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프로야구 초반을 뜨겁게 달군 ‘마리한화’ 이글스의 3-4월이 지나갔다. 한화는 4월 30일 KIA전을 승리하며 13승 11패(승률 0.541) 공동 4위의 성적으로 4월을 마감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거둔 8승 14패(승률 0.363)와 비교하면 훨씬 좋은 출발이다. 2015 한화의 3-4월은 2014년과 비교해 무엇이 달라졌을까. <베이스볼 Lab.>이 3-4월 기록을 통해 살펴봤다.
수비가 좋아졌다
지난해 한화는 KBO리그에서 가장 수비력이 떨어지는 구단이었다. ‘어떻게 하면 저런 플레이를 할 수 있을까’ 싶은 창의적인 실수가 내외야를 가리지 않고 쏟아져 나왔다. 이에 김성근 감독이 부임 이후 가장 중점을 두고 강화한 부분이 바로 수비다. 결과는 어떨까.
확실히 좋아졌다. 단순히 실책 수만을 갖고 하는 평가가 아니다. 페어가 된 타구를 아웃으로 처리한 비율을 나타내는 범타처리율(DER)이 지난해 같은 기간 리그 최악인 0.666에서 올해는 리그 평균 수준인 0.689로 크게 향상됐다. 이는 지난해 대비 페어타구 100개당 2~3개가 안타 대신 아웃으로 처리됐다는 얘기다. 안타가 아웃이 되는 비율이 늘면서 3-4월 팀 평균자책점도 지난해 5.31에서 4.92로 좋아졌고, 경기당 실점도 6.09점에서 5.45점으로 줄어들었다.
한화의 수비력 변화는 외야진과 센터라인의 교체가 주된 원인이다. 지난 시즌 한화 외야는 펠릭스 피에 혼자 고군분투했지만, 올해는 시즌 초반 모건-이용규가 외야를 맡으면서 커버하는 영역이 크게 넓어졌다. 모건은 메이저리그 커리어 내내 피에보다 한 수 위의 수비수였다. 최진행-김태완을 외야수로 거의 기용하지 않은 것도 팀 수비력에는 플러스 요인이다. 이는 2루타-3루타 허용이 크게 줄어든 데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한화는 3-4월에만 2루타 38개, 3루타 6개를 허용했지만 외야가 좋아진 올해는 3루타 없이 2루타 31개만을 허용했다. 이는 팀 피장타율이 0.467에서 0.388로 좋아진 원인 중 하나다.
여기에 유격수 자리에 안정적인 수비를 자랑하는 권용관을 배치한 것도 수비 향상에 도움이 됐다. 정근우 대신 2루로 나선 강경학-이시찬의 수비력도 지난해보다 발전했고, 경기 후반에는 송주호-주현상 등을 대수비로 기용해 효과를 보고 있다. 지옥펑고는 이미 기량이 완성된 베테랑보다는 젊은 야수들의 수비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지난 시즌까지는 좀처럼 보기 드물던 수비 시프트가 성공하는 장면도 자주 눈에 띈다. 이런 변화를 통해 한화는 리그 최악의 수비팀에서 올해는 리그 평균 수준까지 수비력을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유인구, 또 유인구… 마운드의 새로운 전략
지난 시즌 한화 마운드는 KBO리그 역사상 최악의 팀 평균자책점(6.35) 불명예 기록을 세웠다. 원인은 투수진 구성과 팀 수비력이 맞물려 있다. 지난해 한화는 외국인 투수 앨버스-클레이를 비롯해 투수진 대부분이 스터프가 뛰어나지 않은 선수들로 구성됐다. 탈삼진 능력이 떨어지는 투수가 아웃을 잡아내려면 수비수들의 도움이 필요한데, 위에서 지적했듯이 한화의 수비력은 리그 최약체 수준. 그러다 보니 스트라이크를 잡지 못하고 피해가다가 볼넷을 주거나, 불리한 카운트에서 존으로 던지다 얻어맞는 패턴이 반복됐다. 올 시즌엔 어땠을까.
이번 시즌 역시 볼넷허용률(BB%)는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볼넷이 되는 이유가 조금 다르다. 타자가 좋은 타구를 만들어낼 확률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에서 나오는 볼넷이기 때문이다. 한화 투수들은 볼넷이 되더라도 치기 좋은 공은 주지 않는, 정타는 맞지 않는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에 스트라이크를 던지더라도 존 외곽을 겨냥하고, 유인구와 변화구를 던지는 비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초구부터 변화구 유인구를 던지는가 하면,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카운트가 더 불리해질 위험을 무릅쓰고 또 유인구를 던지기도 한다. 지난해는 잘 던지지 않던 인사이드 피치 비율도 높아졌고, 그 결과 몸에 맞는 볼이 8개에서 21개로 크게 늘었다. 또 유인구 비율 증가로 탈삼진 비율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높은 볼넷률, 높은 삼진율, 낮은 컨택률. 김성근 감독이 SK 시절부터 구사한 이런 투구 전략은 한화에서는 양날의 검이다. 불확실성과 실점을 최소화한다는 면은 장점이다. 산술적으로만 보면 한 이닝에 볼넷 3개를 내주더라도 안타를 맞지 않으면 한 점도 주지 않는 것도 가능하다. 타자의 배트에 맞는 비율 자체를 줄이고, 배트에 제대로 맞을 확률도 줄이고, 맞아나간 타구가 안타가 될 확률까지 최소화하는 이 전략으로 한화는 3-4월 피안타율을 지난해 0.300에서 올해 0.263까지 끌어내렸다. 대신 투수진의 경기당 투구수는 지난해 155개에서 올해는 162.8개까지 폭증한 상태. 다른 구단 타자들의 컨디션이 궤도에 오르고, 투수들의 체력이 소모된 5월 이후에도 이런 전략이 계속해서 성공을 거둘지는 지켜볼 대목이다.
희생번트 최소에서 최다 팀으로
2014년 한화는 리그에서 NC 다음으로 희생번트가 적은 구단이었다. 3-4월에도 단 7개만 기록하며 주로 타자에게 맡기는 쪽을 택했다. 사실 벤치에서 작전을 내도 선수들이 성공시킨다는 보장이 없었던 것도 원인이다. 올해는 공격 컬러가 크게 바뀌었다. 3-4월 희생번트 32개로 10개 구단 중 최다를 기록했다. 또 같은 기간 13개였던 도루도 20개로 늘었다(성공률 59%->61%). 반면 팀타율, 팀출루율, 팀장타율은 지난해 대비 소폭 하락했고, 경기당 득점도 근소한 차이로 작년보다 줄어든 수치를 보였다.
한화가 지난해와 비슷한 득점으로 더 많은 승을 거둔 건, 그만큼 적은 점수차로 이긴 경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다음 표를 살펴보자.
표에서 보는 것처럼 1점차, 2점차, 3점차 이내 경기가 크게 늘었다. 1점차 경기 승패는 큰 차이가 없지만 2점차 이내에서는 9승 3패, 3점차 이내 경기에선 11승 5패로 높은 승률을 올렸다. 대신 5점차 이상, 10점차 이상으로 패한 경기도 늘었다. 잡을 경기와 지는 경기를 구분해서, 이기기로 작정한 경기에는 한국시리즈식 물량공세를 펼친 결과다. 3이닝 마무리나 3연투, 선발 투수의 불펜 알바도 주저하지 않는 단기전식 투수 운영이 시즌 초반 효과를 보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불펜 에이스는 9회가 아닌 7-8회 가장 중요한 상황에 기용해야 한다”는 세이버메트리션들의 주장과 통하는 점도 있어 보인다. 물론 7-8회를 막아낸 불펜 에이스가 9회에도 계속 마운드에 올라온다는 차이점이 있긴 하지만.
상승세를 이어가기 위한 3가지 조건
그렇다면 한화는 3-4월의 좋은 기세를 앞으로도 이어갈 수 있을까? 피타고라스 기대승률로 구한 한화의 3-4월 기대승률은 0.413(9위)으로 실제 기록한 승률인 0.542(4위)와는 차이가 큰 편이다. 현재까지의 경기 내용만 놓고 보면 5월 이후에는 팀 승률이 기대승률에 가까운 쪽으로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현실적으로도 3-4월에 강행한 경기 운영 방식을 계속해서 고수한다는 것은 아무리 김성근 감독이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김성근 감독이 거쳐간 팀들의 통산 피타고리안 기대승률은 0.557, 실제승률은 0.555로 기대승률이 오히려 더 높았다(감독대행-중도사퇴 시즌 제외).
결국 한화가 5월 이후에도 시즌 초반 같은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수비가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몇 가지 조건이 채워져야 한다.
먼저 득점력을 지금보다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1~2점차 승리가 보기에는 마약처럼 짜릿하지만, 투수진에는 그만큼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 필승조 없이 승리하는 경기가 많아져야 한다. 긍정적인 건 정근우가 1군 복귀 이후 조금씩 제 컨디션을 찾아가고 있다는 점. 여기에 조인성까지 1군에 합류한 만큼, 3-4월보다는 좀 더 많은 득점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팀에 비해 미미한 외국인 타자의 공격에서 기여도 절실하다.
또 선발투수진도 정상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현재 한화 선발투수 중 5이닝 이상 믿고 맡길 수 있는 투수는 사실상 안영명 하나뿐이다. 김성근 감독이 직접 선택한 탈보트와 유먼은 기대에 못 미치는 투구를 보여주고 있으며, 역시 김 감독의 요청으로 영입한 송은범과 배영수는 누가 더 못 던지는가를 두고 경쟁하는 듯한 모습이다. 과거 2007~2010년 SK 와이번스는 불펜야구 이미지가 강한 팀이었지만, 사실 선발진에도 김광현-채병용-레이번 등 항상 제몫을 하는 선발투수가 최소 3명은 있었다. 안영명 하나로 한 시즌을 버틸 수는 없다. 5이닝 이상을 버텨주는 선발투수가 나와야 한다.
마지막으로 불펜에서 누군가 새로운 얼굴이 나와줘야 한다. 현재 한화 불펜에서 이기는 경기에 믿고 내보낼 수 있는 투수는 실질적으로 박정진과 권혁 두 명, 부상으로 빠진 윤규진을 포함하면 세 명 뿐이다. 믿고 낼 투수가 없다 보니 세이브 상황은 물론 크게 이기는 경기, 동점인 경기, 지고 있는 경기까지 모두 권혁이 올라와서 승부처를 해결해야 했다. 4월 30일까지 권혁이 던진 투구수는 401구. <동아일보> 황규인 기자에 따르면, 불펜투수가 5월 이전에 400구 이상을 던진 건 2005년 조웅천 이후 10년만의 기록이다. 한 일간지에서는 날조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혹사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착한 혹사건 나쁜 혹사건 혹사는 분명 혹사다. 이런 등판을 시즌 끝날 때까지 이어간다는 것은, 아무리 신의 손길로 볼을 어루만지며 “던질 수 있겠냐”고 의사를 묻더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SK 시절 김성근 감독은 전반기에 무리한 투수는 후반기에 기용 빈도를 줄이고, 대신 다른 투수들을 집중적으로 기용하는 방식으로 나름의 ‘관리’를 했다. 이는 그만큼 당시 SK 불펜에 좋은 투수 자원이 풍부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가득염-조웅천-김원형 등 베테랑은 물론 정대현-이승호-정우람-윤길현-전병두 등 비교적 젊은 투수들이 고루 포진한 SK 불펜은 시즌 내내 이어지는 단기전식 투수 기용을 버텨낼 만한 막강한 ‘뎁스(depth)’를 갖추고 있었다.
만약 한화 불펜에서 박정진-권혁-윤규진의 페이스가 떨어졌을 때, 대신할 만한 투수는 누가 있을까? 현재로서는 마땅한 대체 자원이 보이지 않는다. 이 과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서, 한화의 남은 시즌 향방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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