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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국가책임제를 넘어, 정의로운 돌봄사회로 전환을

[인권으로 읽는 세상] 사회서비스원, 폐지가 아닌 돌봄 사회화의 출발점으로

지난 2월 5일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이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설립 및 운영 지원 등에 관한 조례' 폐지안을 발의했다. 이에 노동·사회단체가 모여 '서울시사회서비스원 폐지 저지와 공공돌봄 확충을 위한 공대위'를 발족해 조례 폐지안에 대한 반대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서울시의회는 4월 19일부터 열리는 임시 회기에서 이 안건을 다룰 예정이다.

폐지 조례안을 발의한 강석주 서울시의원은 발의 배경으로 사회서비스원이 공공성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은 설립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낯설다. 그만큼 사회서비스원을 통한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유가 강석주 의원의 말처럼, 사회서비스원 때문은 아니다. 사회서비스원이 공공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돌봄을 둘러싼 제도와 구조는 그대로 둔 채, 공공기관 하나만 덜렁 설치했기 때문이다.

돌봄 위기, 최소의 비용으로 수습하려는 정부

2007년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 사업,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2013년 만 0~5세 아동 무상보육, 2017년에는 치매국가책임제가 시행됐다. 급격한 '저출생 고령사회'라는 인구구조의 변화 속에서 아동·노인·장애인 돌봄 수요는 급증했다. 더는 가족과 여성에게 돌봄을 떠넘길 수 없게 되자 정부는 '일‧가정 양립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사회서비스 제도를 시행하면서 이에 대응해왔다. 정책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돌봄 사회서비스 정책은 기본적으로 경제활동에 나서야 하는 생산가능인구가 돌봄에 속박되지 않도록 지원하고 출산율을 제고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했다. 3월에 발표된 한국은행의 '돌봄 인력난 및 비용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도 가족 간병의 증가에 따른 국내총생산(GDP) 감소 우려를 보고서 작성이유로 밝히고 있다. 이렇게 돌봄은 사회공동체의 과제로서 존엄한 삶을 위한 돌봄 관계의 구축이 아닌 최소의 비용으로 수습해야 하는 '사회정책'이 되었다.

정부는 제한된 재원 아래 사회서비스의 양적 확대를 위해, 공공의 재원을 민간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했다.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도입 이후, 영세한 민간장기요양기관들이 난립했고 민간업체들이 이윤을 내는 방법은 보험료를 부당청구하거나 인건비 절약을 위한 초단기 계약이었다. 이는 돌봄 노동자 처우 악화로 이어졌고, 돌봄 제공자의 잦은 교체는 상호 신뢰와 경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돌봄 관계의 형성을 어렵게 했다. 그밖에 어린이집을 비롯한 민간위탁기관에 의해 제공되는 사회서비스 질의 문제가 계속해서 제기되었고, 이에 공공기관이 직접 투명하게 운영하고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는 사회서비스 요구가 이어졌다.

위탁기관에 불과한 사회서비스원, 이마저 없애려는 윤석열 정부

2019년 정부는 서울, 대구, 경기, 경남에서 60억 원 규모의 소규모 '사회서비스원'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2021년 8월 '사회서비스원 설립 운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서 제정되었고, 전국 16개 시도로 사회서비스원은 확대된다. 사회서비스원의 가장 핵심적인 설립 목적은 공공기관이 직접 영유아보육, 노인요양, 장애인 활동지원과 같은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회에서 제정된 법률은 국공립 사회서비스의 우선 위탁 조건이 삭제되고, 민간위탁기관과 동일하게 입찰경쟁을 하도록 했다. 현재 사회서비스원은 국가정책으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사회서비스를 직접 제공하고 관리하는 공공기관이기보다는 민간 사업자들과 경쟁하는 하나의 법인에 불과하다. 그것도 전체의 0.9%(노인장기요양기관 기준)에 불과하다.

윤석열 정부는 '사회서비스 고도화'라는 이름으로 사회서비스 시장화와 산업화를 국정기조로 내걸었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서비스는 돌봄을 더 이상 가족과 여성에게 무급으로 전가할 수 없게 되자, 국가가 노동력 재생산의 보조자로 나서며 등장한 것이다. 높은 수익률을 남길 수 있는 사회서비스 시장은 비용을 지불 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 일부 상위계층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앞선 한국은행의 보고서가 돌봄 이주노동자에 대한 저임금을 대안으로 내세우며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방안에 집중하는 이유다. 중앙은행이 국제노동기구(ILO) 국제협약을 피해갈 방안까지 제시하면서 말이다.

결국 윤석열 정부의 '사회서비스 고도화'도 실질적인 사회서비스 규모화, 산업화보다는 사회서비스원에 대한 공격으로 드러나고 있다. 현실에서는 민간기관과 위탁 경쟁을 하는 법인에 불과한 사회서비스원이지만, 돌봄에 대한 공공의 책임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9월, 정부는 사회서비스원 운영지침을 개정했다. 기본방향에 민간사회서비스 고도화 지원을 명기하고 돌봄 노동자 직접 고용과 월급제 채용 조항을 삭제했다. 2022년 서울시의회의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예산 100억 원 삭감과 이번 조례 폐지안 발의도 그 연장선이다.

돌봄국가책임제를 넘어, 정의로운 돌봄사회로 나아가야

펜데믹 이후 돌봄권, 돌봄기본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돌봄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돌봄국가책임제'라는 구호 아래 돌봄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흐름이 가시화되고 있다. 하지만 사회서비스원을 둘러싼 공방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돌봄은 국가에 맡기고,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라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는 국가의 돌봄책임은 언제나 잔여적/선별적으로 제공된다. 즉 '돌봄 받을 권리/돌볼 권리'라는 보편적 돌봄권의 차원이 아닌 돌봄제공자의 부담을 일부 경감하는 방향으로만 작동하는 것이다. 그동안 가족과 여성에게 떠넘겨왔던 돌봄노동을 이제는 국가가 도맡겠다는 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돌봄사회는 아닐 것이다. 특히, 국가가 제공하겠다는 돌봄노동이 더 취약한 위치(국적/연령)에 놓인 여성에게 전가되는 것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보편적 돌봄권은, 인간은 상호의존과 돌봄의 사회적 관계 속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취약한 존재라는 보편성에 기반을 둔다. 생애주기와 질병과 장애 경험에 따라 돌봄 제공과 의존의 방향은 그때그때 달라진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 자체가 돌봄과 상호의존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일상은 오직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시간으로 규정된다. 돌봄은 일터에 나가 자본에 착취당할 힘을 길러내는 과정이 되거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배제된 몸들을 건사하는 그림자 노동이 된다. 존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노동과 관계로서 돌봄이 아닌, 자본이 지휘하는 생산노동에 철저히 종속된 채 누군가에게 전가되는 사회적 고역이 되는 것이다. 결국 이 구조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돌봄은 국가가 제공하는 다른 이의 노동으로 대체될 뿐이다. 자본주의적 생산을 뒷받침할 국가정책으로서 돌봄은 언제나 한정된 재원 문제에 휘둘리며, 누구나 돌봄의 주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보편적 돌봄권의 실현과는 거리가 멀다.

누구나 돌봄이 필요할 때 돌봄을 받을 수 있고 누구나 다른 이를 돌볼 수 있는 권리로서 돌봄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도 자본주의적 생산에 포획된 우리의 시간을 되찾는 투쟁이 필요하다. 우리는 덜 일 해야 더 잘 서로를 돌볼 수 있다. 장시간 노동에 지친 몸과 마음은 누군가의 돌봄을 갈구하거나, 누군가를 돌볼 책임을 다른 이에게 떠넘기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생산-재생산 체계를 넘어, 이윤이 아닌 삶의 풍요와 상호의존, 돌봄이 중심이 되는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정의로운 돌봄사회로 전환은 국가와 자본이 공모한 돌봄 부정의, 즉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싸움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사회서비스원, 폐지가 아닌 돌봄 사회화의 출발점으로

돌봄의 공공성은 공공기관이 돌봄을 제공한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돌봄 자체가 사회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노동이자 공동 활동이 되어야 한다는 지향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독박돌봄을 단지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돌봄으로 대체하는 게 아니라, 돌봄이 독박돌봄이라는 사적 관계가 아닌 사회적 관계망 안에 있도록 하는 것이 돌봄 공공성, 사회화의 핵심이다. 윤석열 정부와 서울시의회의 사회서비스원에 대한 공격이 목표로 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사회서비스 재원의 대부분을 정부가 지출하는 상황에서, 이를 사회서비스 산업육성을 위한 정부 투자로 사용하겠다는 것과 돌봄 자체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이자 공동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가 나선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의미이다. 현재 사회서비스원의 현실은 여러 사회서비스 위탁기관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우리는 사회서비스원 폐지저지 투쟁을 돌봄 사회화, 공공성 쟁취를 위한 싸움의 출발점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19일 서울특별시의회 본관 앞에서 열린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조례 폐지 저지·공공돌봄 사수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격파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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