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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지주회사' 전환…일터엔 어떤 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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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지주회사' 전환…일터엔 어떤 변화가? [밥&돈·7]'주가'에만 관심, '산업'에는 무관심
한국도 드디어 '지주회사의 시대'에 다가선 듯 하다. 올해에만 들어서 SK, 두산, 금호, CJ, 한진 중공업, 동양 등의 재벌들이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선언한 바 있다. 최근 '김승연 사태'로 동티가 나기 전의 한화 역시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밖에도 상당수의 재벌들이 이런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미 주요 은행들이 금융 지주회사로 전환했으며, 이런 금융 지주회사는 증권업과 은행업을 넘나들 수 있는 기업 형태로 각광을 받은 지 오래다.

정부 관계자들도 이런 흐름을 권장하고 있다. 아니면 최소한 긍정적으로 여기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달 18일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이 "삼성도 지주회사로 전환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파문을 낳기도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꼭 한 달이 지난 18일,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이 담긴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법사위 심의와 국회 본희의 의결을 거쳐 6월 국회에서 처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본회의까지 최종 통과될 경우, 오는 10월에 시행될 전망이다

80년대 M&A 열풍 거친 기업들 "이제 관심사는 '매출'이 아니라 '주가'"

이런 지주회사의 확산은 우리만의 현상은 아니다. 우리보다 먼저 소위 '신자유주의적'인 방향으로 금융과 기업 부문을 전환했던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이미 나타난 현상이다.

원래 다부서 기업 형태(multi-divisional form)가 주종을 이루던 것이 1970년대까지 미국의 대기업 형태였다. 당시 주로 쓰인 기업 경영 지표는 시장 점유율이나 기업 규모의 성장(피고용인 숫자 등으로 나타나는) 등과 같은 것이었다. 이런 지표 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형태가 수평적인 지평으로 여러 부서들을 신설해 팽창해나가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기업 경영과 금융 환경은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게 된다. 소위 '정크 본드' 붐을 지나면서 금융 시장은 기업 인수와 매각의 현장으로 바뀌게 된다.

이처럼 야수적으로 변화한 금융 및 경영 환경에서 기업들은 주가의 상승을 기업 경영 최고의 목표로 삼게 되며, 이에 기업들은 소위 '날씬하고 옹골찬(lean and mean)' 형태로의 구조 조정을 겪게 된다.

지주회사를 정점에 둔 수직 구조로 재편된 기업들

이때 이에 적합한 기업 형태로 각광 받은 것이 다층 자회사 기업 형태(multi-layered subsidiary form)였다.

기존의 여러 부서들을 분사(分社)시키기도 하고 또 수익성 좋은 기업들을 인수 합병하기도 하여 자회사, 손자회사, 증손자 회사 등등의 '수직적 다층 구조'로 재배치하고 그 관계를 모두 주식 소유에 의한 주주 지배로 만들어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holding company)가 피라미드 형으로 이루어진 전체 기업을 지배하는 구조다.

1981년에서 1993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미국 100대 기업 가운데 다부서 기업 형태는 75%에서 35%로 감소한 반면 지주회사 형태의 기업은 1993년 경 53%에 달하도록 증가하는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일본에서도 지주회사의 기업 형태는 '신자유주의적' 축적 구조와 연결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원래 일본의 독점 금지법은 구체적인 사업과 연결되지 않은 기업들의 주식을 자유롭게 소유하는 순수 지주회사를 금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의 독점금지법이 1998년 하시모토 총리 시절의 소위 '금융 빅뱅'과 함께 철폐되면서 지주회사는 대은행 등을 필두로 한 거대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확산돼 왔다.

원래 1990년대까지의 일본의 전통적인 기업 형태도 소위 주식 상호보유(株式持ち合い)로 거대하게 엮인 6대 기업 집단과 같은 모습을 띠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전통적인 형태가 1990년대의 거품 붕괴 이후 불황에서 근본적인 재구조화의 필요에 부딪혔다. 그리고 이런 필요가 대안적인 기업 지배 소유 구조의 여러 형태를 모색하게 했고, 그 중 하나가 지주회사였다.

선단식 재벌이 IMF 거치며 기조실 체제로, 그리고 지주회사로
▲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 지주회사 자회사와 손자회사간 사업 관련성 요건을 폐지하는 등 지주회사 규제를 추가 완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지난 18일 국회정무위를 통과했다. 권 위원장은 이처럼 지주회사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기울여 왔다.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지주회사 기업 형태가 나타나게 된 것은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기업 재구조화와 무관하지 않다.

원래 우리의 재벌 기업들도 과거 일본과 비슷하게 상호 순환 출자나 주식 보유 등으로 엮여 있었다. 이런 형태는 1997년 IMF 위기 당시 소위 '불투명한 자본주의'의 표상이라며 비판의 철퇴를 맞았던 것이기도 하다.

부랴부랴 이루어졌던 기업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이 재벌 기업들은 소위 '기획조정실'이라는 편의적인 장치로 기업집단 전체의 지배를 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기형적 형태가 계속 지속될 수 없고, 1990년대 이전의 대기업 형태에서 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의 새로운 자본주의의 기업 형태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당시에도 많은 이들에게 분명해 보였다.

2003년 처음으로 이뤄진 LG 의 지주회사 전환은 이런 상황에서 미래의 기업 소유 지배 구조의 비전을 예시한 사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후 오늘날까지의 상황은 이러한 지주회사로 전환으로의 붐이었다고 할 만하다. 서두에 말한 것처럼 다수의 굴지의 대기업들이 지주회사로 이미 전환했거나 전환을 추진 중이다.

"지주회사 도입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하자"

또 이를 지지하는 확고한 논리도 있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보통 주식 평가의 고저를 보는 척도로 여겨지는 가격 대 수익 비율(PER)이 현저하게 낮다고 알려져 있는데(소위 '한국 할인(Korea Discount)'이라 불리는 현상) 그 주된 원인은 "괜찮은 기업 실적에도 불구하고 '지배 소유 구조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외국 투자자들이 투자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렇다면 지주회사로의 전환은 기업 지배 소유 구조의 투명성을 올려서 이러한 할인 요인들을 제거하여 주가 부양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민간에서뿐만 아니라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정부 기관에서도 큰 공감을 얻고 있는 듯 하다. 그리하여 현재 정부는 지주회사법에 정해져 있는 요건을 크게 완화시키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현행 법에서 지주회사는 부채비율이 100% 이내여야 하며 자회사의 주식 소유는 비상장 회사의 경우 50%, 상장회사의 경우 30%를 넘겨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정부는 부채 비율을 200%까지 올리고 상장회사 자회사의 주식 소유 비율을 20%로 낮추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지주회사로 전환하려는 흐름은 민간과 정부와 재계에 걸쳐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다. 그뿐 아니라 금융 시장에서는 이미 지주회사로 전환했거나 전환을 추진 중인 기업들에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지주회사 펀드'가 속속 생겨날 조짐이 있으며, 이들은 통상적인 수익률을 크게 웃도는 수익률을 약속하고 있다. 실제 그러한 기업들은 주식 시장에서 큰 호응을 받아 큰 폭의 주가 상승을 이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삼성이나 현대 등은 지주회사로의 전환에 대해 "검토한 바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3세 승계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과 관련이 깊으며, 승계가 이루어진 후 혹은 승계 과정과 동시에 지주회사로의 전환이 벌어질 가능성을 보고 있는 이들이 많다.

'효율 극대화' 위한 수직 구조, 더욱 고달퍼진 노동

그런데 지주회사로의 전환에는 이렇게 맑고 밝은 미래만이 펼쳐져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점들은 없는 것일까.

먼저 노사 관계의 문제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주회사가 "소유 경영 최상층이 아래의 부서들을 지배하는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했을 때 이 '효율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곱씹어 보아야 한다.

지주회사 구조에서 이런 '효율성'은 경영 방침의 큰 틀과 주요 결정 사항들은 모회사 혹은 최상층의 지주회사에서 결정되며 자회사들은 이를 실행하는 형태로 증대된다.

하지만 자회사들이 기대했던 실적을 이루는 데에 실패했을 경우, 예전의 기업 형태에서처럼 큰 틀에서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그리고 매각을 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알아서 '생존'을 꾀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절박한 환경이 조성될 경우 그 부담은 고스란히 노동 기율과 업무의 강화로 이어져 노동자들에게 전가되기 일쑤다. 노동자들은 이제 우리 회사가 매각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논리 앞에 더욱 더 고달픈 일터의 나날을 보내게 되기 십상이다.

지주회사는 사용자가 아니다…"노동자는 누구와 협상하나"

노사 관계에 있어서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용자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회사들의 주요한 경영 방침에는 노동자들의 고용 조건에 큰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것이 많지만, 그러한 결정이 회사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저 멀리 모회사 혹은 지주회사에서 이루어지게 되므로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안녕을 위해 협상과 투쟁을 벌일 대상이 막연해 진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지주회사법에서 모회사나 지주회사는 노사 관계에 있어서 '제3자'(!)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주회사는 수익성의 계산에 따라서 자신의 자회사 손자회사들뿐만 아니라 그 회사들의 사업 부문 하나만을 떼어내어 양도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이러한 구조 조정으로 인하여 고용이 불안하게 된 노동자들은 누구와 협상해야 하는가? 올해 초 벌어졌던 하나증권의 업무 양수도 사건이 그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산업은 무너져도, 주가만 오르면 문제 없다"

둘째 산업 구조에 끼치는 영향이다. 과거의 기업 형태였던 일본의 기업집단이나 한국의 재벌 기업집단의 구성에는 분명히 '산업의 효율성과 연관성'에 대한 고려가 짙게 배어 있다.

그러한 형태의 기업들을 이상화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지만, 적어도 그들의 구성과 조직의 바탕에 있어서 몇 개의 핵심 업체들의 구체적인 사업적 고려가 한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지주회사가 산하 기업들의 경영 방침을 정하고 또 인수나 매각을 통해 그 구성을 바꾸는 원칙은 그러한 구체적 산업에서의 사업적 고려가 아니라, 오직 주식 가치라는 기준으로만 평가되는 수익성으로 모아진다.

앞에서 말했듯 지주회사는 바로 이러한 수익성의 극대화를 위해 최대한 탄력적으로 기업 전체의 끝없는 재구조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 그 존재 이유다.

그리고 그 수익성이란 단기적인 시간 지평을 가질 수밖에 없는 주식시장에서의 평가와 직결돼 있다. 이런 원칙으로 끊임없이 기업들의 결합과 분리를 해나가는 것을 업으로 삼는 지주회사가 나라 경제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되면 산업구조(산업 간의 연계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연계라는 두 차원 모두에서)의 건전성에는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게 될까.

지주회사 체제에서 국경은 의미 없다

지주회사는 수익성을 모토로 하여 산업 관계를 재편하기 위해 뛰어드는 존재이므로 이를 산업 자본이니 금융 자본이니 하는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지만, 그 작동 방식과 존재 이유를 따져본다면 철저한 '투자자'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존재다.

따라서 산업 구조로부터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특정 국가라는 공간적 틀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이미 초국적화되어버린 지구적 경제의 소유 구조를 생각해 볼 때 지주회사는 베트남이건 미국이건 어느 곳에서든 원하는 기업을 손쉽게 매각 매수하여 사실상 기업이 초국적화할 수 있는 중요한 관문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선언한 동양 그룹의 언명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지주회사로 전환한 후 동양 그룹은 금융업을 중심 사업으로 둘 것이며, 특히 베트남이나 태국 등 동남아로의 확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한다. 나아가 '주주 자본주의의 제왕'이라는 평을 듣는 사모펀드(PEF) 사업까지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지주회사라는 기업 형태를 금융화(financialization)라는 신자유주의적 축적 형태의 지구적 확산이라는 거시적 맥락 속에서 그 성격을 짚어볼 필요를 보게 된다.

금융 축적의 합리성은 사회적 합리성과 달라…'양극화' 대책, 절실

금융화는 단순히 금융 산업이 비대해진다든가 금융업에서 부가 가치가 발생한다는 차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 경영이나 금융 기관의 행태와 같은 기존의 경제 행위자들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이를 넘어서 광범위한 정치적 사회적 관계도 '시장 자산 가치의 극대화'라고 하는 하나의 원리에 의해 재조직되는 포괄적인 함의를 가지는 역사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주회사는 이러한 새로운 축적 원리에 가장 잘 부합하는 기업 형태의 하나로 각광받는 것이다. 분명히 지주회사라는 형태가 개별 기업의 수익성이라는 경영 원칙에서 보자면 분명한 합리성을 가질 수 있고 이 형태를 지지하는 논자들의 논리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축적의 합리성'이 과연 사회 전체와 나라 살림살이라는 차원에서의 합리성과도 꼭 일치하는 것일까.

지주회사는 단기적인 시간 지평에서 자신들의 개별적 자산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최적화된 논리로 끊임없이 기업 세계와 노사 관계를 재구조화할 것이다. 그리고 수익성이 높은 단위들만 취해나가고 그것이 떨어지는 부위들은 계속해서 떨구어내는 행태를 보일 것이다.

이는 사회 전체가 깊은 심연을 사이에 두고 수익성 높은 부분과 낮은 부분으로 나뉘는 현재의 경향을 강화할 것이다.

이를 우리는 '양극화'라고 부른다. 지주회사라는 '합리적' 기업 형태가 전면화되는 것이 추세라면, 우리는 거기에 숨어 있는 철두철미한 주주 가치와 금융화의 논리가 사회에 끼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섬세한 법적 제도적 장치의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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