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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업 아빠'가 감옥에서 보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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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업 아빠'가 감옥에서 보낸 것은… [편집자, 내 책을 말하다] 김재호의 <꽃피는 용산>
'철거민'이라고 하면 달동네, 가난 같은 단어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하지만 김재호 씨는 가난하고 불쌍한 철거민이 아닙니다. 흉악한 테러리스트는 더더욱 아닙니다. 늦둥이로 본 외동딸 혜연이를 키우는 재미에 푹 빠졌던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은 '전업 아빠'일지 모르겠습니다.

약속 시간에 늦었다고 연거푸 사과하는 모습. 딸 이야기에 수줍은 듯 쑥스럽게 웃는 모습. 때 묻지 않은 순박함과 밝은 모습에 '정말 이분이 모진 참사를 겪고 감옥에서 4년을 살다 나온 분인가' 하는 생각과 함께 '아, 흔히 말하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 이런 사람을 말하는 거구나' 싶은 인상이었습니다.

김재호 씨는 1984년부터 용산에 터를 잡고 금은방을 하며 평범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개발 때문에 가족과의 추억이 깃든 가게가 보상도 못 받고 강제로 철거될 위기에 놓입니다. 가진 자에게는 100배의 이익을, 없는 자에게는 1/10을 보상하겠다는 결정을 순순히 따를 사람은 없겠죠. 하지만 부당함을 알리고 바로잡을 방법은 너무나 적었기에 망루에 올랐지만, 가까스로 살아남은 그는 오히려 테러리스트로 몰려 4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히고 맙니다.

슬프게도 김재호 씨가 빼앗긴 것은 가게와 자유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늘 함께였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자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딸 혜연이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게 됩니다. 엄마는 아픈 딸을 돌보며 아빠 없는 집을 홀로 꾸려나가야만 했습니다.

▲ <꽃피는 용산>(김재호 지음, 서해문집 펴냄). ⓒ서해문집
이런 소식을 전해들은 김재호 씨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만화 편지를 그리기 시작하면서 기나긴 수감 생활을 고통의 시간이 아닌 희망과 기회의 시간으로 바꾸어나갑니다. 어렵게 구한 복사지에 손으로 정성스럽게 그림을 그리고, 어린이용 사인펜으로 색을 칠하고, 딸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를 펼쳤습니다. 감옥에서 겪은 다양한 이야기는 물론이고, 가족의 소식을 듣고, 때로는 추억을 바탕으로 상상해서 그린 가족 모두의 이야기,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편지는 감옥 담장을 사이에 두고 가족의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소통의 통로였습니다.

애절한 사연, 한 칸 한 칸 장인정신으로 그려낸 수공예품 같은 편지들을 보며 그저 감탄만 하다가 순간 제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대체 이걸 어떻게 책으로 만들지?!"

고심 끝에 가족의 일상을 중심으로 삼고 이야기를 묶기로 했습니다. 참사가 있기 전 세 가족이 모두 모여 살던 시절의 따뜻한 추억이 담긴 '우리가 살던 용산'. 감옥에서 가족을 그리는 아빠의 생각을 담은 '아빠의 편지'. 그리고 아빠와 헤어진 아픔을 견디며 살아가는 딸과 아내의 모습을 담은 '혜연이의 봄, 여름, 가을, 겨울'과 '아내, 그리고 혜연이 엄마'를 순서대로 보다 보면 재개발이 평화롭던 한 가정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그 가족이 어떤 시련을 견뎌야 했는지 느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이렇게 지극히 평균적인 삶을 살고 평범한 생각을 하는 사람조차 감옥에 가야 하는 지금의 사회는, 과연 누구를 위한 사회일까요.

한 가지 더 전하고 싶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기존에 나온 용산 관련 책들과는 달리 <꽃피는 용산>(김재호 지음, 서해문집 펴냄)는 투입된 특공대원들조차도 지옥 같았다고 표현한 용산참사에서 살아 돌아온 김재호 씨가 직접 쓴 이야기입니다.

생생한 증언으로 듣는 강제철거의 실상과 용산참사의 진실을 예상했을지도 모르지만 김재호 씨는 폭력과 불의, 분노와 절망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대신 가족과 사랑, 이해와 관용, 그리움과 의지, 그리고 꽃과 봄을 그려 딸에게 보냈습니다. 험악한 세상, 팍팍한 인생살이에 시달려 이웃의 절규를 돌아볼 여력도 없이 얼어붙어 버린 우리 마음을 녹이고 꽃피우는 원동력은 바로 이런 감정이 아닐까요.

영화 <세븐>의 마지막 장면에서 모건 프리먼은 말합니다.

"'세상은 아름답고 싸울 가치가 있다'라고 헤밍웨이가 말했다. 나는 뒷부분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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