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이메일 답장 쓰다보면 손가락이 저려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이메일 답장 쓰다보면 손가락이 저려요" <기고> 유기홍 의원 에다가와 조선학교 방문기
일본의 대표적 극우 정치인 이시하라 신타로가 도지사로 있는 일본 도쿄도 정부와 토지반환 분쟁에 휩싸여 폐교 위기에 몰렸던 도쿄 제2조선초급학교(에다가와 조선학교). 3년여의 긴 재판 끝에 지난 3월 1억7000만 엔(약 14억 원)에 학교가 도쿄도로부터 토지를 매입하기로 합의했다. 1억7000만 엔은 학교부지 시가의 1/10 수준으로 사실상 학교 측이 승소한 것이었다. 일본 법원도 일제시대 강제징용 당해 민족교육을 시키고자 황무지에 스스로 학교를 세워 지금까지 이어져 온 역사적, 교육적 가치를 인정한 것이었다.

에다가와 조선학교가 폐교 위기를 벗어난 데에는 학교 관계자와 학부모들의 노력은 물론 일본 현지의 양심적인 일본인들의 지원과 한국에서의 뜨거운 관심도 큰 몫을 했다. 국내 언론에 에다가와 조선학교의 사정이 알려지며 많은 시민들이 에다가와 조선학교에 지지의 뜻을 보냈다. 또 일본 홋카이도 지역의 조선학교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우리학교>가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며 일본 내 조선학교에 대한 관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현재 에다가와 조선학교의 토지매입비 모금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6일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직접 방문했던 '국회 에다가와 조선학교 문제 해결을 위한 의원모임' 대표인 유기홍 열린우리당 의원이 <프레시안>에 방문기를 기고해왔다. 유 의원은 3년 전부터 에다가와 조선학교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국내의 '에다가와 조선학교 지원 모금회'는 5월 말부터 모금을 시작해 한 달 동안 1억 원 가까이를 모았고, 오는 24일 일본을 방문해 1차 모금액을 에다가와 조선학교에 전달할 예정이다. <프레시안>은 1차 모금액 전달식을 동행 취재해 보도할 예정이다.<편집자>


"수학여행을 백두산과 한라산으로"

지난 6일 세 번째로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방문했다.

2005년 7월의 첫 방문은 도쿄 이시하라 지사의 말도 안 되는 행정소송으로 학교가 폐교 위기에 처했을 때였고, 2007년 3월의 두 번째 방문은 14억 원만 내면 학교운동장 점유권을 인정하겠다는 재판 화해권고 소식을 들은 직후였다.

지금 한국에서는 14억 원을 마련하기 위한 '에다가와 조선학교 모금회'가 발족해 한참 국민모금을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세 번째 방문은 국회 차원에서 모금 활동을 보다 활발하게 진척시키기 위한 길이었다.

이번 방문은 내가 간사로 일하는 국회 연구단체 '교육에서 희망을 찾는 국회의원 모임' 이름으로, 이미경 대표와 강혜숙 의원, 이계안 의원과 함께 했다.

6일 오후 2시경, 학교 정문에 도착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한국과는 달리 에다가와 조선학교 운동장에는 햇볕이 쏟아지고 있었다. 학교부지가 넓지 않아 교문에서 교실 입구까지는 어른 걸음으로 20여 걸음이면 충분한 이 곳, 아이들은 여전하다. 수업이 일찍 파한 저학년 여자아이 둘이 그네를 타고, 남자아이 서넛이 무엇을 하는지 운동장 흙바닥에 머리를 잔뜩 숙이고 놀고 있다. 이 아이들이 안심하고 다닐 수 있도록 학교를 지켜야겠다는 생각만이 맴돌 뿐이다.

학교 건물에 들어서면 한 눈에 띄는 눈에 익은 글씨체의 글귀가 벽에 걸려있다. "백두한라"라고 적힌 시원스런 붓글씨는 신영복 선생님이 선물한 것이란다. 그 아래 물 흐르듯이 적힌 "진달래 꽃길따라, 불타는 단풍따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백두에서 한라까지"는 실제 에다가와 학교 선생님과 학부모들의 바람 그대로이다.

송현진 교장선생님은 나를 볼 때마다 "아이들의 수학여행을 백두산, 한라산에 모두 보내고 싶다"고 말씀하시고, 학교 가까이 불고기집을 운영하는 학부모님도 "그게 진짜 통일교육이다"라고 강조하지 않았나.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학교란다"
▲ 에다가와 조선학교의 수업 모습. ⓒ유기홍 의원실.

바로 아이들이 있는 교실의 수업을 참관했다. 저학년 교실 뒷면에 붙은 시간표에는 국어 수업이 유독 많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4,5세 동포 아이들은 우리말을 배울 기회가 거의 없어 우리말에 서툴기 때문이다. 또 아이들이 서툰 우리말로 적은 자기 소개글과 그림이 빼곡하게 뒷면을 채우고 있다. 6~7년 동안 일본말만 사용하다가 들어온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는 일이 쉽지 않을 텐데, 이곳의 선생님들은 참 대단하다.

학교운영비를 절약한다며 학생들의 통학버스를 직접 운전하시는 송현진 교장선생님이며, 일요일 밤까지 신입생·졸업생에게 달아줄 꽃을 수작업으로 만드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고개가 절로 숙여질 수밖에 없다.

2시 30분 수업이 모두 끝나자 학생들이 소강당으로 내려왔다. 한국에서 준비해온 선물 두 가지를 꺼내들었다. '에다가와 조선학교 모금회' 발족식에 맞춰 입었던 티셔츠를 꺼내들자 선생님과 학부모님들이 좋아한다. 초등학교 아이들 치수로 더 가져오라는 즐거운 명령(?)도 떨어진다. 3억 원 상당의 컴퓨터로 이용할 수 있는 교육용 자료도 전달했다. 작년에 KTF와 아름다운 재단에서 기증한 20여 대의 새 컴퓨터를 기억하고 준비해온 선물인데, 아이들 교육 자료로 쓸모가 있길 기대해본다.

간단한 증정식을 끝내고 한국의 '에다가와 조선학교 모금회' 발족식 비디오를 함께 보았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신나한다. 지난 5월 25일 발족식 행사에 '남북어린이어깨동무' 아이들 여럿이 이지상 가수의 '이것이 우리학교란다'라는 노래를 중창했는데, 에다가와 조선학교 학생들이 이 노래를 모두 외우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어느 새 합창으로 노래가 끝나고 앉아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이 울컥해지고 먹먹해졌다. 우리가 지난 60년 동안 방치한 재일동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언론을 통해 에다가와 조선학교 문제가 많이 알려지면서, 조선학교 교사를 하고 싶다며 이메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또 한국 관광객 중 일부가 불쑥 학교를 방문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이메일 답장을 쓰다보면 손가락이 저린다는 교장선생님의 장난 섞인 말에 '민족교육을 지켜나가고 있는 에다가와 학교를 지키는 데 장벽은 없다'는 생각만이 또렷하게 남았다.

여전히 낡은 학교, 여전한 차별 속의 우리 아이들
▲ ⓒ유기홍 의원실.

그러나 2005년 7월에 처음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방문했을 때 보았던 물 새는 천장, 겉 페인트가 다 벗겨진 농구 골대, 점점 줄어드는 신입생 수, 도쿄도와의 갈등은 여전했다. 많이 변한 것 같으면서 변한 것은 없다. 앞으로 가야할 길이 더 멀다는 의미일 것이다.

에다가와 조선학교의 일정은 짧지만 의미 있게 마무리됐다. 찾아간 사람, 반겨준 사람 모두가 해야 할 일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제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나는 민간차원의 국민모금이 더 활발해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또한 재일동포에 대한 제도적 차별이 일본사회에서 없어질 수 있도록 일본정부에 요구할 법적 조치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조선학교는 정식 교육기관으로 인정받지 못해 어떠한 교육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 동포들은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이렇게 일을 하고, 어떤 분은 기꺼이 모금을 내주시고, 어떤 분은 에다가와 학교를 위해 학교설계를 해주신다고 한단다. 에다가와 조선학교를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조금씩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원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2-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