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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중세'로 회귀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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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우리는 지금 '중세'로 회귀하는 걸까요?" 과학과 종교의 대화 <1> 왜 대화가 필요한가?
한국은 신정 분리를 엄격히 규정하는 나라다. 그러나 종교와 일상생활은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다. 세계적으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많은 신도를 거느린 대형 교회가 여러 곳일 뿐만 아니라, 각종 종교 집단을 거론하는 뉴스는 늘 사람의 눈길을 끈다. 최근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다니던 특정 교회 신도를 중용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과연 한국의 종교가 일반인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따져볼 일이다. 예를 들어 한때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생명공학을 둘러싼 윤리 논란이 그렇다. 외국의 기독교계가 생명윤리를 아주 강조하는 것과는 달리, 한국의 기독교계는 사실상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다. 심지어 일부 불교계는 생명공학의 강력한 지지자를 자처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7년에는 아프가니스탄으로 선교 여행을 떠났던 신도들이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되는 일도 있었다. 테러에 대한 비판과는 별개로, 이런 선교 여행이 '기독교 패권주의'라고 교계 안팎에서 강하게 비판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 사건과 맞물려 "신은 망상일 뿐"이라고 선언하는 외국 지식인의 책이 국내에서도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한국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21세기의 세계를 살펴보면 더욱더 상황은 복잡하다. 현대 사회를 과학기술시대라고 규정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영향력 또한 계속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프레시안>은 이 시대의 두 가지 화두라고 할 만한 '과학'과 '종교'의 대화를 통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런 의문을 해결하는 단초를 찾아볼 생각이다. 이 쉽지 않은 작업에 김윤성(종교학자,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신재식(직접 목회를 하는 신학자, 호남신학대 조직신학과 교수), 장대익(진화론을 연구하는 과학철학자,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 세 사람의 젊은 지식인이 나섰다.

이들은 이미 지난 2006년 말부터 과학과 종교를 놓고 여러 차례에 걸쳐 서신을 교환해왔다. <프레시안>과 과학 전문 출판사 사이언스북스는 공동으로 이 서신을 정리해 <프레시안>에 1주일에 한 차례씩 싣는 기획을 마련한다. 이 기획을 통해 독자들은 과학과 종교를 둘러싼 국내외 최신 담론을 접하는 것은 물론,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장대익 교수가 첫 번째 말문을 열었다. 장 교수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를 졸업하고 서울대 과학사및과학철학협동 과정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런던정경대학(LSE) 과학철학센터에서 생물철학과 진화심리학을 연구했다. 최근 한국 지식사회에서 큰 관심을 모은 <통섭>(사이언스북스 펴냄)의 역자이기도 하다.

장대익 교수는 2006년 7월부터 1년간 미국 보스턴에 있는 터프츠대 인지연구소에서 대니얼 데닛 교수와 함께 연구를 했다. 이 첫 번째 편지는 그 당시에 초고가 작성된 것이다. <편집자>

종교 없이 산다는 것

신재식, 김윤성 선생님께

별고 없으신지요. 한국엔 제법 큰 눈이 왔다지요? 여기 보스턴에 온 지 벌써 넉 달이 넘었습니다. 듣기로는 여기에 눈이 많이 오면 1미터 정도 쌓여서 학교도 휴교하고 그런다는데 아직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저희 아이들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답니다.

이제 며칠 후면 크리스마스입니다. 여기서는 10월 말에 핼러윈(만성절 전날인 10월 31일에 행해지는 축제 : 필자), 11월 말에 추수감사절, 그리고 12월에는 크리스마스…. 하나가 끝나면 곧바로 다음 홀리데이(Holiday)를 준비하는 식입니다. 11월에 추수감사절이 끝나니까 바로 거리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걸리더군요.

물론 이 모든 절기들이 상술로 포장된 지 오래지만 미국은 적어도 문화적으로는 '기독교 국가(Christian nation)'라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종교 정체성 조사 결과(2001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를 보니까,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대답한 사람은 미국 국민의 76.5%, 무종교라고 답한 사람은 13.2%, 유대교는 1.3%, 불가지론자는 0.5%, 무신론자는 0.4%였습니다(☞). 불가지론자와 무신론자를 합해도 1%가 넘지 않고, 기독교는 80% 정도나 되니 미국은 정말로 기독교 국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바로 몇 달 전(2006년 9월)에 있었던 갤럽 조사 결과는 더 흥미로웠습니다. 질문은 이런 것이었지요. "일반적으로 말해 당신은 미국인들이 (_______)을 대통령으로 선출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답 항목에는, 유태인, 아시아인, 여성, 흑인, 모르몬교도, 히스패닉, 무신론자, 동성애자가 무작위로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을까요? 앞에서부터 나열해 보면, 여성(61%), 흑인(58%), 유태인(55%), 히스패닉(41%), 아시아인(33%), 모르몬교인(29%), 무신론자(14%), 동성애자(7%) 순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는 무신론자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모르몬교도보다 낮고 동성애자보다는 조금 높다는 이야기인데, 다시 말하면 무신론자 대통령이 나올 가망성은 극히 적다는 뜻이겠지요. 미국의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해서라도 기독교인을 자처하게 생겼습니다. 생전에 가장 똑똑한 미국인으로 추앙받던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이 대선에 출마했어도 미국 대통령은 도무지 될 수 없었을 겁니다. 무신론자였으니까요!

세이건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 조디 포스터 주연의 <콘택트>라는 영화가 떠오릅니다. 저는 세이건의 원작보다 이 영화를 먼저 접했었는데요, 영화를 보고 나서 세이건이 쓴 모든 책을 다 주문했을 정도로 전율을 느꼈었지요. 물론 아직도 다 못 읽었지만요. 그는 동명 소설 <콘택트(Contact)>에서 주인공인 천문학 박사 에로웨이와 복음 전도자 자스를 통해 과학과 종교에 관한 심오한 문제들을 절묘하게 다룹니다.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과학적 진리를 굳게 믿는 여성 천문학자가 어느 날 베가성에서 온 외계 신호를 포착하고 해독하여 우여곡절 끝에 베가성을 향하는 우주선의 첫 탑승자가 된다. 이 과정에서 그녀의 남자 친구인 복음 전도자가 그녀의 과학적 신념을 도전한다. 결국 베가성 여행은 실패한 것처럼 보였으나, 저자는 막판에 결론을 뒤집어 과학적 신념이 종교적 믿음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 사실을 암암리에 드러내고 있다 : 필자)

물론 그의 메시지는 에로웨이의 언행이 대변해 주고 있지요. 이 편지를 쓰다 말고 잠시 제 컴퓨터에 저장돼 있는 이 영화를 또 한 번 보았습니다. 의미심장한 장면들이 너무 많은데요, 그중 하나만 소개할게요. 아마 이 장면, 기억나실 겁니다.

자스 위원 : 에로웨이 박사, 당신은 자신을 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에로웨이 박사 : 무슨 질문이신지? 전 도덕적인 사람이긴 합니다만…….
자스 위원 : 당신은 신을 믿습니까?
에로웨이 박사 : 저는 과학자로서 경험적인 증거만을 사실로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문제에 관해서는 그런 종류의 자료가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위원장 : 그러면 신을 믿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까?
에로웨이 박사 : 왜 이런 질문이 이번 일과 상관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위원 : 에로웨이 박사, 세계 인구의 95%는 어떤 형태로든 절대자를 믿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충분히 상관이 있는 질문이지 않겠습니까?
에로웨이 박사 : (…) 저는 이미 답을 했습니다.


자신의 무신론을 숨기지 않았던 에로웨이는 이 대답으로 인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외계 문명을 만나는 기회를 가진 탑승자 심사에서 탈락합니다. 물론 우여곡절 끝에 최후의 탑승자가 되지만 말이지요. 마치 세이건은 에로웨이의 입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 진실한 무신론적 지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차별을 감내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는 듯합니다.

서남아시아에서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느끼는 압박감보다는 덜 하겠지만 미국의 무신론자들도 압박감을 느낄 만합니다. 특히 이것은 미국 현 대통령이 조지 W 부시가 재집권하고 나서부터 더 심화된 듯합니다. 그는 보수 기독교인의 표를 더 얻기 위한 제스처 이상으로 근본주의 기독교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미국 지식인 중에는 9・11 같은 테러가 미국의 반(反)이슬람 기독교 근본주의 때문에 일어났다고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번 학기에 참여했던 한 수업에서 저명한 언어학 교수가 학부 학생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이야기하더군요. "부시의 근본주의 기독교와 중동의 근본주의 이슬람 때문에 나라의 운명이 심히 걱정된다."라고요. 미국 자유주의의 본산 보스턴(보스턴은 미국 최초로 흑인 주지사를 냈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진보적이고, 하버드와 MIT 같은 미국 최고의 대학들의 영향으로 자유주의 정신이 가득하다 : 필자)이니까 수업 시간에 이런 말이 가능한 거겠죠?

리처드 도킨스의 무신론 '운동'

작금의 이라크 사태를 '미국 근본주의 기독교 vs 중동의 근본주의 이슬람'의 대결로만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구도라는 느낌을 주지 않나요? 하지만 정말로 종교 간 전쟁 때문에 세계가 큰 위험에 빠졌다고 설득력 있게 외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그중에서 아주 흥미로운 인사가 있습니다. 바로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찰스 시모니 '과학의 대중적 이해' 석좌 교수로 있는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입니다(헝가리 태생의 찰스 시모니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 프로그램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프로그램 엔지니어로 큰 부자가 되었다. 그는 후에 '인텐셔널 소프트웨어' 회장으로서 여러 대학에 자신의 이름을 딴 석좌 교수 자리를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 만들어졌는데, 이 자리의 첫 번째 수혜자가 바로 도킨스이다 : 필자).
▲무신론 운동을 진행하는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프레시안

그가 최근에 출간한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원제는 '신이라는 망상' 또는 '신은 망상이다'로 번역할 수 있다 : 필자)라는 책이 몇 달째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 10위 안에 올라와 있는데요, 저도 몇 주 전에 사서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의 주장은 한마디로 "신은 망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신은 요정, 도깨비, 유니콘, 포켓몬스터처럼 상상 속의 존재일 뿐인데 많은 이들이 신은 마치 실재하는 양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망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이 망상이 일종의 '정신 바이러스'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 망상에서 빨리 깨어나야 종교 전쟁으로 인한 인류의 파멸을 막을 수 있다고 진단합니다. 혹시 선생님들도 이 책을 보셨는지요?

도킨스는 이번에 아주 작심을 하고 이런 도발을 감행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책 출간에 즈음하여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를 만들더니만 '이성과 과학을 위한 리처드 도킨스 재단(The Richard Dawkins Foundation for Reason and Science, ☞)'도 세워 본격적인 무신론 캠페인에 들어갔습니다.

미국과 영국을 순회하며 책에 대한 강연, 텔레비전 출연, 인터뷰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고, 얼마 전에는 영국 BBC를 통해 <모든 악의 근원?(Root of All Evil?)>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직접 만들어 방영하기도 했었지요. 이 다큐멘터리도 최근에 구입해서 보았습니다. 콜로라도의 한 대형 교회(개신교)의 예배에 (관찰자로) 직접 참석하고, 현 대통령 부시와 핫라인을 갖고 있을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까지 있는 복음주의 목사와 언쟁을 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 목사가 성경에는 하나의 모순도 없다고 말하자, 도킨스는 현재의 과학이 성경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모순점을 지적한다고 맞받아쳤지요. 그랬더니 그 목사는 바로 "당신같이 오만한 사람이 바로 문제"라고 비난을 하더군요.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을 동물이라고 말하는 당신하고는 더 이상 이야기할 수 없다."라고 말하며 대화를 그만둡니다.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 서문에서 비틀스 출신 존 레넌의 노래 '이매진(imagine)'을 패러디해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부릅니다. "종교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세요. 자살 폭파범, 9·11 테러, 런던 폭파 테러, 십자군, 마녀 사냥, 화약 음모 사건(1605년 영국 가톨릭교도가 계획한 제임스 1세 암살 미수 사건 : 필자), 인디언 분리 구역,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세르비아·크로아티아·무슬림 대학살… 등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세요."

그가 단지 종교가 너무나 싫어서 이러고 있는 것일까요? <만들어진 신>은 신이 존재한다는 가설, 즉 '신 존재 가설(God hypothesis)'이 왜 설득력이 없는지를 논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 가령 인생의 의미, 도덕성, 사랑, 책임감 등이 어떻게 자연적 과정을 통해 진화해 왔는지를 보여 줍니다.

사실 이런 주장은 그동안 무신론적 진화론자(진화론은 무신론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들의 단골 메뉴였지요. 그런데 제가 이번에 매우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 있지요. 그는 부모의 절대적 영향 아래 있는 아이들에게 부모의 종교에 따라 '무슬림 아이들', '기독교 아이들'과 같은 꼬리표를 달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종교에 관해 적절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아이들을 더 큰 혼돈에 빠뜨리는 일종의 아동 학대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르크스주의 아이들(Marxist children)'이나 '자유주의 아이들(Liberal children)'이 얼마나 어색합니까?

도킨스가 재단까지 설립해 가며 이런 도발적인 주장들을 펼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그가 지금 일종의 '운동(movement)'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종교는 감히 비판해서는 안 될 무엇"이 절대 아니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려는 것입니다. 현재 저의 지도 교수이기도 한 인지 철학자 대니얼 데닛(인공지능과 의식에 대한 논의를 발전시킨 영미권의 대표적인 철학자로서 현재 터프츠 대학교의 인지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진화론을 자신의 철학적 작업에 응용해 온 점이 다른 철학자들과 확연히 다른 측면이다 : 필자)은 도킨스의 운동을 오프라 윈프리의 그것에 비유하더군요.

오프라는 한때 <오프라 쇼>에서 미국 내 가정의 매 맞는 여성에 관한 심각한 문제를 전국적으로 일깨운 적이 있었습니다. 데닛은 도킨스의 책과 활동도 종교에 관한 심각한 문제를 부각시키려는 캠페인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종교(특히 기독교)에 억눌려 있는 사람들이여, 무신론의 세계로 탈출하여 당신의 지성을 구원하라." 이런 메시지가 영국식 악센트로 제 귀를 때리는 듯합니다.

그가 얼마나 단호하고 도발적인 사람인지 한번 보시겠습니까? 얼마 전에 미국 버지니아 주의 한 대학에서 책에 대한 강연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나 봅니다. 마침 거기에 참석한 리버티 대학교(Liberty University, 미국의 대표적 보수 기독교 리더인 제리 파웰이 1971년 설립한 기독교 대학 : 필자)의 한 학생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지요. "학교 박물관에 전시된 공룡 화석이 5000년 전의 것이라고 되어 있거든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죠?" 그러자 도킨스는 공룡 화석의 나이를 추정하는 여러 과학적 방법들을 설명하고는, 공룡 화석이 5000년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뉴욕과 워싱턴 D.C.의 거리가 500미터 정도라고 말하는 것처럼 우스꽝스러운 것이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자극적인 말을 하더군요.

"여기 계신 리버티 대학교 학생 여러분께 강력하게 말씀드립니다. 학교를 그만두시고 더 적당한 학교에 지원하십시오." 좀 심하다 싶은 말인데도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오는데, 좀 놀랐습니다.

종교에 대한 동상이몽? 도킨스, 윌슨, 그리고 굴드
▲<생명의 편지>(에드워드 윌슨 지음, 권기호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프레시안

도대체 왜 과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 자신의 분야도 아닌 종교에 대해 이렇게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것일까요? 사실 최근에는 저명한 과학자가 종교에 대해 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유행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붐을 이루고 있습니다. 가령 하버드 대학교의 사회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하버드대학의 진화 생물학 교수로서 개미 연구와 사회 생물학 창시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번역된 <통섭: 지식의 대통합(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등을 통해 과학에 기반을 둔 지식의 대통합을 부르짖고 있다 : 필자)은 서너 달 전에 <생명의 편지(The Creation)>(원제는 '창조', '창조물', '피조물'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 필자)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도킨스의 책과는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제목부터 너무 다르지 않나요? 하나는 '신은 망상'이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창조'라고 되어 있으니까요. 사실 제목이 참 의아했습니다. 창조는 주로 유대-기독교, 이슬람 전통에서 즐겨 쓰이는 단어이지 않습니까? 유년 시절을 신실한 침례교인으로 자랐다가 무신론자가 된 윌슨이 다시 기독교로 회귀한 것은 아닐 텐데, 왜 그런 제목을 달았는지 궁금했지요. 목차를 보니 그런 의문이 더욱 강해지더군요. 심지어 "타락(decline)과 구속(redemption)"이라는 제목의 장도 있을 정도입니다.

물론 내용을 보면서 의문이 좀 풀렸습니다. 서부 침례교 목사에게 지구의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 같이 동참하자는 내용의 편지더군요. 과학과 종교가 형이상학적으로 서로 대립적이다 하더라도 우리 지구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이 생태계 위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함께 손을 잡을 수 있는 실천적 근거들이 너무 많다고 호소합니다. 과학계의 한쪽(도킨스)에서는 종교계에 시비를 걸고, 다른 쪽(윌슨)에서는 협력하자고 손을 내밀고 있는 셈인데요, 둘 다 현대 진화론의 거장들이라는 사실이 정말 흥미롭지 않나요?

(두 달 전쯤에 대니얼 데닛과 스쿼시를 친 적이 있어요. 35세인 저와 65세인 데닛이 경기를 했는데 누가 이겼겠습니까? 당연히 제가 (…) 졌습니다! 그것도 두 게임을 내리 졌지요. 대단한 체력이었습니다. 저는 힘들어 더 이상 못 하겠다고 했을 정도였지요. 잠시 쉬는 시간에 윌슨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지요. 제가 <통섭>의 한 장과 논의와 성격이 많이 달라 당황스러웠다고 했더니 데닛도 맞장구를 쳐주시더군요. 그러더니 "그럼 이참에 윌슨 선생하고 우리 셋이서 만나 점심이나 먹으며 이야기하면 어떻겠냐."라고 그러시더군요. 물론 저야 "감사합니다."라고 했지요. 아직은 몇 가지 사정 때문에 윌슨 선생님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2007년 1월 초에 점심 모임을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이 건은 그때 가서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도킨스와 윌슨의 경우처럼 진화론자들이라고 해서 종교에 대해 똑같은 견해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02년 전에 작고한 하버드 대학교의 진화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하버드 대학교의 저명한 고생물학자로서 단속 평형설 등을 제시했고 진화에 대해 수많은 에세이를 남겼던 과학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2002년에 암으로 사망했다 : 필자)는 이들과도 다른 종교관을 가졌었지요.

그는 과학과 종교가 "중첩되지 않은 영역(Non-Overlapping Magisteria, 줄여서 NOMA)"에 있는 인간의 활동이라고 말합니다. 과학은 사실의 언어를, 종교는 가치의 언어를 쓰기 때문에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뜻이지요. 둘 간의 영원한 평화를 선언해 버린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도킨스, 윌슨, 굴드가 종교에 관해 자신만의 독특한 입장이 있는 듯합니다. 그 차이를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을까요? 과학이 종교를 제거할 것이라는 생각(도킨스), 둘의 세계관은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지만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는 서로 협력할 수 있다는 생각(윌슨), 둘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생각(굴드).

종교의 유통 기한은 아직도 유효한가?
▲하버드대학의 진화생물학자였던 스티브 제이 굴드. 그는 "종교와 과학은 전혀 별개"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프레시안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도대체 왜 저명한 과학자들이 종교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참견을 하는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 종교에 대해 딴죽을 거는 사람들의 직업을 따져 보면 과학자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아마 종교학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성은 이미 과학의 시대로 넘어온 지 오래 되었는데 아직도 종교의 시대에 머물러 있는 감성 때문에 일군의 의식 있는 과학자들이 이렇게 난리를 치는 것일까요? 계몽 차원에서? 하지만 두 진영 모두 자신들이야말로 선지자인 양 떠들고 있는 것 같지 않으세요? 과학의 끝에서 신을 만나다! vs 과학의 끝에서 신을 쫓아내다!

이런 화두를 던지면 어떤 이들은 시큰둥해 하는 것 같습니다. "과학과 종교, 더 넓게는 이성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서야 아주 오래전부터 제기되던 질문들 아닌가요? 뭐 그런 거야 따지기 좋아하는 가방 끈 긴 사람들이나 관심 갖는 것이지, 우리처럼 하루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지." 라고 말이지요. 실제로 저는 그런 분들을 여럿 만나 본 적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지금 새삼스럽게 과학과 종교의 문제를 다시 꺼내야 할까요?

이 대목에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에서 9·11 테러를 들고 나오며 과학의 이름으로 종교의 존재 자체를 고발한 것은 꽤 큰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사실 인류의 역사를 가만히 보면 중세까지 종교적 세계관 속에 숨 쉬다가 계몽 시기를 거치면서 비로소 과학적 세계관으로 이행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도킨스의 주장처럼,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현재에도 낡은 종교적 세계관이 죽지 않고 오히려 더 번창하여 전 세계의 비극적 전쟁의 원인이 되고 있는 상황은 혹시 아닌가요? 마치 지독한 바이러스가 퇴치되지 않고 때로 사람을 대량으로 감염시켜 인류에게 큰 재앙을 주듯이, 종교도 끈질긴 정신 바이러스가 아닐까요?

종교적 근본주의자들―기독교인이건, 무슬림이건, 아니면 다른 신흥 종교의 광신도들이건, 혹은 신내림을 받았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건 간에―이 다른 견해를 인정하려 않기 때문에 생겨났던 셀 수 없는 비극들을, 그리고 앞으로도 생겨날 비극들을 도대체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제발 좀 관용의 태도를 가져라." 라고 충고한다고 될 문제입니까? 아니면 아주 직설적으로 "네 세계관은 사실적으로 아주 틀렸거든!" "자살 테러를 하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지 내세에 축복받는 것 아니거든!"이라고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솔직히 저는 요즘 도킨스의 외침이 진실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적인 정직성을 견지하다 보면 종교는 더 이상 인류에게 필요 없는 '밈(meme,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 11장에서 인간의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밈'이라는 새로운 복제자를 제안한다. 밈은 문화 전달의 단위, 혹은 모방의 단위를 뜻하며 'gene'과 대구가 되도록 'meme'으로 표기되었다. 선율, 아이디어, 캐치프레이즈, 패션 등이 바로 밈의 사례들이다 : 필자)' 같아 보입니다. 유효 기간이 지나 버린 밈인데도 사람들이 거기에 뭐가 더 있을 줄 알고 계속 그 주위를 맴도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종교는 과학에 의해 대체되거나 아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하는 유물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신학과 종교학을 하시는 두 분 선생님께서 들으시면 좀 불쾌하게 여기실지도 모르겠지만, 종교가 더 이상 세상을 걱정하는 시기는 지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의 존립 근거를 걱정해야 할 때인 것이지요. 저는 과학이 종교의 주춧돌들을 야금야금 빼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전 세계적으로 종교인의 수가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제게는 정말 수수께끼처럼 보입니다.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초자연적 세계를 상정한 종교들은 망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소위 '영적(靈的)인 세계'를 갈구하는 이들은 더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종교는 점점 더 자신의 세력을 불려 세계의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듯합니다.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중세로 회귀하는 것일까요? 우리나라의 사정은 어떤가요? 두 분 모두 한국의 종교 상황에 대해 전문가이시니 말씀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왜 지금 종교와 과학인가?

종교와 과학은 누가 뭐래도 인류의 역사를 추동해 온 두 축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종교는 과학을 낳았고 과학은 종교에 대들었지만, 아직도 못 쫓아내고 있습니다. 오히려 대반격이 시작되었다고나 할까요.

선생님들!

이런 편지가 언제까지 오갈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정신을 지배하는 두 밈인 과학과 종교에 대해 아주 솔직한 토론이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에 데카르트가 했던 것처럼 진실이 무엇인지를 위해 방법론적으로 의심에 의심을 거듭해 보려고 합니다. 가령, 모든 유신론자들이 믿고 있듯이 기도가 정말로 효과 있는지를 의심의 눈으로 해부해 보고 싶습니다. 종교 경전들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크고 작은 기적(miracle)도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대신 결론은 활짝 열어 놓으려 합니다. 편지를 통해 선생님들과 토론해 가면서 인류의 해묵은 질문에 제 나름대로 답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이건 인류의 문제만이 아니라 저의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물음이기도 합니다. 아시듯이 저 또한 지난 십여 년 간 종교와 과학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해왔지 않습니까?

도대체 왜 지금 우리가 과학과 종교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이것이 제 첫 번째 질문입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와인버그가 몇 년 전 <뉴욕타임스>에서 했던 말을 인용하면서 첫 번째 장문의 편지를 띄웁니다. 연말연시, 행복하시길 빌겠습니다. 답장 기다리겠습니다.

종교가 있든 없든 선한 일을 하는 좋은 사람과 악한 일을 하는 나쁜 사람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악한 일을 하려면 종교가 필요하다. (The New York Times, April 20, 1999)

2006년 12월 10일

눈 내리는 보스턴에서
장대익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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