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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없이 늙어도,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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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없이 늙어도, 당당하다" [<프레시안> 창간 7주년 :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코뮌 (上)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서울에 올라온 이 씨. 그는 여느 한국 남자들과 달리 군대 이야기를 즐기지 않는다. 군 복무가 힘들었다고 여겨본 적이 없어서다. 물론, 구타와 얼차려가 난무하는 내무실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전쟁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본 적은 없었다.

교복 입고 등교하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올라온 서울역 광장. 전쟁을 정말 떠올린 것은 그곳에서였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사람들 사이로 동냥하는 거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긴장이 신경을 타고 흘렀다. 훗날 군대에서 무수히 얻어맞았지만 그때처럼 긴장해 본적은 없었다.

그 후 안 해본 일이 없었다. 중국 음식점 배달원부터 시작했다. 사기도 몇 번 당했지만 조금씩이나마 돈을 모을 수 있었다. 결혼도 했다. 삶에 긴장이 풀리면서 행복감이 몰려왔다. 짧은 순간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주식에 손을 댔다. 그때부터 내리막이었다. 행복을 경험해본 탓일까. 한번 풀린 삶의 긴장은 다시 죄어 지지 않았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바짝 긴장해야하는 삶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끔찍했다. 전장의 낙오병이 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술을 마셨다. 느슨해진 삶은 깨진 그릇 같았다. 아무리 술을 들이부어도 넘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 뒤, 서울역 광장으로 돌아갔다. 17살 소년에게 '사는 것은 전쟁이다'라고 속삭였던 그곳에 서는 순간, 마지막 긴장까지 허물어졌다. 노숙 생활을 시작했다."


간신히 벗어난 노숙 생활, 십 년 뒤에는?

한때 서울역 노숙인이었던 사람과 우연히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2년 전 이맘 때, 그와 나눈 이야기에 관한 기록을 위에 옮겼다. 작은 가게에서 일하는 그는 성공적으로 노숙 생활에서 벗어난 사례로 꼽힌다. 그런데 지금 얼마쯤 벌까? 정확한 대답은 하지 않았다. "100만 원이 넘느냐"는 질문에 말이 없었다. 십 년 뒤면, 그는 나이가 예순을 넘는다. 노숙 생활을 거치며 몸이 망가진 그가 예순이 넘은 뒤에도 노동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가족 없이 혼자 지내는 그는 어떤 생활을 하게 될까.

컴퓨터 하드디스크 속에 잠겨 있던 그에 관한 기록을 다시 떠올린 것은 수은주가 연일 30도 위로 치솟았던 올해 8월이었다. 당시 눈에 띈 <중앙일보> 기사가 계기였다. 이런 내용이다.

"말복인 8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 2평 남짓한 김선숙(가명·77) 할머니의 방은 낮인데도 깜깜했다. 창문이 없는 데다 더울까 봐 할머니가 전등을 꺼 놨기 때문이다. 온도계로 재보니 방 안 온도는 바깥보다 2.5도가 높은 35.5도. 김 할머니의 방에는 선풍기 한 대가 돌고 있었지만 가열된 모터의 더운 바람만 뿜어 나왔다. 방 안 한쪽의 냉장고에서도 열기가 느껴졌다.

방바닥에 누워 TV를 보던 김 할머니가 선풍기를 껐다. 할머니는 "한 달에 전기료가 3만 원 이상 나와 선풍기를 하루 종일 틀 수도 없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의 한 달 수입은 정부에서 주는 노령연금 38만원과 구청에서 지원하는 10만원이 전부다. 남편과 사별한 할머니는 자녀들의 형편이 좋지 않아 쪽방촌에서 혼자 살고 있다.

'좀도둑이 있어서 밤에도 문을 열지 못하고 자느라 죽을 지경이야.' 방 안 더위를 견디다 못한 김 할머니가 벽을 짚고 일어섰다. 할머니가 더위를 피할 곳은 집 앞 그늘이 전부다. 김 할머니 방을 지나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가는 골목을 지나자 세 명이 모여 사는 쪽방이 나왔다. 이모(76) 할머니는 '더위가 심하면 어지럽고 토할 것 같다'며 '날이 더울 때는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고 토로했다. 옆에 있던 정모(76) 할머니는 '슬레이트 지붕이라 밤에 잠을 못 잘 지경'이라며 '방에 있다가는 더워 죽을 것 같아 교회 식당 등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고 전했다."

쪽방에서 홀로 얼어죽은 80대 노인
▲ 서울 보문동에 사는 이금순 할머니의 집. 종이 상자를 모아서 생활비를 버는 이 할머니는 한 쪽 눈의 상처를 방치하다가 시력을 잃었다. ⓒ인권오름

당시 기사에 따르면 국내 65세 이상 노인은 502만 명이며, 그 가운데 혼자 지내는 노인은 93만 명(18.6%)이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16만여 명(17.3%)은 여름철에 냉방기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같은 달 보건복지가족부가 한나라당 안홍준 의원에게 제출한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독거노인 1000명 가운데 31.7%가 열사병, 열탈진, 열발진 등 더운 날씨로 인한 병을 1차례 이상 앓아본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홀로 지내는 노인들은 더위만 두려운 게 아니다. 지난 2006년 겨울에는, 서울 이문동 쪽방에서 지내던 80대 독거노인이 얼어 죽었다. 그는 전기장판이 있었지만, 전기료를 아끼느라 사용하지 않았다.

더위에 시들고, 추위에 얼어붙은 몸에 상처가 생겨도 의사를 만나기 힘든 경우도 많다. 서울 보문동에 사는 이금순 할머니는 갑자기 한쪽 시력을 잃었다. 종이 상자를 모아서 생활비를 버는 그는 우연히 한 쪽 눈을 다쳤다. 그는 "언제, 어디서 무엇에 찔렸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냥 좀 쑤시다 말겠지 하고 내버려뒀다. 그런데 어느 날, 오줌을 지릴 정도로 심하게 아팠다.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갔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허망하게 한 쪽 눈을 잃었다. (☞관련 기사 : "오늘은 3천 원 벌었어")

자식은 없느니만 못하다는 할머니

심한 괴로움에도, 그가 병원 가기를 망설였던 이유는 그가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할머니가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지 못한 것은 자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 할머니의 사연을 소개한 <인권오름> 기사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마흔에 서울로 올라왔다. 어린 나이에 돈 벌러 서울로 떠난 자식들과 함께 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그 바람은 바람으로만 그칠지 모르겠다. 오래 전에 막내아들과 몇 달 살았을 뿐 여든네 살인 할머니는 지금도 혼자 사신다. 그런데도 할머니가 기초생활수급권자가 되지 못한 건 물론 자식들이 있어서다.

'산골서 산나물 폴아서 근근이 먹구 살았는디 애들 가르칠 정신이 있었겄어. 아들 서이, 딸 둘 있는디 막내만 빼곤 다들 국민핵교 다니다 말거나 게우 졸업했지. 막내놈은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허고, 둘째딸은 건물 청소하구 그라지. 큰년이 쪼그맣게라도 식당을 하고 있구. 이것들이 일을 하고 있어서 혼자 살아도 정부 뒷받침을 받을 수 읎다고 하드라구. 자식이 읎느니만 못한 거지 뭐.'"

"한국에서 가족이 없는 노인에겐 복지도 없다"

한때 노숙인이었던 이 씨, 더울까봐 전등도 켜지 못해 깜깜한 방에서 지내는 쪽방촌 할머니, 겨울에 전기료 아끼느라 얼어 죽은 노인, 눈을 다쳐도 그냥 참다가 시력을 잃어버린 할머니 등은 모두 가족이 없거나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이들이다. 이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것 역시 '가족'이다.

이들에게 가족이 줄 수 있는 것은 단지 피붙이로서의 정(情)만이 아니다. 추위와 더위를 막고 굶주림을 피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에 대한 배려 등이 모두 가족에게서 나온다. 경제활동을 하는 자식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노인들의 삶은 극단적으로 갈라진다. 한국에서는 가족이 없으면, 노인 복지도 없다.

하지만 가족은 이미 위기다.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다. 또,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식과 멀어진 노인도 많다. 그래서 노년을 홀로 지내야 하는 이들은 늘 두렵다. 노숙인 생활을 하다 모처럼 안정을 찾은 이 씨가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다. 17살 소년을 오싹하게 했던 서울역 광장의 풍경에서 결국 도망치지 못하리라는 불안이다.

<아내가 결혼했다>가 현실로…보편적 복지제도가 낳은 다양한 가족 형태

스웨덴 스톡홀름 시내 곳곳에 있는 공원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노인들을 보며, 이 씨 얼굴에 드리워졌던 불안한 표정을 계속 떠올렸다.

스웨덴에서는 혼자 지내는 노인의 비율이 더 높다. 하지만, 이들이 아파도 병원에 못가거나, 더위와 추위 앞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일은 없다.

그 배경에는 '모든 사람'에게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보편적 복지제도'가 있다. '보편적 복지제도'와 대비를 이루는 개념이 복지 수혜 대상자의 범위를 공공기관이 정하는 '선별적 복지제도'다.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이 표방하고 있는 '보편적 복지제도'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생겨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스톡홀름 인구 가운데 약 60%가 '1인 가정'이다. 스웨덴 전체에서는 약 40%가 '1인 가정'이다. 독신으로 늙어가는 인구가 많다는 뜻이다. 자식과 동거하는 노인은 전체 노인의 약 4%에 불과하다. 자녀와 거의 만나지 않고 지내는 노인도 40%에 달한다. 자녀와 자주 교류하는 경우에도 사위, 며느리, 손자, 손녀 등과 만나는 일은 드물다.

대신, 동년배 친척이나 친구 또는 과거 직장 동료들과 만나는 일이 많다.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이들과 맺어진 인연을 더 중시하는 셈이다.

가족을 뒷받침하는 결혼 개념도 상당부분 허물어졌다. '삼보(Sambo, together with)', '델스보(Delsbo, partly living together)' 등으로 불리는 동거가 결혼보다 흔하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20~24세 연령층에서는 44%가, 25~29세에서는 30%가, 30~34세에서는 15%가 결혼이 아닌 동거를 택하고 있다. 그래서 스웨덴 신생아의 절반가량은 '혼외 출생아'다.

스웨덴에서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가족 형태는 어머니와 자식으로 구성된 가정(모자가정)이다. 두 번째로 흔한 게 전처(前妻) 혹은 전(前)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와 함께 사는 가정이며, 친부모와 친자식들로 구성된 가정은 그 다음이다.

또 법적으로는 아직 인정되지 않지만, 집단혼 유형도 간혹 있다. 소수의 남녀가 주거, 성생활, 금전 등을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공유하는 형태다. 1남 2녀, 1녀 2남 등의 형태를 주로 띤다.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에 등장하는 사례가 실제로 구현되고 있는 셈이다.

평생 전업 주부도 '경제적 홀로서기'가 가능

스웨덴 역시 20세기 중반까지는 전통적인 가족 형태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스웨덴 사회는 결혼과 가족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가장 선도적으로 허물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찍부터 이뤄져 온 피임 교육, 성(性)에 대해 개방적인 문화가 그 배경에 있다.

하지만, 문화적 특징만으로 스웨덴 사회의 자유로운 가족 관념을 설명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탄탄한 사회 복지와 서로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현상인 까닭이다. 스웨덴에서는 학비가 무료이며 학생이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게 쉬운 까닭에, 자식은 고등학교만 마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게 일반적이다. 자식이 일찍 독립하므로, 부모 역시 자식 부양의 부담을 오래 지지 않는다.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온 자식은 혼자 지내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동거를 시작한다. 동거를 거치지 않고 바로 결혼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성별, 학력 등과 관계없이 누구나 기본적인 생계가 보장되므로, 배우자 혹은 동거인과 헤어져도 경제적 충격을 감당할 수 있다. 평생 전업 주부로 지낸 여성도 '경제적인 홀로서기'가 가능하다. 스웨덴에서는 사회보험에 기여금을 평생 한 번도 납부하지 않은 사람도, 65세 이후에는 연금을 받을 수 있다. 집 밖에서 돈 벌이를 한 적이 전혀 없어도, 7153크로나(140만3132원)의 최저보장연금(2007년 기준)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몸이 불편해도 홀로 지낼 수 있다…'코뮌'을 통해 이뤄지는 생활 복지

이처럼 가족 관념이 자유로운 까닭에, 홀로 지내는 노인도 많다. 이런 현상 역시 복지와 맞물려 있다. 노인을 위한 수발 서비스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병이 있거나, 몸이 불편한 노인이 있는 가정에 수발 도우미와 간호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하게 돼 있다. 도우미와 간호사의 방문 횟수와 시간 등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정한다. 보건의료 관련 복지는 주로 광역 지방자치단체(Landsting, 랑스팅)이 담당하고, 다른 복지와 교육은 주로 기초자치단체(Kommun, 코뮌)에서 맡는다.

이처럼 생활과 밀접한 복지 영역을 지자체가 맡고 있기 때문에, 지방 의회 선거에 대한 스웨덴 사람들의 관심은 매우 높다. 쇠데르턴 대학(Sodertorn University, 남스톡홀름 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는 최연혁 교수는 "스웨덴 코뮌 의회 선거 투표율은 약 90%"라고 말했다.

또, 복지가 주로 코뮌을 통해 이뤄지는 까닭에 중앙 정치가 부침을 겪어도 시민에게 제공되는 실질적 복지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2006년 스웨덴 총선에서 우파 정권이 탄생했지만, 복지가 일정 수준 아래로는 퇴보하지 않는 배경이기도 하다.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연재 두 번째 키워드 '코뮌'에 관한 두 번째 글에서는 스웨덴의 강력한 지방 자치 전통 속에서 생활 깊숙히 스며든 복지 체제에 대해 다룰 예정입니다.)

○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 연재를 시작하며:
"'사람값'이 비싼 사회를 찾아서"

첫 번째 키워드 : 협동

"평등 교육이 더 '실용'적이다" (上)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中)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下)

두 번째 키워드 : 코뮌

"가족 없이 늙어도, 당당하다" (上)
"'착한 정부'는 '코뮌'에서 나온다" (中)
"'인민의 집', 그들만의 천국?" (下)

세 번째 키워드 : 생태

"산적이 100년 동안 다스리는 마을에서는…" (上)
'MB식 녹색성장'이 불안한 이유 (中)
'친환경 기술'로 녹색성장?…"글쎄요" (下)

네 번째 키워드 : 민감

"'강철신경'은 자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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