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동성애 치유'를 말하나
김진표 국회의장의 발언이 다시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 11월 25일, 김 의장은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장과의 면담에서 저출생 문제 해법을 논의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기독교계에서 동성애, 동성혼 치유회복운동도 포함해 한꺼번에 생명존중 운동으로 승화해 추진하자는 움직임이 있다"며, 종교계와 함께 하는 '범국가적 노력'을 강조했다.(☞ 관련 기사 : <프레시안> 11월 25일 자 '김진표, 또…"동성애 치유"가 저출생 해법?') 보도에 따르면, 김진표 의장의 동성애 혐오 발언 논란은 2012년 대선부터 "동성애, 동성혼을 허용하는 법률이 제정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으로 약속드린다"는 등 여러 차례 반복된 바 있다.
우선 확인하자. 동성애는 '치유'해야 하는 질병이 아니다. 미국정신의학회는 이미 1973년 정신장애 진단명에서 동성애를 삭제했다. '동성애 치유'는 기실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을 이성애로 바꾸려는 전환치료를 뜻하는데, 이는 반인권적이고 비윤리적이라는 이유로 여러 국가에서 속속 금지되고 있다. 이제는 달리 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동성애 치유' 대신 성소수자 권리 보장을, '저출산' 대신 '재생산권'에 대해 말이다.성소수자 권리보장과 임신중단 합법화의 연관성
미국의 한 연구팀은 2022년 1월 국제학술지 <성 역할(Sex Roles)>에 각 국가의 사회정책과 제도가 성소수자 권리와 여성의 성재생산권리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바로 가기 : ) 성소수자 권리(동성결혼, 차별금지 등)를 보장하는 법이 많은 국가일수록, 여성의 임신중단 합법화가 된 국가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성소수자 관련 법률 보장과 임신중단 합법화는 일말의 상관관계를 갖지 않을까?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이 있다면 무엇일까? 성 평등 수준을 보여주는 사회적 분위기나 출산을 둘러싼 사회 지표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이들 지표는 어떤 영향을 주고받을까? 그걸 알아보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다. 연구팀은 유엔(UN), 세계보건기구(WHO), 국제성소수자협회(ILGA) 등을 통해 공개된 각국 자료를 분석하여 성소수자 관련 법률 지표와 임신중단 지표를 산출하였다. 성소수자 법률 지표는 성소수자에 대한 범죄화 여부, 고용 등 차별금지 여부, 혐오범죄나 폭력, 전환치료로부터 보호, 동성결혼 및 동성가족 구성원 법제화 등을 고려해서 산출했다. 임신중단 지표의 경우, 해당 국가의 임신중단 관련 법 수준과 임신중단 관련 요건 등을 통합해 점수로 매겼다.성소수자 권리가 보장될수록 임신중단은 합법적으로 허용
분석결과, 예상대로 성소수자 친화적인 법률이 많은 국가일수록, 여성이 합법적으로 임신중지를 할 수 있는 요건이 더 많았다. 그런데 이것만으로 불충분하다. 성소수자 권리를 합법적으로 보장하고, 여성의 재생산권리를 합법화하는 것 모두 사회적 소수자 권리를 보장하는 비슷한 결을 지닌 법-제도이므로 연관성을 지니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결과로서 이들 법제도에 영향을 미친 요인이 무엇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임신중단 합법화나 성소수자 권리 보장에 반대하는 관점은 주로 저출산을 걱정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은 임신중단이나 성소수자 친화적 법제도 합법화가 출산을 위태롭게 한다고, 특히 경제 불황일 때, 출산을 더 어렵게 한다고 본다. 결과적으로, 이런 국가는 출산을 장려하는 규범을 발굴해내고 출산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행위를 금기시한다(임신중단, 동성애, 이혼, 피임, 자위까지). 그래서 연구팀은 출산 장려 수준을 반영하는 출산 요구 지표를 만들어 각국의 평균 기대수명, 아동사망률, 여성의 전 생애 출산한 자녀 수, 모성사망률을 종합해 산출했다. 마지막으로 연구팀은 성 평등 지표도 포함했다. 세계 성별격차지수(Global Gender Gap Index)와 여성의 법적 지위를 대변하는 자료(여성의 이동할 자유, 이혼시 권리, 상속권리 등)를 종합해 만든 점수다. 그 밖에 해당 국가의 1인당 소득, 평균 학력수준까지 포함하여 이들 요인들이 서로 얼마나 영향을 주고받는지 알아보았다.성소수자 친화적 법제도가 많을수록 출산 요구 지표는 낮다
모든 지표 간 연관성을 살펴본 결과, 출산 요구 지표에 가장 큰 영향력을 보인 것은 성소수자 법률 지표였다. 성소수자 친화적 법률이 적을수록 출산 요구 수준이 더 높았으며, 성소수자 권리 보장이 클수록 출산 장려 분위기는 더 적었다. 그 다음, 영향을 크게 주는 요인은 개인의 자유 지표, 성평등 지표, 임신중단 합법화 지표 순이다. 개인의 자유가 더 보장될수록, 더 성평등한 사회일수록, 임신중단 합법화가 더 확대된 곳일수록 출산 요구는 더 낮아졌다. 연구팀이 임신중단 합법화와 성소수자 법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복잡한 여러 모형을 비교한 결과, 두 가지 법률 모두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은 성 평등 지표였다. 이들은 임신중단과 성소수자 권리 법-제도를 이해하기 위해 성 평등을 중심에 둘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여성의 전통적인 성역할을 가정하며 출산을 요구하는 분위기에서 재생산 권리로서 임신중단이나 동성결혼 합법화 여부를 가늠하는 건 결국 성 평등 수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성소수자 차별은 '성 차별' 문제이기도
그런 의미에서 연구팀은 2020년 미국 대법원 판결(보스톡 대 클레이튼 컨트리 판결)이 지닌 의미에 주목한다. 이 사건은 '보스톡'이라는 남성이 직장에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해 해고되자, 여기에 불복해 소송을 낸 일이다. 이 사건에서 미국 대법원은 보스톡이 당한 고용차별을 '성 차별'의 한 유형이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을 통해, 성소수자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성(gender) 불평등의 한 유형으로 규정되었고, 이제 성소수자 권리 운동이 성 평등 운동과 만나는 연대의 접점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연구팀은 성 평등의 변화가 성소수자와 재생산 권리의 변화를 서로 예고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2020년 폴란드에서 안제이 두다 대통령이 동성커플의 자녀 입양을 금지한 지 몇 달 만에, 법원이 임신중지를 더 엄격하게 금지하는 명령을 내린 것처럼 말이다. 명시적으로 성과 젠더를 다루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성소수자와 여성에 대한 정책문제는 서로 다양하게 영향을 주고받는다.결국 문제는 성 평등이야
2022년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세계 성별격차 지수(Global Gender Gap)에서 한국은 146개국 중 99위를 했다. 50%를 간신히 넘은 한국 여성의 노동참여율, 남성 대비 70%도 못 미치는 여성 임금, 경제·교육·건강·정치권력에서 기회의 불평등(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기회를 얻기까지 걸리는 시간 132년!),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가장 먼저 해고된 여성 노동자, 직장을 구한다 해도 승진과정의 유리천장과 임신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여성이 마주한 한국의 성별 격차수준은 외면하고 저출산 대책으로 '동성애 치유' 발언을 하는 이가 의장으로 자리한 곳이 대한민국 국회다. 그의 발언 자체는 직접적으로는 성소수자를, 간접적으로는 여성도 모두 혐오하고 있다. 결국 싸워야 할 문제는 성 평등이다. *서지 정보 - Henry, P.J., Steiger, R.L. & Bellovary, A. The Contribution of Gender Equality to the Coexistence of Progressive Abortion and Sexual Orientation Laws. Sex Roles 86, 263–281 (2022). //doi.org/10.1007/s11199-021-01263-0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