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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와 김대중을 넘어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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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정희와 김대중을 넘어설 수 있을까? [2007 대선이야기] 합리적 토론과 대안이 없는 대선 양상
2007년 12월 19일로 예정된 제17대 대통령선거는 특정 개인과 그를 지지하는 정치세력이 앞으로 5년간 국가를 운영할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국민의 심판을 받는 장(場)이다.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대통령 선거 양상은 1987년 이후 그 어느 대선보다 각 정당(또는 정치세력)의 유력 후보가 가시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잠재적 돌발변수들이 산적한, 따라서 불확실성이 높은 상태다. 이러한 대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이번 선거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한국의 미래와 관련해 다양한 역사적 가능성을 분석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북한의 비핵화와 남북 평화공존, 한미·한중관계의 재정립, 세계화 경쟁 속에서의 한국의 생존과 같은 대외문제와 각종 국내 경제·사회 현안들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정치세력들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권력 장악에만 진력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국내정치적으로 1987년 6월항쟁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실질적 민주주의의 과제인 경제·사회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채택하여 경제·사회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진보진영의 비판으로 인해 실질적 민주주의의 중요성이 이번 대선에서 더욱 부각되고 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고?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 상태를 논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불안정한 가운데 실질적 민주주의가 절차적 민주주의 틀 속에서 일정하게 다루어지고 해결되어 왔다는 점이다. 즉 한국 민주주의에서 더 시급한 것은 실질적 민주주의보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기반을 더욱 굳혀야 하는 것이다. 대다수 전문가들과 일반 국민들이 한국에서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립을 당연시하고 실질적 민주주의의 과제 해결을 강조하지만, 아직 절차적 민주주의의 상태를 재점검해야 할 위태한 상황인 것이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대상에는 헌법, 법률만이 아니라 정당제도와 각 정당의 당헌도 포함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노 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 제안, 한나라당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통령 후보 선출을 둘러싼 내홍과 갈등, 열린우리당의 분열과 민주당 등과의 통합 모색 및 그에 따른 대선 후보 선출 기도 등 여전히 절차적 민주주의의 하부구조가 불안정하다. 제도나 절차가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절차적 민주주의의 문제는 이해 당사자들이 이미 합의한 제도나 절차를 제대로 시행도 않고, 자신의 유·불리에 따라 언제든지 비판·불복하며 뜯어고치는 행태가 너무도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결과에 대한 불복으로 발전하곤 한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주요 대상인 정당의 작동도 여전히 취약하기만 하다. 열린우리당은 2003년 자기 모태인 민주당을 파괴한 채 창당하였으나, 2007년에는 자신을 또 다시 부정하면서 대선 승리를 통한 권력 장악에 매진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행위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즉 자신의 정치행위에 대해 대국민 사과나 자기반성조차 필요 없을 만큼 정치적 필요와 이득에 따른 분열과 재조직이 당연한 정치적 행위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권력을 위해 세력을 째고 다시 결합시키는 것은 한국 정당정치의 오랜 모습이지만, 이러한 경향은 1987년 김대중 씨가 당시 통일민주당을 탈당하고 평화민주당을 창당한 이후 많은 정치세력에게 너무도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한국 정치의 DNA로 유전되고 있다.
  
  이러한 정당의 분열과 재통합 과정은 빈번한 여론조사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강화되는 것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특히 대선 후보를 중심으로 한 한나라당의 분당 가능성에 대한 끊임없는 여론조사나 새 통합신당의 가상 대선후보에 대한 여론조사 발표는 공신력 있는 언론기관에서 반복적으로 보도돼 국민에게 분당이나 새 정당의 등장을 암시하고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끔 기여하는 것은 아닌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유리한 과거에 대한 정치적 재해석
  
  절차적 민주주의 운영에 필요한 또 다른 조건은 정치세력 사이의 상호공존에 대한 합의다. 그러나 빈번한 정당의 분열과 통합, 정치세력 사이의 뿌리 깊은 상호불신은 절차적 민주주의를 더욱 악화시켰다.
  
  한나라당은 지난 몇 차례의 국회의원 선거와 대선 실패를 거치면서 인적 청산을 통해 스스로 변화를 시도하였지만 여전히 구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현 집권세력은 자신에 대한 반성 없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한나라당을 끊임없이 비판해 왔다. 즉 열린우리당 세력은 자신을 '평화민주개혁세력'이라고 지칭하면서 한나라당을 권력에서 배제시켜야 할 냉전수구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며칠 전 열린우리당 장영달 원내대표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북한과 공존은 불가능하고 남북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단언한 데에서 극단적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에는 민주노동당도 가세하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빈번한 절차적 민주주의의 경시와 정당의 이합집산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은 정치인들의 현란한 수사여구 사용이다. 이들은 자신의 정치적 변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다양한 수사어귀를 동원하며, 이 과정에서 유리한 과거를 재활용하고 있다. 각 정치세력은 정치적 이익과 필요에 따라 과거의 상징이나 인물, 또 그 업적을 끊임없이 재해석·재창조하고 있다.
  
  현재 한국정치에서 가장 큰 유·무형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두 인물은 박정희와 김대중이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의 정치적 위상과 아버지에 대한 맹목적 옹호, 그리고 그가 재임 중 이룩한 경제발전의 신화를 축으로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 정치세력에 의해 박정희는 이미 부활했다. 그리고 김대중은 호남에서의 정치적 지분을 바탕으로 2000년 6월 남북정상 회담 이후 범여권 내에서의 절대적인 위상과 자신의 업적을 유지하려는 개인적 의도로 인해 이번 대선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면 야당이나 범여권 세력의 잠재적 대통령 후보들은 어떠한가? 정치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른 민주노동당을 제외하고, 이들 잠재적 후보들이 박정희와 김대중의 그림자에서 벗어났다는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각종 미래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들은 박정희와 김대중의 사고 틀에만 머물고 있는 상태다. 즉 이들은 한국의 미래에 대해 깊은 고민은 물론이고 미래를 위한 구체적 정책적 대안과 담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민주노동당은 '진짜 진보세력'을 자임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 운동세력과 책임정당의 차별화를 제대로 이루지 못한 가운데 대안 정책도 현실성이 크게 떨어지는 상황이다.
  
  아직 합리적 선택의 계기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면 국민은 이번 대선에서 당면 과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과연 국민은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한국의 생존을 담보하고, 북한을 포용하지만 남북합의의 이행 과정에서 대한민국 국민을 보호할 수 있으며,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한 비용문제까지 해결하고 모든 계층이 공감할 수 있는 책임 정치세력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한미동맹 재편작업을 합리적으로 마무리하고 바람직한 미래의 한중관계를 확립할 수 있는 정치지도자와 정치세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지금까지의 대선 진행상황을 보면 이같은 미래에 대한 심각한 고민은 찾을 길 없고 논쟁과 큰 목소리만 횡행할 뿐이다. 특히 이번 대선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과 달리 대선에 끊임없이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그 효과는 이미 고건의 중도탈락에서 현재화되었다.
  
  과연 국민은 각 정치세력 간의 극심한 불신과 증오 속에 진행되고 있는 이 '총성 없는 전쟁'에서 누구를 위해 어떻게 투표해야 할 것인가? 고민만 깊어갈 뿐 아직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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