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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 수입 줄인다는 간명한 접근을 피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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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화석연료 수입 줄인다는 간명한 접근을 피할 이유가 없다 [초록發光] 소비 말단 온실가스 배출 규제로는 한계 명확
지구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우리의 절망도 더 깊어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지구 기온 상승 1.5도 목표를 지키기 위해서, 최대한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량(이를 탄소예산이라고 한다)을 계산해놓고 있다. 과학적 불확실성 때문에 탄소예산의 추정치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최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6차 보고서를 참고하는 것이 최선이다. 현재 추세대로 배출된다면, 탄소예산은 앞으로 10년 후에는 동이 날 것이다. 세계 각국이 파리협정에 따라서 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있지만, 그 목표 자체가 탄소예산을 고려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도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에게 과거와 다른 새로운 접근을 모색하도록 만들고 있다. 전통적으로 국제 기후협상 그리고 각국의 기후변화 정책은 온실가스 감축에 초점을 맞추는 '수요측 기후정책'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하지만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이 줄기는커녕 계속 증가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석유, 석탄,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의 탐사 및 채굴을 중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공급측 기후정책' 요구가 점차 강화되고 있다. 이런 요구는 "굴뚝이 아니라 유정!" 혹은 "땅 속에 그대로 두라!"라는 슬로건으로 집약된다. 누군가는 이를 마약과의 전쟁과 비유하기도 한다. 뒷골목 마약 판매상을 아무리 단속해봐야, 마약을 대규모 생산하고 공급하는 카르텔을 제거하지 않은 한, 별 소용이 없는 상황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계속 석유, 가스, 석탄을 채굴하며 돈을 벌어들이는 국가와 기업들이 있는데, 소비 말단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겠다는 노력은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다. 화석연료 채굴을 금지한다는 공급측 기후정책에 대한 아이디어는 이미 1992년의 유엔기후변화협약 체결 이전부터 있었지만, 유엔 기후변화협약과 후속 국제협상은 그때부터 줄곧 이 접근을 외면해왔다. 이는 파리협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2021년 글래스고에서 석탄발전소의 단계적 축소를 결의한 것이 예외적인 일이다. 그러나 전 세계의 화석연료 매장량이 1.5도 혹은 2도 목표를 위한 탄소예산보다 훨씬 많다는 과학자들의 분석들은 이어지고 있다. 최근의 분석에 의하면, 파리협정의 1.5도 목표에 부합하는 탄소예산을 고려했을 때, 전 세계에 매장된 화석연료의 상당 비중은 채굴하지 말아야 한다. 2050년까지, 석유의 58%, 가스의 56%, 석탄의 89%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를 모두 캐내어 사용하면 1.5도 기온 상승을 넘어 기후재앙을 피할 수 없다는 분석은 너무나 직관적이어서,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렵다. 기후운동은 화석연료의 채굴 자체를 막기 위한 싸움을 오래전부터 시작해왔다. 공적/사적 투자자를 압박하여 화석연료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도록 하는 운동에서부터, 미국과 독일 등에서 송유관 건설 예정지나 석탄 광산에서 이뤄지는 점거 농성과 같은 직접행동, 그리고 화석연료 채굴 허가 혹은 개발 사업에 대한 소송과 같은 법적 투쟁 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투쟁들에 참여하고 있는 전 세계의 활동가들과 연구자들은 2017년 8월에 노르웨이 로포텐섬에 모여서 새로운 화석연료 탐사와 채굴을 중단하고 기존의 생산을 점진적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국제적인 선언을 발표했다. 13억 배럴 이상 매장된 인근 해양의 석유 채굴을 금지하려는 투쟁이 성공한 로포텐섬은 이 선언을 위한 좋은 무대가 되었다. 이런 투쟁은 사회운동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코스타리카와 같은 국가들은 2002년에 이미 자국 내 화석연료 탐사를 금지했고, 이 정책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2017년 이후 이러한 선도적 노력은 유럽, 남미, 태평양 지역 국가들에 의해서 이어졌다. 프랑스는 2017년 자국 영토 내의 석유와 천연가스 채굴과 생산을 2040년까지 완전히 중단한다는 법률을 제정했다. 벨리즈도 같은 해에 모든 해양 지역에서의 석유 관련 활동을 중단하는 법을 발효시켰다. 이어 2018년 뉴질랜드는 영해 내에서 석유와 가스의 탐사에 대한 새로운 허가를 내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일랜드 정부는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모든 투자금을 회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020년 덴마크는 북해 지역에서의 새로운 화석연료 탐사와 생산 허가를 취소하고, 2050년까지 기존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같은 해 독일은 2038년까지 석탄 채굴을 중단하는 법률을 제정하였다. 2021년 스페인은 새로운 석유 및 가스 채굴권을 즉시 금지하고 2043년부터 자국 내에서 화석연료 생산을 금지했다. 미국에서 오바마, 트럼프, 바이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송유관 건설이나 북극 지역의 유전 개발을 둘러싼 엎치락뒤치락한 정책 변화도 관련하여 살펴볼 수 있다.
ⓒ한재각
이런 흐름에 기반을 두고 2021년 글래스고 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 동안 덴마크와 코스타리카는 Beyond Oil and Gas Alliance(BOGA)라는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켰다. BOGA는 1.5도 목표를 지키기 위해서는 매장된 화석연료의 상당 비중을 채굴하지 말아야 한다는 분석에 기반을 두고, 2030년까지의 각국 정부의 화석연료 생산 계획과 예측은 1.5도 탄소예산을 훨씬 넘어설 것이라고 경고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계획과 예측은 탄소예산에 비해서 석탄, 석유, 가스를 각각 240%, 57%, 71%를 더 채굴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BOG의 참여 국가들은 새로운 석유와 가스의 탐사와 채굴을 금지하는 시점을 밝히면서, 기후변화 국제협상에 대해서 이 의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국제협상에서 감축이 의제화된 석탄 이외에 석유와 가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탈석탄동맹이 영국의 주도하에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해가고 있다. BOGA에 가입한 나라는 덴마크와 코스타리카 이외에도, 프랑스, 그린란드, 아일랜드, 포르투칼, 캐나다의 퀘벡주, 스웨덴, 투발루, 바누아투, 영국의 웨일스, 미국의 위싱턴주이다. BOGA 회원의 자격 조건은 화석연료의 탐사와 채굴 결정권을 가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및 기타 당국으로 하고 있어서, 영국의 웨일스, 캐나다 퀘벡과 미국 워싱턴도 포함되어 있다. 그 외에 준회원(캘리포니아와 뉴질랜드), BOGA의 친구(칠레, 피지, 핀란드, 이탈리아, 룩셈부르크)로 여러 국가와 지방정부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런 흐름과 조응하면서, 전 세계 여러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은 국제적 수준에서 화석연료의 채굴과 생산을 금지하는 화석연료 비확산 조약(Fossil Fuel Non-Proliferation Treaty)이나 석탄 제거 조약(Coal Elimination Treaty)과 같은 국제법을 연구하고 만들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반 화석연료 규범(Anti-fossil fuel norms)을 기후위기 시대의 새로운 규범으로 만들려는 시도다. 이런 공급측 기후 정책의 필요성은 이제는 국제에너지구(IEA)에서조차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IEA는 2050년 넷제로 시나리오를 통해서 앞으로 화석연료가 불필요함을 인정했다. 충분히 짐작할 만하지만, 그동안 막강한 힘을 가진 산유국과 초국적 석유회사들의 이익과 관련되어 있는 사안이기에 이런 공급측 기후정책은 협상 의제에서 계속 누락되어 왔다. 하지만 앞으로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탄소예산과 화석연료 매장량의 관계에 대한 직관적 이해, 그리고 화석연료 생산 축소와 금지를 요구하는 전 세계 기후운동과 일부 국가들의 동참 때문에, 더 이상 이런 외면과 침묵으로 일관하기는 어렵게 된 것이다. 연구자들은 공급측 기후정책이 온실가스 감축의 비용을 줄여주며 기후정책에 관한 정치적 지지도를 더욱 높여줄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공급측 기후정책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 물론 한국은 국내에서 탐사되고 채굴되는 화석연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동일한 논의가 될 수는 없다. 다만, 호주에서 SK가 참여하고 있는 바로사 가스전 사업과 같이 해외에서 진행하는 석유 및 천연가스 채굴에 대해서는 비슷한 논의가 가능하다. 화석연료 수입국에 맞게 논리를 재정리할 필요가 있다. 논리는 간단하다. 연간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따라서 매년 수입하는 화석연료의 양을 정하고 점차 줄여나가자는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과거 매년도 온실가스 배출량과 화석연료 수입량은 강력하게 동기화되어 있다. 에너지 수요 차원에서 온실가스를 줄이려는 노력은 결과적으로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기가 될 것이다. 불확실하고 위험천만한 접근이지만,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큰 차이를 만들지 못한다. 따라서 이는 화석연료 수입이 줄어드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제 화석연료 수입을 줄인다는 간명하고 직접적인 접근을 피할 이유가 없다. 기후위기 심각해질수록, 과거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제쳐 두었던 여러 접근과 수단들이 재검토될 것이다. 어떤 것은 아직 퇴행적이어서 아무리 위급하다고 하더라도 수용할 수 없는 것들이 있겠다. 핵발전이나 CCS와 같이 위험하며 책임과 비용을 다른 이들에게 전가하는 접근은 용납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어떤 것은 기존 체제가 불온시하고 봉쇄해왔던 것이지만, 대단히 합리적이며 (심지어) 정의로운 방안도 있을 것이다. 산유국들이 새로운 화석연료 탐사와 채굴을 금지하고 기존의 채굴량을 줄여나가는 것이나, 비산유국들이 그것의 수입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로 보이지만, 오히려 절실한 일이지 않은가. 장애물은 화석연료 기업과 자본의 저항뿐이다. 여기에 일자리와 경제가 걸린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곤란함이 곁들여져 있다. 우리는 지구를 파먹는 기업과 자본에 맞서, 노동자와 지역사회과 함께 싸울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앞으로의 생존과 존엄한 삶은 용납되지 않았던 도전과 정의로운 전환을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환경의 날인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시민단체 소비자기후행동 회원들이 미세플라스틱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 발의를 환영하며 조속한 국회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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