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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부는 당당히 '위생검역 주권' 행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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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부는 당당히 '위생검역 주권' 행사하라

<기고> '자가당착 정부'에 보내는 상식적인 고언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의 서한을 들고 이곳 프랑스까지 와서 또 하나의 원정투쟁을 하고 있는 이유는 정부가 미국 광우병 정책에 대한 OIE 총회의 결정을 근거로 광우병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더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행동은 지난 1년여 동안 정부가 보여주었던 미국산 쇠고기 위생검역 정책의 과정을 지켜보고 감시해 온 나름의 판단에 근거한다.

지난해 정부는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을 위한 4대 선결조건으로 쇠고기 수입재개를 요구하자 FTA 추진선언 약 20일 전인 1월 13일 전격 수입을 허용했다. 정부는 2005년 한 해 동안 우리측 전문가들이 해 온 과학적 검토를 바탕으로 결정했다고 항변하지만 이와 관련된 2005년 농림부 보고서들을 보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알 수 있다.

OIE 총회에선 "살코기 안된다"…한국에선 "수입 재개 약속"
▲ 농림부가 2005년 5월 작성한 '제73차 국제수역사무국 총회 결과 보고'. 농림부는 이 보고서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살코기에도 광우병 감염 위험이 있다"고 적시했다. ⓒ프레시안

우선 2005년 11월 농림부 BSE(광우병) 전문가 그룹이 가축방역협의회에 제출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한 검토 보고서'를 보자. 여기에는 '미국이 영국, 캐나다 등 BSE 발생국으로부터 육골분을 수입한 실적이 있고, 소에게 의도적으로 급여했기 때문에 BSE 원인체가 미국 내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BSE 검사 프로그램에 있어서도 영국, 일본 등과 달리 미국은 전체 도축두수의 1%만 검사하고 있다', '미 식품안전청(FSIS)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 1월부터 2005년 5월까지 미 쇠고기 작업장에서 총 1036건의 위반사례를 확인했다'고 적혀 있다.

또 2005년 제73차 OIE 총회에서 농림부는 "살코기와 혈액제품에 광우병 원인체가 오염되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이를 일본 및 대만 대표와 공조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30개월 이하의 살코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했다.

게다가 농림부는 2005년 2월 28일, 4월 19일, 6월 5일 세 차례에 걸쳐 열린 '한미 BSE 전문가 회의'에서 우리측 전문가들이 미국에 요구했던 최소한의 요구조차 반영하지 않은 채 수입재개를 약속했다. 당시 우리측은 △한국은 광우병 미발생국이기 때문에 일본보다 강한 조치를 원함 △SRM(광우병 위험물질)을 모든 동물용 사료에 사용금지 △한시적 시행중인 예찰강화 프로그램의 기간 연장 △도축시 모든 연령소에서 SRM 제거 △소의 개체식별 시스템 조기 시행 등 총 5가지의 요구사한을 미측에 제시했다. 그러나 이 같은 요구사안 중 '도축시 모든 연령소에서 SRM 제거'라는 단 한가지만 반영된 채 쇠고기 협상이 타결됐다.

비상식적 결정의 배경은 '누구나' 알고 있는 '압박'

또 농림부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절차가 진행 중이던 지난해 3월 미국에서 세번째 광우병 소가 발생됐음에도 치아감별법 동원 등 비상식적 태도로 일관한 끝에 같은 해 9월 또다시 수입결정을 내렸다.

일본 정부는 2006년 5월 OIE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대부분의 나라가 출생 기록을 동반한 전국규모의 개체식별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은 상황에서 치열판정으로는 8세 미만인지, 8세 이상인지를 판별할 수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의 농림부는 전문가까지 파견하는 열성(?)을 보이며, 미국의 주장대로 8세 이상이 맞다며 수입재개를 결정했던 것이다. 한미 수입위생조건에 따르면, 8세 이상이면 수입중단조치를 내릴수 없다.

이같은 비상식적 결정의 배경에는 미국측의 압력과 한미 FTA 타결에 목 맨 통상관료들의 입장이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2006년 3월 29일 미 농부무 차관이 이태식 주미대사에게 보낸 서한, 2006년 5월 24일 미 상원의원 32명이 이태식 대사에게 보낸 서한, 2006년 8월 4일 미 상원의원 31명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 2006년 8월 15일 미 농무장관과 8월 16일 상원 농무위원회 벤 넬슨 상원의원의 발언….

이처럼 미국 정부와 의회 관계자들은 끊임없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즉각 재개하지 않을 경우 한미 FTA 자체가 무산될 수 있음을 경고해 왔다.

참담하고 치욕적이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과정
▲ 광우병이 발견돼 폐쇄된 미국 워싱턴주의 한 농장. ⓒ연합뉴스

아울러 농림부는 수입통관 과정에서 뼛조각이 발견되어 양국이 합의한 수입위생조건에 따라 전량 반송폐기했음에도, FTA 타결을 위해 이같은 검역조치마저 포기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세차례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에서 광우병 위험물질에 오염될 가능성이 있는 뼈조각이 발견된 것은 물론, 다이옥신까지 발견돼 전량 반송 또는 폐기된 바 있다.

하지만 미국이 '한미 FTA타결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압력을 가해 오자 결국 '뼈조각 발견 박스만 반송'하는 것으로 후퇴했으며, 당초 뼈조각 발견 작업장은 아예 승인취소되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으나 이마저 포기했다. 그뿐만 아니라 FTA 최종타결 막바지인 3월 29일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부시 대통령과 전화회담까지 하며, '합리적 해결'을 약속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과정을 지켜봐 온 지난 1년 4개월은 참담하고 치욕적이기만 한 시간이었다.

상식조차 무시하는 강대국의 횡포 앞에 '미국산 쇠고기가 광우병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농림부의 주장은 위생검역의 문외한인 통상관료들과 정부정책결정의 최고위층에 의해 번번히 묵살됐다. 결국 한미 FTA라는 국가 지상과제(?)에 밀려 국민의 생명을 가장 최우선해야 한다는 원칙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갖가지 논리로 진실마저 왜곡되며 미국산 쇠고기는 국내로 한발한발 들어오게 된 것이다.

OIE의 결정은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낼 것

이번 OIE 총회에서는 미국이 광우병 위험이 통제되는 '위험통제국가' 등급을 받을 것이 예상된다. 그러나 OIE가 미국의 사료정책과 관련된 교차오염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이같은 판정을 한다는 것은 다분이 이중적이며, 정치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9일 OIE 과학위원회는 미국의 광우병 등급을 예비판정하며, 미국의 교차오염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미국은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을 폐기하지 않고 비반추동물(닭, 돼지 등)의 사료로 사용하고 있어 이로 인해 광우병 발생가능성 또한 높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위험통제국가' 로 결정한다는 것은 OIE가 얼마나 정치적 조직인지 알 수 있다.

또 OIE는 미국의 광우병 검사체계의 미비함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 미국은 현재 전체 도축소의 0.1%만을 대상으로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이 정도의 검사로 증상이 나타나지 않지만 광우병에 감염된 소를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OIE는 미국에서 이력추적제가 정상적으로 실시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광우병 감염 소에 대한 추적과 역추적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으며 미국의 광우병 예찰은 의무사항이 아니라 농가의 자발적인 신고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 이런 문제점은 농림부가 OIE에 보낸 비공개 문서에도 기록돼 있으며, 그동안 광우병 학계와 전문가들이 주장했던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이같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위험통제국가'로 결정된다면 어떻게 이를 인정할 수 있겠는가?

농림부의 결정대로라면 OIE의 결정은 '상관없는 일'

WTO 위생검역 협정은 국제수역사무국의 가이드라인을 기초로 "회원국 간의 조화를 도모하되, 회원국에 대해 자국민 건강과 생명의 적정 보호수준을 변경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또 WTO SPS(위생 및 검역조치) 협정은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경우, 한 나라가 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보다 '더 높은 보호 수준'을 설정할 권리를 부여했다.

1997년 WTO 판례도 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을 따르는 것이 모든 회원국이 꼭 지켜야 하는 원칙이 아니라고 판정했다. 이 판정에 따르면 회원국이 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보다 더 엄격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것은 '예외'라기보다는 오히려 보다 적극적으로 자국만의 독자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자율권'에 해당한다.

따라서 농림부가 2006년 1월 미국과 체결한 수입위생조건에 과학적 근거가 있고, 지난 4월 9일 OIE에 보낸 문서에 밝힌대로 미국의 광우병 정책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면, 이번 OIE총회에서 미국의 광우병 위험 등급이 상향 조정된다 해도 한국의 수입위생조건을 변경해야 할 하등의 통상법적 의무를 지지 않는다.

농림부는 최선을 다해 '위생검역 주권'을 행사하라

정부당국에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한다. 농림부는 OIE총회에서 미국의 광우병 등급이 결정되지 않도록 총력을 다해 임하라. 또 OIE 총회의 결정과 관계없이 국제사회도 인정하고 있는 우리의 '위생검역 주권'을 적극 행사하라.

OIE라는 조직이 순수한 과학자가 아닌 각국 수의공무원들의 조직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결정은 충분히 예견된다. 하지만 WTO 위생검역 협정이 보장하는대로 우리의 과학적 근거와 판단에 따라 위생검역 수준을 정해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따라서 6월말 한미 FTA 체결을 최고의 선으로 삼고 있는 통상관료들에 밀려 이 문제를 처리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20세기말 광우병 발생 초기에 영국 환경식품농촌부가 쇠고기가 안전하다며, 광우병 위험을 은폐하다가, 결국 엄청난 인간광우병 참사를 야기했던 '우'를 다시 행하지 않기를 바란다.

광우병은 재앙 곧 그 자체다. '사전예방의 법칙'이라는 상식을 지킴으로써, 대참사를 막지 못한 영국 농림부의 심각한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만을 간절히 요구한다.

아울러 통상관료들이나 경제관료들은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문제의 판단에 있어 더 이상 개입하지 말라. 가타부타 언론과의 인터뷰도 하지 말라. 위생검역의 비전문가들이 "OIE 결정이 나면 갈비도 수입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것은 위생검역당국에 대한 압박이자 여론조작이다.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정책이 결정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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