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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은 고사하고 제작자체가 어려운 현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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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은 고사하고 제작자체가 어려운 현실 ① [노종윤의 영화정석]
A제작자는 영화를 제작하기 위하여 투자배급회사 투자담당자를 찾아간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몇 차례 인사는 했지만, 같이 작업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미팅 자리가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미팅은 영화 제작자가 자신이 제작하려는 영화에 투자를 받고 배급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의무적으로 거쳐야 할 통과의례인 것이다. 시나리오를 건네고 예상 제작비 내역서와 캐스팅 후보를 전해준 후, 몇 일후에 확답을 주겠다는 대답을 듣고 제작자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후, 투자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시나리오에 대한 의견을 듣고 어떤 결정이 났는지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만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전화를 끊어야만 했다. 그 이유는 투자를 못하겠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은 제작자는 담배를 한 대 피면서 잠시 생각을 멈춘다. 생각을 멈추려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머리가 텅 빈 것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나서 제작자는 제2, 제3의 투자사를 만나는 과정을 되풀이 해야만 한다. 그러다가 가까스로 투자가 결정이 되면 제작자는 바쁘게 제작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야 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 동안 준비한 작품을 무기한 연기시켜야 한다. 작품연출을 위해 몇 달 또는 몇 년을 준비한 감독은 당분간 무기한 휴식기를 가져야만 한다.
웰컴 투 동막골 ⓒ프레시안무비
A제작자가 투자사들에게 투자 부적격 판정을 받은 이유는 여러 가지이다. 첫 번째는 시나리오가 상업성이 없다고 판단되기 때문일 것이다. 두 번째로는 주연배우들의 스타성이 없다는 판단일 것이다. 세 번째로는 제작자에 대한 믿음 또는 감독에 대한 신뢰성이 적기 때문일 것이다. 네 번째로는 제작비 규모가 너무 커서 흥행이 된다해도 많은 이익을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경우는 조건부 투자도 이루어진다. 시나리오를 수정한다는 조건 또는 스타성 배우를 캐스팅한다는 조건, 제작비 규모를 줄인다는 조건 등을 제시하고 제작사가 이에 응하면 조건부 투자를 확정한다. 물론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2005년에 개봉된 영화 중에서 투자자들이 투자를 기피한 영화들 중에서 몇 편의 영화는 좋은 성적의 흥행을 거두기도 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웰컴 투 동막골>이다. 이 영화는 제작비 규모가 커서 투자회사들이 기피한 작품이었다. 촉망받는 신인감독에다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들이 확정되었지만 결국 스타성이 부족하다는 이유가 따라 붙었다. 결국 제작비를 줄인다면 투자를 하겠다는 조건부 투자 결정이 났다. 그러나 제작사측에서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규모에 맞는 제작비가 투자돼야 한다며 다른 투자배급사로 뛰어 다녔다. 대단한 모험이었다.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조건부 투자를 포기하고 다른 투자사를 찾는다는 것은 어려운 결정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다른 투자배급사에서 제작사의 제작비 요구를 흔쾌히 수락하면서 <웰컴 투 동막골>이라는 영화는 스크린으로 상영될 수가 있었다. 최근에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투자배급사인 L사에서는 임권택 감독의 차기작품에 투자를 하겠다고 했다가 스타급 배우가 캐스팅이 되지 않자 결국 투자를 철회했다. 그러나 제작사가 바뀌면서 <천년학>은 제작의 불씨가 다시 살릴 수 있었고, 우여곡절 끝에 주연배우를 교체하면서 투자가 확정됐다. 그렇게 되기까지 임권택 감독의 작품이 제작비 때문에 제작 자체가 좌절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주변 영화인들의 열정적인 지원이 큰 힘이 됐다고 생각한다.
왕의 남자 ⓒ프레시안무비
영화제작은 흥행보다는 더 어려운 작업 중의 하나이다. 어떤 영화가 흥행이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시나리오와 캐스팅 그리고 감독과 제작자의 능력만 믿고 제작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투자하는 담당자들도 확실한 기획영화는 투자하기가 쉽겠지만, 단지 가능성만 보고 투자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영화흥행만 쫓다가는 낭패를 보는 경우도 많다. 그 이유는 영화라는 것이 흥행만을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작품이 제작되었을 경우에는 관객이 흥행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최근에 한국영화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우고 있는 <왕의 남자>를 보면 작품에 대한 좋은 평가와 함께 최고의 흥행을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왕의 남자>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이 영화흥행 후,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장르가 사극이고 요즘 10대들에게 인기있는 스타 연기자들이 출연하는 것도 아닌데다가 블록버스터급의 영화도 아닌 영화에 누가 쉽게 투자를 하려 했겠는가?" 라고 얘기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영화는 사람이 만든다. 그 사람은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쏟는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관객들에게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요즘 한국영화는 그 혼신의 힘을 쏟기도 전에 제작비를 투자받기 위하여 평가부터 먼저 받는 꼴이 되버린다. 그러다보니 흥행성만 추구하는 영화들이 많이 나오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면 바로 그렇게 흥행만 추구하는 영화들만 투자를 받게 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면 많은 영화인들은 자신의 열정을 투여하기 전에 좌절부터 겪게 될 것이다. 한국영화는 과연 어떤 미래를 맞게 될까? 요즘 들어 부쩍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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