간 하나를 비워놓겠다'라고 하십니다. 비워 놓으면 누구든 와서 채우기 마련이고, 누가 채우느냐에 따라 공간은 그때그때 다른 모습이 될 거라고 합니다. 토론도 하고 놀기도 하고 기자회견도 하고 쉬기도 하고…. '공간 초록'에 상주하는 관리인도 두지 않겠답니다. 자물쇠도 없는 것으로 압니다. 누구에게나 늘 열려 있는 그야말로 '공간'입니다.
이를 두고 누구는 '실험'이라고 하고, 누구는 '지금껏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사상과 실천이 나올 수 있고, 차가운 실패로 귀결될 수도 있습니다. '공간 초록'의 뜻매김이 쉬운 듯하면서도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이런 공간이 한국사회 곳곳에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이에게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이 쉽고, '비워놓고 누구든 쓰게 하겠다고? 그게 뭐야? 사회운동이 공간이 없어 안 풀렸나?' 하는 이에게는 어렵습니다. 저는 처음엔 전자였지만 자꾸 후자 쪽이 되어 갔습니다.
가만히 따져보니, 그냥 '공간'이 아니라 분명 '공간 초록'입니다. '초록'이란 말이 붙어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라는 말은 허언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초록'이란 말을 좁게 해석하면, 천성산, 도롱뇽 등과 결부되어 성격이 너무 뚜렷한 '공간'이 되고 맙니다. 어떤 분이 "천성산 운동 쪽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곳이 되면 안 되는 데…"라고 걱정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튼 '공간 초록'은 방 세 개, 마당, 옥상 등이 있는 집 한 채이고, '공간 초록' 홈페이지가 있고, 누구든 회원가입을 하여 일정표에서 언제 어느 때 무슨 방을 쓰겠다라고 하면 쓸 수 있게 돼 있는 아주 간단한 운영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로 부산 가까이에 살고 있어 빨리 연락이 되었던 스님의 지인들, 초기에 전세자금을 십시일반으로 냈던 사람들이 운영위원이라고 하여 스무 명 넘게 있습니다. 저도 그 중 한 사람이지만, 제가 '공간 초록' 계획에 동의한 것은, 대법원 판결로 도롱뇽 소송이 끝나자 '이대로 뿔뿔이 흩어지는 거야? 그럴 순 없지' 하는 생각에서였던 것 같습니다.
'공간 초록'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면서는 저 혼자 그림 한 장을 그리며 설레였습니다. 삼성일반노조 김성환 위원장 가족이 부산에 오시고 하룻밤 '공간 초록'에 묵는 그림이었습니다. 이튿날 따뜻한 햇볕이 마루에 들고 차 한 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림도 따라 왔습니다. 단 하룻밤이지만, 김성환 위원장의 인생에 새로운 영감을 공간 초록이 줄 수도 있습니다. 동지들과의 사랑 말고도 김성환 위원장을 떠받치는 더 큰 사랑이 있다는 것, 물론 김성환 위원장도 이 사실을 잘 알고 계시지만, 하룻밤 묵으며 더 몸 깊이 심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에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지 않았기에 이 그림이 언제 현실에서 그려질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지율 스님의 실천이 한국 사회운동의 여러 움직임과 보다 우정어리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공간 초록'일 거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사람 하나 하룻밤 묵게 하려고 넌 거금 일백만 원을 냈니? 라고 평가절하 하는 이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저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의미로 쓰는 단어로 '싸움'이란 말, 역시 좋은 의미로 쓰는 단어로 '일상'이란 말을 떠올려봅니다. '싸움'과 '일상'의 절묘한 조화가 '공간 초록'의 키워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 그런 생각입니다. 부인하고 싶지만 아직은 '공간 초록'의 '초록'은 천성산 생명운동의 성격과 아우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운동과 너무 깊이 결부시키면, 공간 초록은 부담스러워 접근조차 힘듭니다. 스님은 이웃들의 반상회도 열리고 아이들이 와서 책도 읽고 가고 그렇게 되었으면 하시지만, 스님의 바람일 뿐이고, 더욱이 향후 스님이 카메라를 들고 천성산 현장에 '싸움'을 하러 나서면, 그 싸움의 소식이 또 어둡기만 하다면, 저부터가 공간 초록에 가려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손정현 님의 진단처럼, 너무 가혹한 실천은 그것 자체로 사람들을 주눅들게 하고 죄책감에 빠지게 합니다. 참회(그리고 결행)와 회피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데, 기질상 싸움꾼이 아닌 저는 많은 시간 회피 쪽을 택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지율 스님은 천성산에서 저렇게 싸우는데 누군들 공간 초록에 편히 앉아 있겠습니까.
하여 '초록'의 의미를 우리 사는 일상 현장의 삶과 만나게 하는 것이 앞으로 중요한 숙제가 될 것 같습니다. '초록'의 의미가 '천성산 생명운동'에 국한되지 않도록 하는 문제인데, 실은 그것은 '공간 초록'과 함께 갑자기 생겨난 숙제가 아니라 천성산 생명운동에 동참했고 지금도 계속 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애초부터 그런 숙제가 있었습니다. 공간 초록이 열리는 날이 다가올수록 저는 '일상'의 키워드를 화두 삼아 씨름했고, 이제 서서히 새로운 그림이 떠오릅니다.
'공간 초록'을 놓고, 최악의 경우, 지율 스님이 사라지는 하나의 방식이 아닐까, 극단적으로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알아서들 운영하라며 '공간'을 남겨놓고 스님은 영덕 토굴에 칩거할 수 있고, 또는 천성산 기록 행위가 어떤 암담한 상황에 처하고 절망적이기만 하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그 움직임을 회피한다면, '공간 초록'은 월세도 내지 못하고 문을 닫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럴수록 '초록'의 의미를 천성산, 지율 스님에 한정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초록'이란 말이, 그 뜻매김을 보다 참신하게 하기 위한 길 위에 들어섰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은 '시적' '역사적'이란 말의 다양한 재해석이자 저마다의 근기에 맞는 삶의 움직임과 모양내기일 수 있습니다.
저는 '공간 초록'을 천성산과 지율 스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선물을 받은 우리는 '공간 초록'을 당대의 다양한 뜻있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습니다. 공간 초록, 대체 뭘 하자는 거지? 이 질문의 답을 명쾌하게 제시하지 못했지만, 저보다 인생 경험과 지혜가 많은 분들이 '나는 공간 초록의 의미가 뭔지 알겠다' 하셨을 것 같습니다. 공감하신 분들이 저마다 그린 그림을 볼 기회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 공간 초록의 주소를 알리는 것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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