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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컨테이너 아래, 새끼 고양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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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컨테이너 아래, 새끼 고양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기고]폭력이 휩쓸고 간 기륭전자 비정규직 농성장에서
아침, 학교 갈 아이에게 밥을 차려주며 이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였다. 들어서 좋을 소리도 아닌데, 아이 마음에 괜히 그늘 한 자락 만드는 건 아닌가 싶어 말하지 말아야지 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이 생일, 저녁 먹을 시간까지는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와야겠지만 혹시라도 늦을까 싶어 말을 꺼냈다.

"기륭전자 농성장 컨테이너박스랑 천막을 회사에서 다 철거해 버렸대."

아침이 밝아올 무렵 전화로 전해들은 소식을 아이에게 전해주자, 아이는 잠시 뒤 내게 물었다.

"새끼 고양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새끼 고양이라니, 의아했다. 기륭 노동자들이 길에서 떠도는 고양이를 건사해 주었던 걸까. 나는 본 적이 없어서 아이에게 물었더니 그게 아니란다.

"컨테이너박스 밑에서 고양이들이 살았어. 어미 고양이랑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있었어."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컨테이너박스 밑에 빈 공간이 있었나 보다. 아이는 그 고양이들을 언젠가 만났던 게지.
▲ 지난 15일 기륭전자 앞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컨테이너 박스 농성장이 회사 측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 ⓒ노동과 세계 이기태 기자

아이가 학교에 간 뒤, 서둘러 기륭 앞으로 갔다. 컨테이너박스는 마을버스가 서는 골목 끝 쪽으로 옮겨졌다. 천막에 있던 노조에서 쓰던 물품들이 길바닥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불법파견으로 저임금 장시간 노동과 해고에 시달렸던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 그이들이 제발 해고당하지 않고, 안정되게 일하게 해 달라고 노동조합을 만들어 요구하다 쫓겨난 회사 앞에서 싸우는 동안 하나씩 둘씩 늘어난 투쟁물품들과 살림들이었다. 누군들 저런 물품과 살림을 장만하고 싶었을까. 기륭전자 노동자 어느 누군들 2005년에서 2006년으로, 다시 2007년에서 2008년으로 넘어가는 긴 시간들을 투쟁할 수 있어 좋다고 지나왔을까.

깃발을 만들고, 펼침막을 만들고, 손팻말을 쓰고, 폭력당한 사진을 코팅하고, 선전물을 만들게 한 것은 바로 기륭자본이다. 천막농성을 하게 한 것도, 고공농성을 하게 한 것도, 단식농성을 하게 한 것도 마찬가지다. 발이 부르트도록 아프게 여기저기 다니며 투쟁하게 한 것도. 기륭전자 노동자들을 투사로 만든 것은 세 해가 지나는 동안 해결하지 않고 방치한 기륭자본과 이 사회다. 노동자들을 노예처럼 취급하게 만든 법과 제도가 그이들을 긴 시간 동안 싸우게 만들었다.

폭력을 동원해 농성장을 강제철거 한 뒤, 회사 대표이사는 서울 프라자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했단다. 그 자리에서 대표이사는 "노조원들의 상식을 벗어난 행태와 핵심주동자를 알아야한다"(서울신문)고 했단다. 회사 눈에는 노조원들의 움직임이 '상식을 벗어난 행태'로 보이는가 보다. 하지만 그 움직임은 생존권과 노동권을 향한 절박한 행동이었고, 노동자를 노예 취급하는, 상식을 벗어나는 잔인한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처절한 행동이었다. '핵심주동자'를 알고 싶은가. 그건 바로 회사 당신네들이고, 그런 당신네들을 감싸고도는 국회와 정부와 법원 그리고 보수언론이다. 엉뚱한 곳에서 핵심주동자를 찾지 말기를. 덤터기를 씌우려 하지 말기를.

기륭전자는 이 노동자들이 지나온 시간을 쓰레기 취급하며 길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회장과 대표이사 그리고 임직원들은 이 노동자들이 지나온 그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 알까. 관리자의 눈 하나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숨죽여 일해 온 나이든 여성 노동자들, 정당한 요구도 해고 될까 겁나 말하지 못하고 속상해도 참고 살아온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 입을 열어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 함께 쏟아져 나온 것은 눈물이었다. 그동안 공장 화장실에서, 퇴근하는 공단 길에서, 집에서 혼자 흘렸을 눈물을 그이들은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공장 앞에서 쏟아냈다. 함께 뭉쳐 요구하고 투쟁해 좀더 안정된 고용조건 아래에서 열심히 일하고 싶었던 그이들에게 날아온 것은 해고였다. 속말을 나눌 새도 없이 일만 해오던 이들, 따뜻한 정마저 얼어붙어 있던 현장에서 외로웠을 이들이 노동조합으로 서로 엮이고 엮으면서 이게 사람답게 사는 거구나 깨달았던 시간을 기륭전자는 알까. 노동자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회사와 함께 사는 길을 찾으려 했던 그 시간을 알까. 200여 명이 함께 시작한 투쟁이 한 달, 두 달, 한 해, 두 해를 넘으면서 한 사람, 두 사람 곁에서 사라지는 동안 남은 사람, 떠난 사람 가슴에 똑같이 상처 하나씩 새겨졌을 그 시간을 알까.

그 시간이 담긴 물품들이다. 지금은 없는 누군가가 만들었을 손팻말이고, 지금은 만날 수 없는 누군가의 얼굴이 박힌 사진이다. 남은 열 명 노동자와 함께 웃고 울고 외친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진 물품들이다. 전국 곳곳에서 찾아와 지지해 준 사람들의 손길이 담긴 물품들이다. 그게 회사 눈에는 쓰레기처럼 보였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패대기쳐도 될 하찮은 걸로 보였을까. 회사가 내동댕이치고 패대기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남아있는 열 명의 노동자와 연대하러 온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할 수만 있다면 한 사람 한 사람 들어올려 공장 앞 아스팔트 위에 패대기치고 싶었을지도. 그랬을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지쳐나가 떨어지지 않고 지금까지 버텨오는 노동자들을 내던지고 싶었을 것이다. 모두 짓밟아버리고 싶었으리라.

회사는 "공권력"이 "불법행위"를 방치하고 있다고 기자회견문에 적었다. 걱정도 팔자다. 걱정 붙들어 매시라. 지금까지 공권력이 노동자 편에 선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공권력은 언제나 기업 편이지 않았는가. 지나온 노동·노동운동 탄압의 역사가 보여주지 않는가.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2005년에도 공권력은 기륭 비정규직 노동자의 편이 아니었다. 공장을 점거했다고 공권력이 투입되어 끌어내온 것은 불법행위자들이 아니라 달리 어쩔 방법이 없었던, 그 방법밖에는 없었던 노동자들이었다. 그 뒤로도 회사를 보호한답시고 시시때때로 전경차가 회사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는가. 굳게 닫힌 공장 문 저 편에서 전경들이 줄지어 서서 회사를 보호해주고 도와주지 않았는가. 오늘도 전경차가 줄지어 공장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는가. 정작 힘없어 보호받아야 할 사람은, 용역 깡패와 구사대에 위협 받는 노동자들인데 말이다.

농성장이 파괴된 소식을 듣고 하나 둘 모인 사람들이 눈길을 어디에 두어야할지 모르는 그 먹먹하고 안타깝고 분노가 치는 마음을 추스르고 활짝 열린 공장 문, 줄지어 선 용역깡패들 앞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기륭 노동자들이 들었던 손팻말을 하나씩 들고서. 노조 분회장은 이른 아침 일로 혼절해 병원 응급실에 가 있고, 몇 조합원은 기륭전자 주 거래업체인 미국 시리우스 사에 항의하러 가는 노동자들을 배웅하기 위해 인천공항에 가 있고, 남은 세 조합원이 멍들고 아픈 몸으로 상황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오늘 폭력은 기륭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만 벌어진 게 아니다. 그동안 1000일 투쟁을 맞은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 지금까지 그 무수한 사람들이 선언으로, 서명으로, 기금으로, 먹을거리로, 촛불로, 시로, 글로, 그림으로, 조각으로, 노래로, 춤으로, 발걸음으로, 마음으로 지지해왔다. 기륭전자는 그 지지한 모든 이들을 향해 가차없이 폭력을 행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과 함께 손팻말을 들고 앉았다. 기륭 노동자들이 꽹과리로 썼던 스테인레스 대접을 아스팔트 위에 두드려가면서. 마찬가지로 장기투쟁을 하는 코오롱노조 정리해고분쇄투쟁위원회에서 끌고 온 승합차 위에 달린 확성기에서 나오는 노동가요에 맞춰 대접을 두드렸다. 공장 앞에서 어느 거리에서 대접을 아스팔트 바닥에 두드려댔을 기륭 노동자들의 심정을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그이들 지나온 시간, 대접을 두드려대면서 혹여 외롭고 서럽지는 않았을까.

우리의 연좌시위는 얼마 못 갔다. 파란색 회사 잠바를 맞춰 입은 임직원 구사대가 몰려나와 용역깡패들과 함께 우리를 들어냈기 때문이다. 가끔씩 촛불문화제 때, 늦은 저녁 경비실 쪽문으로 퇴근하는 직원들을 보았다. 달리 미워할 이유는 없는 사람들. 그이들도 회사 밥을 먹는 사람들, 눈치 보며 일할 게 뻔하지 않은가. 한 가지, 그이들은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자신들이 노동자임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 같은 노동자이면서도 자신들보다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을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다'라고 매몰차게 대해 안타까웠을 뿐. 언젠가 그이들도 이렇게 공장 앞에서 싸워야 할 날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한두 명 쪽문으로 나오던 사람들이,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에 가볍게 나오던 사람들이 똑같이 잠바를 입고 우르르 몰려나와 우리 뒤편에 서니 뭔가 분위기가 확 달랐다. 밖에 사람은 쉽게 못 느끼나 기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숱하게 겪어보았을 그런 분위기.

앉아있던 사람들을 밀어내고 끄집어내고 주먹질하고 발길질을 날린다. 여자 용역깡패들이 나와 팔다리를 잡고 들어내는데 해볼 재간이 없다. 안 끌리려고 최대한 발버둥을 쳐보는 수밖에. 걷어냈다고 그대로 저쪽으로 가는 게 아니라 다시 뒤돌아 맞붙는 것뿐. 우리는 열댓 명 정도였을까. 그쪽은 수십 명. 싸움이 될 수가 없지만 우리가 할 일은 그렇게 맞고 버티고 항의하는 것. 기륭 노동자들이 지금까지 숱하게 이런 일을 당했으리라 생각하니 할 말이 없다. 그동안 우리가 얻어온 이러저러한 작은 권리들은 이렇듯 한쪽에서 누군가 얻어터지면서 눈물 흘려가면서 얻은 것이라 생각하니 미안함이 앞선다.

촛불 네티즌들이 기륭전자 지지 릴레이 단식농성으로 시작해서 우리 사회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실천하려고 만든 '함께 맞는 비'라는 모임 회원이 손팻말을 들고 다시 용역깡패와 구사대 앞에 가서 서자 구사대 한 명이 피켓을 빼앗아 부수고 회사 안쪽으로 던져버렸다. 거기에는 무슨 말이 써 있었을까. '일하고 싶다'거나 '정규직화 쟁취하자'거나 '차별 없는 세상'이거나 '인간답게 살고 싶다'거나 '비정규직 철폐'거나 하는 말들이었겠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우리에겐 소박하고 절실하나, 자본가는 한 치도 내 주지 않으려는 그 염원이 담긴 말들이 적힌 피켓을 아무렇지 않게 부수고 던져버리는 모습을 보니 나는 무척 화가 났다. 내놓으라고 가서 따졌다. 구사대가 "넌 누구냐"고 소리친다. 대답을 원한 물음이 아닌 것은 뻔하다.
▲ "기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당신네 직원이 아니었는가? 파견업체 직원이었다고, 우리랑 상관없는 사람들이라고, 법적으로 고용을 책임질 필요가 없는 다른 회사 직원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프레시안

넌 누구냐고, 너희는 누구냐고? 당신네들은 돈을 주고 사람을 사 와서 폭력을 행사하지만, 기륭 비정규 노동자들에게는 마음 하나 가지고 달려와 함께 얻어맞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비정규직 노동자들 곁에서 목소리 하나 더 보태고, 촛불 하나 더 밝히는 것이 조금이라도 우리 미래를 바꾸고, 우리 사회를 나아지게 하고, 우리를 지키고, 인간다운 삶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넌 누구냐고, 너희는 누구냐고? 혹시라도 당신들이, 바로 노동자인 당신들이 부당한 일을 당해 이렇게 공장 문 앞에서 싸워야 할 때면 언제든 달려와 함께 해 줄 사람들이다. 지금은 어떻게든 기륭 자본에 붙어 살아남아야 하니까 원하든 원치 않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해 발길질을 해대고, 눈을 부라리고, 주먹질을 해대는 당신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한 일이 당신들이 당할 일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지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싸우는 건 앞으로 올 당신들의 미래, 당신들 아이들의 미래까지도 포함한다는 사실을 혹시 아는가.

왜 우리 회사 앞에 와서 이러느냐고? 기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당신네 직원이 아니었는가? 파견업체 직원이었다고, 우리랑 상관없는 사람들이라고, 법적으로 고용을 책임질 필요가 없는 다른 회사 직원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그러니 자본가들이 돈벌어먹고 살기 좋은 세상이다. 이 사회는. 대다수 노동자가 파견업체 노동자였는데, 그 파견업체 노동자들이 생산 대부분을 책임졌는데, 생산은 파견업체 노동자 힘을 빌어놓고서는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가. 당신네들에게는 자본만 있고, 기술만 있고, 영업만 있고, 정작 생산은 하찮은 것인가. 중국에서는 생산 노동자들을 어떤 식으로 대할 것인지. 싼 임금에 쾌재를 부를까. 혹시라도 중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면 그 다음엔 어디로 다시 생산시설을 옮기시려나. 당신들은 남은 열 명을 얘기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파견노동자로 와서 기륭전자의 흑자를 만들었던 그 모든 생산노동자들을 말한다. 노동자의 권리를 빼앗긴 채 저임금과 장시간, 불안정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노동자들을.

구사대가 두꺼운 호스를 두 개 가져와 정문 앞에 물을 뿌려댔다. 다른 이유를 둘러대지만 사람들이 자신들 앞에 다가오지 못하게, 널브러진 짐들 젖으라고 뿌려대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구사대와 용역들이 밀어낸 자리에, 손팻말을 빼앗겼던 '함께 맞는 비' 회원이 다른 손팻말을 들고 다시 그 앞에 가서 선다. 젖어드는 짐들 사이에서 얇은 스티로폼으로 만든 손팻말을 주워들었다. 흙이 묻고 조금 부수어졌다. 나는 그걸 들고 가 옆에 섰다. 내가 든 손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일하고 싶다. 정규직화 쟁취하자!"

고액의 임금을 바라는 게 아니라, 단지 안정된 고용 속에서 일하고 싶다는 소망이 그렇게 불순했는가. 열심히 일해 온 이 노동자들이 회사를 발전시키는 데에 한몫 해 왔고, 앞으로도 열심히 일하겠다는데 그게 무슨 의도가 있어 보였는가.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교섭에서 최소한 고용안정을,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안을 내달라고 요구한 게 그리도 잘못이었나. 그래서 새벽부터 때려 부숴야 했는가. 뜨거운 물을 부어놓고 익기를 기다리던 컵라면을 먹지도 못하고 공중전화 박스에 올려놓을 수밖에 없게 해야 했는가. 94일을 단식하고 아직도 미음밖에 못 먹는, 50여 일, 60여 일 단식하고 아직도 죽밖에 못 먹는, 힘내려야 힘낼 수 없는 노동자들에게 그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둘러야 했는가. 그리하여 기륭전자 임직원 여러분, 용역깡패를 사고 구사대와 행동대장으로 나선 기륭전자 임직원 여러분, "오늘 그토록 자랑스러웠는가요?"

참, 경찰 여러분께도 할 말이 남았다. 아침에 새끼 고양이의 안부를 걱정하던 아이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서면서 말했다.

"회사가 그렇게 하면 경찰들한테 연락하면 되잖아."

우리 아이는 그렇게도 여러 차례 경찰과 전경들 앞에 서 보았으면서도 아직도 경찰을 믿고 싶은가 보다. 달리 해 줄 말이 없었다.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둘러댈 말도 없고.

"우리나라 경찰은 노동자 편이 아니야. 다들 회사 편이야."

사실을 말하는 수밖에. 그 말대로 경찰들은 아침내 그리고 기자회견을 하기 전에도 폭력을 휘두르는 용역깡패와 구사대들에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경찰도 어려움이 많겠지, 라고 그냥 이해해 주어야 하는가. 아이 가슴에 그늘 한 자락씩 심어주며 사는 세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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