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된 대통령 직속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미래창조과학부 흡수에 이어 6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의 졸속적인 수립 과정까지, 초반부터 박근혜 정부의 뒷걸음질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2013년은 이렇게 원래 예정되어 있는 사안들과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을 염두에 두고 미뤄져 온 온갖 사안들이 윤곽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고리 1호기, 월성 1호기 폐쇄나 전면적인 스트레스 테스트, 건설 및 계획 중인 신규 핵발전소 문제, 밀양·청도를 비롯한 초고압 송전탑,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독립과 개혁, 봇물처럼 터져 나온 핵 발전 관련 은폐와 비리,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 등이 모두 해결되지 못하고 해를 넘겼다.
이 중 상당수는 6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 그리고 이와 함께 예고된 전력 시장의 민영화, 2차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 사용 후 핵연료 저장을 위한 공론화와 한미 원자력 협정 등의 중장기 계획들로 가시화,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다른 대부분의 의제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대선을 통한 돌파를 노렸던 탈핵과 에너지 전환에 동의하는 광범위한 세력은 위와 같은 결정 과정에 아마도 '참여 받지(이런 식의 용어 사용에는 물론 이유가 있다)' 못할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광범위한 세력은 핵 문제만을 다루고 있지도 않고 전 지구적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을 비롯해 각자의 강조점에 차이가 있지만, 가장 뚜렷한 공통 분모가 '탈핵'이기에 편의상 탈핵 세력이라고 해두자.
보통 이 '탈핵 세력'이 정부의 의도된 소외에 대응하는 전통적인 방법은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와 참여 보장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요구가 그대로 받아들여질 리는 100퍼센트 없으며, 잘해야 탈핵 세력의 일부가 선별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탈핵 세력은 이 소수에 기대어 정보를 얻고, 얼마간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며, 가끔은 날카로운 분석력으로 폭로의 소재들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이다. 지금의 운동이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지점, 정부가 참여의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으면 정말로 참여를 못하는 지점, 그래서 중앙과 지방의 정권 교체 시기마다 운동의 성패가 좌우되는 지점, 정부가 마련하는 계획에 '반대'를 넘어 '대안'이 되지 못하는 지점, 우리 스스로 수세적 프레임 안에 입주 준비를 마치는 지점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참여가 배제된 정부만큼이나 새로운 시민 참여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지점. 절차적 민주주의가 확대되면서 언제부터인가 많은 사회 운동은 요구를 하는 데 익숙해지고, 스스로 실현해내는 일에는 심각하게 소홀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풀뿌리는 빈약해지고, 소위 말하는 공중전이 중심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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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합의와 시민 참여, 우리가 하자
한때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범야권의 그림자 내각 내지는 드림팀을 구성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여러 가지 정치적 의미를 가진 제안이기에 그 자체로는 별도의 평가가 필요하겠지만,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실질적인 대안을 만들어가는 방식으로는 흥미로운 제안이었다고 본다.
또 다르게는 미국의 부시 정부 시절, 이상적인 리더십을 그리며 사람들의 속풀이가 되었던 드라마 <웨스트 윙>의 판타지도 있다. 혹자가 이 명백한 판타지를 보면서 '가장 어두운' 지금(당시 이명박 정부를 일컫는다)이야말로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내일'을 꿈꿀 때가 아니냐고 반문한 적이 있는데, 한발 더 나아가는 게 어떨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집권을 대비한 그림자 내각이 아니고, 마음의 위로를 얻는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사회 전환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을 바로 지금 하는 것'이다. 그리고 탈핵 세력에게 그것은 스스로가 탈핵과 에너지 전환을 위한 상시적인 전환 관리 위원회가 되는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새로운 것도 아니다. 탈핵 세력에 속한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미 오랫동안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지속성을 가진 사회적 합의 기구에 대해 주장해 왔고, 간헐적으로는 2004년 전력 정책 시민 합의 회의와 같이 중앙 또는 지방 정부의 지원 없는 독자적인 숙의 민주주의의 경험과 지방 정부들을 중심으로는 한 실험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실험들이 장기적이고 전면적인 사회 전환을 위해 지속적으로 추진된 적이 없으며, 아주 작은 지방 정부라 해도 집권과 연결되고야 만다는 점이다. 이런 소극적 실천으로는 소위 '어두운 시기'를 어둡게 보낼 수밖에 없다. 사회적 합의는 요구 사항이기에 앞서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우리가 스스로 이 과정을 실천하는 순간 분명해지겠지만, 사회적 합의는 그것의 제도적 보장보다도 훨씬 더 큰 숙제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탈핵 세력 내에서도 합의되지 않은 첨예한 쟁점들을 잔뜩 가지고 있으며, 사실 합의를 위해 만나본 적도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탄소세나 배출권 제도와 같은 껄끄러운 주제들에 대해 생각해 보라.
산업 구조 개편을 포함한 정의로운 전환은 또 어떠한가? 같은 민주노총이라 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고, 이를 표면화하는 것은 상당히 불편한 일이다. 이제는 탈핵 세력 내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한 지역별 에너지 자립은 어떨까? 수도권의 어마어마한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자기 생산을 늘리는 것은 과연 언제 어디까지 가능하며, 상당한 전환이 이루어지기까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지역의 희생은 누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보다 시급하게는 올해부터 정부가 공론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사용 후 핵연료의 관리 문제는 당장에 환경 단체들조차 제대로 논의해보지 못했다. 제도화의 덫에서 자유로운 지금, 우리는 이런 점들을 채우고 서로 신뢰를 형성해 가야 한다.
시민 참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우리의 대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는 얼마나 많은, 그리고 직접적인 시민 참여가 이루어졌는가? 정부가 시민을 만나지 않는다면 우리야말로 더 많은 시민들을 불러내고 만나야 한다. 정부가 짜놓은 판에 약간의 참여를 보장받는 데 힘쓰기보다는, 우리가 짠 판에 그들을 부르자.
시민 사회가 지속적으로 개최하는 시민 합의 회의에 매년 새로운 시민을 초대하고, 이를 통해 대안 에너지 기본 계획, 대안 전력 수급 계획을 수립하자. 이것은 지금의 탈핵 세력만으로도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용에 있어서도 우리는 이미 탈핵과 에너지 전환을 위한 대안 시나리오만 3개를 보유하고 있고, 이는 앞으로 더 많이 더 정교하게 만들어질 것이다. 지상파 방송은 탈 수 없어도 적지 않은 대안 매체와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를 통해 사회적 토론과 학습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렇게 우리가 짜는 판에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고, 우리가 짜는 시간표에 따라 현실을 점검하고 과제를 실천하자. 대안 요구를 넘어 스스로 대안이 되고, 시민들에게 판타지가 아닌 실재를 체험하게 하자. 그것이 '어두운 시기'를 즐겁게 살아내는 비책이며, 탈핵과 에너지 전환을 우리 사회의 컨센서스로 만드는 길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이런 시도는 이명박 정부의 '녹색 성장'이 아닌 '초록 대안'을 찾으려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활동의 일부분입니다. ☞바로 가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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