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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연기금은 주식투자 많이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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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외국 연기금은 주식투자 많이 한다고? [밥&돈] 벼랑 끝의 국민연금 ②근거 없는 수익률 지상주의
현재 국민연금기금의 주식손실액이 10조 원을 훨씬 넘는다. 지금도 급증하는 주식투자가 문제지만, 앞으로 더욱 늘어나 2013년에 주식투자액이 200조 원에 이를 예정이다. 전 국민의 노후예탁금을 판돈으로 위험한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주식투자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여러 가지 옹호 논리들을 개발했다. '주식투자의 수익률이 높다', '해외 연기금도 주식투자를 많이 한다', '주식투자를 많이 한 연기금일수록 수익률 높다', '주식투자 이익으로 기금 고갈을 대비해야 한다', '기금의 거대화로 주식 확대가 불가피하다' 등. 과연 이 주장들은 타당한가?

채권 수익률은 낮추고 주식 수익률은 부풀리고

보통 주식투자를 확대하자는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주식이 채권에 비해 기대수익률이 높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04년 노무현 정부는 장차 주식부문 투자를 확대하는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중장기 국민연금 기금운용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이 마스터플랜은 자산군별 기대수익률을 상정했는데, 국민연금기금이 가장 많이 투자된 국내채권의 수익률은 5.3%로 낮게 잡고, 해외주식, 국내주식의 기대수익률은 10.08%, 8.45%로 높게 설정하였다.

<표 3> 국민연금기금 자산군별 추정 기대수익률종목1년 보유수익률 평균국내채권

이에 따라 도출된 결론은 당연히 향후 국민연금기금 운용에서 주식투자를 확대하자는 것이었다. 그 결과 2003년 6%에 불과했던 주식 비중은 노무현정부 마지막해인 2007년에 18%로 증가하였고, 이명박정부 들어와서 더욱 늘어나 올해 24%, 내년에 30%에 이르고, 2013년에는 기금의 절반에 육박할 예정이다.

과연 마스터플랜이 객관적으로 마련될 것일까? 마스터플랜은 채권의 경우 과거 고금리 시절을 분석에 편입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며 이 시기를 제외해 기대수익률을 낮추었고, 반면에 주식의 경우엔 주가가 폭락했던 IMF 시기를 제외해 기대수익률을 높혔다. 해외주식과 해외채권의 경우에도 헤지된 기대수익률이 6% 안팎이었으나 헤지되지 않은 수익률을 적용하여 10% 기대수익률을 제안했다. 정부가 주장하는 주식투자의 기대수익률에 거품이 껴 있다는 의혹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주식투자 수익률이 채권보다 높다?

일반적으로 주식투자 수익률이 채권투자 수익률보다 높다고 한다. 이 주장은 사물의 절반만을 지적할 뿐이다. 고수익은 반드시 고위험을 동반한다는 것이 자산운용의 ABC이다. 정부와 기금운용위원회는 주식투자의 고수익을 강조할 뿐 이것에 따르는 고위험을 간과한다. 자산운용에는 고위험·고수익 투자와 적정위험·적정수익 투자가 있다. 민간인의 여유자금이라면 고위험·고수익 투자가 가능하겠지만 국민연금기금처럼 공적 재원이라면 위험을 적정수준에서 관리하는 투자가 적합하다.

과거에 경험적으로 주식수익률이 높았다면 그만큼의 고위험 사태가 현실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금융위기와 주식 폭락은 주식의 고수익만을 강조해왔던 사람들에겐 살아있는 반증자료이다. 일정 기간 자료를 근거로 주식수익률이 높다는 주장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졌다.

외국 연기금들은 주식 투자를 많이 한다?…美 공적연금은 100% 국채에 투자

정부는 외국 연기금들이 주식투자를 많이 하고 있음으로 국민연금기금도 그 방향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홍보하는 대표적인 연기금은 주식투자 비중이 40~50%에 이르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인 캘퍼스(CalPERS)와 네덜라도 공무원연금인 APG이다.

하지만 정부는 국민연금기금과 해외연기금(캘퍼스, APG)이 지니는 차이를 무시한다. 국민연금기금은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1층 국민연금이고, 캘퍼스와 APG는 소득비례방식의 직업연금이다. 직업연금들은 1층 연금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금운용에서 유연성을 가질 수 있지만, 보편연금인 국민연금기금은 안정자산에 집중하는 것이 적절하다(보통 연금체계는 1층 국민연금, 2층 직업연금, 3층 개인연금으로 구성됨).

우리나라 국민연금기금과 비슷하게 보편연금의 성격을 지닌 연기금은 미국의 공적연금(OASDI)과 일본의 공적연금(GPIF)이다. 이들은 규모에서 세계 1, 2위에 해당하는 거대 연기금인데(미국 2300조 원, 일본 1100조 원), 미국 OASDI는 모두 국채에, 일본 GPIF는 채권에 70% 이상 투자한다.

이렇게 각국의 공적연기금은 연기금의 성격, 자산운용시장의 특성 등을 감안하여 기금을 운용하고 있다. 보편적 1층 연금 성격을 지니는 미국과 일본의 연기금은 안정적 자산에 집중하고, 직업연금이면서 자산운용시장에 익숙한 미국 캘퍼스와 네덜란드 APG는 주식에 상당 금액을 투자한다. 우리나라 국민연금기금은 보편적 1층 연금이다. 특히 연금제도에 대한 가입자 불신이 크고, 국내 자산시장도 불안정하며, 자산운영능력도 취약하다. 그만큼 안정적 자산운용이 중요한 연기금이 바로 국민연금기금이다.

외국 연기금은 수익률이 높다?

근래 들어 정부는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이 주식투자 비중이 높은 외국 연기금에 비해 낮다는 점을 강조한다. 지난 3년간(2005∼2007년) 국민연금기금의 연평균 수익률이 6.1%인데 반해 캘퍼스는 12.3%, 네덜란드 APG는 8.6%를 기록했다. 최근 보건복지가족부가 기금운용 지배구조 개혁 모델로 제시하는 캐나다 공적연금(CPP)도 9.1%의 수익률을 올렸다.

하지만 수익률 비교는 준거 기간에 따라 결과가 다를 수 있다. 비교기간을 2000년 이후로 늘리면(2000-2007),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은 6.8%로 크게 변하지 않지만, 주식 비중이 높은 연기금인 캐나다 CPP, 미국 캘퍼스, 네덜란드 APG의 수익률은 8.0% 6.5%, 5.3%로 낮아진다. IT산업 거품이 꺼지던 2000년대 초반 해외연기금들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반면 채권 중심으로 운용되었던 국민연금기금은 안정적 수익률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올해 해외 연기금의 손실율이 심상치 않다. 8월 현재 국민연금기금이 주식투자로 20% 손실을 입었고, 외국 연기금들도 엇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 연기금은 국민연금기금에 비해 주식투자 비중이 월등히 높다. 전체 손실률을 비교하면 해외 연기금이 국민연금기급에 비해 수배의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다.

'위험대비 성과지수' 1이하인 연금들을 본받겠다?

그러면 공적연기금은 어떻게 비교하는 것이 적절한가? 공적 연기금의 운용 성과를 제대로 비교하기 위해서는 수익률과 위험률을 함께 조합해서 평가하는 '위험대비 성과지수'(수익률/표준편차)를 보아야 한다. 이 지수는 수익률이 좋더라도 수익률 변동폭인 표준편차가 크면 손실 위험성이 커지므로 양자를 함께 평가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수익률이 엇비슷하였던 지난 8년간 위험대비 성과지수를 보면, 국민연금기금은 4.78로 매우 양호하다. 반면에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캐나다 CPP는 0.42에 불과하고 미국 캘퍼스와 네덜란드 APG도 0.57, 0.76으로 모두 1 이하이다. 특정기간 수익률이 높다고 자랑하는 해외 연기금들이 사실 수익률이 그리 높지도 않으면서 수익률 변동성이 커 불안정한 연기금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보편연금으로서 안정성을 우선시해야 하는 국민연금기금이 본받을만한 대상이 못 된다.

투자수익률 올려 기금 고갈 대비하겠다?

최근 발표된 국민연금 2차 재정추계결과에 의하면 국민연금기금이 2060년에 고갈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정부와 일부 전문가들은 국민연금기금의 수익률을 높여 기금 고갈에 대처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국민연금의 기본 재정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주장이다. 국민연금의 미래 재정에 미치는 결정적 변수는 보험료율과 급여율이다. 기본수입인 보험료율이 어느 수준에서 정해질지, 기본지출인 급여율이 어떻게 변화될 지에 따라서 미래 재정전망이 정해진다. 기금수익률은 적립된 기금 운용에서 파생적으로 발생하는 재원으로서 국민연금 재정에 영향을 미치지만 2차적 변수일 뿐이다. 게다가 기금운용의 수익률은 시장 기대 범위 이상을 크게 뛰어넘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국민연금 미래 재정추계 작업이 기금수익률을 무시한 것도 아니다. 이번 재정추계에선 기금수익률이 시장금리의 1.1배로 설정돼 이미 반영되어 있다. 그런데도 다시 시장 기대 범위를 넘는 수익률을 운운하는 것은 자산운용의 객관적 한계를 무시하고, 국민연금기금의 기본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진정 기금 고갈에 대비하기 위해 고려할 변수는 보험료율과 급여율 조정, 국가의 연금재정 지원 비중, 수급자의 규모에 영향을 미치는 노인의 경제활동참가율 등이다. '투기적 변수'에 현혹되지 말고, '객관적 변수'를 중심으로 국민연금기금의 미래 재정을 이야기하고 대비해야 한다.

기금의 거대화로 주식투자 확대가 불가피하다?

주식투자 확대를 주장하는 주요한 논거가 '연못 속 고래'론이다. 장래 국민연금기금의 규모가 너무 커 채권투자만으로 기금을 감당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향후 국민연금기금이 천문학적 규모로 증가하고 이것을 적절하게 운용하는 것이 어려운 과제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국민연금기금의 여유자금이 당연히 주식투자로 향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2007년 기준 국민연금기금의 72%가 국내채권에 투자되고 있다. 이것이 국내 채권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8%다. 작지 않은 규모이지만 그렇다고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앞으로 국민연금기금 규모가 커지더라도 약 60%가 국내채권에 투자된다면 국내 채권시장 점유 비중을 1/4 이하 수준에서 관리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 기금의 나머지 40%를 해외채권, 국내주식, 해외주식 등 기존 자산군과 공공부문 중심의 새로운 대안 자산군으로 배분한다면 주식부문 투자액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앞으로 국민연금기금이 거대하게 성장한다는 것은 미래의 전망일 뿐이다. 지금 당장은 연금불신이 강해 가능하지 않지만, 연금수급자가 많이 배출되어 연금신뢰가 구축되는 시점에 '국민연금기금 규모'를 적정수준으로 조정하는 사회적 논의가 행해질 가능성도 열어 놓아야 한다.

결국 '연못 속의 고래'가 반드시 주식투자 확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기금 규모가 커지더라도 주식투자 비중을 최소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아가 연금 신뢰가 형성되는 시점에는 기금 규모를 적정수준으로 조정하는 논의도 가능하다. 지금처럼 국민연금기금에서 위험자산인 주식투자 비중을 미리 과대하게 상정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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