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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집', 그들만의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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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의 집', 그들만의 천국?" [<프레시안> 창간 7주년 :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코뮌 (下)
"미카엘은 자신은 이미 공부라면 충분히 해 왔고, 직장도 있기 때문에 그럴 필요는 없다고 대답했다. 대신 지금 어떤 사람에게 고용되어 책을 한 권 저술하고 있는데 그 일을 할 수 있게끔 감방 안에서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의 요청은 즉시 받아들여졌다.

…(중략)…이렇게 미카엘은 비교적 유쾌하게 두 달을 보낼 수 있었다. 하루에 여섯 시간 정도는 반예르가와 관련된 작업을 하고, 남은 시간에는 의무 사역을 하거나 오락을 즐겼다. 사역은 두 동료-수감자 한 명은 셰브데 출신이고, 다른 한 명은 칠레 이민자 2세였다-와 함께 매일 교도소 체육관을 청소하는 일이었고, 오락은 TV를 보거나 포커를 하거나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것이었다."

"스웨덴 교도소에서 유쾌하게 지냈다"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이 쓴 추리소설 <밀레니엄>의 한 대목이다. 월간지 기자인 주인공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는 재벌의 비리를 고발하는 기사를 썼지만, 오히려 명예 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된다. 위에 인용한 내용은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주인공이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대목이다.

이 부분이 소설 전체에서 중요한 대목은 아니다. 다만, 교도소 복역에 관한 묘사가 눈길을 끈다. 우리가 흔히 갖고 있는 교도소 생활에 대한 인상과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웨덴 등 북유럽에서는 교도소 재소자에게 외출이 허용되는 경우가 많다. 또 소설에서 묘사된 것처럼 재소자가 자유롭게 오락을 하거나, 글을 쓸 수 있다.

'인권 선진국'다운 면모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정신병원 입원자와 더불어, 교도소 재소자들이 지내는 사정은 사회 전체의 인권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 꼽힌다. 교도소에 있는 사람도 소중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면, 평균적인 인권 수준 역시 높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인건비는 비싸도, 인권은 멀었다"…제도의 그늘에 남아 있는 폭력

하지만, 북유럽 사회는 천국이 아니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다. 강력한 노동조합과 사회민주주의 정당 덕분에 '사람값이 비싼 사회'를 이루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사람이 소중한 사회'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복지에서 거둔 성취만큼 인권이 보장되고 있지는 않다는 뜻이다.

앞서 인용한 소설 <밀레니엄>에서 스웨덴의 '인권 선진국' 다운 모습이 드러난 장면은 앞서 인용한 부분 외에 찾기 힘들다. 오히려 이 소설은 스웨덴 사회의 어두운 면을 잘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소설에는 끔찍한 범죄 위험에 노출된 이민자 여성들이 나온다. 또 혼자 사는 어린 여성에게 저질러진 성폭력에 대한 묘사도 있다. 스웨덴 사람들의 일상 속에 스며든 파시즘에 대해 고발하는 기사를 여러 차례 썼던 기자이기도 한 작가는 소설 곳곳에 스웨덴 여성들의 인권 실태에 관한 통계를 집어넣었다.

작가가 인용한 통계에 따르면, 스웨덴 여성 가운데 13퍼센트는 심각한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 또 성폭행을 당한 스웨덴 여성 가운데 92퍼센트가 고소를 하지 않았다.

물론, 스웨덴은 국회의원과 장관의 절반이 여성인 나라다. 또 여성의 권리에 대해 일찍부터 눈을 뜬 사회다. 하지만, 제도가 힘을 미치지 못하는 음습한 그늘에서는 여성을 향한 폭력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인종적 편견을 가진 극우 세력, 사회 약자에게 분풀이
▲ 월간 <EXPO> 기자인 스티그 라르손은 스웨덴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경고했다. 평화로운 거리 풍경만 보면, 상상하기 힘든 내용이다. ⓒ프레시안

인종에 따른 차별 역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북부 라플란드 지역 원주민인 사미족이 겪는 보이지 않는 차별은 북유럽 인권 활동가들에게 여전히 고민거리다.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인종적 편견을 갖고 있는 극우 세력 역시 남아 있다. 이들은 100년 전에는 게르만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우생학을 신봉했고, 이어 독일 나찌를 지지했다.

이들은 지금 사회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대신, 가끔 사회적 약자를 향해 공격성을 표출해서 문제가 된다. 이주노동자, 동성애자, 여성, 어린이 등이 주로 이런 범죄의 표적이 된다.

소설 <밀레니엄>에서 여성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 인물 역시 인종 우생학에 심취한 극우 세력에 뿌리를 둔 기업가다.

인권과 복지를 강조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오랫동안 집권한 나라에서 왜 이런 범죄가 사라지지 않고 있을까.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이다. 이런 질문 앞에서는 사민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게 때로 도움이 된다.

"스웨덴 사민당 정부 시절, 장애인에게 강제 불임 수술이 이뤄졌다"

1997년 8월 스웨덴에서는 우파 언론인 자렘바(Zaremba)가 발표한 글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글에 담긴 사실(fact)와 해석이 모두 논란거리였다.

이 글에서 자렘바는 스웨덴에서 1934년부터 1976년 사이에 정신장애인을 대상으로 약 6만 3000건의 불임수술이 실시됐으며, 이 중 상당수는 강제로 실시됐다고 주장했다. 1934년은 스웨덴에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단종법(斷種法, Sterilrseringslag)이 실시된 해다. 우생학적 관점에서 나쁜 유전 형질을 물려줄 가능성이 높은 부모의 생식 능력을 제거하도록 규정한 이 법은 1896년 미국에서 처음 제정돼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 등으로 확산됐다. 독일 나찌에 의해 저질러진 유대인 학살극의 근거가 된 단종법은 대표적인 반(反)인권 법안으로 꼽힌다.

스웨덴에서 1934년에 제정된 단종법은 불임수술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장애인들에게 적용됐다. 또, 1941년 도입된 법안은 자기 신고에 의해 혹은 제3자의 권고에 의해 불임 수술을 하도록 돼 있다. 두 법안 모두 본인이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 강제로 불임수술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돼 있다. 하지만, 자렘바는 상당수의 불임수술이 "본인의 뜻과 달리, 강제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버림 받은 자식'은 '인민의 집'에 들어올 수 없다?"

이어 그는 이런 반(反)인권적인 조치가 스웨덴 사민주의가 표방해온 '인민의 집' 이념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고 풀이했다. 스웨덴 복지체제의 바탕에는 사회에서 부정적인 요소를 합리적으로 제거해나가려는 강한 사회공학적인 지향이 있다는 설명이다. '버림 받은 자식'은 '인민의 집' 안에 들어올 수 없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과학에 대한 지나친 믿음과 맞물려 있는 이런 지향은 인종주의적 우생학과 일맥상통한다는 게 그의 해석이다.

이 글이 나오자 일각에서는 사실 관계가 과장됐으며, 해석 역시 논리적 비약을 담고 있다는 반발이 나왔다. 하지만, 이후 진행된 연구와 조사에 따르면 1934년 이후 42년 동안 최소 200건에서 최대 2만 건 사이의 강제 불임수술이 실시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필, 우파 언론인에 의해 이런 사실이 드러나자 좌파는 체면이 구겨졌다. 사민당 집권 시기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스웨덴 사민당 집권 시기에 인종주의적인 반인권 행위가 광범위하게 저질러졌다는 사실을 숨길 수 없게 되자, 단종법 제정 및 집행에 대한 책임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졌다.

자렘바 "反인권적 강제 불임수술, 사민당 정부가 용인했다"
▲ 군나르 뮈르달. 1947~57년 국제연합 유럽 경제위원회(ECE)의 사무총장을 지냈고, 197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자렘바의 주장은 이렇다. "스웨덴 사민주의 모델가 표방해 온 '인민의 집' 이념에는 원래 배타적인 성격이 담겨 있었다. '인민의 집'은 모든 인민을 위한 집이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스웨덴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집에 불과하다.

강제 불임수술은 우연히 발생한 사고가 아니다. 장애인이 늘어났을 때 생겨날 복지 비용을 고려해서 정부가 용인한 일이다. 스웨덴 모델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뮈르달 부부(군나르 뮈르달과 알바 뮈르달. 남편 군나르는 노벨 경제학상을, 부인 알바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의 사상에는 국가의 통제를 지나치게 신뢰하는 요소가 담겨 있다.

이들 부부는 과학과 전문지식을 독점한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가 개인의 사생활을 대체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사상 때문에 철저히 개인적인 문제인 임신 여부까지 정부가 개입하는 일이 벌어졌다."

복지국가 성숙과 인종주의는 반비례 관계
▲ 알바 뮈르달. 스웨덴 정부가 핵 포기 의지를 밝히도록 기여한 공로로 1982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스웨덴 모델을 설명할 때면, 남편인 군나르 뮈르달과 함께 꼭 등장하는 인물이다.ⓒ프레시안

하지만, 자렘바의 이런 주장은 과도한 면이 있다. 스웨덴 식 복지국가 모델이 성숙해가면서 인종주의도 완화됐다는 게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스웨덴에서 기승을 부리던 인종주의적 극우 세력은 사민당 체제가 궤도에 오른 이후 급격히 세력을 잃었다. 요컨대 복지국가 성숙과 인종주의는 반비례 관계라는 뜻이다.

또 뮈르달 부부, 특히 알바 뮈르달이 육아처럼 당시까지 가족 내에서 해결해야 할 사적 문제로 여겨져 왔던 영역을 공공 서비스로 대체하려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부부 가운데 여성이 당연히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전통적인 성(性) 역할을 허물기 위한 조치였다. 실제로 공공 부문이 보육을 담당하게 되면서,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졌다. 그리고 뮈르달 부부의 이론은 대부분 강한 이상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단종법 제정 논의가 이뤄지던 1930년대 스웨덴 사민당이 이들 부부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사례는 의외로 많지 않았다.

게다가 1930년대 스웨덴에서 사회복지 정책을 추진한 사회부 장관 묄러는 단종법 제정에 대해 매우 신중한 입장이었다. 출산처럼 사적인 문제에 대해 국가가 함부로 개입하면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단종법 제정을 추진한 세력은 사민당과 연정을 이루고 있던 농민당 이었다.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지 않는 좋은 집"

자렘바의 주장은 지나친 면이 있지만, '인민의 집'이라는 상징에 대해 비판적으로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지역 노동자들이 모여 책을 읽고 토론하는 사랑방이었던 '인민의 집'이 스웨덴 복지체제를 가리키는 표현이 된 계기는 한손 사민당 당수의 1928년 의회 연설이다. 한손 당수는 당시 연설에서 스웨덴의 장래를 "다른 사람을 경시하거나, 그 희생으로부터 이득을 얻는 사람이 없으며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거나 약탈의 대상으로 하지 않는 좋은 집"에 비유했다.

이어 그는 같은 해 사민당 대회에서도 "(사민당이) 국민 다수의 지지에 의해 '인민의 집'이라는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진정으로 강력한 국민정당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는 모든 국민을 위한 안락한 집이 돼야 한다는 뜻이 담긴 '인민의 집'은 그 무렵부터 한손 당수가 입에 달고 다니는 표현이 됐다. 그리고 1932년 총선에서 사민당이 승리하여 한손이 수상이 되자, '인민의 집'은 스웨덴 식 복지체제의 상징이 됐다.

"'인민의 집' 구호, 가부장적인 느낌 때문에 싫다"

하지만 '인민의 집'이라는 표현에 대해 당시에도 거부감을 갖는 이들이 많았다. 일부 좌파들은 스웨덴 사민당이 우경화한 징후로 파악했다. 산업 국유화 등 전통적인 좌파 노선이 폐기된 자리에 공동체주의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구호가 들어섰다는 것이다.

이들은 거대기업과 공존하는 복지 체제에 대하 강한 거부감을 가졌다. 우파들이 노동자와 함께 지내는 '인민의 집'을 꺼렸다면, 일부 좌파들은 자본가를 아우르는 '인민의 집'에 반발했다.
▲ 비그포르스. 사민당 집권 초기, 재무 장관을 지내며 경제정책을 설계했다.

또 가부장적인 느낌을 준다는 이유로 못마땅하게 여기는 경우도 있었다. '집'이라는 낱말을 긍정적인 뉘앙스로 쓰는 순간, 전통적인 형태의 가정을 이상화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여성을 억압하는 전통적 가정 형태에 대해 반감을 가진 이들 역시 '인민의 집'이라는 표현을 썩 내켜하지 않았다.

사민당 초기 이론가이며, 한손 정부에서 재무 장관을 지냈던 비그포르스가 이런 경우다. 비그포르스는 산업 국유화를 사회주의로 향하는 유일한 경로로 여기는 전통적인 좌파에 대해 몹시 비판적이었다. "우리는 몇십년, 몇백년 파라다이스를 준비하기 위해 살고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던 그는 사회주의는 고정불변의 도그마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검증해야 할 '작업가설'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정통 사회주의를 쫓는 이들과 다른 맥락에서 '인민의 집' 구호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비그포르스는 '인민의 집' 이라는 구호를 내건 한손 정부에서 각료로 일했지만, 전통적인 가정을 옹호하는 느낌을 준다는 이유로 '인민의 집'이라는 표현을 쓰기 싫어했다. 뮈르달 부부 역시 비슷한 이유로 '인민의 집' 이라는 표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보수 진영과 노동자가 모두 좋아한 '가족적 구호'

진보적인 이론가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던 '인민의 집' 이라는 구호는 역설적으로 보수 성향 대중에게 쉽게 다가가는 효과를 거뒀다. 약간 보수적인 느낌을 주는 '인민의 집' 이라는 구호는 보편적 복지 정책에 대한 보수 진영의 반감을 누그러뜨리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당시 노동운동 진영이 스웨덴 사회에서 노동자가 지내는 처지를 '불쌍한 대우를 받는 주워온 자식'에 비유하곤 했던 전통과 맞물리면서, '행복한 가정'을 떠올리게 하는 '인민의 집' 이라는 표현은 현장 노동자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해서 '인민의 집'은 20세기 내내 스웨덴 복지모델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깊이 뿌리내렸다. 더구나 '코뮌'에서 이뤄지는 지방 자치의 전통 역시 지역 공동체를 '확대된 가정'으로 여기게 했다. 지역에서 자치를 통해 복지 체제를 유지하는 과정은 "지역 주민 모두는 '인민의 집'에서 함께 지내는 가족"이라는 비유로 설명되곤 했다. (☞관련 기사: "'착한 정부'는 '코뮌'에서 나온다")

심지어 복지 축소를 주장하는 우파 정치인들도 '인민의 집'이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곤 했다. "경제가 어려우니, 이제 집을 좀 줄여야 할 때입니다"라는 식으로.

가족 해체 시대, '인민의 집'은 어디로?
▲ 북유럽 사람들은 촛불이 주는 따뜻한 느낌을 좋아한다. 추운 날씨를 피할 수 있는 집과 가정은 북유럽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동경의 대상이었다. ⓒ김영희

하지만, '행복한 가정'을 떠올리게 하는 '인민의 집' 이라는 표현은 스웨덴 사회에서 더 이상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전통적인 형태의 가족이 급격히 해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개인의 자발적 선택에 따라 이뤄져 왔다.

때마침, 우파 언론인에 의해서 '인민의 집'이라는 구호 아래에서 저질러진 반(反)인권적인 강제 불임수술이 폭로됐다.

춥고 캄캄한 북유럽 날씨 속에서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안식처가 돼 왔다고 여겨진 '인민의 집' 안에도 그늘이 있었던 셈이다.

한때 노동자들의 서러운 정서를 자극하는 구호였던 '주워온 자식'이라는 표현이 이제는 아무런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게 됐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식들이 따뜻한 난로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 역시 과거처럼 강렬한 호소력을 갖기 어렵게 됐다.

이혼과 결혼 기피가 모두 늘어나면서, '1인 가정'이 스톡홀름 인구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이 약 60%에 도달한다. 게다가 어머니와 자식으로 구성된 가정(모자 가정), 그리고 전(前) 부인 혹은 전(前)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와 함께 사는 가정이 친부모와 친자식들로 구성된 가정보다 훨씬 흔해 졌다. (☞관련 기사: "가족 없이 늙어도, 당당하다")

개인주의와 사회적 연대의 양립, 언제까지 유지될까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인 가족 공동체를 확대한 이미지로 사회복지 체제를 설명하는 것은 호소력을 갖기 힘들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코뮌'이라는 작은 집단을 '확대된 가정'으로 여기는 문화 속에서 지탱돼 온 스웨덴 식 사회 복지 모델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온다.

물론, 스웨덴 등 북유럽 사회에서는 개인주의와 사회적 연대가 양립하는 상황을 이상하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회적 연대를 통해 공공 부문을 강화해야 개인이 자유롭게 지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늙거나 병이 들어도 존엄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사회적 보장은 사적 영역에서 개인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반이라는 생각이다. 공동체적 정서가 사라져도, 사회복지는 크게 후퇴하지 않는 현상 역시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스웨덴이 EU(유럽 연합)에 가입하면서 낯선 문화권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급증한 상황은 공동체적 정서가 희박한 상태에서 유지되는 복지 체제에 불안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또 사회복지 및 교육 제도를 EU 평균에 맞추도록 조절하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스웨덴 정부는 EU 바깥에서 온 유학생에 한해 학비를 받기로 했다. 공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국적에 관계없이 누구든 무료로 배울 수 있어야 한다는 전통에 금이 간 것이다.

우파 정부는 인기 없지만, 우경화 흐름은 여전
▲ 모나 살린 사민당 당수. 청소년 시절부터 사민당 활동을 한 그는 고등학교를 마친 뒤 주방 보조, 단순 사무직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1982년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그는 노동부, 평등부, 지속가능 발전부 장관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 했다. 하지만 그는 1995년 스톡홀름에 있는 한 가게에서 공직자용 정부 신용카드로 개인 용품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물건을 산 뒤, 개인 돈으로 메워넣었다는 사실도 드러났지만 "정부의 돈과 개인 돈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여론의 비판 앞에서 그는 고개를 숙여야 했다. 당시 부총리 직에서 물러났던 그는 지난 2006년 사민당의 총선 패배를 계기로, 정치적으로 재기했다.ⓒwww.aftonbladet.se

낯선 문화권에서 온 사람이 스웨덴 사회에 적응하도록 돕는 비용을 낭비로 여기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2006년 총선에서 집권한 우파 연정이 이런 세력과 가깝다.

물론 '좌파보다 더 좌파 같은 우파' 이미지를 내세워 집권한 뒤, 부유세를 폐지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는 등 '우파 본색'을 드러낸 현 집권 세력에 대한 스웨덴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스웨덴 식 사회복지를 축소하지 않을 것이며, 단지 사회복지 체제가 더 잘 작동하도록 운영하려 할 뿐"이라던 약속이 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시 우파 연정에 기울었던 좌파 지지층은 금세 제 자리를 찾았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사회민주당의 지지율은 약 45퍼센트로(좌파 전체 지지율은 약 56퍼센트), 우파 전체 지지율인 약 41퍼센트를 크게 능가하고 있다. 특히 프레드릭 라인펠트 현 수상이 몸담고 있는 온건당의 지지율은 약 23퍼센트에 불과했다.

다음 총선에서는 모나 살린 사민당 당수가 이끄는 좌파 연정이 집권하리라는 게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하지만, 평범한 노동자가 높은 정치적 관심을 갖게 만든 배경인 공동체적 정서가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좌파가 집권한다 해도 전체적인 우경화는 피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실제로 스웨덴에서 상속세가 없어진 게 사민당 집권 시절이었다.

모나 살린 현 당수는 사민주의 정통파와 가깝다고 분류되지만, 우경화 흐름을 견제할 만한 능력과 의지는 약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가족을 넘어선 공동체를 상상하자"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스웨덴 복지 모델을 지켜낸 힘은 '코뮌'을 통해 이뤄진 '자치' 전통이었다. 그리고 이런 전통은 '코뮌'을 '확대된 가정'으로 여기는 문화와 맞닿아 있다. 하지만, "'인민의 집'에 모여 앉은 화목한 가족"을 동경하는 공동체적 정서가 사라지면서, '자치' 전통의 뿌리가 조금씩 말라가고 있다.

'핏줄로 이어진 가족'을 대체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상상하는 것. 조금씩 다인종 사회로 이행하고 있는 스웨덴에서 누구나 혜택을 누리는 '보편적 복지 체제'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연재 세 번째 키워드는 '생태'입니다. '생태'에 관한 첫 번째 이야기는 오는 22일 게재됩니다.)
<프레시안> 창간 7주년 :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연재를 시작하며 : '사람값'이 비싼 사회를 찾아서
- 첫 번째 키워드 : 협동

"평등 교육이 더 '실용'적이다" (上)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中)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下)

- 두 번째 키워드 : 코뮌

"가족 없이 늙어도, 당당하다" (上)

"'착한 정부'는 '코뮌'에서 나온다" (中)

"'인민의 집', 그들만의 천국?" (下)

- 세 번째 키워드 : 생태

"산적이 100년 동안 다스리는 마을에서는…" (上)

'MB식 녹색성장'이 불안한 이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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