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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똑같은 전쟁을 거듭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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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우리는 왜 똑같은 전쟁을 거듭하는가 [쌍용차 사태, 파장은②] 현대차·대우차 정리해고에서 무얼 배웠나?
쌍용차 사태가 도장공장의 화재나 폭발로 이어지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고 앉아있기에는 상처가 너무 크다. 물리적으로는 사고가 터지지 않았지만, 사회경제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모순이 집약적으로 터져 나왔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되짚어보려는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

쌍용차뿐 아니라 어떤 기업에서라도 해고란 노동자들에게 정말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다. 그러나 쌍용차에서 더욱 심각한 갈등이 전개된 것은 역설적으로 대기업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이중노동시장이 고착화된 우리 사회에서 대기업의 안정적 일자리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곧 저임금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혹은 영세 자영업자로 전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극화 사회에서 상향 이동의 희망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하향 이동이 강제되면,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게 되어 있다.

더욱이 대기업에는 강력한 노조가 결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때로는 슈퍼 쥐가 고양이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힘을 갖고 있다는 점도 저항에 충분조건을 제공하기도 한다. 강력한 대기업 노조도 시장과 공권력의 힘을 넘어설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는 것도 이번 쌍용차 사태가 던져주는 교훈일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넘어, 알면서도 반복되는 똑같은 전쟁

정말 아쉬운 점은 이러한 구조를 모르지 않으면서 사용자는 대규모 정리해고를 시도하고 노조는 결사항전의 의지를 불태우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1998년 현대차에서 벌어졌던 1만여 명의 고용조정과 2001년 대우차에서 벌어졌던 1750명의 정리해고 사태를 기억하고 있다. 울산과 부평을 전쟁터로 몰아넣었던 대형 분규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왜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넘어 우리는 똑같은 전쟁을 거듭하는가?

▲ 울산과 부평을 전쟁터로 몰아넣었던 대형 분규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그런데, 왜 또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넘어 우리는 똑같은 전쟁을 거듭하는가? ⓒ<노동과 세계> 이명익 기자

이중노동시장과 대기업의 갈등적 노사관계를 극복하기 위한 핵심 과제 중 하나는 고용조정과 관련한 노사의 준비태세를 갖추는 일이다. 자동차는 경기의 부침이 심하지만, 다른 산업도 마찬가지이다. 고용을 조정해야 할 정도로 기업이 경영상의 위기를 맞이할 때 잔업과 주말 특근을 줄이고, 임금인상을 동결하며, 기업 복지를 일부 유보하는 조치로도 재무적 위기를 벗어날 수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와 관련하여 고용안정과 관련한 기금을 마련하는 것은 중요한 제도적 기반이 될 것이다. 미국 자동차산업의 경우 이러한 고용안정기금, 혹은 생계보조금 지급제도를 통하여 일시해고(layoff)된 노동자들이 일정 기간(36~42주) 동안 정부 실업보조금을 합하여 이전 소득의 95%를 보장받을 수 있다. 결국 노동자들은 이 기간 동안 재고용(recall)을 기다리던가 아니면 다른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떠날 수 있다.

우리나라 자동차산업 노사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노조의 조직력과 투쟁력이 복원되었지만, 매해 임금인상과 성과급 투쟁에 골몰했지, 이러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내는 데 결코 부지런하지 않았다. 강력한 대기업 노조는 잇따른 단협개정을 통하여 삼중, 사중의 고용안정 문구를 집어넣었지만, 시장에서 해당 기업의 차가 안팔리면 그것은 종이쪽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쌍용차 사태는 여실히 보여주었다.

산별노조로 전환해야 힘이 세져 고용안정을 달성할 수 있다고 했지만, 쌍용차 사태가 진행되는 동안 다른 노조들은 덧없는 공동투쟁 구호만 반복했을 뿐이다. '단 1명의 정리해고도 있을 수 없다'는 노조의 슬로건은 1998년 울산에서, 2001년 부평에서 투쟁 기간 내내 외쳐졌지만, 그리고 이번 쌍용차에서도 바로 엊그제까지 반복해서 강조되었지만, 세 번 모두 지도부는 거짓말쟁이로 내몰려야만 했다.

노조가 '두둑한 월급봉투'를 선택한 대가는?

▲ "이제 이른바 유연성과 관련하여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이제 이른바 유연성과 관련하여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일차적으로 노동시간 유연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 자동차산업의 경우 호황기에 노동자 개개인의 시간 구좌에 잔업한 시간을 저축해두었다가 불황기가 오면 이것을 활용하여 소정근로시간을 일하지 않더라도 이전에 받던 임금을 그대로 받을 수 있는 노동시간계좌제(working time account)를 10여 년 전부터 잘 운영해오고 있다. 해당 기업의 경영이 계속 번창하여 저축된 시간이 많으면 이를 모아서 조기퇴직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시간 유연성은 고사하고 장시간노동을 극복하기 위한 교대제 개편은 현대차와 기아차에서 수년간 교착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차의 연간 노동시간은 2500시간 정도로 미국과 일본 자동차업체보다 500시간 정도 더 많고, 유럽에 비해서는 1000시간 가까이 많다.

자동차산업에서 노동시간이 긴 이유 중 하나는 잔업과 특근이 가져다주는 고소득의 유혹 때문이다. 기본급 비중이 낮은 가운데, 초과근로를 통하여 임금을 확보해야 하는 당연한 행태인 것으로 보이지만, 앞서 고용안정기금보다 매해 성과급에 더 많은 힘을 쏟은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과 여가의 균형, 일과 가정의 양립보다 두둑한 월급봉투를 선택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단기 실리주의의 결과로 돌아온 것은 대기업 노동자의 이기주의라는 사회적 비판이었고,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처절한 싸움이었다.

'일자리 나누기' 홍보하던 정부, '노동유연화'로 방향 전환?

물론 노조가 이러한 문제점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고,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금번 사태의 초창기에 쌍용차 노조는 하루 5시간만 일하면서 임금을 적게 받는 일자리 나누기 방안을 제시하였다. 과연 몇 개월이나 버틸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낮은 임금을 수용하겠다는 것이었으나, 사용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사회적 반향도 크지 않았다. 정부는 소리 높여 일자리 나누기 정책을 주창했지만, 정작 핵심 사업장에 대해서는 적극성을 보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일자리 나누기에 대한 보수 논객들의 비판을 의식하여 쌍용차 사태를 계기로 고용조정 중심의 노동유연화 전략으로 방향 전환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됐다. 사실 일자리 나누기는 1998년에 현대차 노조 등이 주장했던 노동계의 슬로건이었는데, 금년 상반기에는 정부와 전경련이 홍보에 열을 올렸다.

물론 외환위기 당시 노동계 주장의 핵심은 시간 단축형 일자리 나누기였고, 금번 불황에서 정부는 임금조정형 일자리 나누기를 주장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즉각적 고용조정 중심 전략을 피해야 한다는 공통점이다. 쌍용차 사태를 계기로 정부의 정책 방향은 전환될 것인가?

"노사관계는 '법과 원칙'만큼 '대화와 타협'도 중요하다"

고용을 중심으로 한 노동시장 정책은 비정규직 문제 등 얽혀있는 현안이 많기 때문에 쌍용차 사태 하나만 갖고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노사관계에서만큼은 정부의 '법과 원칙'을 중심으로 하는 정책 기조의 일관성을 보여주었다. 노동부는 보이지 않고 경찰과 법원, 지식경제부 등이 전면에 나서 있는 형국은 현 정부가 대형 분규에도 불구하고 노사 자율교섭주의를 일관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노사관계가 법과 원칙만으로 '선진화'될 수 있다면 정말 경찰 증원을 위해 세금을 더 거두어도 무방하리라. '법과 원칙'이라는 노사관계의 원리와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원리는 파업 이후 노사와 경찰의 벼랑 끝 전술이 바닥을 드러낸 이후에야 구현되었다. 물밑의 교섭이나 보이지 않는 노사정 간의 채널이 어떻게 가동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양상은 사용자의 일방주의와 리더십 없이 조합원에 떠밀려가는 노조 지도부, 그리고 이를 방관자처럼 지켜보는 정부의 모습만이 확인될 뿐이다.

이 과정에서 98년 울산이나 01년 부평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정치권, 시민사회단체, 지역사회나 경제단체 등의 지원이나 조정 노력도 사태가 한참 지난 후에야 가시화되었을 뿐이다. 그것은 쌍용차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존속가치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기 때문일까?

"쌍용차 사태의 본질은 금융 원리가 모든 것을 압도한 데 있다"

사실 쌍용차 사태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금융과 경쟁의 원리가 노사관계나 사회적 가치를 압도한 데 있다. 쌍용차의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더 클지 모른다는 사고는 보수적 경제 관료들의 셈법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대형 분규로 파산하게 될 경우 그것은 시장원리에 따랐을 뿐이며, 심지어 강성 노조를 길들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한 사고의 연원은 사실 대우차와 쌍용차를 분리 매각하는 시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대우차와 쌍용차의 시너지 효과가 큼에도 불구하고 주거래은행이 다르고, 매각이 수월하다는 이유로 두 기업은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한마디로 금융 논리가 산업 논리를 압도하는 상황에서 상하이차에 매각하는 것에 어떠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쌍용차 조합원들의 억울한 심정은 사실 이러한 인수합병과 매각으로 점철된 지난 10여년의 역사 속에서 자라 온 것이다.

▲ "대우차와 쌍용차의 시너지 효과가 큼에도 불구하고 주거래은행이 다르고, 매각이 수월하다는 이유로 두 기업은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한마디로 금융 논리가 산업 논리를 압도하는 상황에서 상하이차에 매각하는 것에 어떠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프레시안

현 정부가 한 일이 아니라고 하여 상하이차의 '먹튀'를 초래한 책임으로부터 정부가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을 압도하여 제조업이 쇠퇴한 영국의 경험은 산업정책이 방식과 형태는 다르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지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더욱이 쌍용차 노동자들의 억울한 심정은 바로 노사관계의 파행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노동부, 지경부, 금감위, 법원, 사용자 등을 아울러 대형 분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했지만, 구심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각 당국자는 '수건 돌리기'에만 급급한 모양이었다.

이제 최악의 파국을 막으면서 사태는 해소된 듯이 보이지만, 진정한 사회적 통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무급휴직자나 희망퇴직자들이 조기에 쌍용차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경영을 조기 정상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계가 공동으로 사후대책위원회와 같은 것을 만들어서 문제의 원인을 짚어보고, 심리적 충격에 빠진 구성원들에게 교육이나 카운슬링을 제공하며, 생계가 막막한 자들을 지원하고, 나아가 원하는 노동자들에게 다른 직장이나 창업 기회를 알선해주려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1998년, 2001년과 마찬가지로 2009년 쌍용차의 경험에서도 아무러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 공동체가 너무 부끄럽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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