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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경영참여부터 이익 균점까지…제헌국회, 기업 본성을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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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경영참여부터 이익 균점까지…제헌국회, 기업 본성을 논하다 [장석준 칼럼] <1948년, 헌법을 만들다: 제헌국회 20일의 현장>을 읽고
무덥고 짜증나는 날씨다. 그러나 나는 책 한 권 덕택에 날씨를 좀 잊을 수 있었다. 재미있는 소설? 아니다. 소설 비슷한 책조차 아니다. 역사 서적이지만, 소설에 가까운 역사 이야기는 아니다. 회의록이다. 회의록을 흥미롭게 읽었다니! 변태 소리를 듣기 딱 좋겠다. 그러나 진짜로, 재미있었다. 안도경 외, <1948년, 헌법을 만들다: 제헌국회 20일의 현장>(포럼, 2023)이 그 책이다.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이 책은 대한민국의 첫 국회, 제헌국회가 1948년 6월 23일부터 7월 12일까지 헌법 초안을 심의한 과정을 담고 있다. 헌법 초안을 꼼꼼히 살피며 국회의장 이승만, 부의장 신익희, 김동원을 비롯해 200여 명의 의원들이 쏟아낸 발언들을 전한다. 그야말로 제헌국회 속기록이다. 요즘 국회를 떠올린다면, 국회 속기록 따위 읽어 뭐하랴 싶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펴들면, 틀림없이 다들 생각이 바뀔 것이다. 뜻밖에도 미국 독립혁명이나 프랑스대혁명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법한 진지하고 격조 있는 논쟁과 조우하기 때문이다. 75년 전, 지금과 비슷했을 무더위 속에서 이 나라 첫 번째 국회가 헌법을 만들며 보여준 모습은 그러했다. 우리가 미처 몰랐던 대한민국의 탄생 장면이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의 조화

많은 명장면들이 있다. 가령, 자신이 대통령이 될 걸 기정사실화하며 어떻게든 대통령 권한을 늘리려는 이승만과, 대통령제보다는 의회제(내각제)의 요소를 강화하려고 이에 맞서는 다른 의원들(대표적으로 조봉암)의 격론은 참으로 치열하면서 인상 깊다. 각 조항의 주어를 '인민'으로 할지, '국민'으로 할지를 놓고 벌인 쟁론 또한 나름대로 깊은 정치철학적 맥락을 깔고 전개된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것은 새 나라의 경제 질서를 둘러싼 논의다. 의원은 아니지만 전문위원으로서 헌법기초위원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법학자 유진오는 6월 23일 헌법기초위원회가 마련한 헌법 초안을 의원들에게 보고했다. 이때 유진오가 헌법 초안의 기본정신으로 가장 먼저 든 것이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의 조화'다. 그의 발언을 들어보자.

"이 헌법의 기본정신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와의 조화를 꾀하려고 하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불란서 혁명이라든가 미국의 독립시대로부터 민주주의의 근원이 되어 온 모든 사람의 자유와 평등과 권리를 위하고 존중하는 동시에 경제 균등을 실현해 보려고 하는 것이 이 헌법의 기본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1948년, 헌법을 만들다> 22쪽)

이 기본정신은 헌법 초안의 제6장 '경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경제' 장의 첫 조항이며 초안 문구 그대로 제헌헌법에 담기게 되는 제83조(최종 채택된 헌법에서는 84조)는 다음과 같이 신생 국가의 경제 질서를 밝힌다.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

이른바 '경제 민주화' 조항이라 불리는 현행 헌법 제119조는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천명한다.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문구는 그 뒤에 따라 붙는다. '자유가' 먼저이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이를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제헌헌법은 경제 질서의 근간으로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못 박은 뒤에 "각인의 경제상 자유는 이 한계 내에서 보장된다"고 한다. 공공의 이익을 중심에 두는 경제 질서가 먼저이고, 어디까지나 그 울타리 안에서 '자유'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제헌헌법 84조와 현 헌법 119조가 지향하는 경제 질서가 서로 비슷해 보이면서도 선후와 우열, 강조점이 이렇게 분명히 다르다. 굳이 말하면, 현 119조의 원조인 제헌헌법 84조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보다도 '경제 민주주의'를 훨씬 더 강조하는 셈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이 처음 출발할 때의 경제 철학이었다. 그랬기에 제헌헌법 '경제' 장에는 다음 같은 조항들이 잇따라 등장한다.

"제85조 광물 기타 중요한 지하자원, 수산자원, 수력과 경제상 이용할 수 있는 자연력은 국유로 한다."

"제87조 중요한 운수, 통신, 금융, 보험, 전기, 수리, 수도, 가스 및 공공성을 가진 기업은 국영 또한 공영으로 한다. (중략) 대외무역은 국가의 통제하에 둔다."

"제88조 국방상 또는 국민생활상 간절한 필요에 의하여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또는 그 경영을 통제, 관리함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행한다."

'자유', '자유'밖에 모르며 감히 밀턴 프리드먼의 사도를 자임하는 윤석열 대통령이라면, 경기를 일으킬 만한 내용들이다.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반국가세력의 이념이라 성토할 만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이다. 현 대한민국 대통령의 경제 신조와 상관없이, 이것은 명명백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노동3권만으로는 부족하다, 경영참가와 이익균점을!

한데 상당수 제헌국회의원들은 헌법 초안에 담긴 이 정도의 경제 민주주의로도 만족하지 못했다. '일할 권리', '노동3권', '사회보장'을 각각 규정하는 헌법 초안 제17, 18, 19조를 검토한 7월 3일 회의에서 문시환 의원 등은 노동자의 권리를 밝힌 제17조를 보강하는 두 가지 수정안을 제출했다. 첫째는 "근로자는 노자협조와 생산증가를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 기업의 운영에 참가할 권리가 있다"는 수정안이었다. 즉, 노동자가 기업 경영에 참여하도록 헌법이 보장해야 한다는 제안이었다. 둘째는 "기업주는 기업이익의 일부를 법률의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임금 이외의 적당한 명목으로 근로자에게 균점시켜야 한다"는 수정안이었다. 즉, 기업 이윤을 배당하는 주체에 주주나 기업주만이 아니라 노동자가 포함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제안이었다. 이 수정안이 제출되자 제헌국회는 새 나라에서 기업이 추구해야 할 가치와 방향을 둘러싼 일대 논쟁장으로 돌변했고, 다음 회의가 열린 7월 5일까지 뜨거운 논전이 이어졌다. 7월 3일과 5일의 이 논쟁을 기록한 대목은 <1948년, 헌법을 만들다>에서도 단연 백미다. 의원들의 발언은 저마다 열띤 웅변에 가까워졌고, 이념과 철학이 충돌하며 불꽃을 튀겼다. 수정안 대표 발의자 문시환 의원(1897-1973)은 공산당, 의열단 등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였는데,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조선민족청년단(약칭 족청. 이범석의 극우 민족주의 조직) 후보로 부산에서 당선됐다. 해방공간에서 정치가 좌익과 우익으로 확연히 나뉘었다는 상식에 따르면, 좀 이해가 안 가는 이력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 상식이 잘못이거나 너무 도식적인 것일지 모른다. 사실 문시환 의원 수정안에 동조한 의원들 중 상당수는 이승만의 친위조직 대한독립촉성국민회(독촉) 소속이었다. 반면 수정안에 적극 반대하고 나선 이들은 지주와 자본가의 대변자로 자부하던 한국민주당(한민당)이었다. 과거 공산당에서 활동하다 우익으로 전향한 김준연과, 한민당 경제통 김도연 등이 연단에 올라 수정안, 그 중에서도 특히 노동자 경영 참가에 반대했다. 김준연 의원은 "노동자에게 경영참여권을 주는 것이 기업자의 심리를 위축시켜"(217쪽) 기업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비판했고, 김도연 의원은 "노동자는 자기 노임을 받고 일하는 사람"(225쪽)일 뿐이라며 자본가들의 노동자관을 솔직히 드러냈다. 본래 한민당 소속이었으나 무소속으로 당선된 박해극 의원은 "노동자에 대하여 기업운영권과 이익분배라는 2대 권리를 전적으로 실행할 지경"(219쪽)이면 노동자가 오히려 기업가를 착취하게 되지 않겠냐고 반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수정안 지지자들의 열변은 이런 반대 논리를 압도했다. 무소속 조병한 의원은 기업가 출신임에도 노동자의 이익균점권을 옹호했다. 공산당과 연결된 전평계 노동조합운동이 사라진 자리에서 대한노총을 통해 노동운동의 대변자를 자처하던 전진한 의원은 단체교섭권이나 단체행동권만으로는 노동자가 자기 이익을 지킬 수 없기에 경영 참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진한은 또한 노동자의 기업운영권 참여 같은 '사회 민주주의'가 세계의 대세라고 역설했다. 이보다 훨씬 더 격렬한 찬성의 목소리들도 있었다. 해방 이후 3년의 혼란 끝에 분단을 전제로 새 나라를 세우던 급박한 정세를 들어 수정안 지지를 호소하는 주장들이었다. 가령 독촉 소속 정해준 의원은 이렇게 발언했다.

"만약 우리가 앞으로 수립될 남한 정부에 있어서 근로자의 권리를 헌법에 명문화하여 조금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는다면 노동자와 농민이, 삼천만 동포가 앞으로 생겨날 정부를 지지할 것인지 의심스럽고, 38 이남에는 반동자와 폭도들의 폭동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주문을 헌법에 규정하는 것에 찬성합니다."(218쪽)

무소속 박기운 의원은 더 나아가 내전과 학살이 진행되던 제주도 상황을 들며 수정안이 반드시 통과되어야 한다고 절규했다.

"지금 국회 내에서 헌법 초안 제17조가 수정되느냐 안 되느냐 하고 일대 격론이 일어난 이 순간에 북한 동포나 남한 동포나 이목이 집중되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저 바다 가운데 제주도에서 우리 민족끼리 피를 흘리고 싸우고 있는 참경 속에서도 서로 총대를 버리고 본 헌법 제17조가 어찌 되었는가 하고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227쪽)

독촉에 속한 의원들까지 한 편이 되어 수정안 지지 발언을 이어가니 급기야 이승만 의장이 나섰다. 노회한 그는 수정안 내용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으면서도 은근히 진보적인 발언들을 견제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승만조차 면박하거나 무시하기 힘든 상대인 이청천 의원이 발언을 신청했다. 전 광복군 총사령관 이청천은 항일운동 시기에, 그리고 해방 이후에 늘 '우익'으로 분류되던 인물이었지만, 단상에서 그는 항일운동 중의 좌우합작 이념을 우직하게 대변했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하는 마당에 왜 경제적 민주주의를 안 해요? 우리가 독립을 안 한단 말입니까? (중략) 소위 전체주의라는 공산주의 체제와 모든 그 무제한 자본주의를 취하지 않고 우리는 말하자면 국가권력 면에서는 철두철미 민족주의로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경제면에 들어가서는 사회주의로 나가야 되겠습니다."(241쪽)

어느 쪽도 결코 후퇴할 수 없는 팽팽한 대결이었다. 결국 7월 5일, 공산당에서 활동하다 해방 후 한민당의 거물이 된 이항발 의원이 타협의 방향을 제시했다. 노동자 이익균점권은 헌법에 넣되 경영참여권은 빼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날 표결 결과, 경영참여권은 81 대 91로 부결되었으나 이익균점권은 91 대 88로 가결되었다. 제헌헌법 심의 과정의 가장 첨예한 논쟁 중 하나가 이렇게 일단락됐다.

대한민국이 출발하며 껴안은 숙제 – 기업이란 무엇인가?

<1948년, 헌법을 만들다>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이 출발하며 끌어안은 여러 숙제들과 만난다. '대한민국'이라는 국호 자체부터 개인의 자유와 공공 복리의 관계, 의회제와 대통령제에 관한 판단, 여성과 가족을 둘러싼 고민까지 실로 다양한 쟁점들이 헌법 제정 과정에서 의제로 올라왔다. 그리고 그 중에는, 위에서 본 것처럼 노동자의 기업 경영참가와 이익균점 문제도 있었다. 이것은 민주 사회에서 기업의 본성은 무엇인지 따지는 논쟁이기도 했다. 김도연 의원은 경영참여권에 반대하면서, 만약 노동자가 기업 경영에 참가한다면 "고용주와 노동자의 구별이 없어"지며 "노동자와 고용주가 합한 공동기업체가 된다"(225쪽)고 발언했다. 문시환 의원 수정안의 두 내용이 실은 노동권에 몇 가지 사항을 추가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업이라는 조직의 근본 성격을 좌우하는 문제임을 솔직히 드러낸 것이다. 또한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전력의 무소속 윤석구 의원은 "우리의 농민, 노동자가 모두 생산하는 것이 1년에 몇 천 만원 나온다면 그것이 자본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이 가해져서 이익이 나온 만큼 그런 자본을 나누어 준다는 것이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겠다"며 김도연과는 정반대 입장에서 이익균점권이 '경제 민주주의'의 근본 과제임을 환기시켰다. 제헌헌법 제84조를 가장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노동자 역시 자본 소유의 주체여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75년 전 7월의 무더운 회의장에서는 이런 엄청난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리고 민주 사회에서 기업은 어떠한 조직이어야 하느냐는 이때의 논제는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경제 질서를 고대하는 지금 우리의 중대하고 절박한 숙제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처음 출발하면서부터 현대 사회의 이러한 핵심 난제를 껴안았고, 따라서 이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야말로 건국정신에 부합하는 일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 곳곳에서 1948년 7월 3일, 5일의 저 뜨거운 회의장 광경이 부활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우선은 더 많은 이들이 <1948년, 헌법을 만들다>가 전하는 제헌국회 현장과 접속해야 한다. <1948년, 헌법을 만들다>는 모든 대한민국 시민, 특히 그 미래를 담당할 젊은 시민들의 필독서가 되어야 한다.
▲ <1948년, 헌법을 만들다>(안도경, 김영수, 최정욱, 서희경, 고중용 지음) ⓒ도서출판 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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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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