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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지렛대인가 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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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지렛대인가 짐인가? [이철희 칼럼] 난감한 민주당, 곤혹스런 안철수…야권 승부수는?
진퇴양난. 민주당의 처지를 말해주는 표현이다. 안철수를 대선후보로 인정하자니 아직 선언도 안했다. 게다가 어느 순간 '나 안 해' 이러면서 손 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다. 박근혜 의원에 이어 지지율 2위를 달리고 있고, 야권의 후보 적합도에선 부동의 1위다. 그러니 엄연히 존재하는 실체로 보는 게 맞다. 따라서 유령처럼 없는 것으로 다룰 수도 없다. 참 난감해 보인다.

안철수 원장으로서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일게다. 이유가 뭐든 출마 의향을 밝힌 적도 없는데 야당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압박하니 마땅찮다. 민주당 후보들과 한 울타리에서 경쟁하는 '원샷' 경선을 하자니 두렵다. 세도 없고 조직도 없는데 불쏘시개 되기 십상이다. 지금으로선 지지율이 경쟁력의 원천인데 민주당에 들어가면 그 지지율이 유지될지도 미지수다.

안철수 현상에는 기성정치에 대한 불만이 담겨 있는데 기성정당에 들어가면 자칫 안철수와 안철수 현상이 따로 갈 수도 있는 점을 그도 맘에 걸려 할 것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아예 독자 출마해 끝까지 완주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승리가 난망하다. 게다가 야권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쓸 우려도 있다. 계속 가자니 길이 험하고 주저앉자니 열망이 깊다. 참 곤혹스러워 보인다.

민주당과 안철수는 야권, 더 크게는 반(反)MB 또는 반 새누리당·박근혜 유권자를 대체로 반분하고 있다. 보수나 박근혜 의원을 지지하는 표는 무척 견고해 야권이 여기에서 빼올 수 있는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 지금의 지지율에서 의미 있는 상승을 위해서는 양자 간에 부득불 제로섬의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최근 민주당 후보들과 안 원장 간의 날선 공방도 이런 측면에서 보면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여권, 민주당, 안철수가 정립하는 3자 구도에서 키는 안철수 원장이 쥐고 있다. 안철수 원장이 유권자의 상당한 몫을 점유하고 있어 박근혜 의원이 지지율이 40%대 언저리에 정체돼 확장을 못하고 있다. 안철수 원장을 지지하는 표 중에는 여권 성향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안 원장으로 인해 야권의 기성 정당이 차지하고 있는 몫도 더 커지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대선 후보의 지지율이 최대로 올라갔을 때조차 20%에 못 미친 것도 안 원장의 존재 때문이다.

안 원장이 지금 당장 출마 포기를 선언하면 분위기상 박근혜 대세가 형성될 것이다. 2007년 고건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으로 이명박 후보가 그의 지지층을 흡수해 박근혜 의원을 앞서나간 적이 있다. 고건이 노무현 정부에서 총리를 지냈다고 해서 야권 성향의 표만 그를 지지한 것이 아니다. 고건 지지에 묶여있던 여권 성향의 표도 풀려나 여권의 후보에게 돌아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안 원장이 대선 출마를 안 하더라도 지금 그만두는 것은 좋지 않다. 민주당이 안정되고, 소속 후보들의 상승세가 확연할 때까지는 버텨주어야 한다.

안철수 원장이 민주당의 압박에 못 이겨 포기하는 모양새도 좋지 않다. 안 원장을 지지하는 표들로부터 원망을 사면 그 표가 민주당으로 오지 않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기성 정당이 미워서 참신한 안 원장을 지지했는데, 그가 민주당의 등쌀 때문에 접었다고 하면 감정이 좋을 수가 없다. 따라서 민주당은 안 원장을 애지중지해야 한다. 수문이 열려 안철수란 댐에 갇힌 물이 밀려나올 때 그 물꼬가 민주당으로 트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건 딱 부러지게 민주당의 몫이다.

민주당에게 최악의 경우는 안 원장이 독자 출마해 끝까지 완주하는 것이다. 17대 대선에서 문국현 의원이 그렸던 코스다. 이건 재앙이다. 3자 정립구도도 부담스러운데 선거전조차 3파전으로 진행되면 민주당으로선 필패다.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끔찍한 구도다. 안 원장이 응할지는 모르겠지만 민주당이 빨리 정치혁신을 해내지 않으면 이런 흐름도 분명히 형성될 것이다.

안 원장이 막판까지, 즉 대선후보 등록 직전까지 버티다가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하자고 하는 것도 민주당으로선 답답하다. 그렇게 할 경우 질 게 뻔해서가 아니다. 여론조사 방식으로 민주당과 안철수 현상이 온전하게 합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제1야당이 대선후보 없이 대선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야 그럴 수 있지만 대선에서 그렇게 되면 민주당으로선 존립을 걱정해야 할 불임정당의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뉴시스

민주당으로선 던져볼 수 있는 승부수가 두 가지다. 하나는 당내 경선을 역동성 있게 진행하는 것이다. 뚜렷한 선두주자가 없이 여러 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구도에서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성패를 알 수 없는 혼전으로 경선이 진행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익숙한 사람 외에 '뉴 페이스'가 등장해서 다크호스가 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어차피 선거도 승부인 만큼 흥미진진하게 진행돼야 시선을 불러 모을 수 있다.

역동적 경선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상잔의 경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누가 더 잘할 수 있는지를 다투는 상생의 경쟁이 돼야 한다. 경쟁은 어떤 주제를 놓고 후보들이 각기 해법을 제시하면서 갑론을박하는 모양새가 좋다. 여기에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내면 금상첨화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이 '대선후보 원탁회의'를 운영하기로 한 것은 괜찮아 보인다. 문제는 얼마나 창조적으로 멋있게 운영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건 민주당 지도부의 몫이다.

다른 하나의 승부수는 혁신이다. 민주당의 면모, 즉 인물과 정책 그리고 행태를 일신하는 것이다. 우선 새로운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공천이 끝났기 때문에 새 인물 영입이 어렵다는 생각은 어리석다. 주요 당직이나 핵심 포스트에 참신한 인물을 영입해야 한다. 장하준 교수나 박경철 원장처럼 대중성 있고 임팩트도 있는 인물을 영입해서 전면에 포진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민주당이 통합진보당의 쇄신파나 지난 총선에서 등장했던 녹색당, 청년당 시민운동 등 젊고 참신한 새로운 그룹을 영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서 새로운 민주당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정책도 공약을 나열하는 식으론 곤란하다. 민주당이 지향하는 노선과 정책, 사회경제적 어젠더 중에서 새누리당·박근혜 의원과 선명하게 차별화될 수 있는 쟁점을 만들어내야 한다. 정책에서 차이가 없으면 인물의 매력이나 캐릭터, 신뢰성 따위가 판단의 잣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행태 변화도 중요하다. 야당이면 으레 취하는 반대 스탠스, 여권의 약점(weak point)이면 무조건 매달리는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행태에서 통치능력과 안정감을 보여줘야 한다.

민주당이 혁신과 경선을 통해서 대중적 열정을 동원하는 데 성공하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이렇게만 되면 안철수 원장도 어쩔 수 없이 주저앉거나 민주당의 틀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민주당이 환골탈태하는 과정에서 최종 후보가 뽑히면 그의 지지율은 안철수 원장을 추월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지율 외에 세력 등 다른 권력자원이 없는 안 원장으로서도 어쩔 수 없게 될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안 원장이 출마를 공식화하고, 본격적으로 정치 혁신에 나서는 것이다. 안 원장의 혁신과 민주당의 혁신이 어우러지면 야권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비중이 늘어나고, 투표율도 올라갈 것이다. 또 안철수현상과 민주당이 하나 되는 것도 어색하지 않게 된다. 이런 구도라면 3파전의 우려도, 민주당이 불임정당이 될 우려도 없어질 것이다. 민주당과 안철수 현상 간에 대립과 긴장이 없어지게 되면 안철수 원장이 야권의 후보가 되더라도 무소속으로 나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은 민주당이 안철수 원장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도 명분도 없다. 안 원장은 그냥 내버려 두면 된다. 곤궁한 유방이 한신을 풀어서 북방을 개척해 항우를 견제했던 식의 전략적 구도관리가 필요하다. 지금 민주당이 할 일은 스스로 혁신하면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다. 안 원장과의 단일화는 안 원장이 출마 선언한 후에 고민해도 늦지 않다. 안 원장을 지렛대로 삼느냐, 짐으로 짊어지느냐는 전적으로 민주당의 역량에 달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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