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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가 점령한 뻔뻔한 유혹, 그 실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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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가 점령한 뻔뻔한 유혹, 그 실체는… [프레시안 books] 미키 맥기의 <자기 계발의 덫>
자기 계발이라는 곤경

"(…) 최근의 조언서들이 변화하는 사회경제적 환경에 독자들이 대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기는 하지만,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많은 혁신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지난 30년간의 자기 계발서들을 개관해보면, 대부분 새로움보다 구태의연함이 드러난다. 사실, 책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부분, 특히 여성에 특화된 것이 아닌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책들은 기존의 책을 그대로 베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80쪽)

자기 계발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뻔뻔함이다. '간절하게 원하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거나, '그게 언제가 될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말고 잡아라. 그러면 너도 부자가 될 수 있다' 같은 내용을 갖은 방법으로 늘려서 기어코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놓는 뻔뻔함. 책 내용 대부분을 이미 수 백 번 반복되었거나, 하나마나한 얘기로 채워 넣는 뻔뻔함. 그리고 이런 것들을 세상에서 처음으로 발설되는 어마어마한 비밀이라도 되는 양 포장하고 단장해서 기어코 팔아치우는 뻔뻔함.

자기 계발서들이 서점가를 점령하다시피하고, 그 폐해가 차곡차곡 쌓여왔음에도 이에 대한 본격적인 비평이나 비판이 존재하지 않았던 배경에는 이 압도적인 뻔뻔함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이 있을 것이다. 사실 자기 계발서의 주장들을 논박하는 것은 전문적인 식견이나 지식 같은 고도의 지적능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반박에도 불구하고 반복되고, 증식하는 구태의연함의 생명력이다. 그리고 이 무지막지한 번성 앞에서 비판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래서 너무 뻔하고, 때문에 섣불리 말할 수 없는' 식의 곤경 속에 붙잡혀있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구태의연함에도 불구하고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자기 계발이 굳건한 존립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보장의 해체, 노동유연화, 실질임금의 정체와 평생직장의 붕괴와 같은 변화들에 의해서 등장한 "새로운 불안정성"(21쪽)이 바로 그것이다. 이 변화들은 개인의 삶을 한치 앞을 바라보기 어려운 예측 불가능의 안개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자기 계발은 이 안개 속 개인들의 불안과 공포에 말을 걸며 그 가지를 사회 속으로 깊숙하고 넓게 뻗어나간다. 실제로 저자는 미국의 자기 계발 시장의 급격한 성장세가 경제적 불안정성의 증대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비정규직화와 금융위기 등으로 나날이 불안정성의 기록 갱신을 이어가고 있는 오늘날 자기 계발을 향한 범사회적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당신의 불안을 위하여

▲ <자기 계발의 덫>(미키 맥기 지음, 김상화 옮김, 모요사 펴냄). ⓒ모요사
대체 왜 자기 계발인가? 국가는 민영화 혹은 사유화를 통해서 거의 대부분의 기능을 시장으로 이전하고 있고, 기업은 경영혁신을 이유로 정리해고와 노동의 비정규화를 단행하는 중이다. 가족은 개인을 보호하는 울타리로서의 기능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으며, 대안 세력들이 빈사상태에 빠진 것은 벌써 오래전 일이다. 너도 나도 빌라도의 황금 대야에서 손을 씻으며 '이것은 나의 책임이 아니다'를 반복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 계발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주겠다고 호기롭게 공언하는 거의 유일한 분야다. 보호와 속박으로부터, 그리고 삶에 대한 기준들로부터의 '해방'을 맞이한 개인들에게 자기 계발은 바로 그 기준들을 '판매'하는 것을 자신의 사업으로 갖는다. 스티븐 코비의 촘촘히 짜인 계획과 소명이든, 뉴 에이지를 비롯한 마인드파워의 영적이고 긍정적인 활력이든, 국가와 사회와 정치가 더 이상 제공해주지 못하는 삶의 기준들이 은혜로운 시장의 힘에 의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된 것이다.

"미국인들은 좌절의 시기에 영감을 얻기 위해, 자신의 삶을 경영하는 방법에 대한 특별한 지혜를 얻기 위해, 그리고 거대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변동 앞에서 확신을 얻기 위해 자기 계발 장르에 몰두하지만, 이 장르가 그들의 근심을 가라앉히기는커녕 오히려 키우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이다." (29쪽)

그러나 자기 계발은 냉혹한 사업이다. 이것은 기존의 불안들을 해소시키기보다는 새로운 수요, 다시 말해 새로운 불안을 창출하는 것에 더욱더 집중한다. "자기 계발서들은 독자들을 불완전한 존재로, 미, 건강, 부, 취업, 애정, 혹은 특정 분야의 기술적 지식 등 어떤 근본적 요소가 결여된 존재로 정의하면서 자신을 해결사로 자처한다."(30쪽) 덕분에 혼란을 줄여보고자 자기 계발에 손을 뻗은 이들은 자기 계발에 몰두하면 할수록 자신의 부족함만을 발견한다.

자기 계발과 열정노동

자기 계발이 가장 천착하는 분야는 단연코 노동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의 사람이 노동을 통해서 경제적 생활을 영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기 계발이 미치고 있는 가장 큰 해악이기도 하다. 요컨대 자기 계발은 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부자들과 더 큰 부자들을 위해 노동자들을 해체하는데 앞장서왔다.

"일과 노동자에 대한 오래된 모델들, 즉 경기 선수, 전사, 개척자, 그리고 모험가는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에 가장 이상적으로 어울리는 모델은 기업가와 예술가로서의 노동자, 예술가-기업가라는 신참이다." (214쪽)

이는 내가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한윤형·최태섭·김정근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에서 시도했던 일련의 작업들, 특히 "열정노동"이라는 개념과 상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가 스스로를 예술가이자 기업가로 여길 때 다른 무엇보다도 자본을 기쁘게 하는 것은 "그들은 무보수로 일한다."(202쪽)는 점이다. 자기 계발은 노동권과 관련된 거의 모든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이를 위한 "하나의 해결책은 모든 노동자들이 자신의 '커리어'를 책임지게 함으로써 고용 안정에 대한 부담을 개별 노동자에게 지우는 것이다."(208쪽) 이 '예술가이자 기업가인 노동자'는 일이 주는 '즐거움' 그리고 '경험'과 자신의 경제적 보상을 기꺼이 맞바꾼다. 인턴, 재능기부, 자원봉사, 아르바이트, 비정규직 등등 다종다양한 곳에서 노동은 헐값에 팔려나간다. 이제는 심지어 내가 한 '삽질'과 내가 받은 보상간의 손익계산을 마치기도 전에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라"는 말을 먼저 듣게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나날이 뻔뻔함을 더하는 우리시대의 자본 앞에서 잘 길들여진 예술가-기업가들의 자선행위는 계속되고 있다.

자아라는 강박을 넘어서

"자아를 자율적인 것, 즉 서구의 급진적 개인주의 사상의 영향 하에 있던 경향처럼 대체로 스스로 형성되고 스스로 통제되는 자아로 본다면, 자아실현의 이상은 어쩔 수 없이 보수적이고 남성적인 개념이 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아의 이상은 거의 여성의 몫이었던 다른 자아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 돌봄 노동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38쪽)

이 모든 사태의 궁극적인 해결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결국 어떠한 종류의 결집 혹은 연대라고 할 수 있다. 무언가를 바꾸어내기 위해서는 어찌되었든 일정한 수의 사람들이 공통의 인식과 목적을 가지고 모이고, 행동하는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 계발서를 관통하는 하나의 법칙을 꼽는다면 '결국 모든 것이 너의 선택이며, 너의 책임'이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을 터다. 분명히 작금의 자기 계발이라는 체제는 모든 것을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것으로 돌림으로서만 존속가능하다. 그리고 이것의 효과는 사회를 '지금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효과는 사회변화를 도모하는 이들이 자기 계발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

그러나 저자는 "자기 계발 문화는 저항의 전(前) 정치적 형태, 즉 정치적 참여로 물꼬를 돌릴 수 있는 개인적 불만의 존재증거"(39쪽)라고 주장한다. 물론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전제가 필요한데, 그것은 "첫째, 각 개인의 형성에 타인의 노동이 투여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새로운 자아 및 자아형성의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고, "둘째, 자아실현의 욕구는 더 이상 자기애적 자기중심주의의 증거나 반문화적 해방충동이 아니며, 오히려 노동시장 참여를 위해 요구되는 '비물질 노동'의 새로운 형태—정서적, 사교적, 감정적 과제들—로 점점 더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39-40쪽)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들의 자아가 서구의 "진정성"개념에 근거한 독창적인, 고유한, 독립된 자아의 상이 아니라, 주로 여성들에 의해서 행해져왔던 "돌봄 노동"과 타인의 영향 속에서 상호적으로 형성된 자아임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각자의 차이보다 육체적으로 체현된 존재로서 우리가 겪는 공통의 취약성에 주목"(289쪽)하고, 점점 사멸해 가고 있는 공론의 장을 확보(290쪽) 할 것을 요청한다. 이는 최근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핵 발전의 위기 같은 사건들과 함께 새삼 다시 부상하고 있는 "위험사회"에 대한 논의와 만난다. 서로의 의존성과 취약성을 인정하고, 상호호혜적인 인정의 관계를 구축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위험사회에 대한 논의가 가지고 있는 맹점을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다. 가령 오늘날의 극단적인 양극화는 위험에 대처하는 능력의 어마어마한 차이를 의미한다. 위험은 보편적일지 모르나 대응은 천양지차이고, 거기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것은 공통의 취약성이라기보다는 계급성이다. 나아가 돌봄(노동)은 이미 3세계에서 1세계로, 약자에게서 강자로 빨려 들어가고 있으며, 그에 따른 돌봄의 양극화 역시 점차 심해지고 있다. 공론의 장은 그 장의 규칙과 언어를 누가 만드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스피박의 유명한 주장 즉 '하위주체는 말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것들에 대한 고려가 없이 이루어지는 상호호혜는 결국 강자들을 위한 게임으로 흘러가게 될 공산이 크다.

물론 그럼에도 저자는 불안과 불만이라는 이 시대의 "정치"의 출발점을 올바르게 지적하고, 자기 계발이 이것의 여러 표현 방식중 하나라는 중요한 통찰 역시 제공하고 있다. 또한 우리가 서로를 돌보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하리라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이 책은 자기 계발이라는 좀처럼 상대하기 버거운 대상에 대해서 상세하고 꼼꼼한 분석을 제시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의 암중모색에서 반드시 필요한 자원을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네 아이를 기르며 부족한 시간과 빠듯한 살림살이에 고달파하는 에이미가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한다. 그 자신이 자기 계발의 화신 같은 존재인 오프라 윈프리와, <당신의 삶을 위해 시간을 내라>의 저자인 셰릴 리처드슨을 만난 에이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도 상점에 가서 잔돈을 세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상점에 가서 애들이 원하는 것을 신용카드 안 쓰고도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매일 돈, 돈, 돈 하는 것도 진저리가 나네요."(166쪽) 이에 대해 리처드슨은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져야 한다는 상투적인 조언을 던지지만, 이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결국 두 자기 계발의 달인은 에이미의 사례를 어정쩡한 태도로 회피해버린다.

에이미의 이야기는 "미국인의 생활이 중산층의 빈곤이라는 현상으로 치닫고 있다는 경제적 실"(167쪽)을 날것으로 보여준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중간층의 몰락과 함께 불만과 불안의 증가세는 가파르다. 이 불안과 불만이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스스로를 '대안세력'이라고 여기는 이들에게 중요한 것이 있다면, 이 "진저리"에 담겨있는 일상의 처절함을 직시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전망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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