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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입사, 세번 해고당하고 지금은 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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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입사, 세번 해고당하고 지금은 중년" [오래도록 싸우는 사람들] 3차례 해고와 18년의 싸움, 시그네틱스 노조
"복직되신 줄 알았어요."

내 쪽에서 꺼낸 말이다. 2017년 9월에 이들의 복직(부당해고) 승소판정 기사를 본 터였다. 싸움이 종료된 줄 알았다. 조합원이 말한다. “다들 그런 줄 알아요.”
봄이라 하지만 아직 쌀쌀한 바람이 불 때 이들을 만났다. 법정 투쟁에서 승소한 지 1년 반 뒤였다. 2016년에 해고됐는데, 그것이 세 번째 해고다. 첫 번째 해고는 2001년이었다.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 전원이 징계해고 됐다. 앞서 종료된 줄 알았던 싸움의 역사는 무려 18년이다. 20-30대 노동자가 어느새 중년이 됐다.

"이런 데가 또 있어요?" 답답한 심정에 어떤 이가 물었다. 그이가 지칭한 ‘이런 데’란 '시그네틱스'라는 회사를 말했다. 정확하게는, 3번이나 같은 직원들을 해고시키는 회사가 여기 말고 또 있느냐는 질문이다.

말문이 막힌다. 떠오를 리 없다. 세상은 보기보다 잔혹해,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회사 문을 닫아버리는 일조차 드물지 않다. 그러나 3차례까지 해고하는 일은 없다. 왜 없을까. 3번의 해고는 2번 이상 복직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18년 동안 꾸준히 해고시키는 회사와 꾸준히 싸워 복직하는 노동자가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기지부 시그네틱스분회

첫 번째 해고_사람만 버림 당했다

첫 해고는 6년 만에 복직 판정을 받았다. 소송 기간만 4년이 넘는다. 지방노동위원회부터 대법원 판결까지, 회사가 거듭 항소를 한 까닭이다. 거대 로펌이 사건을 담당했다.

"회사가 돈이 많아서 그래요."

그렇게 말하는 이들 뒤로 <영풍그룹> 본사가 있다. 1인 시위를 하는 중이다. 반도체 조립업체인 시그네틱스를 2000년 영풍그룹이 인수했다.

원래 시그네틱스는 필립스 한국공장이었다. 1966년 회사가 세워지고 직원이 3천명에 다다른 적도 있었다. 그 시절에 노동조합도 있었다. 한국노총 소속이었는데 당시에 “노조를 만들기 위해 대로에 드러누웠다.” 90년대 들어 필립스는 투자를 줄이더니 결국 95년 철수한다.

뒤를 이어 거평그룹이 회사를 인수했다. 거평그룹은 서울 염창동 공장을 담보로 파주에 1만6000평 규모의 공장을 지었다. 기존 공장의 10배 규모다. 그 과정에서 부도가 난다. 시그네틱스는 워크아웃 사업장이 된다. IMF 외환위기 시절이었다.

그 시절 '국민'들은 나라를 살리겠다고 금을 모으고, ‘노동자’들은 회사를 살리겠다고 월급을 반납했다. 그게 모두를 살리는 길이라 했다. 시그네틱스 노동조합도 임금동결, 상여금 반납, 호봉 승급 보류 등 각종 복지와 임금을 축소하는 데 동의했다. 일명 고통분담이었다.
"1년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하죠. 그때 대표이사가 고맙다고 직원들한테 아이스크림을 샀거든요. 그때 그걸 잊을 수가 없어요. 회사 살려야 한다는 게 있었고. 그래서 졸업했고. 이제 파주가면 되나보다 했는데. 억울한 게 더 크지요." (윤민례 시그네틱스노조 분회장)

회생한 회사를 영풍그룹이 인수한다. 조합원들은 새로 짓는 파주공장으로 가는 일만 남은 줄 알았다. 고통분담의 전제를 고용승계라 생각했다. 그러나 영풍그룹의 생각은 달랐다. “우리가 순진했다” 서울 염창동 공장은 팔리고, 파주 공장에 정규직은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2001년 7월 전 직원에게 안산공장으로 인사발령이 난다. 파주가 아니었다. 안산으로 못 가겠으면 퇴사하라 했다. 정규직원은 들어갈 수 없는 파주공장에는 파견업체를 통해 온 비정규직이 가득했다. 후에는 전 라인을 사내하도급(소사장제)으로 전환한다. 굳이 제 3의 부지인 안산공장을 만들어 낡은 장비를 채워 넣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빤했다.

파주는 무노조와 100% 비정규직으로 채워진 ‘꿈의 공장’이었다. 노동조합은 인사발령을 거부하고 파업에 들어갔다. 회사는 파업참가자 130명을 전원 징계해고 한다. 조합원들이 지키던 서울 공장에서 용역 수백 명을 동원해 기계를 반출한다.

한 조합원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만 버림받았다."

기계처럼 고분고분하지 않아서, 기계처럼 일회용 소모품이 아니라서 사람만 버림받았다.

두 번째 해고_ 사람은 기계가 아니니까

싸웠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니까. 삭발을 하고, 고공농성을 하고, 단식을 했다. 갓난쟁이 아이를 집에 두고 공장을 지켰다. "우리가 그땐 악에 가득 찼지" 15년쯤 지났다고 이제는 웃으며 말한다. 해고 6년 후인 2007년, 대법원은 징계해고자 중 65명에게 부당해고(복직) 판정을 내린다. 현 분회장(위원장)인 윤민례 씨를 포함해 파업에 앞장 선 29명은 여전히 해고 상태다.

복직한 이들은 안산공장으로 갔다. 예전의 회사가 아니었다. 회사생활을 "언니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동생, 언니하며 지내던 회사였다. 그 언니와 동생들은 안산공장에서 괴물같이 독한 ‘민주노총’과 한때 동료를 팔아먹는 ‘구사대’로 나뉘었다.

"복직해서 들어오니까 소닭 보듯이 보는 거지. 회사는 그걸 활용도 했고. 그래서 이제 전혀 다른 길로 가야 했지." 구사대 역할을 했다고 지칭되는 직원들은 한국노총 소속 노조를 만들었다. 그렇게 둘로 갈라져 살았다.

둘로 갈라진 것은 노동자만이 아니었다. 시그네틱스는 하도급업체(퓨렉스, 유엔씨)로 안산공장을 쪼개려 했다. 그렇게 파주공장이 성취한 100% 생산직 비정규직 공장을 재현하려 했다.

2011년 회사는 안산공장 전 직원에게 사내하도급 업체(유엔씨)로 이직하라 한다. 민주노총은 거부한다. 그래서 또 해고된다. 복직된 조합원 32명 전원이 잘렸다. 비조합원(한국노총 소속 노동조합)은 이직을 받아들인다. 회사는 5년 고용보장을 약속하지만, 지켜질 리 없다. 4년 후 유엔씨는 폐업한다. 그러나 32명은 다시 공장으로 돌아온다. 2년을 싸웠다.

세 번째 해고_복직을 안 시킬 줄은 몰랐어요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기지부 시그네틱스분회
서러운 이야기 좀 하고 가자.

"우리 복직해서는 좀 있다가 조회시간에 공장장이 구호를 외치라는 거야. 내가 아는 구호가 뭐가 있어 갑자기 외치라니까. ‘가자 파주로!’를 외쳤지." 당시 노동조합이 외치던 구호였다.

"그랬더니 나보고 잠깐 나오라는 거야. 찍혀가지고, 2주 동안 일을 안 주는 거야. 사무실에서 대기했어." (김양순 수석부분회장)

'가자 파주로' 외쳐 놓고 여기(안산)는 왜 왔냐고, 미운오리 새끼 취급도 많이 당했다. 자잘한 징계, 명절에 지급되지 않는 선물, 사라진 통근버스. 2001년 이후로 노사 단체협상을 체결한 적 없으니 임금은 ‘고통분담’ 시절에 멈춰있다. 파주공장으로 갈 꿈을 배신당한 이후, 고통을 분담해야 하는 날은 계속 됐다. 그러나 이들은 더 이상 회사와 고통을 분담하지 않는다. 내 옆 동료, 조합원과 나눈다.

첫 번째 부당해고 판정은 조합원을 해고자와 복직자로 나눴다. 그러나 부당해고 기간 동안 미지급된 6년 치 월급을 노조는 함께 나눴다고 했다. 명의만 보자면 복직자의 것이었으나, 복직 투쟁은 모두의 것이었다. 돈이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했다.
"'공동책임'이라 했어요. 투쟁이든 성과물이든 우리는 끝까지 같이 하고 같이 나눈다. 회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우리는 함께한다는 약속을 지킨다." (윤민례 분회장)

'공동책임'은 논의를 거쳐 결정됐다. 협의하고 납득하고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는 가운데, 양보를 했다. 이제 존중 없는 회사의 양보 요구는 믿지 않는다. 수많은 배신을 겪었다. 어김없이 세 번째 정리해고가 왔다. 2014년 안산공장이 매각됐다. 광명사업부로 이전했으나 역시나 폐업된다.

앞서 말했듯, 2017년 해고자 전원이 복직(부당해고) 판결을 받는다. 그럼에도 공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이럴 줄은 몰랐어요. 복직을 안 시킬 줄은 몰랐어요." 회사는 휴업을 했다. 이들에게 휴업수당(임금의 70%)를 지급하고 자택에서 대기하라 했다. 그 시간이 9개월이다.
노동조합은 또 다른 소송을 준비한다. 위장휴업에 관한 것이다. 파주공장에는 일자리가 넘친다고 했다. 회사는 회사대로 자신들이 가장 잘 해온 것을 한다. 기업에겐 오래도록 싸울 자금이 있다. 노동자에게 없는 것이다. 시그네틱스 회사는 6월 30일까지 퇴직금 전액을 반납하하고 조합원들에게 공문을 보냈다.

회사가 휴직을 시켰다. 최저임금 기본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으로 산다. 이런 상황에서 거액을 반납하라는 압박은 조합원들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든다. 불편해서 분열하라고 보내는 통보다.

알고도 왜 싸우는가

조금 더 우는 소리를 해보자.

"사실 어디 가서 3번 해고당했다고 말 못해요."
3번이나 잘리고도 왜 그 회사에 붙어있냐고 옆에서 한마디씩 한다고 했다. "병이 오는 거 같아요." 누군가는 심적 압박이 일상인 투쟁의 어려움을 이리 표현했다. 실제 사람들이 떠났다. 3번은 심하다 했다. (해고자 제외) 조합원 아홉 명이 남았다.
남은 이들도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그런데 왜 회사에서 준다는 위로금을 받고 그만두지 않는 걸까. 왜 여기로 싸우러 오냐고 물었다. 20년 가까이 계속된 전쟁에 정년을 넘긴 조합원이 말했다. "투쟁과 결혼은 알고는 못한다." 여성노동자로 산 지 40년, 결혼은 35년 차다.

그런데 이미 알아버린 싸움을 계속 한다. 처음이 아니다. 세 번의 해고, 세 번의 투쟁. 그 어렵다는 ‘알고도 싸우는 일’을 한다. 왜 싸우는가 묻는다. 오래도록 싸우는 노동자들에게 반복해 묻는 질문이다.

내 손으로 사표 쓰고 나오고 싶다

"20살에 입사를 해서 이때껏 이 회사를 다녔어요. 나가라 한다고, 내 손으로 포기하고 나올 수는 없는 거예요."

입사년도를 물었다. 돌아가며 답하는 연도가 심상치 않다. 88년, 86년, 87년… 세월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때껏’이 어떤 의미인지 그제야 이해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입사해 습관처럼 회사, 집을 오갔다고 했다.

"3번의 해고 모두 나의 의지가 아니다. 나는 싫다. 내가 사표 내고 싶을 때 내 손으로 내겠다"고 말한 이는 노동조합 깃발을 내리는 일은 자신이 사표내기 전까지는 없을 거라 했다. 이들에게 노동조합과 회사는 같은 단어였다.

드문 경우다. 평생 회사라고는 시그네틱스 단 하나이고, 인생에서 노동조합이 없어본 적이 없다. 비정규직 만연한 한국사회에서 흔하지 않은 일이다. 시그네틱스가 시도한 하청업체로의 이직 강요, 소사장제 전환, 폐업, 해고 등은 모두 ‘흔함’을 만들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노동조합 때문에 100%를 달성하지 못했다. 정규직 그녀들이 남았다. 그녀들이 생각하는 노동조합, 그 반대편에 100% 비정규직 고용 파주 공장이 있다. 그래서 '가자! 파주로' 외쳤다.

노동조합 깃발을 내리고 해고를 받아들이는 것은 이들에게 파주 공장과도 같은 세상에 내던져지는 일과 같다. 파견직이 난무한 전자산업 하청업체에서 사람을 어떻게 부리는지 알고 있다. 업무지시 하나에도 반말과 인신공격이 난무하다. ‘사람’이라 파주공장에 가지 못했다. 손쉽게 쓰고 버리는 일이 불가능한 사람이라서 그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 말하면 입만 아픈 비정규직이다.

시그네틱스 노동자들이 당했다는 ‘정리해고’조차 어쩌면 우아한 이름이다. 굳이 ‘정리’할 만큼 집단으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집단을 이루기 힘들다. ‘우리’가 사라지고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경기지부 시그네틱스분회

여성노동자는 의리

노동조합은 ‘우리’를 작동하려는 공간이다. 그래서 떠나지 않고 남아 싸우는 이유를 물으면 ‘의리’라는 단어가 나온다. 역시나 시그네틱스에서도 그 단어가 나온다. 추상적 단어가 주는 구체성이 머쓱해 농을 한다.

"역시 여자는 의리죠."

당장 옆에 있는 동료에게만 지키는 의리가 아니다. 복직하지 못했던 해고자들 중 18명은 지금도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20년 가까이 지난 일임에도 번번이 조합원들은 해고된 이들을 언급한다. "그 사람들한테 미안하고 고맙지."

나누는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이들이 의리를 지키고자 하는 대상은 동료 개개인을 넘어 노동조합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3번째 해고통보는 말하는 바가 명확했다. 노동조합의 문을 닫고 모두 사라져라. 그런데 “사표 안 내고 끝까지 투쟁한다”고 한다. 그것은 “노조 깃발을 내릴 수 없다”라는 말과 같다고 했다.

한 눈에도 당찬 보이던 김양순 부분회장이 말했다. “열 번 스무 번 해고해도 나는 끝까지 갈 거다” 바로 옆에서 다른 이가 외친다. “징그러” 그렇다. 상상만으로 지긋지긋하다.

"징그러워도 회사가 원하는 게 그거니까. 안 그러길 바라는데. 세상이 갑자기 뒤바뀔 수도 없는 거고. 국회의원들 하는 거 봐서는 노동자를 위해 정치를 할 것도 같지 않고. 우리 스스로 깨닫고 알려내어야 하는 상황인데. 내 권리는 내가 찾을 수밖에 없지."

‘이런 데’가 있냐고 묻던 조합원의 말을 되돌려 나도 묻고 싶다. 3차례나 전원 해고를 시키는 이런 데가 왜 존재해야 하는가를. 아니 이것을 묻고 싶다. 왜 ‘사람이기에’ 버려지는 세상을 유지하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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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기록노동자다. 저서로는 르포집 <노동자 쓰러지다>,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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