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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에는 사측도, 국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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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쌍용차에는 사측도, 국적도 없었다"

[분석] 누가 쌍용차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나?

쌍용차 사태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노사의 마지막 협상이 결국 결렬되면서 사실상 파산으로 가는 수순을 밟고 있는 모양새다.

회사의 결렬 선언에도 불구하고 노조는 "언제든 다시 대화할 수 있다"며 협상 재개를 희망하고 있지만 회사는 강하게 '백기 투항'만을 요구하고 있어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경찰은 공권력 투입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고, 협력업체들은 본격적인 '조기 파산 신청' 준비에 들어갔다. 지난 1월 9일 상하이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불거진 '쌍용차 사태'가 7개월 동안 정리해고를 둘러싼 노사 갈등으로만 점철되면서 끝내 최악의 결론을 맺게 된 것이다.

누가 쌍용차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일까? 지난 7개월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게 된 최대 책임자는 누구일까?

"2646명 정리해고 의무 외에 어떤 권한도 없는 법정관리인"

"노조는 협상 과정에서 단 한 명의 정리해고도 수용할 수 없다는 원칙만 고수했습니다."

지난 2일 쌍용차 측이 노사 협상 결렬을 선언한 뒤 박영태, 이유일 법정공동관리인은 모든 책임을 노조에 돌렸다. 그러나 '원칙만을 고수'했던 것은 노조만이 아니었다. 회사 역시 마찬가지로 '정리해고'만을 고수했다. 물러서지 않았던 것은 양 측 모두였다.

지난 2월 9일 취임한 박영태, 이유일 쌍용차 법정관리인들은 표면적으로는 쌍용차의 '대표'였지만, 이들의 권한은 별로 없었다. 법정관리 상태에 들어간 상황에서 심지어 월급조차 마음대로 줄 수가 없었다. 삼일회계법인의 보고서에 따라 2646명의 구조조정의 임무만을 가졌을 뿐, 어떤 조정도 불가능했다.

▲ 지난 2월 9일 취임한 박영태, 이유일 쌍용차 법정관리인들은 표면적으로는 쌍용차의 '대표'였지만, 이들의 권한은 별로 없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8일 일방적으로 정리해고 발표를 할 때도 이들은 사전에 노조와 어떤 대화도 하지 않았다. 정리해고가 노조의 강한 반발을 불러올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일임에도 노조의 대화 요청을 사실상 거부했다. 당연히 노조가 내놓은 △1000억 원 담보 △비정규직 기금 12억 출연 △5+5로 근무체계 개편 등의 자구안도 검토하지 않았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영진이 노조와 협상을 하려면 채권단과의 조정이 필요한 부분 등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법정관리인은 책임 있는 당국자의 보장이 없이는 어떤 약속도 할 수 없다"며 "결국 쌍용차 법정관리인들에게는 2646명의 고용조정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의무만 있었을 뿐"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여기에 덧붙여 일각에서는 "박영태와 이유일, 두 사람은 사실 입장 차가 있다"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다. 1998년부터 쌍용차에서 재무회계팀장 및 IT 기획팀장을 거쳐 상무를 지낸 박영태 관리인과 달리 이유일 관리인은 30년 간 현대차에서 일하며 해외부문 사장을 지낸 '현대맨'이다.

쌍용차 사태를 가까이서 지켜 본 노동계 전문가는 "두 관리인이 같은 듯 미묘하게 다른 목소리를 내는 느낌"이라며 "이유일 씨의 경우 사실 쌍용차의 성공적 회생보다는 현대차의 이익에 관심이 많은 듯 보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쌍용차에는 쌍용차를 책임질 진짜 사측 대표가 없었던 셈이다.

무책임의 극치 보여준 정부…"이유 있는 방관, 목표는 따로 있었다"

더 움직이지 못한 노조의 뒤에는 '1명의 정리해고도 수용할 수 없다'는 내부의 강경한 목소리가 있었다면, 쌍용차의 뒤에도 '노조에게 져서는 안 된다'는 세력이 있었다. "쌍용차의 배후세력은 정부였다"는 것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법정관리인이 '허수아비'인 상황에서 사태 해결을 위한 적절한 조정은 정부의 몫이었다. 사태 초기부터 지금까지 정부는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개별 노사관계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이유였다.

공적자금 투입이나 조정만 방관한 것은 아니었다. 심지어는 사 측이 직원들을 동원해 개최한 '노조의 파업 중단 촉구 결의대회'에서조차 "대체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냐"며 공권력을 투입하지 않는 정부를 비난할 만큼 정부는 시종일관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일관된 정부 정책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전문가들은 "노조 죽이기로 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정부가 노사관계에 개입하지 않더라도 적극적으로 협상을 유도조차 하지 않은 것은 일종의 '노조 본보기'로 활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는 노조와 협상을 하면 앞으로 계속 곳곳에서 비슷한 투쟁이 일어날 것을 우려한 정부가 쌍용차를 본보기로 삼고자 했다는 것이다. 노사 협상이 결렬된 이후 "정리해고는 비용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한 법정관리인의 말 역시 이 문제가 경제적 이슈라기보다 정치적 이슈임을 드러내고 있다.

조성재 연구위원은 "사실 처음부터 쌍용차는 정부와 자본에게 '꽃놀이패'였다"고 말했다.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영향도 크지 않아 노조를 손 보기에 아주 적절한 터전이었을 뿐 아니라, 끝내 쌍용차가 파산할 경우 쌍용차노조 뿐 아니라 금속노조 등 전체 노동계를 무력화시킬 좋은 기회였다는 것이다.

▲ 이런 일관된 정부 정책의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전문가들은 "노조 죽이기로 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프레시안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연구위원도 "쌍용차를 전체 노동계의 본보기로 삼을 게 아니었다면 회사 쪽에서 더 일찍 안을 냈을 것"이라며 "이번 사태는 철저하게 청와대의 기획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쌍용차 노사가 실제로 머리를 맞대고 서로 양보안을 내놓으며 해법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은 노조의 파업이 시작된 지 무려 70일째에서였다. 이전까지의 교섭은 사실상 내용 없는 평행선 확인에 그쳤다.

이런 정부의 방치 속에 쌍용차의 위기는 더 극단적으로 확대됐다. 조성재 연구위원은 "정부가 전면에 나서지는 않더라도 노동정책 및 산업정책에 미칠 쌍용차의 상징성을 감안해 조정에 나서야 했다"며 "결국 보수적인 경제 관료의 뜻대로 되면서 그 외의 장기적 노동정책과 산업정책은 실종돼 버렸다"고 말했다.

쌍용차의 파국은 결국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가 펼치는 '반(反) 노동 정책'의 결정판이었다.

"물도 음식도 없는 섬에 내려놓자니 싸울 수밖에…"

80일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의 격한 파업은 우리 사회의 취약한 사회안전망 때문이기도 하다.

조건준 금속노조 정책국장은 자신의 저서 <아빠는 현금인출기가 아니야>에서 "(회사와 정부는) 배가 난파될 것이니 잠시 섬에 내려놓자며 해고의 불가피함을 역설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는 해고되면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섬에 내려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고는 살인이다"가 파업을 벌이는 노조가 내세운 슬로건이었던 것도, 정리해고 명단에 포함된 이들이 스스로를 '죽은 자'로 지칭했던 것도 '해고'에 대한 노동자의 강한 불안감을 반영한다.

특히 쌍용차 노동자의 대부분은 지난 2006년 1000여 명의 동료들이 '희망퇴직'으로 공장을 나가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당시 위로금을 받아 공장을 나간 동료들은 새로 취직도 못했을 뿐 아니라 빚까지 얻어 가게를 차렸다 망하기 일쑤였다. 그런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본 노동자들에게 "해고는 절망의 시작"이었다.

파업 두 달을 훌쩍 넘겨 물도 가스도 끊긴 공장에서도 노동자들은 2주를 버텼다. 노사 교섭이 결국 결렬된 2일에서야 눈에 띄게 이탈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2일 이후 하루 동안 90여 명이 나왔지만, 지난 70일 동안의 이탈자는 100여 명 수준이었다. 이 역시 해고자들의 절박함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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