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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봉헌하고, 사탄 없애달라는 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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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서울 봉헌하고, 사탄 없애달라는 저들…" 과학과 종교의 대화 <8> 다시 '종교'가 문제다
요즘 같다면 "이런 논의는 이제 그만 하자."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시국이 이런데 웬 뜬 구름 잡는 얘기란 말인가? '과학과 종교'의 문제가 대체 지금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우선 한 가지 해명이 필요하다. 명시되어 있듯이 세 필자들의 편지 교환 기간은 2006~2007년이다. 가장 최근 편지가 2007년 2월 것이니 지금까지 글에서 우리네 종교 문화와 관련이 깊은 '아프간 피랍 사건'이나 '고소영' 내각 같은 이슈들은 등장하지 않았다. '한반도 대운하'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논의가 구름 위의 산책일 뿐이라고 말하긴 아직 이르지 않은가?

물론 '과학과 종교'에 관한 쟁점들이 시류를 타는 주제는 아니다. 우리 편지 교환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인간의 삶을 추동해 온 두 전통(과학과 종교)의 역동적 관계를 좀 더 깊이 '이해'하자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고담준론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길고도 쉽지 않은 글들을 이 지면에 실었던 이유는, 다른 한편으로 이런 논의가 지금 내 곁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정말?

며칠 전 추부길 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이 한 기독교 행사에서 "사탄의 무리들이 판치지 못하도록 기도해 달라"라고 말해 물의가 일자, "이는 기독교계에서 기도나 연설 말미에 통상적으로 쓴 관행적 용어일 뿐 특별한 집단을 지칭한 발언은 아니다"라고 해명한 사건이 있었다. 이 해명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매일 만나는 다섯 명 중 하나는 "관행적"으로 '사탄'이라는 말을 쓰는 기독교인들일 것이다. 좀 섬뜩하지 않은가? 아무리 입에 붙은 말이라도 기도할 때 등장하는 '사탄'은 장난꾸러기 꼬마 요정이 아니다. 문자 그대로 '악령(惡靈)'이다.

현대 과학이 말해 주는 바, 물질적 기반이 없이 떠도는 영(靈)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사탄은 고사하고 천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는 각자의 종교와는 무관하게 '천사'라는 용어를 착한 일을 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기도 한다. 이때는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전직 목사인 추비서관이 쓴 '사탄'도 단지 상징적 표현에 불과한 것인가? 그저 '참 나쁜 사람들'을 지칭하는?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으로 재직 중이던 2004년 년 5월 31일 한 기독교 행사에 참석해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내용의 봉헌사를 낭독했다. ⓒ프레시안

사탄 발언으로 파문이 일자 그는 슬그머니 그렇게 해명한 셈이지만, 내가 보기엔 일반인들이 쓰는 '천사'에 비해 그의 '사탄'은 실제로 존재하는 영에 가깝다. 놀랍게도, 오늘날 적지 않은 한국의 유신론자들이 천사나 사탄을 문자 그래도 믿는다.

여기 증거가 있다. 2004년 한국갤럽이 실시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 의식'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악마의 존재를 믿는 신자는 개신교인 중 77.6%나 된다. 추 비서관의 해명과는 반대로,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은 사탄을 문자 그대로 믿고 있는 셈이다. 이왕 통계가 나왔으니 몇 가지 항목을 더 언급해 보자. 같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신교인 중 80.9%는 천당을, 81%는 사후 영혼을, 83.6%는 기적을, 70.2%는 창조설을, 63.6%는 심판설을 믿는 사람들이다(물론 우리나라의 경우 종교인 분포는 2004년 현재, 개신교, 천주교, 불교, 기타가 각각 21.4%, 6.7%, 24.4%, 47.5%로 일종의 분점 형태를 띠고 있다).

나는 과학이 인류가 발명해 낸 가장 신빙성 있는 지식 습득 방법임을 믿는 사람으로서 한국의 대다수 기독교인들의 사고방식(mentality)이 참으로 걱정스럽다. 그들의 역사책에는 다윈도, 아인슈타인도, 구달도 실존 인물이 아닌 듯하다. 아무리 그럴듯한 지식이라도 그들의 굳건한 신념 앞에서는 늘 상대적이고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지식의 교류 측면에서 소통이 가장 더딘 동네는 종교이다. 말하자면 종교는 이시대의 '명박 산성'이다. 그들은 경전의 컨테이너를 쌓고 이견의 유입을 차단하며, 자신들만의 소통에 골몰한다.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과학의 촛불 시위'는 계속되고 있는데도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 과학이 종교에게 던지는 최대의 화두는 '소통'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과학과 종교'에 관한 편지 교환이 고준담론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 이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서울시를 봉헌"하고 "사탄의 무리"가 판치지 못하게 하고, "좌파 빨갱이"를 잡아들이자는 종교인들의 말실수는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세계를 보는 방식이며 그들에게 세계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것은 순교 서약서까지 써놓고 여행 자제국으로 기어이 떠나고 마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이며, 미국인보다 더 미국을 신뢰하고 그 나라 대통령의 안위를 위해서까지 눈물로 기도하는 갑갑함이다. 우리의 편지 연재가 이들을 향한 또 다른 촛불 시위라면, '이런 논의는 이제부터 제대로 시작'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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