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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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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나는… 살고 싶습니다 [단식 24일, 김진숙의 편지]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님께
짧은 배움으로도 회장님의 안부부터 여쭙는 게 예의겠으나 다급한 사람의 안부를 먼저 전하는 것도 큰 결례는 아닐 듯 싶어 제 소식을 먼저 전합니다.

보고를 받으셨겠지만 저는 회장님의 정리해고 방침에 맞서 단식을 하고 있는 한진중공업 해고자 김진숙이라는 사람입니다. 며칠 전 몸무게를 재보니 43kg입디다. 10kg이 넘게 사라졌습니다.

의사선생님께서 다녀가셨습니다. 몸의 변화를 물으시기에 심장을 손아귀 힘 센 사람이 꽉 움켜쥐었다가 놓는 것 같다했더니 한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시다가 "가장 위험한 징존데요" 하시더군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새벽에 혹은 오밤중에 제 심장을 움켜쥐는 악력 센 손이 꼭 회장님의 손인 것만 같습니다.

저는 그 손아귀 힘을 뿌리칠 기력을 나날이 잃어갑니다. 두번째, 소변에서 거품이 부글거린다 했더니 단백뇨라는군요. 몸이 지방을 다 쓰고 근육도 다 쓰고 이제 마지막으로 몸에 남은 단백질을 쓰면서 버티는 거라고. 단백질마저 다 쓰고 나면 20일이 될 무렵부터는 이제 장기에 손을 댈 거라고. 내 몸이 살기 위해 장기를 갉아먹기 시작한다는군요.

오늘이 23일쨉니다.

14일째 되는 날은 못 일어났습니다. 몸을 일으킬 기력이 없으면 의식도 못 일어나야 옳으련만 의식은 새벽 두시에 일어나 몸을 깨워 화장실 가고 세수도 하고 물도 마시자고 보채는데 딴청을 부리는 몸은 참 서럽습니다.

3일을 그렇게 누워만 있었습니다. 몸에선 살비듬이 징역 징벌방의 석회처럼 허옇게 떨어집니다. 그렇게 내 몸을 떠나가는 살비듬마저 아깝습니다. 그저께 나온 혈액검사 결과는 백혈구 수치가 2300까지 떨어졌다는군요. 5000이 정상인데. 2000이하로 떨어지면 골수에 이상이 생길뿐더러 내 몸이 어떠한 감염에도 대응할 능력이 사라진답니다.

이런 얘기들이 회장님껜 기쁜 소식이 아니길 바랄 뿐입니다.

왜 이러고 있냐구요.

제 목숨뿐만이 아니라 수천 명의 목숨줄을 움켜쥐고 있는 회장님의 그 억센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입니다. 회장님께서도 떠올리기 싫은 악몽이겠지만 이미 한진중공업에선 2003년 구조조정을 막아내겠다고 싸우던 두 명의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그들이 죽고 나서야 노조는 20년이 넘은 숙원사업까지 모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해고됐던 두 명 동료의 복직과 수십 명 해고자들의 복직까지 이루어졌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만 제외됐구요.

대한조선공사를 한진이 인수하면서 이어졌던 세 명 열사들에 대한 추모공원이 지어지고, 노동조합 건물이 5층 복지관으로 번듯하게 지어져 노사가 화기애애하게 테이프를 자르고, 30억을 들여 식당이 새로 지어지고, 임금이 올라가고, 성과금이 두둑해지고… 수십 년을 싸우고 수십 명이 구속되고 해고되어도 단 한 가지도 해결할 수 없었던 일들이 한꺼번에 이루어지던 광명천지였죠.

저는 참 신비로웠습니다. 이렇게 해줘도 회사가 안 망하는구나. 해고자가 떼거리로 복직되고 임금이 이렇게나 오르고 노조사무실이 현장으로 옮겨져도 회사가 안 망하는 거였구나.

근데 왜 두 사람이나 죽여야 했을까. 두 사람이나 죽고 나서야 그런 일들이 이루어졌다는 게 뼈가 저리긴 했지만 전 그게 회장님 나름의 속죄의 방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6년 동안 단 한 번도 보일러를 켜지 않는 걸로 비겁한 속죄를 하고 있듯이.

누리면서도 불안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갈까. 이 불안한 평화의 댓가로 우린 뭘 지불하게 될까. 이 위태로운 평화의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 위태롭고 불안한 평화는 6년이었습니다. 그리고 9년 만에 성향이 다른 노조집행부가 들어섰습니다.

제가 작은 텐트를 치고 단식에 들어간 날이 하필이면 부산에선 6년만의 추위가 엄습했다고 호들갑을 떨던 날이었습니다. 회사에선 전기를 끊었습니다. 발전기라도 돌려달라고 노조에 요구했지만 그 무섭도록 추운 하루가 다 가도록 발전기는 오지 않았고 결국 다른 데서 발전기를 가져다 돌렸는데 새벽에 기름이 떨어졌습니다.

아침까지 벌벌 떨며 기다리다 노조에 전화를 했는데 "진숙이한테 기름 갖다 주지 마!"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집행부. 오십 넘은 나이에 단식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짧게 적은 유인물마저 복사를 거부했던 집행부. 그 집행부가 들어선 지 1주일 만에 구조조정 통보를 하셨지요. 투쟁보다는 교섭에 치중했던 집행부 엿 먹으라는듯이 결국 교섭 중 정리해고 신고서를 노동부에 접수하셨구요. 정리해고를 밀어붙이는 회장님에게 만일 어떤 의도가 있는 거라면 그 의도를 무리 없이 관철하기에 최적의 조건이 갖추어 진 거죠.

352명을 신고하셨다구요. 물론 명단작성을 완료하셨을테구요. 혹시 그 352명의 하나하나 얼굴을 떠올려 보셨나요. 그의 불안한 눈빛, 굳은 살 박힌 두꺼운 손, 검은 기름때가 골골이 박힌 주름살들, 담뱃진에 찌든 누런 이빨, 어눌한 말, 한 벌을 장만하면 몇 년씩 입어대는 입성들. 그리고 가장에게 모든 걸 의지하고 사는 그의 아내. 아이들 게다가 연로하신 부모님들.

352명을 자르면 적어도 천명 이상의 삶이 무너지겠지요. 그는 잘해야 하청노동자가 될 것이고 그의 아내는 한 달 50~60만 원의 알바 자리에 인격을 짓밟히며 온갖 수모를 겪게 될 것이고 아이들은 학원이 끊길 것이고 그 아이들은 어김없이 비정규직이 될 것이고….

▲ 회장님이 굳이 자르겠다는 352명의 목숨값을 다 합쳐봐야 회장님이 작년에 한진에서 챙겨 간 주식배당금 120억에도 못 미치더란 얘깁니다.ⓒ프레시안(여정민)
작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평균 연봉이 3088만7724원 입디다. 연봉 3000만 원짜리 철밥통들. 352명의 연봉을 합치니 108억7247만8848원 이더군요. 회장님이 굳이 자르겠다는 352명의 목숨값을 다 합쳐봐야 회장님이 작년에 한진에서 챙겨 간 주식배당금 120억 원에도 못 미치더란 얘깁니다.

이 계산을 하면서 울었고 이 부분을 쓰고 있는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회장님에겐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크게 표도 안 나는 그 돈 때문에 천명이 넘는 저들은 얼마나 불안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밤들을 뜬 눈으로 뒤척이고 있을까요. 그의 가족들은 또한 얼마나 두려운 채로 살얼음판 같은 시간들을 디디며 떨고 있을까요.

아직도 새벽이면 가장 먼저 눈앞에 떠오르는 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뽀오얀 콩국입니다. 단식을 하면 원래 가장 많이 먹던 음식이 생각나는 법인데 근래 콩국을 먹어 본 적이 없는데 생각하다가… 열여덟 살 겨울. 122번 화진여객 시내버스 안내양 시절. 새벽 4시 15분이면 김해에서 첫 차가 출발합니다. 첫차 손님과 막차 손님은 대부분 같습니다. 연장 가방을 짊어진 아저씨들, 큰 고무다라이를 인 아지매들.

그들은 대개 내리는 곳도 같습니다. 아저씨들은 구포 인력시장에, 아지매들은 자갈치시장에. 문짝이 덜덜거리는 새벽 첫차 안에서 빈속으로 김해벌판을 가로지르면 속은 견딜 수 없이 쓰리고 온몸이 경운기처럼 벌벌 떨립니다.

그땐 버스 안에 스팀도 없었습니다. 충무동 천일예식장이 회차 지점입니다. 거기 콩국을 파는 구루마가 있었습니다. 발이 곱아서 걸음을 게처럼 옆으로 걸으면서도 콩국 구루마까지 용케 뛰어갑니다. 기사님 꺼 까지 두 그릇을 사서 곱은 손에 받아들고 질질 흘리면서 게처럼 다시 뛰어 와 입천장이 벗어지는 줄도 모르고 먹었습니다.

비로소 온 몸에 피가 돌고 속이 화아 해지던 온기. 저절로 나오던 한 마디.

"아! 살 거 같다!"

다른 사람들은 단식 3~4일이 지나면 먹고 싶은 게 없어진다는 데 저는 위장마저도 평범치를 못한 모양입니다.

굶는 자와 먹는 자의 시간의 길이는 다릅니다. 하루가 100시간도 넘는 거 같습니다. 특히 새벽은 대공분실의 시간보다 기나깁니다. 많은 분들이 묻습니다. 언제까지 할 거냐고, 단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냐고. 그때마다 저는 단 한명의 조합원이라도 지키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말로 설명해야 할지 몰라 애가 터집니다.

많은 분들이 건강이 무너지고 난 이후를 걱정하십니다. 그러나 이번 한 번으로 끝날 게 아니라는 게 확실한 상황인데 정리해고가 일상화 된 현장에서 우리 조합원들이 일상적으로 잘려 나간다면 전 살아도 산목숨이 아닙니다. 마음 같아선 회장님께 게임이라도 제안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제가 하루를 버티면 한 명씩 명단에서 제외되는 게임. 백혈구가 0이 될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면 352명 살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2003년도처럼 끝난 다음에 울고불고 하지 않으려구요. 두 명이나 잃고 보일러도 못 켜고 그렇게 못나빠지게 살지 않으려구요. 솥발산에도 못 가고 추모식에도 못 가고 다시는 그렇게 살지 않으려구요. 그때 85호 크레인 밑을 끝까지 지켰던 젊은 친구들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아려서 눈도 못 마주치는… 더 이상 그렇게 안 살려구요.

화장실 출입도 막으니 거울도 못 보던 상황이라 사진이라도 찍어서 제 몸을 보고 싶었습니다. 11일 째 되는 날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내 몸은 이미 영혼을 담을 능력을 상실해가는구나. 저 몸을 그대로 염을 하게 되면 사람들이 많이 울겠구나. 2003년의 나처럼 앉아서도 울고 서서도 울고 누워서도 울겠구나. 어떻게든 저 몸에 콩국 한 그릇 먹여 화색이 돌게 해야겠구나. 피땀도 흘려보고 피눈물도 흘려 본 저 몸뚱아리 딴 건 몰라도 콩국이라도 먹여 어떻게든 살려내야겠구나.

저는 아직도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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