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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빙에 대학 졸업장 필수!", 어느 나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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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빙에 대학 졸업장 필수!", 어느 나라 이야기? [프레시안 books]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오! 당신들의 나라>
어떤 평행이론

2008년, 촛불도 사그러지고 날씨도 추워지기 시작하던 11월. 미국에서는 "Yes We Can!"이라는 희망찬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건국 이래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가 등장했다. 국가를 위협하는 흑인들을 처단하는 KKK(백인 우월주의 테러 단체)단의 구국 활약상을 담은 영화인 <국가의 탄생>(D. W. 그리피스, 1915)이 만들어진지 93년 만에, 로사 파크스가 버스에서 백인들의 자리에 앉아 비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 된 지(1995) 53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할렘에서 태어나 가난과 마약에 허우적대던 흑인 소년이, 확고한 지지 기반도 없이 카리스마 있는 연설과 시민들의 자발적 지지를 통해 전 세계를 호령하는 패권 국가의 대통령에 오르게 되었다는 것. 이 사건은 무엇보다도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멈추어 가던 미국의 정신적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기에 충분한 드라마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오바마 앞에는 부시 정권이 8년간 만들어 놓은 재정 적자와 전쟁과 빈부 격차, 이민자 문제와 금융 위기 같은 수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대통령 선거가 돌아온 2012년. 미국에서 전해져 오는 분위기는 2008년만큼 밝지 않다. 미국의 경제적 심장인 월 스트리트에는 성난 군중이 가득 차있고, 미국인들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보다는 이 추락이 언제까지 계속될지에 대한 공포에 휩싸여 있는 듯하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걸까? 건국 이후 최초의 흑인 대통령도,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도, 달변과 잘생긴 얼굴도, 역경을 이겨낸 인간 승리의 스토리도 이 추락을 막지 못했다. 그런데 잠깐, 여기서 데자뷰가 일어난다. 2002년의 우리들을 떠올려보자. 잘생긴 외모와 피부색만 뺀다면, 우리가 광장을 점거하고 뽑았던 대통령도, 그에게 걸었던 커다란 기대도 너무 흡사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한 번 더, 지금 우리들은 부시를 구축하고 오바마를 뽑으면 다 해결된다던 2008년의 미국과 다시금 닮아 있지는 않은가? 오, 이런 우연의 일치라니…. "레알이야! 소름돋았어!?"

Occupy Wall Street™

▲ <오! 당신들의 나라>(바버라 에런라이크 지음, 전미영 옮김, 부키 펴냄). ⓒ부키
<오! 당신들의 나라>(전미영 옮김, 부키 펴냄)의 저자인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미국이라는 사회가 자체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비판적 지성의 어떤 이념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저널리즘에 근거한 정확한 사실 파악, 구체적인 정의에 대한 요구와 휴머니즘, 부도덕한 부자들에 대한 직설적이고 직접적인 공격,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유머.

마르크스의 <자본> 영역판을 읽어보려다가 너무 어렵고 지루한 나머지 포기해버렸다고 당당하게 고백하는 그이지만, 미국의 보수 논객들이 그에게 붙인 비난의 표식인 '마르크스주의자'라는 꼬리표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자본주의와 계급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글은 사변적이거나 이론적이라기보다는, 쉽고 명확하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구색을 위한 논리마저도 부재하는 뻔뻔함, 모든 사태의 원인을 개인에게 돌리는 무책임함, 이 모든 것을 위해 주도면밀하게 강제되는 무지함이 그의 주된 공격 대상이다.

"1980년대에 시작되어 2000년대에 갑작스레 속도가 빨라진 일련의 과정 속에서 우리가 딛고 선 땅이 흔들리며 미국의 지형이 바뀌었다. 부의 봉우리들은 점점 더 높이 솟아올라 구름을 뚫었고, 빈곤의 골짜기는 더욱 깊이 가라앉아 어둠에 묻혔다. 광활했던 중산층의 고원이 계속 침식해 절벽에 튀어나온 바위 형상으로 쪼그라들자 추락 위기에 내몰린 사람들은 겁에 질린 채 절벽 가장자리에 매달려 버둥거렸다. (…)

많은 사람들이 의혹을 품듯이, 소수가 막대한 부를 쌓아올리는 현상과 다수가 불안과 절망에 휩싸인 현상 사이에는 연관이 있다. 상류층이 사치를 부리는 데 사용되는 돈은 어딘가에서, 더 정확히는 '누군가로부터' 나와야만 한다. (…) 지난 10년 동안 자본주의적 혁신이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여력이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서 돈을 쥐어짜는 기술이었다." (9~11쪽)


그가 마르크스도 읽지 않고 계급과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것을 알아채게 된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그가 말하듯 미국은 지난 10년 동안 기업가 정신이 아니라 여력이 없는 사람들을 쥐어짜는 기술의 혁신을 통해서 부를 축적했다. <뉴욕 타임스 매거진>에 따르면 이는 "하위 80퍼센트의 가계가 매년 7000달러짜리 수표를 써서 상위 1퍼센트의 가계에 보내 주는 셈"(39쪽)이다. 그가 이제는 '스스로를 국가로 여기는 것 같다'고 평가한 초 거대 글로벌 유통 기업 '월마트'나, 비싼 보험료를 받아 챙기면서도 보험금 지급은 요리조리 피하는 데 도가 튼 사설 의료보험사들, 중산층에게 서브프라임 사태를 도래시킨 장본인인 금융·대부 업체들 등이 이 7000달러를 매년 상납받아 천문학적인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장본인들이다.

그는 과거 '80대20'이라는 숫자로 대변되었던 불평등의 정도가 이제는 '99대1'이라는 더 정확한 숫자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환상적인 파국에 대해 분명히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신용 위기를 불러온 것은 신도 아니고 추상적인 경기 변화도 아니다. 사람이 한 짓이다(금융 기관이라는 탈을 쓰는 경우도 많다). 법정에 세워진 극소수를 제외한 그들 대부분은 여전히 돈을 펑펑 쓰면서 평범한 채무자들의 피와 눈물로 배를 불리고 있다. 1930년대의 구닥다리 방식이긴 하지만 우리 모두 월 스트리트로 행진해 가야하지 않겠는가?"(103쪽)

이 의문형의 주장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스스로를 99퍼센트라 주장하는 무리들은 'Occupy Wall Street'라고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월가를 점령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은 Occupy Wall Street'™'이라는 사실. 왜냐하면 현재 이 캐치프레이즈는 시위대에 의해 상표권 등록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꼭 월가가 아니더라도, 미국 내 99퍼센트들의 불만은 점점 커져간다. 또한 미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글로벌 금융 자본과 1퍼센트의 횡포에 저항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

파이널 판타지 아메리카

"괴롭힘과 통상적인 방침 사이의 모호한 경계선을 보여 주는 까다로운 사례가 있다. 2006년 54세의 재닛 올란도는 캘리포니아의 가정 보안 업체 '알람원'을 고소했다. 이른바 동기 유발 체벌이 이유였다. 경쟁사의 금속 표지판으로 엉덩이를 때리는 그 체벌은 회사가 영업자들 간의 경쟁을 조장하기 위해 고안한 장치로, 체벌을 당한 영업자들은 남성과 여성이 섞여 있었다. 한 영업 사원의 증언에 따르면 "앞으로 걸어 나가 벽을 짚고 몸을 굽힌 뒤 표지판으로 엉덩이를 얻어맞는" 방식이었다. 실적이 저조한 영업자에게 가해진 체벌로는 머리에 달걀 던지기, 얼굴에 생크림 뿌리기, 기저귀를 차고 근무하기 등도 있었다." (145쪽)

계속해서 에런라이크는 환상의 나라 미국의 모습을 예의 유머러스한 필치로 그려낸다. 돈이 없다고 어린 환자들을 내모는 병원, 아시아인 여성을 감금해 노예로 부려먹은 부자들, '감시와 처벌'이라는 단어가 에누리 없이 맞아 떨어지는 미국 기업들의 최첨단 스펙터클 반(反) 노동 활극에 이르기 까지. 한국의 교육열을 보고 배우자고 주장했던 오바마의 말이 무색하게, 미국 18~23세의 30퍼센트 정도를 차지하는 대학생들은 졸업 후에도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빚더미에 올라앉아있다. "요즘에는 대학 졸업이 쟁반을 나르기에 너무 과한 학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도시의 일부 식당에서는 학위가 필수 요건처럼 보일 정도다. 그래야만 그날의 스페셜 요리 이름을 제대로 발음할 수 있을 테니까."(112쪽)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좌파들을 긴 고민에 빠트렸던 미국의 '중간 계급'은 이제 도시 전설 같은 것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늘어만 가는 식품 바우처(저소득층에게 식료품비를 지원해주는 미국의 복지 제도) 신청자와 푸드 뱅크 앞의 긴 줄이 이 몰락을 대변하는 주요한 풍경이다.

이런 이야기에 즈음하여 다시 기시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가계 부채는 역대 최고를 갱신하고, 기업들은 온갖 방편을 동원해 노동 깨기에 여념이 없으며, 매년 고등학교 졸업자의 80퍼센트가 대학에 입학해 졸업 후 막대한 빚을 지고 비정규직이 되는 가운데, 대기업들의 영업 이익은 계속해서 증가하는 나라. 노동자를 죽이고, 자영업자를 죽이고, 아이들을 죽여도 뒤뚱거리며 끊임없이 굴러가는 잔인하고 얄궂은 나라. 어느 쪽이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자꾸만 닮은꼴을 연출하느라 여념이 없는 나라. "오! 당신들의 나라" 이역만리 미국 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네가 알던 미국의 배신

우리는 이미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작품들이나, 인터넷을 타고 오는 여러 정보들을 통해서 천조국(국방 예산이 1000조에 가깝다는 이유로 인터넷에서 미국을 부르는 은어)의 실상을 알게 된 바 있다. 에런라이크의 책은 걷잡을 수 없는 친숙함과 함께 이 실상에 대한 좀 더 정교한 '알리미'가 되어줄 것이다.

물론 이 책이라고 딱히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저항으로 따지자면 미국인들이 월가로 달려가기 이전부터 우리는 계속 시청과 광화문을 점거하고 있었다. 만약 Occupy Wall Street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우리들의 촛불이 어떻게 나타나고 어떻게 꺼졌는지를 생각해가면 된다. 월가를 점거한 이들이 바라는 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미국의 '정상화'다. 모르긴 몰라도 그 곳에서 자본주의가 진정으로 멸망하길 바라는 사람은 지젝을 포함한 극소수에 한정될 것이다.

특히 99대1이라는 숫자를 내건 월가의 투쟁은 그 범위를 전 세계로 넓혔을 때에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선진국들의 부를 위해 구조적인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비롯하여, 대체 월가가 뭐하는 곳이고 왜 중요한지도 알지 못하는 미국 내 극빈층에 이르기까지. 이 구도에 따르면 월가의 시위대는 99퍼센트에 속하기는 해도 상위 10퍼센트 안에 충분히 들고도 남을 것이다. 월가에서의 투쟁을 폄하해야할 이유는 없지만, 지젝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기억하십시오. 문제는 부패나 탐욕이 아닙니다. 문제는 체제 자체입니다." (슬라보예 지젝, 2011년 10월 11일, 월 스트리트 주코티 공원의 연설에서)

마지막으로 에런라이크의 다음과 같은 언급을 소개하고자 한다.

"나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비밀이 있다. 아인슈타인, 뉴턴, 그리고 수천 명의 계몽적 사상가들을 통해 내게 전해진 비밀이다. 경제 지도자들이 신비주의에 빠져들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정신적 진동만으로 뭐든지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멀리 아이다호로 가서 농사짓는 것을 고려해 볼 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도 그런 내용을 담은 DVD를 곧 내놓을 예정이다."(257쪽)

참고로 나도 비슷한 내용의 DVD를 더 저렴한 가격에 내놓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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